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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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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19 회
2011-08-26 오전 9:55 조회 4634추천 2   프린트스크랩
▲ 날개 좀 달아주시면 안 될까요?

                                                                 19


  나는 그분이 무하마드를 멸시한다거나 하지는 않을 걸 알았지만 그처럼 귀엽게 여기고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 그분이 무하마드를 설명하는 태도는 석가모니에 대해 이야기할 때와도 달랐다. 그것은 이상한 일이었다.

  석가모니의 자존의식은 실로 대단한 것이었다. 그는 우주와 하나였다. 그는 언어와 대화와 영이 동의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으며, 진리의 확장이 가장 가치 있는 물리적 작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석가모니는 굳이 불교 신자들의 입을 빌지 않더라도 광명한 존재였다. 그가 아시아에서 일찍이 말씀을 설파하지 않았더라면, 그리스도의 영이 아메리카 대륙을 거쳐서 중국과 일본과 한국과 필리핀과 같은 나라들에 도착하기 전에 생을 마감한 백억 명 가까운 영혼들은 대부분 짐승처럼 살다가 6도의 밑바닥을 전전했을 것이었다.

  석가모니는 사람들로 하여금 아수라도와 축생도와 아귀도와 지옥도에 빠지지 않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다. 물론 신이 우주의 어떤 4차원적 공간에 지옥도니 아수라도니 하는 장소를 따로 만들어 놓았을 리는 없지만, 사람의 삶 속엔 분명히 지옥이 존재했다. 그렇다면 석가모니가 구원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었다. 구원 받은 사람 중에는 부처와 같은 마음, 곧 신과 같은 마음으로 살며 자신과 주변에 천국을 만들어 낸 사람들도 많았을 게 분명했다.

  무하마드를 석가모니와 함께 말하자면 아메리카 삼나무에 붙어 있는 매미요, 바다를 알지 못하는 강물이요, 북극성 아래에서 밝기를 자랑하는 샛별이요, 젖먹이는 어미의 사랑과 젖을 빠는 새끼의 사랑을 비교하는 것과도 같았다. 그런데 그분의 생각은 나와 다른 것 같았다.


  

  무하마드는 자신의 생각을 가르치지 않았다. 그는 타인에게서 들은 지식과 지혜를 가공하여 예언이라며 전했을 뿐이었다. 반면 석가모니는 스스로 왕궁을 빠져나와 보리수 밑에서 천하 만상을 가슴에 품어 소화한 뒤 스스로 사람으로서 이를 수 있는 가장 높은 경지까지 올랐다.

  그런가하면 무하마드는 신과 가까워진 이후로도 열 명에 달하는 아내를 얻었다. 많게는 그에게 스물다섯 명의 아내가 있었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다. 반면에 석가모니는 왕궁에 아내와 자식을 버려두고 나와 고행의 길을 걸었다. 또 무하마드가 칼과 경전을 양손에 들고 세속적인 권력 다툼에 깊숙이 개입한 반면 석가모니는 죽는 날까지 밥을 빌어먹고 살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석가모니보다도 무하마드를 높이고자 한다면 거기엔 이유가 있을 것이었다.

  어떠한 형체도 없고 이름도 없는 그분이 자신의 아들에 대해 말할 때만큼 흡족해 하는 투로 무하마드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긴장하며 그분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는 사랑스럽게 커갔어. 그리고 부모를 모두 여의고 사막에 홀로 남겨졌을 때는 석가모니가 삼촌의 죽음을 보고 느꼈던 것처럼 삶과 죽음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지.

  무하마드는 선지자가 고향에서 대접받지 못한다는 통설을 깬 유일한 예언자야. 그는 친척들의 자녀들과 함께 성장했고, 나중에 그가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했을 때 친척들은 글을 모르는 그가 불러주는 가르침을 기록해주기까지 했어.

  소위 코란이라고 불리는 것은 그때 나무껍질이나 가죽에 기록된 무하마드의 가르침을 모은 내용이야. 그때의 기록들과 무하마드가 제자들에게 가르친 내용을 비교하여 정리한 코란은 원문이 존재하는 유일한 경전이지.

