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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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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시지 13 회
2011-08-02 오전 9:57 조회 4005추천 3   프린트스크랩
▲ 데미우르게의 두 얼굴

                                                             13


  유대인 박물관의 안내판에는 야곱이 라헬을 사랑하게 된 내용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렇지만 가다의 입은 히브리인들의 역사를 넘어 신의 역사를 말하고 있었다.

  “그가 제일 먼저 사용했던 이름은 ‘여호와’였어. 그 이름은 아담의 3대 손인 에노스의 때부터 사용되었는데, ‘구원자’라는 뜻이야. 그렇지만 여호와라는 이름은 사람들을 위해 좋은 이름이 아니었어. 그 이름은 바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로서 취한 내 아들의 태도와 결단을 의미하는 것이었지. 구원자라는 뜻은 구원 받지 못할 존재들의 운명과 엮어 있는 셈이니까.

  그는 자신의 이름이 갖는 의미를 잘 알고 있었어. 그리고 충분히 그 이름을 싫어했지. 그렇지만 그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정한 이름을 반복하고, 강조하고, 자랑스러운 체 했어. 그의 자기희생은 그렇게 시작되었던 거야. 그는 그만큼 사람들을 사랑했고, 그만큼 나를 사랑했어.

  아담과 하와가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취했다는 것은 곧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했다는 것과 다르지 않아. 그것은 그들이 신의 자녀들로서의 자존의식을 잃어가고, 육체로서의 열등의식을 지니게 된 비극과 관련되었음을 의미해.

  사람들은 여호와를 선택했어. 여호와가 사람들을 선택한 게 아니야. 첫 사람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선택한 거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가능성만 있었을 뿐 존재하지도 않았다는 사실이 중요해. 유대인들은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찾아와 그들을 선택했다는 부분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하지만 아브라함의 시대 이전의 기록을 통해, 사람들이 여호와를 선택했다는 사실은 굳이 외면하고 있어. 그게 바로 그들이 슬픔의 역사를 살아야 했던 근원적인 이유야.”

  나와 내 부모와 내 조상들이 세계 각지를 떠돌며 고생했던 이유가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분의 이야기는 보다 넓은 영역을 그리는 중이었다. 그분은 마치 아담과 하와가 살던 동산에는 여호와가 없었다고 말하는 듯했다. 

  그분은 자신의 아들이 여호와라는 캐릭터를 어느 시점에 취했다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결정을 아담과 하와가 하였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대단한 히브리인들의 기록은 역시 모든 종교와 경전 중에서 최상위에 위치하는 것 같았다. 그분은 ‘아담’과 ‘하와’와 ‘노아’와 ‘대홍수’에 이어 마침내 ‘여호와’라는 이름을 계속해서 반복하며 거론하고 있었다.

  “나의 아들은 여호와라는 이름으로 땅 위에서 행하게 될 악행들을 언제나 내 앞에서 부끄러워했어. 그리고 언젠가는 이런 말을 하기도 했지. ‘아버지. 악한 것은 연극일지라도 악을 자라나게 합니다. 내 안에서 자라게 될 악이 두렵습니다.’ 하고 그는 자신의 고통을 처음으로 내게 비쳤어. 

  나는 악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할 순 없었어. 그러나 그가 무대 위에 오를 때마다 정말 악과 싸우고 있다는 사실은 알 수 있었어. 처음엔 어떻게 그와 같은 일이 가능한지 믿겨지지가 않았지. 그는 아담과 하와가 선택한 열등의식을 세상에서 멸하기 위해 열등의식을 지닌 신으로 행세하고 있었을 뿐이야. 그는 사람들이 열등의식이라는 실체를 깨닫게 해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었어. 그런데도 그는 사람들의 수준에 맞춰서 행하는 모든 일 가운데에서 실재로 열등의식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 같아.

  그는 난폭한 징벌자를 가장할 땐 정말로 화를 내는 것 같았어. 그는 율법적으로 변해가다 못해 사람들의 사소한 잘못까지도 용서하지 않는 폭군처럼 행동하기도 했어. 나는 그가 정말로 변해버릴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가 세상을 다스리는 방식과 그의 파격적인 참여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지.    

