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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후절 프로1급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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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18 회
2011-08-23 오전 9:26 조회 4266추천 4   프린트스크랩
▲ 꼼짝마! 자살하면 쏜다!!

                                                                    18


  현대 미국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생하는 총기 난사사건의 범인들은 사람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히게 된 결과의 증명이었다. 그리고 미국을 넘어서 세계 각국에서 벌어지는 과격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의 테러 행위 역시 사람들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결과의 증명이었다.

  그들 모두는 압제에 대한 반작용으로서 좋지 않은 방법을 선택하고 있었다. 그들은 타인의 열등의식을 역겨워하고 두려워 한 나머지 자신의 열등의식을 압축하여 감추려 하고 있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이 폭발로 이어지는 것이었다.

  그들은 불쌍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죄인이나 악인이라고 손가락질을 하고 욕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손가락과 혀는 반드시 지옥에 보내져야 했다. 살인자들의 모습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더 이상 가능성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저주를 말하고 지옥을 말하는 혀야말로 존재하지 않는 지옥을 실재하게 하는 신비한 작용인 것이었다.



  지옥의 유무에 대한 믿음은 생각보다 중요할지도 몰랐다. 신을 믿는 사람으로서 지옥이 존재한다고 쉽게 믿어버린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이라면 슈바이처가 예수의 무화과나무 저주 사건을 이유로 신앙을 잃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쉽게 결정을 내어 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들은 슈바이처가 일단 신앙을 지녔으므로 구원을 받았으되 부끄러운 구원을 받았다는 주장과, 그가 주님을 부정하였으므로 구원을 잃었다는 주장으로 나뉠 것이었다. 하지만 신은 슈바이처가 가난한 이웃을 위해서 평생을 봉사하고 지키려 했던 신념이 예수와 석가모니가 생전에 지녔던 신념과 다르지 않다고 생각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국경없는 의사회라는 단체에 소속된 사람들 중에는 예수의 영이나 석가모니의 영을 지니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었다. 그렇지만 어쩌면 그들은 슈바이처의 영을 지녔다고 말해야 옳을지도 몰랐다. 또는 그들은 각각 그들의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독자적인 영을 지녔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었다. 하지만 신의 입장에서는 그들 모두 아름다운 영혼들이며 사랑스러운 자녀들이지 않겠는가. 그리고 그들이 예수의 영을 지니지 않았으므로 지옥에 갈 수밖에 없다고 말하는 자가 있다면, 그분과 그분의 아들은 정말로 지옥이라는 것을 만들었어야 했는지도 모른다고 후회할지도 모를 일이었다.



  스스로를 사도라고 불러주길 원했던 열세 번째 사도 바울의 공로는 단연 복음주의에 대한 당위성을 확립한 일에 있었다. 그는 너무나 열심을 내려 한 탓에 그리스도의 영이 사람들 속에서 무르익고 뿌리를 내린 뒤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며 아주 천천히 퍼져나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는 그리스도를 난도질하여 해부해서 속까지 들춰 보여야 사람들이 믿을 것이라 여겼다.

  나는 바울과 그리스도의 관계를 정리할 수 있었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초점을 맞춘 반면, 바울은 구원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리스도의 세상은 사랑할 만한 세상이었던 반면, 바울의 세상은 온통 추악한 죄악으로 가득 찬 세상이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옳은 것을 위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자존적 상태로 성장하길 원했다. 하지만 바울은 사람들이 영혼의 구원을 위해 신과 교회를 사랑하는 열등적 상태로 성장하길 원했다. 

  역시 중요한 것은 믿음이 아니었다. 바울의 믿음과 열두 사도들의 믿음을 비교하는 일은 불필요하며 모두 고귀한 마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결국 행위가 모든 것을 결정지었다. 바울은 머리를 깎고 채식을 하며 여자를 멀리하였지만, 열등의식에서부터 비롯된 자기를 나타내는 일을 억제하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바울과 같은 사람들은 넘쳐났다. 많은 지도적 위치에까지 오른 사람들이 육체의 욕망과 관련된 문제로 넘어지거나 자존심으로부터 비롯된 말실수로 인해 모든 것을 망쳐놓고 있었다.



  의란 필연적으로 희생과 상응되어야 하는 것이었다. 그분이 말하는 예수라는 이름과 그리스도라는 지칭이 자신의 아들을 미화하고 높이는 일에 사용될 리가 없었다.

  그분은 줄곧 영적이었다. 그렇다면 그분의 말을 계속 경청할 가치가 있었다.

  “데이비드. 이제 나의 아들이 큰 희생을 감당하고 세상에 이끌어 낸 영의 흐름이 서양으로 향하게 된 사건에 대해 다시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네. 교황제도 하의 세속적 대형 종교 집단이 탄생하게 된 지대한 공헌을 한 바울을 필연적으로 다시 언급할 수밖에 없는 거야. 그리고 그가 오해한 ‘영’에 관하여 다시 설명하고자 해.

