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서쪽으로 기울고 있었다. 나와 가다가 바라보는 유대인 박물관에 설치된 LED 안내판이 향한 곳은 서쪽이었다. 아까부터 안내판의 글씨가 잘 보이지 않는 감이 있었다. 그런데 이때 뮤지엄 마일 일대를 뒤덮는 듯한 그늘이 생기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서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맨해튼의 상공엔 센트럴 파크 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긴 구름 떼가 지나고 있었다.

  잠시 후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있는 남쪽에서 요란한 소음이 들려왔다. 그것은 소방차의 사이렌 소리였다. 나와 가다는 믿기지 않는 얼굴이 되어 소방차 다섯 대가 오른 편에서 나타나 왼 편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았다. 그런 뒤 안내판이 있는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분의 메시지는 우리를 또 한 번 어처구니없게 만들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이 여전히 농담을 즐기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미안. 미안. 104번가에 있는 뉴욕시 박물관 지하실의 발전기에서 불이 날 것을 예측 못했군. 그렇다고 소방차를 고장 낼 수는 없었어.”

  신의 유머를 접하는 가운데 나는 신을 알아가는 기쁨을 매번 새롭게 느낄 수 있었다. 그분은 실존과 현실 속에서 벌어지는 사실들을 그대로 인정하기를 원했다. 그러한 가운데서도 그분은 이상과 가치를 지키고 유지하며 바라보고 인정하는 일이 쉽지 않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그분은 생명의 비밀에 대한 중요한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었지만, 다시 언어와 대화와 영의 세계로 돌아가길 원했다. 그것은 그분다운 일이었다.

  “데이비드. 말과 글과 같은 언어를 사용하는 가운데서 무엇보다 명사가 중요한 걸 알 거야. 그러한 측면에서 이름이라는 개념은 의미심장해. 나의 아들은 이름이 있고 나는 이름이 없다는 사실도 재미있는 일이지.

  언어라는 것은 이름과 명사들의 뜻을 정확하게 알고 사용될 때 가치가 있어. 그럼 처음부터 다시 정리를 좀 해 볼까? 선악의 열매라는 이름에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음을 이제 알거야. 생명의 열매도 마찬가지지. 그렇다면 이 세상에 흔한 ‘죄’라는 개념과 연관 지어 지금까지의 모든 생각들을 한 번 정리해보겠나?”

  나는 잠시 생각을 고른 뒤에 그분께 답했다.

  “아담과 하와가 범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란, 사실 ‘악’이라는 하나의 개념이 새로 발생하게 된 것을 뜻하는 의미가 있겠군요. 그리고 악이라는 개념은 열등의식이라는 표현으로만 설명될 수 있습니다. 서로라는 것. 관계라는 것. 함께 한다는 것. 그 가운데서 명령이라든가 순종이라든가 불순종이라든가 죄와 같은 표현으로는 아무것도 증명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악은 세상에 분명히 존재하지만 사실 죄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첫 여자가 세상에 가져온 것은 죄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연약한 육체에 거주하는 어린 영혼이 필연적으로 체험해야만 했던 열등의식이라는 이름의 악이었을 뿐이지요. 죄를 짓는다는 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정해진 규정을 범하는 판단의 설명일 뿐, 어떠한 사실마저도 정확하게 증명하지는 못하는 불완전한 묘사입니다. 그러한 측면에서 볼 때 죄를 통해 진리를 안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일이군요. 그렇다면 죄가 아닌 악에 집중할 필요가 있습니다.

  첫 여자가 선악의 열매를 범한 행위는 범죄라기보다는 악의 접촉이나 악의 유입이라는 설명이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만 ‘악’이라는 설명은 말하고자 하는 대상을 지나치게 이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등의식’이라는 섬세한 표현이 필요합니다.”

  내가 말을 마치자 가다가 놀랍다는 얼굴로 나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날 특별하게 여겨야 할 이유는 없었다. 나는 더 이상 눈가리개를 하고 트랙을 도는 경주마가 아니었다. 나는 이미 고삐와 안장을 풀어 버리고 들판을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야생마와 같은 상태였다. 하지만 나는 아직 푸른 초장이 있는 곳을 발견하지는 못한 상태였다. 그분의 도움이 더 필요했다.

  “훌륭해. 데이비드. 역시 그대를 선택한 보람이 있었어. 하지만 칭찬으로 듣진 말게. 실상은 그대가 자신의 하와를 잃어버리고 그녀가 다른 사내의 아내가 되도록 만들었다는 어처구니없는 행동의 경험으로부터 이어진 깨달음 정도에 도달한 셈이니까. 하지만 이제라도 가정을 깨지 않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했으니 다행이야.”