  나는 기록으로 남아 전승된 내용들과 사람들이 알고 있는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말하고 있는 중이야. 그것은 필연적으로 히브리인들이 믿었던 옛 종교의 내용이 많이 거론될 수밖에 없는 일을 의미해. 최소한 신화라든가 토템 전설과 같은 것들을 제외하면, 고대인들이 기록한 것들 중엔 히브리인들이 기록한 율법서가 가장 앞부분에 거론될 수밖에 없지. 그렇다고 해서 조로아스터와 석가모니와 무하마드의 기록들을 한참 뒤로 물리거나 대충 넘어갈 생각은 없어. 그래야만 마침내 예수라는 이름이 등장했을 때 땅 위에서 벌어진 일들이 정리가 될 수 있을 테니까.”

  그분은 마침내 그 이름을 거론하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하게 그 이름은 다른 유명한 이름들과 나열되고 있었다. 그건 쉽게 적응이 되지 않는 현상이었다. 그것은 어쩌면 그분의 결론이 종교다원주의에 도달하게 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게끔 했다.



  잠시 후, 민감한 이름들이 마구 뒤섞여서 거론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유명한 이름들 중엔 아브라함이 있고, 이스라엘이 있지. 그리고 석가모니라는 이름도 꽤 알려져 있어.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석가모니라는 사람의 이름은 부처라는 신의 이름으로 바뀌었다는 사실이야. 그리고 여호와라는 신의 이름은 예수라는 사람의 이름으로 바뀌었음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어. 물론 여기서 말하는 ‘사람’이라는 표현은 육신을 가진 실체를 의미해.”

  순간 나는 너무 놀라서 ‘어!’ 하는 소리를 내었다. 석가모니가 부처가 되었다는 말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었다. 석가모니가 살았던 석가국과 고대 인도의 토속 신앙은 다신교적인 신화 숭배와 윤회사상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석가모니는 새로운 관념 세계를 위해서 무신론적인 종교의 형태를 만들어 내려고 했다. 하지만 그도 부처라는 대상을 신적인 존재로 묘사하는 일을 피할 수 없었다. 그리고 석가모니 자신도 신적인 존재로서의 부처가 되었음을 부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히브리 민족에게 찾아왔던 신 여호와가 인간 예수가 되었다니, 그건 처음 들어보는 말이었다. 하긴 그리스도인들은 삼위일체라는 교리를 신보다 더 섬기고 있었으므로 여호와와 예수가 다르지 않다는 말을 반길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렇지만 여호와가 예수가 ‘되었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하긴 그분의 아들이 처음부터 여호와였고, 예수라는 인물이 단순한 선지자가 아니라 신적 존재라면 여호와와 예수는 동일인이어야 했다. 신은 그의 대행자인 존재를 단 한 명만 창조했다고 했다. 심지어 그분은 천사 같은 개념은 아예 모르는 것 같이 말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여호와라는 첫 이름을 취했던 그분의 아들은 그리스도가 유대인 가운데서 태어날 것을 예언할 때부터 그 자신이 스스로 땅에 내려가 그의 백성들을 위해 희생할 것을 각오하고 있었다는 이야기였다. 그러고 보니 그건 엄청난 비밀 아닌 비밀인 셈이었다.

  “데이비드. 혼란스러워 할 것 없네. 나는 지금 여호와라는 이름을 취했던 나의 아들이 옛 이름을 버리고 예수라는 이름을 다시 취한 사건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는 거라네. 다시 말해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는 이제 더 이상 존재하지 않으며, 생명의 나무가 이야기 되어야 하고 알려져야 하는 때가 왔음을 말하고 있어. 그것은 아브람이 아브라함이라는 이름을 얻고, 야곱이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석가모니가 부처라는 이름을 얻고, 시몬이 베드로라는 이름을 얻게 된 사연들 속에 감춰진 비밀이지.