  바울은 많은 지식과 열심이 있기는 했으나, 그 자신이 완전히 다른 선상에서 출발하였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어. 그는 그 자신이 누누이 강조한 열세 번째 사도의 의미가 어떠한 것인지 생각해 보았어야 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는 나의 아들이 세상에서 말한 말들이 어떤 것이었는지 다른 사도들을 찾아가 들어보려고 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 바르게 깨우치도록 노력했어야 했어.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지.

  그는 다른 사도들을 ‘유명한 이들’이라고 경계하며, 자신이 지닌 유대교에서 배운 지식들과 구세기의 기록들에 대한 지식들을 가지고 자신만의 ‘그리스도관’을 정립하려고 했던 거야.”

  나는 그분에게 명쾌한 정리를 다시 요구했다.

  “바울이라는 유전자가 그 시대에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우연이 아닐 테죠. 도대체 그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그리스도의 영이 동쪽이 아닌 서쪽으로 가도록 사용된 게 전부인가요? 혹시 로마가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것이 그와 관련 있나요?”

  그분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분은 대답하기 싫은 것을 억지로 말하는 듯 내게 답을 들려주었다.

  “기록으로 남아 있지 않은 역사적인 사실은 언급하지 말도록 하세. 그렇지만 모든 게 예정되어 있었다는 건 제대로 본 거야. 혹시 이스라엘이 1948년에 독립하던 모습이 예언된 기록을 알고 있나? 이사야는 2700년 전에 이렇게 예언했지.

  ‘네 눈을 들어 사면을 보라. 무리가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 네 아들들은 원방에서 오겠고, 네 딸들은 안기어 올 것이라. 저 구름같이, 비둘기가 그 보금자리로 날아오는 것 같이 날아오는 자들이 누구뇨.’”

  나는 그분의 말에 힘을 실어주기 위해 이스라엘의 독립을 예언한 다른 기록을 말했다.

  “호세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들은 사자처럼 소리를 내시는 여호와를 따를 것이라. 여호와께서 소리를 내시면 자손들이 서쪽에서부터 떨며 오되 그들은 이집트에서부터 새 같이, 앗시리아에서부터 비둘기 같이 떨며 오리니 내가 그들을 그들의 집에 머물게 하리라.’

  당시에 팔레스타인 주변 국가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경비행기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모여들던 모습은 장관이었습니다. 그리고 비행기는커녕 자동차조차 상상도 못했을 이사야와 호세아는 사람들이 하늘을 날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모습을 정확하게 묘사했던 것입니다.”

  그분은 무언가 힘을 주어 강조하려는 듯 다시 간격을 두었다가 말을 이어갔다.

  “그래. 데이비드. 그리고 아랍 국가들이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시작했지. 전쟁은 아랍인들의 연전연패로 끝났어. 덕분에 이스라엘은 과거 솔로몬의 시대에 차지했던 광활한 국토의 대부분을 회복했어. 그리고 오늘날에는 과거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자리에 세워진 이슬람대사원을 쓸어버릴 날이 오길 기다리고 있네.”



  나는 이야기가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싶어서 일부러 당황하는 반응을 보였다.

  “어? 만일 정말 그런 일이 발생한다면, 주변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은 다시 전쟁을 벌이게 될 겁니다. 아마 미국은 이스라엘의 편이 될 테고, 러시아와 중국은 아랍 국가들의 편이 될 테죠. 혹시 3차 대전이 벌어지는 겁니까?”

  그런 질문에 속 시원히 대답을 해 주는 신은 본 적이 없었다. 역시 그분은 말을 돌리는 일에 있어서 빠르기가 개구리의 혀 놀림 못지않았다.  

  “중요한 건 역사와 문명의 발전 방향에 맞게 종교와 철학도 발전되어야 했다는 점이라네. 그리고 모든 오류를 확인한 뒤에 출발한 아랍인들이 정신적인 면에선 가장 진보하였음을 주목하게. 그와 같은 사실이 별 일 아닌 듯하지만 무척 중요해. 나는 아랍인들이 아라비안나이트를 기록하고, 아라비아 숫자를 만들고, 천문학을 발전시키며, 영토를 확장할 수 있을 만한 힘을 주기 위해 무하마드를 도왔어.

  만일 아브라함의 실질적 장자인 아랍인들의 지혜를 감당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면 그리스도교는 존속할 수 없었을지도 몰라. 어떤 면에서 그리스도교의 보호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유대교도 마찬가지지.”