  나는 입을 삐쭉 내밀고 한 마디 반응을 보였다.

  “알고 있습니다.”

  가다는 이번엔 존경심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표정으로 날 한 번 보고는 다시 그분의 말을 전하기 시작했다.

  “데이비드. 이제 충분히 실현 가능한 한 가지 상상을 해 볼 필요가 있어. 예를 들자면 누구나 태양이 꺼지리라는 것을 알고 있지. 그것은 소행성이 지구로 날아와 부딪칠 수 있다는 가정보다도 분명한 미래야. 그런데 이러한 미래에 대해서 더욱 분명한 한 가지 사실이 있어. 그것은 태양이 수명을 다해 급속도로 뜨거워진 후 꺼져버리는 일이 발생할 때, 나는 나의 손을 펼쳐서 할 수 있는 조처에 한계가 있다는 사실이야.

  내가 행할 수 있는 힘은 무척이나 크기 때문에 행성의 회전을 멈추게 하고, 별의 행로를 바꿀 수도 있을 정도지. 그런가 하면 내가 느낄 수 있는 작은 부분들은 너무나 섬세하기 때문에 나뭇가지 위에서 땅으로 떨어지는 참새 한 마리의 죽음조차 외면한 적이 없어. 그런데 나는 폭발을 일으키는 태양의 열기와 그 이후의 냉기가 사람들을 덮치지 못하도록 할 수 있는 방법을 알지 못해. 다만 사람들이 생명을 다한 현재의 태양계를 떠나 다른 태양계를 찾아 나서는 방법 밖에 없다는 사실은 나조차 놀라운 일이야.

  그와 같은 사실은 내가 우주를 질서 있게 하는 존재이며, 혼돈을 막는 존재라는 현실에 근거하고 있다네. 따라서 나는 태양을 영원히 안정적으로 타오르도록 조처한다거나 지구 위의 사람들을 수만 광년 떨어진 다른 별과 행성 위로 순간이동을 실행하는 일이 가능하지가 않아. 만일 정말 마지막 날이 온다면 나의 아들과 그가 택한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 생존을 모색해야 할 거야. 그리고 우주 안에서 영원한 삶을 누리도록 계획된 그들은 알고 봤더니 영원한 유랑자였다는 운명을 깨닫게 될 테지.

  중요한 것은 육체로서 실존하는 사람들이란 드넓은 지구 안에서도 서로의 관계를 지옥으로 만들어 버리기 일쑤였다는 사실이야. 그렇다면 사람들이 외계로 먼 여행을 가야 할 우주선 안에서 끔찍한 지옥을 만들지 않으리라고 어떻게 보장한단 말인가. 사람이라는 존재들은 옆에 함께 하는 타인의 재채기마저도 반복적이고 지속적이라면 자극 받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기 마련이야. 그런 게 육신의 삶이지.   

  나는 우주 안에서 복수의 사람으로서 실재하려는 계획이 결코 성공률이 높지 않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알고 있었어. 그렇지만 그들이 서로의 관계 속에서 우주의 조화를 알고, 나의 심정을 반영할 수도 있으리라는 꿈은 멈추지를 않았지.

  내가 창조한 첫 사람인 나의 아들은 비교적 낙관적인 나의 생각들을 바로잡아 주었어. 그는 내가 간과하였던, 육체에 깃들어 있는 열등의식의 본질을 내가 다시 들여다보도록 인도하였지. 그렇기 때문에 나의 꿈이 이루어질 수 있는 가능성은 좀 더 높아진 셈이야. 하지만 그것이 완전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은 못돼. 

  나는 이 모든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때 실망하게 되어 내가 취하게 될 태도에 대해 예측할 수가 없다. 그것은 우주의 붕괴를 막을 생각도 못하고 무기력해져 버릴 만큼, 나의 고독이 클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해.”

  그것은 단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신의 넋두리’였다. 하지만 어차피 말과 표현이라는 것은 자아를 드러내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신조차 그러한 이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사실은 나와 모든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처음에 하나의 의식이 있었다. 그 의식은 별과 별들과 은하와 은하들 사이에 존재하는 규칙과 에너지와 수학적 우연과 필연들로부터 발생한 의식이었다. 그런데 이 의식은 스스로 진화하였고 마침내 전 우주를 통찰하는 ‘신’이 되었다.