  오늘날 전 세계 모든 무슬림들이 그들의 경전에서 동일한 아랍어 원문과 번역된 글을 함께 볼 수 있게 된 건 바벨탑 사건을 생각해 볼 때 의미를 부여할 만해. 또 그리스도교의 바이블이 수많은 번역본과 정경과 외경의 차이로 인해 교파 간의 갈등을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무하마드가 처음부터 자신의 말이 아닌 신의 말씀을 전한 내용이라고 단언하며 코란을 기록하도록 한 건 뛰어난 결정이었어.

  데이비드. 사막에서의 생존을 위한 유목민 생활과 상인으로서의 삶은 지혜로운 무하마드를 영적인 각성으로 이끌어 주었다네. 정적인 삶과 동적인 삶을 한 개인이 모두 소유한다는 것은 전례가 없던 일이었어.

  알다시피 나의 아들은 아담과 하와를 동산에서 쫓아낸 이후 사람들에게 늘 동일한 요구를 하곤 했지. 그건 ‘떠나라.’ 하는 주문이자 명령이었어. 가인과 아벨의 제사 중에 아벨의 제사만을 나의 아들이 기뻐한 이유를 그가 피를 좋아하고 희생을 좋아해서라고 오해해선 곤란해. 다만 그는 정착민으로 살려고 하는 가인을 꾸짖고 유목민으로 살려고 하는 아벨을 지지했을 뿐이야. 그 후 시날 평지에서 정착하고 바벨탑을 쌓았던 사람들을 흩어 버린 일도 같은 맥락이라고 할 수 있지.

  나의 아들은 아브라함을 선택했을 때 그에게 무엇보다 하란으로 떠날 것을 명령했어. 그리고 야곱은 도망자의 삶과 이민자의 삶을 살게 한 뒤 이집트에서 죽게 했던 거야. 그와 같은 측면에서 볼 때 무하마드가 태생적으로 사막의 유목민이었으며 상인으로 살았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무하마드는 자신의 민족 깊숙한 곳에 혼재되어 자리 잡고 있는 열등의식과 자존의식을 발견한 최초의 인물이야. 그렇지만 처음에 그는 열등의식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 고집이 센 인물이었어. 그런데도 그는 나의 속삭임에 귀를 기울일 줄 알았지. 물론 무하마드와 그의 책 코란에 대해서 함부로 말했다간 나를 찾아서 죽이려는 결사대가 조직될 위험이 있다는 걸 나는 알아. 그렇다고 망설일 내가 아니지.

  하지만 나는 지금 무하마드와 그의 영을 폄하하기 위해 이야기를 이어가려는 건 아니야. 다만 무하마드를 비롯한 모든 아랍인들이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의 아들 이스마엘의 후손이라는 사실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현실을 말하려는 거야. 그리고 그와 같은 현실은 세상이 조장했거나 아랍인들 스스로 초래했다기보다는 여전히 고약하다고 밖에는 표현할 수밖에 없는 나의 아들의 치열함 때문이므로 위안을 삼을 수 있길 바랄 따름이야.”

  아랍인들이 그분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면 정말로 위안이 될 것이었다. 그분은 어쩌면 가다에게 기대를 걸고 있는지도 몰랐다. 어쨌든 아랍인들을 사로잡고 있는 열등의식은 처음부터 세상 사람들에게 드러나게끔 하기 위해 예비 되었던 듯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히브리인들보다 가능성이 있는 셈이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진 게 없이 버려졌으므로 빼앗길 게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본다면 세상에서 보기 드물게 눈에 잘 띄는 열등의식을 소유한 집단이 등장한 것도 당연했다.



  열등의식에 대해 거시적인 관점으로 적용해보는 일은 가치가 있었다. 우선 미국의 열등의식으로는 그들의 역사가 짧다는 사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볼 수 있었다. 미국이란 나라가 민주주의의 확산에 열을 올리는 이유가 과연 독재국가 치하의 국민들을 불쌍히 여겨서일까. 어림도 없는 발상이었다.