  나는 잠시 어리둥절해졌다. 그분은 바울로부터 비롯된 서양 세계의 그리스도교가 처음부터 세속화되었다고 비난을 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분은 이젠 아랍인들의 번영을 감당할 수 있는 그리스도교의 지혜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순간 나는 무언가에 의해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을 느꼈다. 그리고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군요. 바울의 탁월한 능력으로 헬레니즘 철학을 굴복시켰기 때문에 유럽의 정신세계를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할 수 있었던 건 사실입니다!”

  나는 힘이 쭉 빠져 버리는 걸 느꼈다.

  이제 보니 십자군 전쟁을 벌인 그리스도교도들의 죄악은 바울로 인해서 시작되고 있었다. 그리스도교도들이 마녀사냥을 하고 종교재판을 벌인 죄악 역시 바울이 믿음만을 강조한 결과였다. 바울에게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렇지만 그에게서 신과 같은 완벽함을 요구한다는 것은 타당하지 않았다.

  바울이 지닌 열등의식은 누구나 지니고 있는 선악의 열매와 다르지 않은 것이었다. 그는 다만 신세기의 기록에 그의 불완전함의 흔적을 남길 수밖에 없었던 불운의 당사자였을 뿐이었다.

  그리스도는 처음 낮은 곳으로부터의 개혁을 시도했다. 그것은 시작점이 있음을 의미했고 방향성을 지니고 있음을 의미했다. 처음 그리스도가 선택한 제자들이 문맹자가 대부분인 하층 계층일 수밖에 없었던 일은 필연이었다. 그렇지만 그리스도교는 발전이 필요했다. 그 발전의 기반은 철학적이어야 했고 영적이어야 했다.

  유대교의 3대 랍비인 가말리엘의 제자 바울이 그리스도교의 진영에 가담하게 된 것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이제 보니 바울이 그리스도의 사도들 밑으로 들어가 배우려는 자세가 되었어야 한다는 가정은 처음부터 말이 되지 않았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이 유럽이 아닌 아시아로 이동하여 아랍인들의 정신세계를 적실 수 있어야 했다는 건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사도들과도 지적 수준의 차이가 나서 오래 대화하기가 힘들었을 것이었다. 그런데 그가 당시 사막의 유목민의 수준에 머물러 있었던 아랍인들에게 찾아가 진리를 논한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바울이 유럽으로 가서 자신이 발견한 그리스도의 영을 확고하게 높은 가치로써 정립하고자 했던 욕심은 당연했다.

  나는 세계사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교는 지중해에 널빤지 하나 띄우지 못했다.’ 하며 종종 말하곤 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비잔티움 제국의 환멸만을 의미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의 영이 수많은 살육을 불러오고 면죄부를 팔아 부를 축적하려는 행태로 이어졌다는 데에는 무언가 설명이 필요했다.

  노아에게서 물질의 축복을 받은 야벳의 후손은 정신의 축복을 받은 셈의 후손에게 주어진 생명의 떡을 나누어 가질 자격이 없었는지도 몰랐다. 그것은 에서의 장자권을 도둑질한 야곱이 ‘신과 겨루어 이기다’라는 이름을 얻게 된 일과도 일맥상통했다.

  많은 자손과 물질적 풍요를 기원했던 이스라엘인들은 여호와와 그들 사이에 체결된 계약이 축복이었다는 착각에 빠져 있었는지도 몰랐다. 결국은 에서의 후손인 에돔 족속이 빼앗긴 장자권을 되찾기 위해 유대인들의 등에 칼을 꽂게 될 것이었다. 최후에는 아브라함에게 내어 쫓긴 이스마엘의 후손인 아랍인들마저 장자권의 싸움에 뛰어들게 될 게 분명했다.

  바울은 모든 문제의 중심에 형제를 사랑하는 일을 ‘실천’해야 한다는 신의 깊은 뜻이 있음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 서로 돕고 권면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나, 그것은 선민사상의 연장일 뿐이었다.

  그리스도는 가나안 여인이라고도 기록되고 헬라 여인이라고도 기록된 어느 병든 딸의 어미에게 ‘자녀로 먼저 배불리 먹게 할지니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하며 말했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거룩한 것을 개에게 주지 말며,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 그들이 그것을 발로 밟고 돌이켜 너희를 찢어 상하게 할까 염려하라.’ 하며 말하지 않았던가.

  이제 보니 그분의 아들은 바울이라는 특출한 유전자를 아담과 하와의 유전자를 설계할 때부터 예상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분의 아들은 이 바울이라는 존재가 그리스도보다 10년 후에 태어나 그리스도의 영을 엉뚱한 방향으로 옮기게 될 만한 잠재력을 지녔음을 예상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만일 인류의 역사가 6천년으로 계획되었다면, 그분의 말대로 모든 역사가 ‘세상의 끝’으로 향하고 있는 것이라면, 엔트로피는 증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세속 종교 곧 음녀가 출현하게 된 원인에 바울이 있었다는 결론은 억지스럽지 않았다.

