엉클 장
우리 동내에 한국식당이 하나 들어서면서 주위 사람들의 이목이 나에게 쏠렸다, 말레이인은 물론 중국인 인도인 모두 만나는 사람들마다 나는 이름도 모르는 “엉클 장” “엉클 장”하면서 혹 내가 아는 사람이거나 이 브랜드의 음식에 대해서 잘 아는가를 묻는 것이었다.
장소를 물어보니 동내 바로 앞 새로 만든 상가거리에 간판을 걸려 있는데 아직 오픈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모두가 관심을 가져 주니 나 역시 뿌듯하였다. 그리고 내가 미리 “엉클 장”이라는 닭고기 볶음 음식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알지 않으면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다.
차를 몰고 그곳에 가 보았다. 그 곳은 반달푸트라와 인다프라를 거점으로 대대적인 건축공사를 하는 i 그룹이 뒤쪽에 서민용 연립주택단지를 만들고 앞 쪽에 3km도 넘는 상가거리를 조성한 곳이었다. 간판이 걸려 있는데 대머리 주방장 그림으로 로고를 삼았고, “엉클 장”이란 영문 표기 밑에 한문으로 韓國式 鐵板 鷄料理 라고 쓰여 있었다. 한국어가 하나도 안 들어가 있는 것이 조금은 아쉬웠다. 내부 공사도 끝난 모양인지 철문이 내려져 있고 며칠 후 오픈만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며칠 후 나는 이웃 중국인 양과 찬을 데리고 엉클 장 식당을 찾아갔다. 명분은 그들에게 한국음식을 소개해주겠다고 했지만 실은 내 자신이 오랜만에 한국음식을 맛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한 시간 거리의 조호바루 시내에 나가면 한국음식점이 여러 군데 있으므로 얼마든지 맛볼 수가 있는 것이었지만 거리도 멀뿐만 아니라 값도 비싼 반면에 음식 맛이 기대에 못 미쳤기 때문에 선뜻 나서지지가 않았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점 다 놔두고 코앞에 한국음식점이 생겼다니 우선 맛을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는 빨간 샤스 유니폼을 입은 방글라데시 종업원들의 영접을 받고 첫 손님의 권리대로 창틀 옆 널찍한 자리를 차지했다. 모두 닭고기 볶음 요리였다. 3인분을 시켰더니 닭고기와 양배추 그리고 고추장으로 만든 양념장을 프라이팬 가득히 가져왔다, 원래 나는 닭고기를 즐기지 않은 터였지만 고추장 소스와 어울려진 닭볶음 냄새가 군침을 돌게하여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라보니 그냥 볶은 셈이었는데 그 것이 1차 볶음이요, 적당히 먹은 후 밥이나 국수, 라면 등을 넣어 다시 볶은 것이 2차 볶음이었다. 그런대로 담백한 맛이 기름을 너무 많이 넣어 니리끼한 중국음식과는 확실히 다른 것 같았다.
거기에 김치와 김 그리고 상추 잎이 겻 들여 나왔다. 김 한 잎이 계란 하나 보다 훨씬 영양가가 많다는 것과 상추로 닭고기를 쌈 싸 먹는 것은 부족한 비타민을 보충한다는 것을 설명했더니 양과 찬도 “good, good" 하면서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표정이나 먹는 폼으로 봐서 그냥 한 소리는 아닌 것 같아 바로 앞집의 탄 식구들도 한 번 초대해야겠다고 마음 먹었다.
탄의 식구들에겐 빚이 있었다. 언젠가 조호바루 시내에 있는 한국음식점에 데리고 가서 불고기를 선보였는데 소고기가 로칼 버팔로 고기인지 역한 냄새가 났고 질기기도 하여 돼지 갈비를 따로 시키지 않으면 안 되었던 적이 있었다. 그들도 한국 음식의 대표 격이라는 소고기 바비큐에는 손도 대지 않았고 삶은 돼지갈비만 몇 점 상추에 싸서 먹고 나왔던 것이다. 그 후 다른 집에 가서 맛을 보여주겠다고 했는데 차일피일 시간만 보내고 말았다.
