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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17 회
2011-08-16 오전 10:41 조회 4639추천 3   프린트스크랩
▲ 내 삶에 왜 저런 이미지들이 다가와 있는 걸까...

                                                           17


  그분의 화두는 먼 옛날의 석가모니와 예수로부터 떠나 완전히 현실로 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그분은 이제 중동으로 날아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곳에는 무하마드가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다. 자칫 어물쩡거리다가는 다시 그분의 엉덩이에 코를 들이박게 될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방향을 잘못 잡아서 무하마드의 엉덩이에서 무슨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게 될 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그것만은 피하고 싶었다. 그것은 서구 사회에서 무하마드에 대해서 갖는 선입견으로 인한 기피 의식이었다.

  그런데 그분과 구세기와 신세기의 기록에 대한 정리를 하다 보니,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걸림돌이 발생하고 있었다. 그것은 그분이 무하마드를 말하기에 앞에서 미리 언급해야 할 것을 각오하였던 대상이었다. 그것은 지명도가 낮은 의외의 인물에 대한 이야기였다.

  나는 의외이기는 했지만, 여호와와 석가모니와 예수와 무하마드 사이에 다른 인물의 이름이 끼어들게 된 일이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것은 야곱의 열 두 아들과 관련되어 등장하는 13이라는 숫자와 연관되어 있었다. 그리고 훗날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와 관련하여 등장하게 될 13이라는 숫자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나타나는 일로부터 비롯되고 있었다.

  나는 과거에 샬롯에게 호감을 보이기 위해 ‘수비학(數秘學’)에 관련된 책을 읽은 적이 있었다. 당시에 이웃에 살던 랍비 키슬러 씨에게서 빌렸던 책들은 신이 지상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 그리고 수비학과 바이블에 등장하는 숫자들을 연관 지어 나는 샬롯 앞에서 아는 체를 하곤 했던 일이 기억났다.

  13이라는 숫자는 죄와 반역을 의미하는 숫자였다. 프로테스탄트들은 그들 종교의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 구세기의 기록은 신세기의 기록의 그림자라는 주장을 말하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와 예수 그리스도의 열 두 제자에 각별한 의미를 두고 있었다. 그들은 신의 완전성이 12라는 숫자에 드러난다고 말하며 예수의 열 두 제자가 퍼뜨린 복음은 결국 여호와가 야곱을 선택할 때부터 정해진 계획과도 일치한다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나를 찾아온 그분은 12라는 숫자가 아닌 13이라는 숫자에 주목하고 있었다.

  그분은 종교를 설명하고 그 안에서 믿음을 강조하기 위해서라면 12라는 숫자를 이야기하여야겠지만, 세상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13이라는 숫자가 필요하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런데 사람들이 흔히 알고 있는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힌 날이라서 싫어한다는 13이라는 숫자에 그분이 부여한 의미는 충격적이었다. 그분은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 ‘열세 번째 사도’라는 표현을 쓰고 있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혼란을 가져온 한 인물을 꼽고자 한다면 과연 한 이름이 있었다. 그는 바로 열세 번째 사도였던 자였다. 그는 신의 아들이 지상에서 이루고자 했던 고귀한 성취를 뜻하지 않게 훼손하였던 인물이었다. 불행하게도 그는 선한 영과 악한 영에 동시에 사로잡혀 있었다.



  기록에 의하면 악한 영에 사로잡혔던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가인과 아벨의 때부터 영에 의한 사로잡힘의 역사는 시작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기록에 직접적으로 드러나 있는 예는 사울 왕과 다윗 왕의 이야기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먼저 사울 왕의 경우엔 골리앗을 죽인 다윗이 왕이 될 것을 두려워하여 늘 그를 경계하는 열등의식이 그를 사로잡고 있었다.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여호와께서 부리시는 악령이 그를 번뇌하게 한지라.’