  궁극적으로는 유대인들과 사마리아인들과 에돔인들과 아랍인들이 화해를 하고 세상에 평화를 가져와야 하겠지만, 그러한 희망은 인류의 수준을 너무 높게 보는 감이 없지 않았다. 더구나 그들 셈의 후손들을 하나로 묶어줄 수 있었던 그리스도의 영이 바울로 인해 야벳의 후손들 발밑에 던져져 짓밟힌 지 이미 오래였다.

  나는 정말로 그분의 아들이 징그럽게 느껴졌다. 그는 그 자신의 치열함을 모두에게 요구하고 있었다. 그가 사람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고 한 말은 농담이 아니었던 것이다. 



  “데이비드. 그러다 머리통에서 김이라도 나오겠군.”

  아들의 아버지가 나를 구원해주고 있었다. 나는 복잡한 생각들을 성냥개비로 쌓은 탑처럼 놓아둔 채 가다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안쓰러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감성을 담아 내게 개인적으로 물어왔다.

  “데이비드. 괜찮아요?”

  나는 그녀를 안심시켜야 했다. 나는 그분의 결론이 궁금했던 것이다. 나는 그녀를 향해 보일 듯 말 듯한 미소와 함께 고개를 끄덕인 뒤 유대인 박물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곳엔 처음에 내가 모든 기록의 주제라고 생각했던 내용이 두 번째로 재생되고 있었다. 그것은 뻬레쉬트의 다음 권 웨 엘레 쉐모트의 내용 중 이스라엘인들이 시나이 산에 이르러 처음 신의 말을 듣던 부분이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나는 마치 내가 시계 톱니의 부품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쁜 기분이라고는 할 수 없었다. 그것은 내가 선지자라도 된 듯한 우쭐한 마음을 갖게 했다. 그러고 보니 모든 선지자라고 하는 존재들은 이런 식으로 신의 존재를 느꼈을지도 몰랐다.

  그분은 사람들에게 반복된 어떠한 이미지를 안겨주고, 사람들이 스스로 깨우치는 방식을 선호하는 듯했다. 그렇다면 결국 내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그분을 비웃느라 지어주었던 ‘우연의 신’이라는 이름이 그분에게 가장 어울릴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분이 이름을 갖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생각났기에 얼른 생각을 지웠다. 그러자마자 그분은 내게 말을 건네 왔다. 그리고 그분이 언급한 그 이름을 듣는 순간 나는 소름을 느꼈다. 이미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이 시점에서 그 이름이 등장한다는 것은 의미가 남달랐다.

  오늘날 아랍 세계와 서구세계를 이분하게 만든 그 이름은 이름을 갖지 않은 존재에 의해 새로운 각도로 설명되기 시작했다.

  “자. 구세기를 지배하던 열등의식이 여호와였다는 걸 이젠 충분히 이해하고 있겠지. 데이비드. 그렇다면 나의 아들이 양처럼 연약한 육체로 승리를 이룬 뒤, 신세기를 지배하였던 열등의식은 모두 사라졌을 것 같나? 물론 선악의 나무는 이제 베어 없어졌어. 이제 생명의 나무만 존재하지. 하지만 동산에서부터 존재했던 짐승은 아직 세상에 있고, 그 짐승 중 가장 오래된 것은 용으로 자라났다네.

  그리스도교의 복음주의자들 중에는 무하마드를 짐승으로 지목하는 자들이 있다는 걸 알거야. 하지만 그들이 바울의 이름이 비하되는 일을 못 견뎌 하는 만큼 무슬림들의 사랑을 받는 무하마드의 이름을 더럽혀서는 안 돼. 이름이란 그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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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圓 |  2011-08-24 오후 1:25: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허구의 주절거림으로는 절대 쓸수없는 값지고 귀한 글이 대중적인 호응을 받지못해
늘 안타까움을 떨구지 못하지만 글의 값을 내게 매기라면 엄지를 펴고 싶은 마음으로
대마후절님의 글을 읽습니다. 등단은 못했다해도 그대가 쓰는 글은 프로 1급입니다
 
대마후절 늘 과찬에 머리통이 가려워집니다. / 메시지라는 소설을 출판하는 일을 신께서 금하셨기에, 제 카페와 블로그에 게시되었던 모든 내용을 며칠 전에 다 지웠답니다. 이곳에서의 글을 지워야 할지 망설이고 있습니다. 물론 특별한 계시가 없다면 끝까지 글을 올릴까 합니다. (계시 어쩌고 하는 말을 함부로 사용해서 죄송요...)
팔공선달 |  2011-08-25 오전 11:00:0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는 그저 사진에 ...나머진 (__)  
대마후절 ㅋㅋ 나름 선별해서 올리는 사진이니 그것만이라도 봐주는 사람이 있으면 땡큐예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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