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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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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보험
2014-06-17 오후 5:24 조회 4454추천 5   프린트스크랩



  보험설계사 P는 보험회사에 몸 담은지 십년이 훌쩍 넘었다. 처음엔 멋모르고 덤벼 들었다가 후회아닌 후회도 한 적도 많았고 갖가지 고비를 숱하게 넘겼다. 여자라는 신분 때문에 남자들의 거친 농담도 받아 넘겨야 했고 실제 남자들의 엉큼한 유혹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매순간마다 가정을 지켜야한다는 생각으로 지금까지 잘 버티어 왔다.

   시작할 당시에는 명칭이 보험모집인이었다가 보험설계사로 바뀌었는데 이제는 단순한 보험만 중개하는 것을 벗어나 금융전반의 폭넓은 지식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서 고객에게 서비스를 해야 하는 등 전문분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보험계약 건수를 많이 올려야만 매월 실적 평가에서 인정을 받을 것이지만 그게 그리 쉬운 일이 아니어서 매일 긴장의 연속이다. 기존의 고객 관리도 중요하지만 새로운 고객을 끌어들이는 건 더욱 중요하다. 한데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보험시장에서 새로운 고객을 찾는다는 것은 어렵기 그지 없다.

   그래서 P는 고심 끝에 새로운 곳에 눈을 돌리기로 했다. 새로운 고객보다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더 나을 거라고 여겼다. 그러면 자연 고객은 물고기처럼 모여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P가 착안한 것은 바둑이었다. 이른바 <바둑보험>. 지금까지의 보험 상품 중에 바둑에 관한 것은 없었다. 어린 시절 아버지에게 어깨 너머로 배우다가 만 바둑을 우연히 기억해 내고 이것을 보험상품으로 개발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자신의 바둑 실력은 걸음마 수준을 좀 넘긴 하수에 불과한 것이지만 이것을 상품으로 개발하는 쪽에는 밀리지 않을 터였다.

   P는 바둑과 관련된 그리고 바둑이 상품성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였다. 각종 자료를 조사해 보니 수십년전 모 제과회사에서 낸 <바둑껌> 정도 밖에 없었다. 만화로는 일본, 한국에서 나온 것이 여러편 있고,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두편의 영화로 만들어진 것이 있었다. 만화는 흥행에 성공한 것이 적지 않았지만 영화의 흥행성은 미지수였다. 금융계통에는 바둑에 관한 상품은 전무하였다.

   한국기원 소속의 프로기사들의 수입은 천차만별이라고 한다. 정년은 없지만 연봉도 없다. 과거엔 단수당, 연구수당 등의 고정급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나마 없어져 각종 대국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야만 수입을 바랄 수 있다. 삼백여명 프로기사중 십프로 내외만이 나름대로 고수입을 올리고 나머지 구십 프로는 낮은 수입으로 고전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상금 수입이 천만원을 넘지 못하는 사람이 허다하며 부족분은 바둑보급, 사범 기타 홍보 활동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이들의 위험부담을 덜어주고 노후의 안정을 위해서 바둑보험이 파고 들어갈 여지가 충분히 있을 것으로 판단되었다. 프로기사 뿐아니라 바둑마니아들에게도 해당될 것이었다. 바둑 인구가 천만 안팎이라는데 이 거대한 자원을 잘 활용한다면 상당한 성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P는 황무지와 다름없는 이곳에 보험의 씨앗을 뿌려 보기로 하였다.

   보험의 종류를 몇가지로 구분하되 보장성은 아마와 프로에 약간의 차이를 두기로 하였다. 프로는 직업적인 것이고 아마는 취미로 즐기는 것이어서 급수별 간격을 두어 불입금과 보장금액의 차이를 두는 것이 합당할 것이었다. 프로도 비숫한 내용으로 차이를 두는 게 좋을 듯 하였다. 타이틀 보유자와, 성적이 상위권과 하위권의 위험 보장성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므로.