  위와 같은 기록을 생각해 볼 때, 여호와의 영과 여호와가 부리는 악령의 차이가 무언지 이제 쉽게 분별할 수 있었다. 여호와의 영이란 택한 자들의 내면에서 자존의식이 발생하도록 신이 속삭여줄 것을 신의 아들이 요청하는 것을 의미했다.

  그분의 아들은 그런 식으로 활동했다. 그분의 아들이 발산하는 무언가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게 아니었다. 사람이 내면에 지니고 있는 영을 그분이 빛으로 이끌 때 순응하는 자는 성령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며, 빛으로 이끌려지는 것을 거부하고 어둠으로 뒷걸음질 치는 자는 악한 영에 사로잡히는 것이었다.

  다윗을 수차례 죽이려 했던 사울은 전쟁터에서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 그런데 사울이 죽은 뒤에 왕위에 오른 다윗도 악한 영의 실체인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적이 있었다. 그가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가 목욕하는 모습을 보고 그녀와 간음한 일은 정확하게는 열등의식의 그림자인 욕정에 의한 사례였다.

  그것은 짐승의 육체를 극복하지 못한 채 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의 고귀함을 잃어버리게 된 원초적인 실수였다. 그와 같은 기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그렇지만 다윗이 악한 영에 사로잡혔다고 직접적으로 기록에 등장하는 장면은 그가 그의 군대의 수를 세어보려는 마음을 먹었을 때 비롯되었다.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위의 장면은 그분의 아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던 당시에 스스로 사탄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유일한 기록이었다. 그것은 에스라라는 이름의 선지자가 기록한 내용이었다.

  에스라가 기록한 내용은 옛 기록에 대한 중복된 반영이었다. 그리고 유대 왕국이 성립되기 직전에 사무엘이라는 지도자가 쓴 같은 사건을 새로운 관점으로 연결시키고 있었다.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그들을 치시려고 다윗을 격동시키사 가서 이스라엘과 유다의 인구를 조사하라 하신지라.’

  위와 같은 사무엘이 쓴 기록은 그분의 아들이 직접 다윗의 마음에 열등의식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수백 년이 지난 후에 에스라는 위의 사건을 다른 관점으로 묘사하고 있었다. 에스라는 이미 이스라엘과 유대 국가의 멸망을 겪었고 바벨론과 페르시아에서 포로생활을 한 뒤였다.

  에스라에게는 페르시아인의 세계관에 의한 선악 사상이 유입되었고, 천사와 악마에 대한 믿음도 유입되어 있었다. 그는 사무엘이 ‘여호와께서 다시 이스라엘을 향하여 진노하사’ 하며 정확하게 명시한 자리에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하는 묘사로 바꾸길 원했다. 그는 관념적인 정확성을 기하길 원하고 있었다. 에스라의 시도는 여호와의 속성에 자존의식과 열등의식이 교차하고 있음을 드러내게 된 결과로 이어졌다.

  그리스도교의 복음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영혼이 존재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와 악마가 허공을 날아다니고 있는 게 사실이라면, 여호와 자체가 사탄인 셈이었다.

  복음주의자들은 바이블의 내용은 일점일획도 변경되어서는 안 되며 모두 신의 영이 개입해서 쓰인 결과물이라고 말하길 좋아했다.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두 대비되는 구절에 대해서 다만 여호와가 사탄을 시켜서 된 일을 기록자들이 세세하게 표현을 못한 탓이라고 둘러댈 뿐이었다. 하지만 문학과 저서에 대해 독해적인 차원에서 보자면, 여호와와 사탄이 동일인이거나 최소한 한패라는 사실을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영에 대한 정확한 이해는 위의 문제를 풀기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했다. 사람이 선한 영과 악한 영에 사로잡히게 되는 일은 실재했다. 알고 보면 이 문제는 인간이 지닌 최대의 숙제이며 현실적으로도 중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논의를 깊게 가져가지 않으려 한다면 꿍꿍이속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최소한 그들은 그리스도 시대에 성전을 장악하고 있던 제사장 무리와 바리새인 무리들과의 차이를 증명해 보여야 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여호와가 사탄과 동일인이 되어서는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았다. 그것은 천사와 사탄이 동일인이라는 말이며, 미카엘과 루시퍼가 동일인이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일차적으로는 여호와라는 존재의 내면세계가 천사처럼 선한 상태와 악마처럼 악한 상태로 나뉠 수 있는 가능성에 집중하면 될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선한 상태는 여호와가 신적인 자존의식을 지닌 상태를 의미하며, 악한 상태는 인간과 같은 열등의식을 지닌 상태를 의미했다.