  그들. 어디론가 끊임없이 떠나야만 했던 운명을 산 그들에게는 어느 시점에 이르러 새로운 이름이 주어졌어. 그들의 이름이 바뀌었다는 사실은 그들의 영혼이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해. 그들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 떨어져 나와 생명의 나무로 접붙임 된 거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그들의 삶을 살펴본다면 그들에게는 열등의식에서 비롯된 흔적들이 사라져 가고 있었다네. 자세히 살펴보면, 그들에게서 자존의식으로 말미암은 존귀한 행동들이 자라나고 있었음을 발견하게 될 거야.

  예수는 그의 시대에 여호와라는 이름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어. 그것은 그의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지. 그는 신적 존재임을 내세우고, 유익함을 나누어주기보다 보이기 위한 권능을 행하고, 이름의 존귀함을 강조하고, 규례와 제사와 복종을 요구하던 과거의 자신을 철저하게 혐오하였던 거야. 예수는 그가 실행 가능한 능력을 행할 때 자신의 권위를 드러내지 않았어. 그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위해 능력을 행하였고, 언제나 자신의 이름이 드러나지 않도록 애썼지. 그는 내가 무덤 속에 있는 나사로를 육신을 재생시키고, 생명을 회복시켰을 때 이렇게 말했어.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합니다. 항상 내 말을 들으시는 줄을 내가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 말을 하는 것은 둘러선 무리를 위함이니, 곧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그들로 믿게 하기 위함입니다.’

  데이비드. 나의 아들이 예수라는 새로운 이름을 취하고, 생명의 나무가 되어 모든 사람들을 그에게로 접붙임 하려는 노력은 치밀하면서도 치열하게 진행되었다네. 먼저 그는 조로아스터라는 인물을 페르시아 지역에서 양육하여 유대인들로부터 새로운 종교가 나올 수 있도록 예비했어.

  유대인들은 그들의 왕국이 멸망하고 포로 생활을 하게 된 운명을 애가를 지어 비통해 하며 슬퍼하였지만, 영적인 진화가 이루어지고 있는 중요한 시대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지 못했지. 페르시아 문명과 헬레니즘 문명이 진행되는 동안 그들 히브리 족속들은 철저히 낮아지며 열등의식 앞에 똑바로 직면하는 행운을 누렸던 거야. 그리고 마침내 그들의 안에선 선민사상이 조금씩이나마 희석되어가기 시작했지.

  비록 유대인들이 생명의 나무를 알아보지 못하고 나의 아들을 형틀에 못 박아 죽이는 과오를 저질렀지만, 그들의 속에는 이미 씨앗이 떨어졌어. 그 씨앗은 비록 세상을 이분법적으로 보는 선악의 사상으로 발전되었지만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해. 그때까지 사람들은 ‘선’과 ‘악’이라는 개념조차 정립하지 못하고 있었어. 그러한 그들에게 사람의 내면에 자리 잡고 있는 ‘선악의 열매’와 ‘열등의식’의 존재를 알릴 수 있게 된 가능성이 세상에 나타나게 된 거야.

  내 아들은 자랑스럽게도 과거에 자신이 취했던 꾸며진 악행들을 드러내놓고 혐오하며 부정하기 시작했어. 그는 과거의 자신을 ‘사탄’이라는 이름으로 부르면서까지 가증스럽게 여겼지. 그리고 마침내 그는 과거의 자신이 불가피하게 조장하였던 사람들의 열등의식에 의해 살해당했다.”

  “잠깐만요! 지금 사탄이 곧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겁니까?”

  나는 너무 흥분해서 그분의 말을 가로막고 소리쳤다.



  가다는 처음엔 내가 흥분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표정이다가 ‘사탄이 곧 여호와’라는 표현의 심각성을 의식하고 전광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분은 잠시 간격을 두었다가 가다의 입을 통해서 내게 다시 필요한 만큼의 대답을 해주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우리가 가야할 길은 이제 절반 정도의 위치에 도달했을 뿐이라네. 그러니 진정하고 잘 생각해 보게. 난 지구가 속한 은하계 밖에 천국을 만들어 놓고, 지구에서 생을 마감한 영혼들이 그곳으로 날아가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될 것이라는 사람들의 믿음을 찬성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해서 한심하고 아둔한 생각이라고 비난할 마음도 없어. 왜냐하면 실상을 보여줄 필요가 없는 일이라면 그들이 어떻게 믿든 그게 중요한 게 아니기 때문이야.