  그런데 그분은 그렇게 밖에 스스로를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 관념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인 사람들을 만들었던 것이며, 빌어먹게도 각각의 그릇들은 그분을 닮아서 외로움에 취약했다.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자위가 필요했다. 스스로를 내세우는 모든 말과 행동은 알고 보면 외로움과 열등의식을 해소시키기 위한 자위였다.

  상대방을 비난하고 말꼬리를 잡으려 드는 행동은 스스로를 절정에 인도하여 괴성을 지르며 만족해하는 행동과 다름없었다. 그러고 보니 사람이란 존재는 짐승으로 비유되는 게 옳으며, 공공장소에서 행음하는 천박한 동물이었다.

  사람이 고양이를 닮았더라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사람은 개를 닮아 있었다. 그것은 저 유명한 바울이 개를 가까이 하지 말라고 하는 가르침을 기록하였던 것으로 보아서도 의미심장한 일이었다.

  나는 이번에도 그분이 나의 생각을 지지해 줄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분은 좀 더 원론적인 부분에 더 머물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렇다면 그분이 옳을 게 틀림없었다. 나는 다시 생각을 집중하고 그분이 이끄는 곳으로 나의 둔한 더듬이를 향해야 했다.

  그분은 다시 이름과 명사로 구별될 수 있는 개념을 언급하고 있었는데, 이번엔 ‘영(靈)’이라는 단어가 주제였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의 시점에서 적절한 화두였다.

  어차피 인류의 역사를 통해서 무언가를 얻고자 한다면 돌도끼를 들고 다니며 짐승의 소리를 내는 사람들로부터는 아무 것도 얻을 게 없었다. 처음부터 말을 알았고 이름을 지을 줄 알았던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의 역사를 통해서라면 무언가 얻을 수도 있을 터였다. 그리고 그들의 역사를 말하자면 반드시 영이라는 단어와 개념을 정확하게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었다. 

  “데이비드. 나는 나를 제외한 모든 실재하는 것들에 대해서 영혼이라는 개념을 사용하는 일에 반대하는 이유를 말할까 하네. 영혼이라는 것은 육체에 갇혀 살게 된 사람들이 추상할 수 있는 중요한 대상이긴 해.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없는 만큼 실재하지 않는 듯 묘사되기도 하고, 독립적인 에너지의 형태로서 자유롭게 존재한다고 묘사되기도 하지.

  하지만 그러한 영혼의 묘사는 내가 창조를 한 행위에 비추어 봤을 때 합리적이지가 않아. 차라리 ‘그는 외로운 영혼이었다’라든가, ‘그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는 문장가들을 지지하는 편이야. 사람에게서 영혼이 빠져나와서 어디론가 날아간다고 믿는 일은 너무나 원시적인 신앙에 기초를 두고 있어.”

  마침내 그분은 유용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말한 내용은 나처럼 무신론자가 될 만한 DNA 구조를 소유한 사람들이 좋아할 만했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모든 영혼과 귀신들을 제하여 버린 뒤에, 본격적으로 ‘영’이란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나는 나의 실체가 없음을 극복하고 나의 실존을 증명하기 위해 물질세계에 자극을 가하고 생명체를 만들어내었어. 그러한 내가 나와 비슷한 성질의 눈에 보이지 않는 영혼들이라는 것을 양산해내고, 이 우주 안에서 허공을 둥둥 떠다니는 작은 나의 분신들을 보고 만족할 거라고 믿는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아.

  어쩌면 ‘영’이라는 개념과 ‘혼’이라는 개념을 따로 규정하는 일조차 필요치 않을지도 모르겠군. 영과 혼과 육은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는 것이지. 그리고 오늘날의 사람들도 영은 정신과 인식으로 구성된 상태를 뜻하며, 혼은 생명을 유지케 하는 에너지에 가깝다고 설명하고 있어. 그런데도 영과 혼이 결합한 형태로 허공을 둥둥 떠다닐 수 있는 실체가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은 종교인들 밖에는 없지.

  그런데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나와 내 아들이 늘 실존에 관심을 두고 있다는 거야. 그건 사람들을 부활시키고자 하는 계획에 있어서도 실존적인 부활을 뜻해. 결국 영적인 부활 같은 게 우리에게 있어서 무의미한 만큼, 영혼이나 귀신이라는 개념은 잠시 잊어버려도 좋을 거야. 