   


  인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큰 혼란을 가져온 인물인 열세 번째 사도는 영에 관해서는 전문가였다. 최소한 그는 영과 영혼을 구별할 줄은 알았다. 다만 그는 여호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을 뿐이었다. 그것은 그가 그리스도를 직접 만나서 함께 생활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였다.

  열세 번째 사도가 범했던 실수와 오류는 누구라도 저지를 수 있는 잘못이었다. 그렇지만 사소한 과오로 끝났을 수도 있었던 한 인물의 잘못은 걷잡을 수 없이 확대되고 말았다. 그 이유는 바로 그가 누구보다도 뛰어난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였다는 데에 있었다.

  열세 번째 사도는 동시대의 모든 철학자들보다 뛰어났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만한 사실은 그의 잘못된 의도로부터 시작되어 탄생한 결과물들이 가치적으로는 그르지 않다는 것이었다.

  영의 세계는 그랬다. 자존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열등의식으로부터 비롯된 것이든 지식과 철학은 그 자체로 가치가 있었으며 영의 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은 그분의 아들이 모든 사람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도록 하려 했던 의도를 생각해 볼 때 의미심장한 사실이었다.

  그분은 열세 번째 사도를 사로잡았던 악한 영이 여호와로부터 나온 것인지 본인의 내면에서 기인된 것인지 따로 언급하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나는 이제 세상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영적 질서를 알 것 같았다. 그분은 악을 도모할 수 없는 존재였으며, 악을 알지도 못했다. 따라서 그분은 사람의 마음속에 자존의식을 불러일으키도록 속삭여주고 마음을 어루만져주는 일만을 할 수 있을 뿐이었다.

  궁극적으로 그분의 아들이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활동할 때 하늘로부터 악한 영을 사람에게 보내어 사람들을 조종하려고 든다고 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사울 왕에게 찾아온 악한 영과 다윗 왕에게 찾아온 사탄은 모두 그들 마음속에 있는 열등의식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결론내릴 수 있었다. 그것은 열세 번째 사도도 마찬가지였다.

  열세 번째 사도를 사로잡고 있었던 악한 영은 그 자신의 것이었다. 그는 열등의식으로 인한 거짓말쟁이였으며, 거만한 자였으며, 자랑하는 자였으며, 모든 것을 아는 체하는 자였다.

  그분이 밝힌 그의 이름은 너무나 유명한 이름이었다. 그 자는 그가 원했던 만큼의 자존심을 세우고, 많은 저작물을 남기고, 유명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분은 그의 과오가 그냥 넘어가는 일을 더는 놓아두지 않으려 했다.

  “그는 온전한 자존의식을 지니기까지 성장하지 못했음을 지적하고자 해. 다만 그는 하나의 가능성이었던 셈이지. 그는 다른 열 두 사도가 대부분 글도 모르는 무식한 자들로 구성되어 있는 이유에 대해 납득하지 못했어. 그리고 마침내 그는 사도들 중에 가장 으뜸이 되기를 원했던 거야.

  그는 그리스도에게서 직접 배운 제자들로부터 가르침을 받았어야 해. 하지만 그는 스스로 그리스도의 사도인 체 하느라 다른 사도들을 만나기를 꺼려했어. 결국 그는 온전한 자존의식을 지니는 일에 실패한 채 나의 아들이 세상에 비춘 빛의 대열에 서둘러 끼어들었던 거야.