  천사의 문제도 마찬가지야. 사탄이라는 존재가 설명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천사가 먼저 등장해야 할 테지만, 까마득하게 먼 외계에 마련된 천국에서 천사가 날개짓을 해서 지구로 날아오고 다시 돌아간다고 하는 일이 얼마나 설명하기 난감한지 생각해 봐야 해. 그들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몇 광년 정도는 쉽게 오갈 수 있는 것 아니냐고? 천만에. 우주에선 시간마저도 물질에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간과해선 안 돼. 차라리 태양이 지구 둘레를 돌고 있다고 믿는 사람들을 모두 부활시켜 놓을 테니 그들과 대화하라고. 그리고 영이라는 단어와 영적이라는 표현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 보길 바라.”

  나는 그분이 정색을 하고 말하는 앞에서 달리 무어라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나도 여호와가 사탄이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해 그렇게까지 의미를 부여할 생각은 없었다. 어차피 나는 그 모든 생각들을 부정했던 무신론자였다. 아무렴 어떨까. 하지만 그분이 내게 허락한 잠시 동안 생각을 정리해보니, 그건 놀라거나 화를 내거나 할 문제가 아닌 감동으로 받아들이는 쪽이 더 합당할 것 같았다.

  그분의 아들은 여호와라는 이름, 즉 사람들이 택한 선악의 나무의 신으로서 내내 권위적이고 율법적이며 과격하게 행동하였다. 그는 그가 택한 백성들이 말을 잘 들으면 복을 주고 말을 듣지 않으면 벌을 주는 동물 조련사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어느 시점에서 그러한 행동을 버리고 예수라는 이름으로 사람들을 위해 죽기까지 하는 의를 이루었다. 그렇다면 그가 지상에서 활동하던 당시에, 자신이 과거에 여호와로 활동하였던 모습을 공중권세 잡은 자라든가 원수나 사탄과 같은 표현으로 혐오하고, 철저히 거듭남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실천했다는 것은 의미 깊은 일이었다.

  그것은 인류의 역사가 아담과 하와로부터 비극으로 점철된 길을 걸어야 할 것이 예정되었을 때, 그들을 창조한 신이 손을 놓고 보고만 있지 아니하였음을 의미했다. 알고 보니 여태껏 사람들이 두려워만 하고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라고 여겼던 그 신은, 직접 그들 속으로 뛰어들어 사람들보다 더 큰 고통을 감당하려고 한 위대한 결단이 처음부터 그의 마음속에 있었던 것이다.

  나는 아까 그분께 대들다시피 하며 소리쳤던 게 부끄러워졌다. 만일 진실이라는 게 존재한다면, 그분의 아들이 새로운 이름을 얻었을 때 과거의 이름을 향해 사탄이라고 비판하고 혐오하는 일은 너무나 당연했다.

  그 진실이 유대교도들과 이슬람교도들과 그리스도교도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될지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신의 세계가 인간의 세계보다 치열할 것이라는 전제로 생각한다면 충분히 진리로서 가치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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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圓 |  2011-08-04 오후 9:25:2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나름으로 마음을 전하려 했던 글이 오해를 드리지 않을까해 글을 지웠습니다
값진 글 잘 읽고 갑니다  
대마후절 와우. 이제 좀 답글을 쓸만 하네요. ^^ 끝까지 읽어주시기만 해도 고마운 일입니다.
팔공선달 |  2011-08-04 오후 9:56:1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는 사진이 늘...^^:  
대마후절 선달 님이 계속 들려주신다는 사실에 무척 감동하고 있답니다. 다음 회부턴 부처님 야그가 나오니 쫌 읽을 만 할지도 모르겠네요.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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