  만일 생각할 수 있고 말할 수도 있고 창작력이 왕성한 원숭이가 존재할 수 있다는 가정이 가능하다면, 그것만으로도 다른 설명은 필요 없는 게 아닐까. 굳이 이러한 원숭이를 앞에 두고도 사람만이 영혼과 귀신으로 변한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일은 역시 열등의식에 사로잡힌 태도라는 걸 알아야 해. 다시 말해 사람을 만들 때 나의 영의 일부를 떼어서 불어 넣어주었다느니 그게 어떤 상태라느니 하는 설명은 불필요하다는 거야. 나는 확신하지만 나에게서 떼어낸 영을 따로 불어넣지 않는다 해도, 나와 내 아들은 아이큐가 200이 넘는 원숭이를 얼마든지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분의 원숭이 이론은 팝콘을 먹으며 ‘혹성탈출’을 보는 것만큼 이해가 쉬운 예였다. 아이큐가 200이 넘는 원숭이라니. 만일 그러한 존재가 세상에 나타난다면, 그날로 사람들 사이에는 영혼과 귀신과 천사가 사라질 것이었다.

  그분이 원숭이의 몸속에 영혼을 주입시키는 작업은 계속됐다. 

  “궁극적으로 나는 지구에서 존재하였던 300억의 육체 전부이거나 그 중 일부인 몇 십 억이라도 따로 선별하여 우주여행을 실행케 할 생각은 없어. 조금만 주의 깊게 생각해 본다면 그건 불필요한 일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거야. 자격을 갖춘 사람들을 위한 천국은 따로 마련되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지만,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비좁은 우주선 안에서 지옥을 견뎌야한다면, 그냥 지구에 남아 태양이 꺼지는 순간의 불지옥을 택하겠다는 사람들을 비난할 수가 없는 것이지. 그렇다면 시공에 대해 자유로운 영혼 같은 것이 있어서 단숨에 은하들을 뛰어넘어 천국이 마련된 다른 별에 도착해야만 하는데, 그건 나의 지지를 받지 못하는 설명이며 희망사항일 뿐이야.

  모든 설명을 쉽게 해주는 한 가지 단서는 바로 300억이라는 숫자에 있어. 다시 말해 나는 357억이나 407억과 같은 숫자에 관심이 없으며, 처음부터 열 명이나 몇 백 명 수준에서 사람들을 계획했던 것도 아니었어. 이 시점에서 중요한 것은 삼십 명이 되었든 300억 명이 되었든 첫 남자와 첫 여자의 DNA로부터 확산될 변이가 어떤 양태로 나타날지 나와 내 아들은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는 사실이야.

  사람들은 마침내 야만의 시대를 마치고 문명을 일으켰어. 그들은 민주주의라는 합리적인 제도를 정착시켰고, 세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을 만큼 과학을 발전시켰지. 그리고 마침내 영적이라고 할 만한 소통이 가능한 시대가 도래했어.

  우리는 첫 남자와 첫 여자를 만들 당시에 2백억 4천만 57번째로 태어날 사람의 이름을 알고 있었던 건 아니야. 하지만 그가 첫 남자와 첫 여자의 몇 대손이며, 그의 외적 성격은 어떠한 유형을 띠게 될 것과, 그의 내면에 열등의식은 어느 정도의 수치를 기록하게 될 것인가와 같은 것들은 쉽게 예상할 수 있었어.

  물론 나는 어느 정도의 시공은 제어할 수 있어. 그러나 앞에서도 말했지만 수명을 다해 꺼지게 될 태양을 영원히 타오르도록 몇 번이고 계속 부활시키는 일은 내게도 불가능하지. 내가 밑천을 다 내보이면서까지 이처럼 솔직하게 말하고자 하는 ‘의도’는 중요해. 그건 바로 사람들의 운명을 내가 쥐고 흔들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말하려는 거야.

  우리는 선악과라는 함정을 파 놓고 자녀들을 파멸로 몰아넣었다가 다시 구원하기도 하는 악취미를 갖고 있지 않아. 그런가하면 육체의 삶을 이어가야 하는 사람들이 열등의식에 사로잡혀 실패하는 일들이 벌어질 때마다 개입해서 역사의 흐름을 바꿀 생각도 없어. 사람들을 윤회의 수레바퀴에 태운 뒤 몇 번이고 깨달음을 주어 300억 모두를 개선시킨다는 건 우주의 본질과도 맞지 않아. 따라서 많은 사람들이 자존의식을 취하는 일에 실패하게 될 것이고, 나와 내 아들이 계획하는 이상향에 합류하지 못하게 될 거야.