  나와 내 아들이 땅 위에 부여한 12라는 숫자의 의미가 개인의 욕구에 의해서 침해되는 일은 구세기와 신세기에 걸쳐서 두 번 발생했어. 

  야곱은 그가 임종 전에 자식들을 축복할 때 요셉에게만 축복하는 것으로서 충분했어. 그렇지만 그가 내면에서 완전히 멸하지 못한 열등의식은 요셉을 특별한 존재로 여기는 일에 찬성하고 말았지. 야곱은 요셉의 두 아들 므낫세와 에브라임을 축복하지 않았어야 해. 결국 그의 잘못된 판단은 그의 열 두 자식들의 후손들이 열 셋으로 나뉘어 서로를 잔해하며 물어뜯게 되는 미래를 낳은 거야.”



  그분이 강조하고 있는 12라는 숫자는 흔히 완전수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신의 능력과 다스림을 뜻했다. 그것은 심판이라는 뜻을 지닌 11 다음에 자리하고 있으며, 죄와 반역과 타락을 뜻하는 13의 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12에 6이 더해지면 구속과 얽매임의 뜻을 지니고 있는 18이 되었다. 6은 사탄과 사탄의 영향이라는 뜻이 있었다. 신의 능력과 다스림이 사탄에 의해서도 실행된다는 것은 종교인들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구속과 얽매임의 의미를 지닌 18은 흔히 세상에 알려져 있는, 저 유명한 666이라는 짐승의 숫자와도 관련이 있었다. 그런데 언젠가 짐승이라고 불리는 세상 권력자가 사람들을 지배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이론은 지나치게 부정적으로 묘사되고 있었다. 하지만 짐승의 통치는 신의 의도에 의한 것이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신은 신의 대행자를 의미했다. 그러한 사실에 비추어 보더라도 하늘에 거하는 신으로부터 더럽고 악한 것이 내려와 세상에 작용한다는 믿음은 옳지 않았다.

  물리라는 진리의 지배하에 거하는 모든 존재는 세상과 짐승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짐승이라는 것이 모든 사람이 지닌 육체를 뜻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분의 아들이 그리스도로서 활동할 때, 수없이 스스로를 ‘사람의 아들’이라고 불렀던 사실은 의미심장한 것이었다.



  그분은 이상하게도 열세 번째 사도에 대해 이야기를 꺼낸 후에 수비학과 관련한 내용을 자세히 거론하지 않고 있었지만, 나는 그분이 곧 수학적인 존재라는 사실에 고무되어 있는 상태였다. 그리고 그분이 숫자 12와 13의 의미를 언급한 순간부터 문제의 열세 번째 사도를 둘러싼 숫자들을 확인하기 시작했다.

  열세 번째 사도가 쓴 기록은 모두 13권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리고 문제의 사도는 자신이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14번째 기록에서 자신이 저자라는 사실을 감추었다. 그는 그 기록의 문체도 바꾸고 자주 쓰는 단어도 바꾸는 교활함을 보였다. 심지어 그는 그 기록을 구성하는 구세기의 기록의 구절들을 억지로 인용하기도 했다.

  결국 놀랍게도 신세기의 기록의 27권 중 13권이 그의 기록으로 알려지게 되었으며 14권이 다른 사람의 기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3은 죄와 반역과 타락의 의미가 있었으며, 14는 구원과 해방의 의미가 있었다. 그리고 27은 복음 전파와 예언의 의미가 있었다.

  나는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자 구세기의 기록을 이루는 39권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그런데 39의 의미가 떠오르지가 않았다. 그리고 바이블 전체를 구성하는 66권이 지닌 의미도 떠올려 보려고 하였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만 6이 두 번 반복되는 불길한 숫자로 바이블이 구성되어 있다는 사실이 이상했다. 