  미국이 힘을 내세우고 이득을 얻기 위해서라는 논의를 제한다면, 미국 국민들과 지도자들이 지니고 있을 열등의식 밖에는 생각해 볼 대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의 열등의식은 역사가 짧다는 사실에서 비롯되고 있었다. 미국인들은 무언가 자부심을 갖고 행동을 취할 수 있는 동기로 민주주의가 적당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미국은 영적인 졸부였다. 하루아침에 영적인 부자가 된 미국인들은 처음부터 거들먹거리고 남의 일에 참견하는 행동을 했던 게 아니었다. 그들은 고귀한 청교도적인 신념과 민주주의와 노예 해방과 평등과 자유를 모두 누리게 되면서 신께 감사할 줄 아는 천국의 백성이었다. 그렇지만 결국 그들도 다른 모든 신의 은혜를 맛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타락했다.

  같은 맥락에서 교황청이나 영국 왕실이 지닌 열등의식도 좀처럼 드러나지는 않지만, 이제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게 되었다. 교황청은 갈릴레오 갈릴레이 같은 학자를 핍박했던 사실과 수많은 양민들을 종교재판이라는 칼을 휘둘러 살해한 과오들에 대해 열등의식을 지니지 않고 있다면 사람의 소굴이 아니리라. 사실 갈릴레오에 대해서 가톨릭의 사과가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갈릴레오는 과학을 연구하면서 창조자의 존재를 감지했습니다. 그 창조자는 그의 영혼 깊은 곳에서 그를 자극했던, 그의 직관을 예상하고 지원한 창조자였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갈릴레오에게 사과를 한 건 그의 명 저서 ‘두 가지 주요 세계 체계에 관한 대화’를 포기하고, 저주하고, 혐오한다고 말하게끔 강요한 지 359년이 흐른 1992년이었다. 그런데 이와 같은 혁명적이고 위대한 사과를 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21세기가 시작되자마자 과거의 ‘교황 무오류성’을 지지하는 듯한 발언을 하고 그의 임종을 준비했다.

  영국 왕실의 경우엔 찬란한 식민 역사가 지나가 버렸고, 미국과 호주의 독립을 허용하였다는 자책을 떨쳐버릴 수 없었을 것이었다. 최소한 영국인들이 프랑스인들만큼만 잘 살고 있다면 그들의 자책은 미국에 의존하려는 양태로 드러나지는 않았을 것이었다.

  사실 토마스 칼라일이 세익스피어를 인도와도 바꾸지 않겠다는 말을 한 것은 정신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멋진 태도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식민지를 하나 둘 잃게 될 실망감을 메울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던 것으로 볼 필요가 있었다.

  이처럼 열등의식이라는 것은 개인이든 사회든 모든 인식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무서운 영적 질병이며, 종종 광기로 드러날 때는 대량학살과 같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네로나 히틀러 같은 인물의 속성을 열등의식에서 찾지 않으면 무엇으로 판단할 수 있을까. 사탄이나 악마라는 별명도 지니고 있는 이 열등의식이라는 것은 좀처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다는 점이 가장 치명적이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들 사이의 빈 공간을 검은 날개를 펄럭이며 날아다니고 있는 무언가를 발견했다면 겁만 먹지 말고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노력만 한다면, 인류 최대의 적이며 원수인 그것의 이마에 인이 박혀 있는 ‘선악의 열매’나 ‘열등의식’이라는 이름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



  나는 그분과 함께하는 시간이 영원히 계속되길 바랐다. 그분과 함께 하는 일분일초는 그분의 자존의식을 배울 수 있는 행운의 시간들이었던 것이다.

  그분은 나의 생각을 지지하는 듯한 내용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분은 마치 문맹자가 쓴 코란을 의식하기라도 하는 듯 소박한 말투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스마엘의 후예들이 지닌 열등의식은 너무나 쉽게 눈에 띄기 때문에 좀 더 애틋한 마음으로 바라보게 한다네. 데이비드. 그들은 무하마드와 내가 힘을 내서 아라비안의 문명을 꽃피웠던 시대를 제외하고는 항상 가난했고 항상 무지했기 때문이야. 그리고 이제 유전을 발견해서 좀 먹고 살아보려고 하는데, 미국을 선두로 한 서방 세계에선 그마저 빼앗지 못해서 안달을 하니 피해의식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무하마드는 신밧드보다 용감하고 알리바바보다 지혜로웠어. 그는 아브라함의 장자이지만 종의 몸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사막으로 내어 쫓길 수밖에 없었던 이스마엘과 그 후손들로 이어져 내려오는 문명의 흐름을 천 년의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았어. 그래서 그는 히브리인들처럼 팔레스타인 지역으로 쳐들어가 비옥한 땅을 차지할 줄도 모른 채 사막의 유목민들로 살아가던 그들에게 ‘신의 부름’이 필요하단 것을 알았지. 그리고 그는 상인으로서 세속의 삶을 버리고 나에게 집중하기 시작했던 거야.