   보험의 명칭도 문제였다. 명칭이 그럴듯 해야 관심을 끌 수 있을 테니까. 고심 끝에 몇가지 생각해 내었다. <바둑보험>이라는 명제하에 세부적으로 <바둑생명>, <바둑노후보장>, <바둑실수보장>, <바둑실비보장> 등이었다. 물론 이를 모두 아우르는 <바둑종합보험>도 만들었다. 각 항목별 보장 내용을 간단히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 <바둑생명> : 바둑을 두다가 혹은 바둑을 관전하면서 갑자기 사망한다든가 바둑과 관련된 일로 신체적 상해를 입었을 경우. 특히 바둑을 두는 손 이 상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그 강도에 따라 고액을 보장한다.

   ○ <바둑노후보장> : 프로와 아마를 불문하고 바둑마니아들이 바둑에만 전념토록 하고 노후에 미래에 설치될 바둑요양소에 입소할 수 있는 특혜를 주는 것

   ○ <바둑실수보장> : 초반에 상식밖의 수를 두어 판을 그르쳤을 경우, 돌을 잘못 놓았을 경우, 바둑대마 몰사로 불계패했을 경우, 형세판단에 중대한 착오가 있을 경우, 시간초과를 알지 못했을 경우, 끝내기 실수로 역전패했을 경우 등

   ○ <바둑실비보장> : 기원에서 또는 각종 바둑 행사에서 예기치 못한 사건으로 손해를 입었을 경우

   
  한마디로 바둑과 관련된 맞춤형 보장 내용이어서 바둑마니아들의 관심을 끌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월불입금은 일만원에서 십만원 사이로 선택의 여지를 두었고 불입기간은 십년에서 이십년, 장기적으로 삼십년까지 가능하도록 하였다. 보장금액은 최소 천만원에서 최대 오억원까지로 하였다. P의 개발 상품은 중앙 본부에 접수되어 심의를 거쳐 신상품으로 판매하기로 결정되었다. 들리는 뒷 얘기는 보험회사 사장이 바둑애호가로 알려져 적극 추천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P가 홍보팀으로 발탁되어 나름대로 전략을 짰다.

   각종 바둑사이트에 광고를 의뢰하고 팜플렛을 만들어 기원 주변과 각종 바둑행사에 찾아가 나누어 주었다. 회사의 지원하에 언론과 방송매체에도 과감하게 광고비를 투자하였다. 호응도는 예상 밖으로 컸다. 바둑 꿈나무 어린이를 둔 부모로부터 청소년, 중장년, 노인들을 망라하여 전국에서 바둑보험에 대한 문의가 끊이지 않았다. 다른 일반보험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고 취미 생활을 여유를 갖고 할 수 있게 되었으며 노후를 편하게 보낼 수 있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 사실에 사람들의 호기심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보험실적이 며칠 사이에 수십억을 넘었다. P는 회사내에서 일약 스타로 부상하였고 보험왕으로 추대되었다. 머잖아 주요 간부 임원으로 임명될 것이란 얘기까지 나왔다. P는 이런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P는 부푼 마음으로 퇴근을 했다. 그동안의 격무에도 고된줄 몰랐는데 한꺼번에 피로가 엄습했다. 눈꺼풀이 자꾸 감겼다. 운전대를 잡았는데 졸음이 몰려왔다. 눈을 껌벅이며 중앙로 로타리를 달렸다. 신호등 불빛이 오락가락하였다. 갑자기 옆에서 쿵하는 소리가 들렸다. 차량이 충돌한 것 같았다. 순간, P는 운전대를 놓치며 정신을 잃었다.

   P는 누가 흔드는 바람에 눈을 떴다. 남편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 잠꼬대가 왜 그리 심하냐? 이마에 땀 좀 봐. 무슨 꿈을 꿨는데 그래?

   - …응? 여보, 내가 꿈을 꿨다고?

   P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침대 옆 미등이 방안을 조용히 밝히고 있었다. P는 아쉬운 듯 이불을 걷고 거실 책상으로 갔다. 책상 위에는 바둑보험 설계를 하다만 흔적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컴퓨터를 켜고 바둑사이트를 찾았다. 각 바둑사이트마다 광고 문구가 중간중간에 떠올랐다. 그러나 바둑보험 광고는 어디에도 없었다. P는 정신나간 사람처럼 앉아 있었다.

   한동안 꿈과 현실 사이를 가늠하다가 P는 책상에 엎어져 부족한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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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소가는길 |  2014-06-23 오전 10:57: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비몽사몽 사색도 가치 있는 사유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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