  그분은 내가 자꾸만 수비학과 수에 관련한 잡념들을 떠올리자 결국 내게 그 부분을 지적했다. 그런데 그분이 직접 거론하는 성서 수비학은 일반 수비학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것은 차라리 수 철학이라고 해야 옳았다.

  세상에서 통용되는 수비학은 십 단위의 숫자들을 계속 합쳐서 일 단위까지 내린 뒤 그 의미를 규정하는 것이었다. 즉 1230의 경우엔 각 자리의 수를 모두 합쳐서 ‘6’이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수비학은 수의 방대함을 의식하지 않는 가운데 모든 수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이 가능한 듯했다. 따라서 그분은 숫자들의 각 자리를 합치는 일 따위는 행하지 않았다.

  “데이비드. 그대는 갈 길이 먼데 자꾸만 딴 생각만 하고 있군. 열세 번째 사도의 잘못을 밝히는 일은 우리들의 이야기의 주제와 핵심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네. 물론 수의 의미를 찾아봄으로 해서 언어와 대화와 영의 결집체라고 할 수 있는 경전의 진리 여부를 따져 보는 것도 가치가 있겠지. 그건 나중에 등장하게 될 무하마드와 코란에 대한 이해를 위해서도 도움이 될 거야.

  좋아. 데이비드. 그럼 간단하게나마 나의 아들이 세상을 구성하는 수의 원리를 정해 놓은 것을 살펴보기로 하자고. 동양인들은 역학이라는 연구를 하여 주로 점을 치는 데에 수비학을 이용하고 있지만, 사실 수의 비밀은 사람의 두뇌로는 풀어내는 데에 한계가 있다네. 아까 이곳에 찾아왔던 마스터 조가 나를 상대로 하여 수를 겨룬 일도 실상은 그리 단순하지가 않아.

  바둑은 정말 수학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것은 바둑 영재가 수학 영재와 마찬가지로 20대 초반에서 20대 중반 사이에 가장 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에 비추어 보아도 확인할 수 있지. 수학자들의 경우엔 평생에 걸쳐서 수학 난제 한 문제를 풀 수 있는 사람도 드물다는 걸 알 거야. 그렇다면 바둑도 그와 같아야 해.

  다시 말해서 어떤 바둑 천재가 나타난다면 나하고 겨뤄서 6개의 흑돌을 깔고 무승부가 나는 결과를 마침내 이루어 낼 수도 있을 거야. 그런데 그 경기에서 흑돌을 쥔 사람이 1포인트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었다는 사실을 제시하려면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수십 년이 걸릴 수도 있는 셈이지. 물론 아까 마스터 조와 게임을 벌였던 것처럼 한 시간 안에 승부가 나는 속기 경기라면 아홉 개의 흑돌을 깔더라도 사람은 신을 이길 수가 없어. 어떤 천재적인 두뇌의 소유자가 여섯 개의 흑돌을 깔고 하루 다섯 시간 씩 일주일에 거쳐서 신에게 도전한다면, 그땐 비로소 재미있는 승부가 될 수도 있을 거야. 사람들이 바둑에서 신과 사람의 차이가 흑돌 여섯이 아닌 넷이라고 잘 못 알고 있는 것처럼 역학과 수비학과 같은 학문에서도 마찬가지지.

  어쨌든 나의 아들이 구세기와 신세기의 기록을 통해서 여러 일들을 도모하느라 드러나게 된 수의 비밀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도록 하자고. 데이비드, 그대가 아는 수의 의미를 1부터 23까지 이야기해 보겠나? 그 뒷부분은 대부분 잊어버린 듯하더군. 자. 23까지만 말해보게.”



  나는 민망하기 그지없었으나 어차피 그분이 이미 허락한 일이었다. 나는 부모님을 위해 토라를 외우려 했듯이 샬롯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웠던 수의 의미들을 말하기 시작했다.