  나는 무하마드의 영을 감동시켰어. 그리고 그에게 종의 영이 아닌 주인의 영을 갖도록 인도했지. 그러자 그에게서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어. 그가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창조의 기록을 그저 쉽게 빼앗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어버렸을 때 나는 내 아들이 십자가에서 성취한 승리와는 다른 희열을 느꼈다네. 무하마드는 히브리인들과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중요하게 생각하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무시한 채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어. 그것은 나의 아들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과거의 이름 여호와를 무시해 버렸던 행동과 다르지 않아.

  결국 역사의 치열함 속에서 발을 빼지 못하고 있는 나의 아들의 경우엔 무하마드라는 인물에 대해서 박장대소를 한다거나 할 수 없을 테지만, 나의 경우는 좀 다르다네. 나는 무하마드라는 알리바바를 구성하고 있는 DNA와 게놈을 들여다보고 분석을 해 보고 싶었지만 그러지 않았어. 사실 결론은 뻔하거든.

  호르몬이 영향을 미치기 전에 결정되는 남성의 23번째 Y 염색체가 여성의 것에 비해 절반만 하다는 차이로 인해 남자는 태어날 때부터 문제를 지니고 있게끔 설계가 되어 있지 않은가. 그리고 무하마드의 X 염색체에 있는 모노아민산화효소에 유전적 변이가 시작되어 반골 기질이 솟구치게 될 것을 나의 아들이 처음부터 알았고, 때가 이르자 나에게 속삭임을 부탁했을 테지. 

  어쨌든 나는 무하마드가 토라와 역사서들과 예언서들에 대한 지적 재산권 침해 소송을 당해 교도소에 수감되는 걸 원치 않는다는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 또 내 아들이 지옥 같은 것을 준비해 두었다가 무하마드를 그곳에 처박으리라는 기대는 제발 세상에서 사라졌으면 해.

  나는 그 신통방통한 유전인자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알 것 같았지만 설레는 마음이 들었다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아줬으면 좋겠어. 아무튼 그리스도와 여호와가 동일인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고 있을 무하마드가 여호와를 무시해 버리고 알라만을 강조한 사건은 혁명적이라 할 수 있는 일이야. 어차피 무하마드와 이슬람교도들이 생각하는 알라가 아브라함과 야곱의 신 여호와와 다를 이유는 없지만, 의미를 부여하는 차원에서는 일단 그들이 가장 진보한 종교가 된 셈이지 않은가.

  데이비드. 유대인인 그대에게는 미안한 말이지만, 스스로 지혜로운 줄 아는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가장 바닥을 기고 있는 셈이야. 상대성이 결여된 여호와증인들도 마찬가지지. 가톨릭은 얘기할 것도 없을 테고. 프로테스탄트들은 뭔가 감을 잡고 있는 것 같으면서도 일치성의 결여로 인해 늘 한심한 꼴이야.

  그런가하면 불자들의 경우엔 처음부터 역사의 무대 위에서 열외였으므로 새삼 가치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테지. 그렇다면 결국은 종이 한 장 정도의 차이지만 무슬림들이 비교적 신과 가까이 있다고 해도 좋을 거야. 어떤가. 쇼킹한 일이지 않나? 데이비드?”

  나는 짧게 대답했다.

  “쇼킹하다 못해 창자가 입으로 튀어나올 것 같습니다. 그리고 부끄럽군요.”

  그분은 가다의 입에서 미소가 지어지도록 어떤 작용을 일으키고 있었다. 가다는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참는 기색이더니 다시 그분의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

  “무하마드는 아랍인들을 위한 새로운 기록들을 기록해가는 과정에서 아담과 하와로부터 아브라함과 롯과 모세와 솔로몬과 마리아와 예수의 이름 등을 언급하며 자신의 종교관을 세우고자 했어. 그런데 그는 여호와라는 이름을 과감하게 삭제해 버린 거야. 그리고 그가 말한 내용 중에 가장 뛰어난 영적 직관력은 다음과 같아.

