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 노숙자 Y의 죽음 | 나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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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노숙자 Y의 죽음
2014-06-11 오전 10:22 조회 4405추천 9   프린트스크랩



   지난번 Y에 대한 그 이후의 이야기이다.

   제목에서 보았듯이 Y는 며칠전에 죽었다. 공원 관리자가 매번 아침 일찍 공원 안을 점검하러 순회하는데 북쪽 담장 옆에 위치한 정각에서 Y가 죽은 것이 발견되었다.

  Y의 앞에는 바둑판이 펼쳐져 있었고 그 옆에 팔을 베고 잠을 자듯이 누워 있었다. 컵라면 봉지가 한쪽에 뒹굴고 있었고 짐보따리인 듯한 검은색 등산용 가방이 머리 위쪽에 놓여져 있었다. 그의 손은 바둑알을 잡으려는 듯 바둑통에 걸쳐져 있었는데 바둑판 위에 어지러이 놓여진 바둑알로 보아 죽기전까지도 바둑돌을 놓았던 모양이다. 특이한 다른 외상은 없어 보였다.

  관리자는 Y를 익히 알고 있는 터여서 안타까운 맘으로 119에 신고하였다. 구급차가 도착하고 구급대원이 현장에서 응급구호 조치를 했지만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사망한 것임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지만 사망 확인은 의사의 최종 판단이 있어야 하는 것이므로 병원으로 급히 이송하였다. 곧바로 뒤이어 경찰이 와서 현장을 조사하였다. 일단 변사자로 보이므로 검사의 지휘를 받아 처리해야 한다며 현장 주변에 노란띠 모양의 폴리스 라인을 설치하였다. 현장 사진을 찍고 최초 발견자인 공원 관리자에게 발견 당시 상황을 묻기도 하였다. 아침 나절 공원 안이 한동안 어수선하였다. 뒤늦게 공원을 찾은 사람들이 정각 주변에서 웅성거렸다. Y가 죽었다는 말에 사람들이 혀를 찼다.

   - 가여운 사람, 결국 죽었구만. 안되었어.

   - 바둑 고수였는데 아깝네. 공원 바둑 선생이 가버렸어. 공원에서 바둑보는 재미가 좋았는데 심심하게 됐네그려.

   - 사람 산다는게 이런건가. 나도 곧 갈 나이가 되었지만 나보다 한창 젊은 사람이 먼저 가는걸 보니 착잡하기 그지없네. 이 늙은 놈은 죽고 싶어도 맘대로 죽지도 못하는데 어쨌든 나도 머잖아 저 양반 뒤따라 가야제.

   모두들 Y의 죽음을 아쉬워했다. 그가 공원에서 바둑을 전파한 흔적이 적지 않게 묻어 있었다. 궁핍한 생활을 이기지 못해 공원을 찾았던 그였지만 공원에서 바둑의 진정한 맛을 느꼈다. 낯선 사람들과 대면하고 수담을 나누고 기원에서 맛보지 못한 또다른 감흥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자신을 드러내려다가 드러내서는 안됨을 알았고 남들과 바둑의 즐거움을 나눌수록 그 기쁨이 더욱 커진다는 것도 배웠다. 비록 끼니는 제때 못떼워 배고픈 적은 많았지만 바둑판 앞에만 앉으면 그런 것도 잊을 수 있어 좋았다. 그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홀가분하게 떠난 것이었다.

   관계기관에서 Y의 죽음을 가족에게 연락을 취했으나 받아 주지를 않아 무연고자로 처리되었다. Y의 시신은 화장을 해 시립공원 무연고자 묘지에 수목장으로 치루어졌다. 하얀 가루가 된 그는 주먹 하나 크기의 작은 공간에 묻혔다. 그 옆엔 2년생 느티나무 묘목 한그루가 서 있었다. 그는 새로운 생명을 키우는 밑거름이 될 것이었다. 나뭇가지에 Y의 이름과 생몰년도, 묘지 공원 관리번호가 적힌 조그만 명찰이 걸렸다.