  “1은 일치를 의미합니다. 2는 나눔과 분리를 의미하죠. 3은 부활을 의미합니다. 4는 첫 번째 창조이고요. 5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6은 사탄과 그의 영향을 뜻합니다. 7은 완전함과 끝맺음을 의미하며, 8은 새로운 탄생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9는 성령의 열매였던 것 같군요. 10은 율법입니다. 11은 심판이고요. 12는 신의 능력과 다스림의 의미가 있습니다.

  13은 죄와 타락과 반역입니다. 14는 구원과 해방이며, 15는 안식이지요. 16은 사랑의 의미가 있으며, 17은 승리입니다. 18은 구속과 얽매임입니다. 19는 믿음이고, 20은 구속과 값 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21은 죄가 관영하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22는 빛과 나타남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23은 죽음을 의미하죠.”

  그분은 무언가 내게 함축적으로 보여주려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분은 다시 한 번 더 내게 아는 것을 모두 토해낼 것을 명했다.

  “좋아. 그럼 최근까지 유행했던 숫자 23과 관련된 것들을 이야기해보게.”

  나는 그쪽 분야라면 자신 있었다. 나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았다.

  “인간의 체세포는 23쌍으로 되어 있는데 적혈구가 인간의 몸을 한 바퀴 도는 데 걸리는 시간은 23초입니다. 인간의 성별을 결정하는 것은 23번째 염색체이며, 인간의 바이오리듬은 23일을 주기로 반복됩니다. 알파벳은 23자이며, 윌리엄 세익스피어는 1564년 4월 23일에 태어나서 1616년 4월 23일에 사망했습니다. 줄리어스 시저와 카이사르는 23번의 난도질을 당하여 사망했죠. 지구의 자전축은 23.5도이며, 모스 부호를 이용해 발송한 최초의 전문은 바이블의 민수기 23장 23절이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 날짜는 1986년 4월 26일 새벽 1시 23분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발전소가 위치한 북위는 51, 23, 23이었습니다.

  우주의 23%는 암흑물질로 채워져 있습니다. 우리 은하계의 지름은 100경 킬로미터인데 파이를 적용해 보면 소수점 23자리까지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고 아인슈타인의 에너지 보존 법칙 공식인 E=mc²은 알파벳 순서를 합치면 23이 됩니다. 수메르인의 달력은 7월 23일에 시작되죠. 가장 유명한 바이블 문구로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고 말한 구절은 마태복음 16장 23절에 있습니다. ‘내가 사막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하는 구절은 시편 23편에 있죠.

  일루미나티는 1723년에 결성되었습니다. 십자군 전쟁 때 템플 기사단에는 23명의 기사단장이 있었습니다. 코란에서는 메시아가 오는 날을 마지막 금식의 달 23일 째 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911 테러 발생 일을 년도까지 모두 합하면 23이 됩니다. 미국이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 날도 마찬가지며, 타이타닉 호가 침몰한 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밖에 쓰촨 대지진과 아이티 대지진, 칠레 대지진의 발생 일을 소수점을 없애고 나란히 나열하면, 512, 112, 227이 되는데, 이를 가로로 나열하든 세로로 나열하든 같은 결과가 나옵니다. 그리고 이 숫자들을 모두 더하면 23이 되고요. 또.......”

  그분은 ‘그만!’하고 외쳤다. 정확하게는 가다가 외쳤지만, 가다가 그처럼 감정을 실어서 통역을 하였다는 것은 그분의 메시지에 충분히 이입되고 있는 그녀가 그분의 감정을 제대로 전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혹시 해리포터의 마법학교 행 기차 번호가 기억나나? 데이비드.”

  나는 해리포터를 읽지도 않았고 영화도 본 적이 없었다.

  “아뇨.”

  그분은 그걸 읽었거나 본 듯 했다.

  “5972번이네. 모두 더하면 23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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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圓 |  2011-08-19 오전 6:26:2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읽고 갑니다  
대마후절 ㅋㅋ 덕분에 연재를 이어가고 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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