  ‘그들은 신께서 아들을 낳았으니, 그분께 찬미를 드리라고 말하나 그렇지 않노라. 천지의 모든 것이 신께 있으며 이 모두가 신께 순종하노라.’

  무하마드가 살았던 당시에 유대인들은 ‘아지르’가 신의 아들이라 주장하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가 신의 아들이라 주장했어. 그리고 불신자들은 천사들이 신의 딸들이라 말했다네. 그런데 무하마드는 나의 자녀는 어떤 이름을 가진 개체로 국한 될 수 없으며, 나의 영이 깃들어 있는 모든 생명은 내가 만들어낸 자녀와 같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어.

  하지만 무하마드가 범신론적인 생각에 빠져 있었다고 생각해선 곤란해. 그는 엄연히 나의 인격성을 믿고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는 나와 내 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독립적이고 상호적인 조화를 알고 있었던 거야.”



  해가 많이 기운 듯 숲은 어둑했다. 주변은 여전히 조용했다. 그분은 여전히 센트럴파크 주변에 막강한 힘을 펼치고 있는 듯했다.

  지나가는 차 소리나 사람들의 말소리와 새소리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것은 그 어떤 초자연적인 기적보다도 강력하면서도 섬세한 힘으로부터 비롯되고 있음을 나는 알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슬프고 두려웠다. 그러한 기적은 쉽게 잊힐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나는 그분이 말하고 있으며 말 해 왔던 내용에 집중해야 할 것을 알았다. 그분은 먼 상고시대로부터 고대를 거쳐 중세를 관통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무하마드의 영을 받은 추종자들과 그리스도의 영을 받았다고 착각하는 맹신자들과 불쌍한 유대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현재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었다.

  방금까지 그분이 한 말을 생각해 볼 때, 그분은 아랍 국가들의 부패한 지도자들과 이란과 그 밖의 이슬람국가들로부터 막대한 뇌물을 상납 받은 게 틀림없었다. 그렇지 않고는 무하마드를 그렇게까지 치켜세울 순 없는 일이었다.

  나는 곁에 앉아 있는 가다가 아랍권 출신이라는 게 질투가 날 정도였다. 그렇지만 그분이 그렇게 말한 이상 받아들이는 수밖에 도리가 없었다. 최소한 그 정도의 믿음은 보여야 한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그분은 내가 무하마드와 이슬람교에 대해서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다시 공격하기 시작했다. 만일 내가 코란을 인정하게 된다면, 나는 그분의 첫 열매가 될지도 모를 일이었다.

  유신론자들은 그들이 각기 들어간 신전의 입구만이 유일한 통로라고 믿는 이상한 부류들이었다. 멀찍이 떨어져서 신전을 바라보는 무신론자들은 그 신전을 드나드는 사람들이 전하는 유일한 입구에 대한 각기 다른 증언을 듣고는 사람들보다 신을 비웃는 게 현실이었다.

  그분은 아마도 신전의 여러 입구를 사실대로 증언하는 단 한 사람을 필요로 하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분의 다음 이야기는 무하마드가 문맹자였다는 중요한 사실로부터 시작되고 있었다.  

  “무하마드가 글을 배우지 못한 문맹자였다는 건 알고 있었을 거야. 그는 석가모니나 예수처럼 왕족의 가문에서 태어나지도 못했어. 그에겐 여러 명의 아내와 자식들이 있었기에 그의 선조들처럼 사막의 상인으로 열심히 일을 해야 했지. 그러던 그가 어느 날 유대교를 믿는 아내와 그리스도교를 믿는 아내를 맞이하면서 삶이 완전히 변화하게 돼. 그는 현숙한 두 아내와의 대화를 통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기원과 신의 영이 땅 위에 어떤 식으로 찾아오고 섭리하였는가에 대해서 알게 되었어. 그리고 그는 마침내 낮아짐의 진리를 발견하게 된 거야.