   한편, 앞서 경찰에서 Y의 유류품을 조사하다가 유서를 발견하였다. 유서는 수첩에 몇장에 걸쳐 두서없이 그러나 꼼꼼히 적어 놓았는데 내용을 보면 유서라기 보다도 자신의 느낌을 수필 형식으로 기록한 것이었다. 끝으막엔 운문조의 시가 한편 쓰여져 있었다. 경찰의 협조하에 Y의 유서를 공개하기로 했다. 다음은 Y가 남긴 수필과 시 한편이다. 각기 제목이 없는 것이었으나 필자가 편의상 제목을 붙였다.

   

 (수필)

                                            공원 잔상(殘像)


   공원에 온지 열흘이 넘었다. 오늘 아침, 점심은 굶었다. 바둑을 몇판 두다가 배가 고파 그냥 구석 벤치에 앉아 졸았다.

   기원에 나가고 싶은데 용기가 나지 않는다. 용돈이라도 챙기려면 그 길이 제일 나은데 말이다. 하지만 다시는 발길을 그리로 돌리지 못할 것 같다.

   처음 만났던 사내가 왜 보이지 않는 걸까. 녀석의 실력이 나보다 못하다는 걸 지금도 느끼지만 경적필패라는 말이 있으니 어쩌랴. 귀담아 들어야지.

   오늘은 막걸리 한잔 얻어 먹었다. 강노인이 사온 건데 몇 번 불러서 가 두어잔 먹었더니 얼큰해졌다. 강노인은 스스로 장기 고수로 자처하였고 바둑은 13급 정도라 했다. 장기는 사실 쳐다보기 싫다. 바둑만이 살 길이다. 한평생 난 외길 인생을 걸어 왔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데 웬 아줌마가 징그러운듯 눈을 흘기며 지나간다. 내 모양이 노숙자로 거지로 보인 모양이다. 내 눈엔 그쪽도 그렇게 단정하지도 않은데. 차림새에 신경을 써볼까. 말까.

   조금씩 기운이 더 빠지는 것 같다. 끼니 해결이 우선인데 영양이 보충 안되니 힘이 없는 건 당연하다. 옛날 기원이 북적거릴때 그때가 그립다. 그땐 정말 밥 먹을 걱정은 하지도 않았지. 서로 사범님, 사범님하면서 대접 받았는데 말이다.

   세상에 와서 뭣인가 남기고 가야 할텐데. 수첩에 쪽지라도 이렇게 적어 놔야 될 것 같다. 내 살아온 바둑 인생, 노숙자로 전락할 줄 예전엔 미처 몰랐으라. 바둑판을 안고 같이 갈 수만 있다면 좋으련만. 죽어서 다시 태어난다 해도 바둑을 둘 것인가, 말 것인가. 그것이 문제로다.

   내 명이 다 되어 가는 것 같다. 예감이 그렇다. 내 시신을 누가 거두어 줄 것인가. 아마도 나라에서 해주겠지. 죽는 놈이 그런 걱정까지 할 필요 있겠나. 그냥 눈만 감으면 되지. 아, 밤 공기가 왜 이리 차냐. 어둠 속에서 바둑 복기라도 해보자. 맹인이 바둑 두는 걸 신기해 했는데 이 야밤에 나도 맹인처럼 행세해 보자꾸나….


  (시)

            바둑 소고(小考)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

   강아지와 바둑, 바둑과 강아지

   강아지 이름은 바둑이, 내가 좋아하는 바둑과 같구나.

   철수와 영희는 바둑이와 놀고, 나는 바둑과 논다.

   바둑이 강아지냐 강아지가 바둑이냐

   바둑이 강아지면 어떻고 강아지가 바둑이면 어떠냐

   강아지를 안은 사람은 바둑을 몇급 둘까

   강아지를 안고 바둑을 두면 반칙일까 아닐까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

   반칙이어도 좋고 아니어도 좋다.

   너랑 나랑 오순도순 한수 두수 놀자꾸나

   나도 한수 너도 한수 시간은 재깍재깍

   우리네 인생도 재깍재깍

   바둑아 바둑아 나하고 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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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  2014-06-16 오전 10:29: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옛날 실직하고 기원에서 지낼 때 모두 떠난 허한 공간에 의자를 모아 놓고 잤었죠. 가끔은 생각나는 애증의 시간들. 그나마 지금은 컴터 앞에서 바둑을 둘 수 있으니 나는 바둑이를 좀더 사랑하다 갈 모양입니다.(__)  
곰소가는길 |  2014-06-23 오전 11:04: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었습니다. 좀 쓸퍼기도 하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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