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연습]

그림을 그려봅니다. 그림이라고는 중학교 다닐 때까지 크레파스로 숙제나 해본 것이

전부였던 내가 한국화 물감으로 하늘과 구름도 그려보고 숲속의 집들도 그려봅니다.

강물도 그려보고 바다와 파도도 그려봅니다.

어렸을 적 선친께서 외로움을 이기는 방법으로 그림 그리기를 말씀하신 적은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는 동안 화폭 앞에 앉아서 마음을 달랠 만큼의 외로움도 없었고 외로움에

떠는 나를 그림 그리기로 이겨보려는 생각은 아예 하지도 못하였습니다.

그저 앞만 보고 달렸으며 뒤쫓아 오는 그림자는 볼 시간이 없었습니다. 앞만 보고

달리기에도 숨 가쁜데 어떻게 뒤를 돌아보았으리오. 

나는 시간에 쫒긴 패싸움만 하였고 1대 0으로 지고 있는 연장전 후반의 다리 삔

공격수였습니다.

세상은 정글이었습니다. 온통 적으로 둘러싸인 숲 속에선 오직 살아남는 방법을

배워야하고 익혀야 하고 싸워야 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바람벽에 부딪치어 이제는 더 나아갈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합니다.

몸은 병들어 지치고 정신은 가시넝쿨만큼이나 헝클어져버릴 때입니다.

사방이 벽으로 둘러싸여 하늘이 조각난 거울처럼 보입니다. 생각도 조각조각

부서지고 잠자리 꿈도 과거에서만 머무릅니다. 나이 듦의 고집은 가족들만

괴롭힐 뿐입니다.      

하늘이여! 이젠 달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당신이 온전히 보일 수 있도록  저

벽이나 치워주소서!

너는 언덕 위에 서있는 한 그루의 나무부터 그려 보거라. 밑동에서부터 몸통을

그리고 가지들을 그리다 보면 하늘이 보일 것이다.  바람벽처럼 막혀있는  머리아픔은

속박에서 생기는 것이니  스스로를 자유롭게 하도록 노력하라.   

화선지 위에 먹물 먹은 붓을 그어 봅니다.  밑에서부터 위로 붓을 쳐들어 올라가는

굵다란 선은 군데군데 멈춤으로 그루터기를 만듭니다. 다시 그곳에서 가지가

나오고 또 가지를 올리고....

마음이 가는 데로 붓끝이 움직입니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진정한 자유입니다. 

직선도 되고 곡선도 되고, 힘이 있건 없건, 예쁘건 말건. 어디 나무가 보기에

아름다운 나무만 있습니까?        
 

이제 바위도 그려봅니다. 타원형으로 그려보기도 하고 삼각형 직사각형. 서있기도

하고 누어있기도 하고. 임금바위도 그리고 장군바위도 그립니다. 암소바위, 도깨비 바위,

며느리바위, 모든 군상은 어울려 바위산이 되지만 바위 하나하나는 인내와 고독과 자유의

개체들입니다.

숲속 마을은 평화롭습니다. 자동차들이 매연을 내뿜고 사람들이 어께를 부딪쳐가며

비좁은 거리를 뚫고 나가야하는 도시에서 황혼을 바라보며 찾아온 숲속은 너무나

조용합니다. 집   뜰 안에 들어온 다람쥐가 잠잘 곳을 찾고  도마뱀이 창틀에

매달려 있습니다.

호수는 엄마의 가슴입니다. 무엇이든지 안으려고 합니다. 나무의 그림자도 하늘의

빛깔도 그리고 구름의 흐름도 품에 안고 자장가를 부릅니다.

하늘에 파란 색칠을 합니다. 빈 여백은 하얀 구름인데, 아하! 구름도 그림을

그리네요. 목화송이도 그리고 산봉우리도 그립니다. 적도 하늘의 구름도 외롭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