  무하마드는 다른 모든 종교를 포용할 만큼 위대한 종교가 세상에 등장해야 할 필요를 느꼈어. 그의 눈에 비친 유대교와 그리스도교는 근본 원리는 진리에 가깝지만 어딘가 왜곡되어 있었어. 그리고 마침내 무하마드는 그 이유를 알아냈지. 유대교가 멸망당하고 그리스도교가 세속화한 이유는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음을 발견던 거야. 바로 무하마드는 신의 축복이란 철저히 내세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음을 깨달았다는 사실이 중요해. 그리고 마침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내세를 비추는 거울이며, 좌우가 바뀌어 보인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

  무하마드는 아브라함의 종이던 하갈과 이스마엘이 주인 사라와 상속자인 이삭보다 더 큰 복을 받은 것이었음을 깨달았어. 즉 이스마엘의 후손들은 상속 받은 유산이나 영토에 연연하지 않고 사막의 유목민으로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배려된 최고의 복을 받은 것을 알았던 거야. 그러자 무하마드는 시야가 완전히 열리면서 구세기의 역사 모든 곳에 담긴 의미들을 분명하게 깨닫게 됐지.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만나 씨름을 하여 이겼다는 야곱이 받은 새로운 이름은 ‘이스라엘’이었어. 그리고 그 이름의 뜻은 신과 겨루어 이겼다는 의미였지. 신과 겨루어서 이기다니. 그건 좋은 이름이 아니었어.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속이고 장자권을 가로챈 일을 신이 혐오하지 않은 이유를 무하마드는 비로소 깨달았어. 그들 상속권을 움켜쥐고 있는 자들은 결국에는 추악한 모습으로 타락하고 신께 버림받을 수밖에 없도록 쓰이기 위해 선택된 것이었던 거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진리는 개인과 사회와 민족과 역사의 모든 영역에 걸쳐서 적용된다는 사실을 그는 깨달았어.

  무하마드는 아랍인들의 조상 이스마엘의 열 두 아들의 이름이 토라에 간략하게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 지니는 의미를 꿰뚫어 보았어. 그리고 그는 야곱의 열 두 아들이 요셉의 두 아들로 인해 열 셋으로 변질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했지. 나아가 그는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가 열 셋으로 변질된 사실이 지니는 의미도 놓치지 않았어.

  나는 당시에 무하마드가 생각의 폭을 인류의 첫 살인이 벌어졌던 가인과 아벨에게까지 넓혀가는 걸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네. 데이비드. 그는 유목민이던 아벨의 제사를 여호와가 기뻐하고, 정착 농민이던 가인의 제사를 여호와가 혐오하였던 이유를 정확하게 알게 된 유일한 사람이었던 거야.

  무하마드가 살던 시대와 그가 사용하던 언어에는 잠재의식이니 심리니 하는 말이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자신이 깨달은 낮아짐의 진리를 무어라 표현할지 알지 못했어. 그렇지만 그는 자신이 해야 할 의무가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고 있었지. 그는 자신의 가르침을 따르게 될 후손들이 무슬림으로서의 자부심을 지키기를 원했어. 그래서 그는 후세기의 기록을 구술하면서 미천한 선지자로서 남기는 기록이지만 당당한 태도를 취했던 거야.

  무하마드는 구세기의 히브리인들은 수시로 신과 접촉을 할 수 있었고, 택한 백성이라는 언약을 받았지만, 그들은 불쌍한 민족이라고 치부해 버렸어. 그리고 신세기 이후의 그리스도인들은 육신이 되어 땅에 머물렀던 신이든 신의 아들이든 중요한 대상을 제대로 대접하지도 못한 실패자들로 생각했지. 사실 가톨릭의 세속적인 행태는 나의 아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비난하던 유대교를 능가하는 것이었지 않은가. 

  마침내 무하마드는 그가 신으로부터 요구받았다고 믿는 역할에 따라 친지들과 제자들에게 수 년 간의 구술 작업을 마쳤고, 그의 가르침은 하나의 언어와 원본으로 남았어. 그게 코란이야. 살만 루시디라는 영국인 작가가 악마의 시라고 지칭하고, 얼마 전에는 테리 존스 목사라는 자가 자신의 교회에서 불태웠던 책이라네.”



  이제 보니 신전을 출입하던 사람들은 다른 이들의 출입구가 신전으로 들어갈 수 없는 문이라고 주장하다 못해 서로의 출입구 앞에 오물을 뿌리는 행태까지도 서슴지 않고 있었다.