우리가 식사를 하는 동안 시간이 되었는지 실내뿐만 아니라 실외의 자리에도 사람들이 들어차 있었다. 그들은 상추에 닭고기를 싸서 먹는 방법도 알고 있는 것으로 보아 한국 음식 마니아든지 아니면 TV를 통해 소개받았을 것이었다. 또한 그저 호기심으로 찾아온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K-Pop과 한국 드라마는 이제 이곳에서 유명해져버렸다. 덕분에 골프장의 케디 아가씨들로부터 나는 “오빠”라는 또 다른 별칭으로 불리어지고 있다.
주인이 찾아왔다. 생각했던 것과는 달리 키도 크고 얼굴도 준수하게 생긴 청년이 고개를 숙인다.
“찾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응, 그래. 주인이시구먼? 젊은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하였는지…….”
얼굴 피부가 너무나 하얗고 어리게 보여 말이 어정쩡하게 나온다.
“아버님 친구 분이 엉클 장이신데요, 저에게 권유를 하시기에 장사도 배울 겸 시작을 했습니다, 많이 도와주십시오,” 부산 말 억양이 약간 섞인 말투도 점잖다.
“아 그래. 체인점이구먼? 이곳 조호바루에서 한국 음식점 차려가지고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고 들었는데 내 생각엔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린 것 같아.” 어쭙잖은 충고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써비스로 커피가 나왔다. 우리는 자리를 바깥쪽으로 옮겨 건너편 숲 속에 가려진 우리 마을과 골프장을 바라보았다. “골프장 손님들이 많이 와 주어야 할 터인데.....”
며칠 후 나는 넘실대는 파도 속에서도 우뚝 서 있는 바위섬 그림을 개업 선물로 주었더니 젊은 사장은 고맙다는 인사를 몇 번이나 한 뒤 우측 공간 벽에 바로 장식을 한다.
다음날 저녁 7시경 난데없이 5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그의 부인으로 보이는 여인이 초등학교 상급생으로 보이는 어린 아이를 데리고 왔다.
“제가 아비 되는 사람입니다. 싱가포르에 살고 있습니다만 좀 있다 말레이시아로 이사를 올 것입니다.”
“아, 엉클 장 친구라는 분?”
“예. 저 P라고 합니다. 제 집사람이구요,”
여인이 꼬마와 함께 인사를 한다. 그리고 가지고 온 반찬거리를 냉장고에 넣고 식탁에 소주병과 한께 술안주를 차려놓는다,
“선생님, S시에 사신다구요? 저의 장인 어르신께서 혹시 선생님 아니신가, 찾아보라고 해서 알아 봤더니 맞더군요. 저의 장인 성함이 J인데요. 선생님 후배 된다고.....“
“아, J? 후배는 무슨 ....같은 나이인데 ...... 아, 그러면 부인이 J의 따님이시구먼? 아이쿠 이거 이국땅에서 이렇게 만나는 인연도 있구먼,”
“그러게 말입니다. 그런데 그림은 언제부터 시작하셨어요? 장인어르신도 선생님이 이곳에서 그림으로 소일하신단 소식을 듣고 계셨던 모양이예요. 제가 카톡으로 보낸 그림을 보고 당장 찾아보라고 그러시더라구요. 그리고 제 아들에게 보내주신 그림 정말 감사합니다”
“뭘 그것 가지고 그래요? 그저 한국 음식점에 한국 냄새가 나는 게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해서이었어요,”
“제 늦동이가 이곳에 온지 5년이 지났습니다. 이번에 제가 싱가포르에서 하던 사업을 접고 말레이시아로 오게 되었는데 제도 이곳 외국인 학교로 전학을 오게 되었습니다. 차후 자주 들리겠습니다만 늦동이가 그림을 배우고 싶다면 시간 있으실 때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가르칠 실력이나 되나요. 얘가 배우고 싶다면 같이 연습해보지요, 뭐.”
엄마와 학생은 벽에 붙어 있는 그림들을 둘러보느라고 이층 계단을 올라가고 나와 아빠는 오징어볶음 안주에 연신 소주를 들이켰다. “엉클 장의 무궁한 발전을 위하여.....”
집 발코니에서 바라본 우리마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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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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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권미나
말레이시아
술파는꽃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