  그 정도면 내가 신이라고 해도 신전 안에 머물고 싶어 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어쩌면 오물을 뿌리는 일만은 꾹 참고 있는 이슬람교도들과 불자들이 신의 입장에선 기특하게 여겨질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아무에게나 폭탄을 터뜨리는 광신자들에게는 서둘러 지옥을 만들어 수용하자는 게 나의 결정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배운 대로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과학적인 견해로 믿음을 재구성하는 일에 착수했다.

  “코란을 몇 번 들춰 본 적이 있었습니다. 무하마드는 여러 예언자들을 언급했고 그 자신도 예언자라고 지칭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작 코란에는 예언 같은 건 없으며 예언이 성취된 사례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렇다면 무하마드가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기록하였다고 하여도, 바이블로부터 많은 성취를 얻은 사람들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습니까.”

  그분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하지만 정적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이번엔 예상치 못했던 가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분이 나더러 알고 있는 내용을 데이비드에게 설명하라고 하시네요.”

  나는 어깨를 으쓱 해 보였다. 가다는 그분이 여태 보였던 느긋한 태도보다 더 느긋하게 이야기를 시작하고 있었다.

  “데이비드. 당신은 이슬람교에 대한 이해의 첫 단추부터 잘못 꿰고 있어요. 이슬람교는 모든 예언에 대한 완성의 종교예요. 무하마드는 코란에 예언을 적은 게 아니고 예언들에 대한 성취를 적을 수밖에 없었다는 걸 알아야 해요. 무하마드는 이슬람이 유리하고 방황하지 않고 번성하고 안정될 것이며 저절로 세상에 충만하게 될 것을 알고 있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그분은 예언자인 것이죠.

  데이비드. 내가 이곳에서 신을 만난 뒤에 나의 속사람이 어떻게 변했는지 알면 놀랄 거예요. 나는 전에는 히잡을 쓰고 다니는 일조차 견뎌하지 못했어요. 무슬림으로서 살아가는 일은 내게는 끔찍하기만 했죠. 하지만 나는 이제 비로소 깨달았어요. 나는 미국으로 오지 말았어야 해요. 나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어떤 성실한 무슬림의 아내가 되어 신의 말씀을 좇았어야 했어요.

  미안한 얘기지만, 그분은 당신이 눈에 보이는 ‘상(像)’에 집착한 나머지 당신의 아내가 지닌 다른 아름다움들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말해줬어요. 그분은 당신을 비롯한 오늘날의 남성들이 불을 켜놓고 아내와 관계를 맺는 걸 좋아하는 일에서부터 모든 걸 망쳐놓게 된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고 말해주었죠. 

  나는 내 모습을 보이는 삶을 살기를 원했어요. 그래서 뉴욕으로 왔죠. 그런데 우연히도 이곳에서 만난 당신은 보는 걸 좋아하는 사람인 것 같네요. 하지만 우리의 결말은 어땠죠? 나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생각만 해도 끔찍해요. 아마 당신도 그럴 테죠. 그렇다면 나의 결론은 하나예요. 히잡과 니캅을 쓰고 다니는 사람들은 제도와 관습에 의한 피해자들이 아니라 신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들이었어요.

  코란은 눈에 보이는 것과 세상을 믿을 게 아니라 오직 신과 신의 말씀만 믿으라고 말하고 있어요. 나는 당신과 그분 사이에서 오가는 말들이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하지만 그분이 당신에게 하는 말 가운데서 코란과 반대되거나 코란의 내용을 의심하게 할 만한 내용은 없었던 던 것 같군요. 오히려 코란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던 생각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해주는 경우가 많았죠.”



  그녀의 말은 예상 밖으로 충격적이었다. 그분이 나의 사생활을 그녀에게 이야기하다니. 나는 매너가 없는 신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분을 업신여기거나 하는 일은 곤란했다. 그분이 그렇게 말했다면 말의 내용만이 중요할 뿐이었다.

  확실히 나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있었다. 그것은 신과 직접 대화를 나눈다는 일이 가져다주는 프리미엄이었다.

  내 앞에 있었던 말들은 이제 더 이상 말이 아니었다. 내가 가다와 나누었던 대화도 더 이상 대화가 아니었다. 그 안에서 영을 발견하는 게 중요했다. 만일 그와 같은 모든 일이 원활해지는 순간이 온다면, 나의 영혼은 둥실 떠올라 하늘을 날게 되리라.

  “데이비드. 쓸데없는 생각은 여전하군. 그렇지만 영에 대해서라면 충분히 이해하고 있는 것 같아 기쁘네.”

  나는 그분의 기분이 괜찮을 때 얻어내야 할 게 있었다.

  “저어....... 사람은 정말로 하늘을 날 수 없는 건가요?”

  가다는 어리둥절한 표정이 되더니 나를 돌아보았다. 그러고 나서 유대인 박물관 쪽을 돌아보며 그분의 대답을 내게 들려주었다.

  “확실히 그대도 무하마드처럼 두뇌 회전이 빠르군. 어느 곳에서 눈치 챘나?”

  나는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재빨리 대답했다.

  “코란에도 천사에 대한 언급이 꽤 많습니다. 그런데 당신은 천사 같은 건 없다고 딱 잘라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바이블에 등장하는 날개 달린 천사에 대한 묘사는 철저한 은유였거나 나머지 한 가지 추측을 가능케 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분은 흥미롭다는 듯 내게 다시 물었다.

  “그게 뭐지?”

  나는 자신 없는 투로 말을 이어가려다가 뻔뻔한 쪽을 택했다.

  “혹시....... 어느 행성에....... 만약에 자존의식을 지닌 사람들의 유전자와 뇌 구조를 기억해 두셨다가 새로운 육신으로 부활시킬 계획이라면 말입니다. 사람들이 노화하지 않도록 하는 설계 말고도, 날개도 좀 달아주면 안 될까요?”

  정적이 잠시 이어졌다. 나는 내친김에 이번 화두를 마무리하기 시작했다.

  “나는 신이 헛된 것을 말한다고 믿지 않게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환상 속에서만 등장했다고 하더라도 날개 달린 천사들은 헛된 이미지일 리가 없을 테죠. 그리고 그 날개 달린 천사들의 이미지는 항상 빛으로서 존재하는 당신의 아들의 이미지와 함께 등장했습니다.”

  나는 그분의 안색을 살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그리고 뜸을 들이기를 그만 두고 다시 말을 이어갔다.

  “그런데 당신께선 사람 외에 다른 피조물은 없다고 단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렇다면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리스도가 말하기를 부활하게 되는 사람들은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이 없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와 같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곧 미래에 있게 될 일에 대한 예시일 것입니다. 천사는....... 사람들이죠? 사람들이 다른 별에서 재창조 될 때 날개를 갖게 되는 겁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이니, 생명의 열매니 하는 체감할 수 없는 비전보다 실제적인 비전을 이미 우리들에게 보여주려 했던 겁니다.

  영적이라는 것이 혼령과 신령의 세계를 가리키는 게 아닌 정신적인 세계이며 유심론적인 우주관을 의미한다면, 사람과 신 사이에 중간체가 존재할 수는 없는 일일 테죠. 그렇기에 ‘신들’은 사람을 위한 날개라는 선물을 처음부터 준비해 두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당신의 아들과 다른 사람들의 차이는 뇌 활용도 100%와 0.6%의 차이 말고도 날개의 유무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죠.

  당신이 늘 사람들을 위로하며 따뜻한 햇살을 비추게 하고 새소리를 들려주려고 노력해왔다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천사가 미래의 우리들 모습이라고 상상도 할 수 없었을 겁니다. 말해 주세요. 정말 우리가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아다닐 수 있게 되는 것입니까?”

  가다도 흥분하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보다 더 활짝 웃는 모습을 보인 적이 없었다. 그녀는 나와 박물관 쪽을 번갈아 바라보며 누구보다도 더 기대에 찬 모습이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의 대답을 들려주면서 가다의 표정이 바뀌었다.

  “데이비드. 내가 무하마드에게 지나치게 많은 영감을 주었다고 나의 아들에게 핀잔을 얼마나 들었는지 아마 모를 걸세. 그만 하던 이야기나 계속 했으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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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공선달 |  2011-08-27 오전 5:20: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날개를 단 비둘기보다 더 높이 우아하게 비상하는데...(사진에서)  
대마후절 포토샵 리터칭 작가 조형준 님의 작품이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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