  누구에게나, 주어진 기회와 실패의 경험은 한 번이면 족하다. 나와 내 아들은 자존의식을 취하기를 즐거워하고, 자신의 육체와 맞설 수 있을 만한 영적인 개체를 선별해서 받아들일 생각을 처음부터 갖고 있었어. 영원함을 지향한다면 그게 옳지 않을까.”

  결국 그분의 감춰져 있던 의도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영적’이라는 표현은 모든 대화를 혼란하게 만드는 가장 흔한 표현이었다. 언어와 대화와 영이 동의어일 수 있으려면 영적이라는 표현은 언어적이라는 표현과 대화적이라는 표현과도 같아야 했다. 그러고 보니 언어적인 신의 세계, 대화적인 신의 세계라는 표현이 영적인 신의 세계와 그렇게 다르게 느껴지지 않았다.

  다만 영혼적인 신의 세계, 그것은 분명히 이상했다.

  그분은 자신과 자신의 세계를 설명하기 위해서 소위 영적이라고 불리는 세계에 관해 언급하고 넘어가야 할 필요가 있었던 것 같았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역사를 인용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그것은 히브리인들의 역사였다. 사실 그 역사가 남아 있지 않았더라면 그분은 자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없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물론 신이 자신의 존재를 피조물들에게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은 인간의 아이디어만 빌려도 헤아릴 수 없이 많을 것이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신과 물질로 이루어진 피조물 사이에 이루어지는 교류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피조물들의 기억력을 고려한 신의 정기적인 출현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신의 증명을 위해 피조물들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피조물들을 위해 신이 존재하는 것처럼 사실 관계가 뒤바뀌어 버릴 것이었다. 그건 아무리 마음이 넓은 신이라 할지라도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게 분명했다.

  사실 그분이 강조하고자 하는 ‘자존의식’은 자존심과는 반대 개념이므로, 그분이 피조물들 앞에 겸손하게 모습을 드러내는 일을 고려해 보지 못할 것도 없었다. 그런데 그러한 생각은 물속의 물고기가 낚시꾼에게 가져온 지렁이를 모두 물에 쏟으라고 말하는 일과 다르지 않았다. 결국 조금만 상상력을 발휘하고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해 본다면, ‘신과 인간의 만남의 방식’은 쉽게 결정할 수 있는 성질이 아니었다.

  만일 지금 뉴욕의 상공에 맨해튼만한 크기의 거대한 손이 나타나서 누구라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향기의 꽃가루를 뿌린다면 세상이 바뀌게 될까? 아마 그런 일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사람들은 결국에는 신을 믿지 않을 게 틀림없었다.  

  하루 이틀 시간이 지나고 나면 아내와 남편과 자녀들에게 천사처럼 굴던 사람들이 점차 불성실해질 것이었다. 아마 십 년 정도의 시간이 흐르면 지구 반대편에서 텔레비전으로 그 광경을 보았던 사람들은 아무 것도 기억하지 못하고 수천 년 동안 살아온 방식으로 돌아갈 게 뻔했다.

  그렇다면 그분이 자신의 존재를 사람들에게 믿게 하기 위해 손바닥 하나가 맨해튼만한 크기의 형상을 잠시 구현했던 건 완전한 착각이었다. 최소한 그분은 자유의 여신상 정도 되는 형상으로 사람들 사이에 나타나서 사람들과 오래도록 머물러야 할 필요가 있었다.

  그분은 사람들이 지어준 신전도 좋고 아니면 해변이나 들판도 좋고 자주 사람들에게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것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이 착하게 살도록 가끔 대 국민 담화문 같은 걸 발표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안겨줄 필요도 있었다.

  하지만 사람들 중에는 이 거대한 신 앞으로 끌려가서 그 큰 발에 밟혀 죽는 처벌을 당한다고 해도 죄를 짓는 자가 끊이지 않고 나타나지 않겠는가. 아마 모르긴 해도 전 세계 곳곳에서 사형에 해당하는 자들이 신의 추종자들에 의해 날마다 보내져 오게 되고, 신은 그들을 하루 종일 밟아 죽이느라 쉴 틈도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러고 보면 ‘영적’이라고 하는 표현, ‘영’이라고 하는 표현은 힘이 있었다. 신이 인간을 다스린다면 당연히 영적인 방식이어야 할 것이었다.  

  다만 문제는 신의 영이 사람들 속을 드나들며 빛으로 나오도록 돕고, 신에게 대항하는 악한 영이 사람들 속을 드나들며 어둠에 머물도록 유혹한다는 오랜 가설만 해결되면 될 일이었다. 그리고 언어와 대화와 영이 정말 동의어라면 사람들 속으로 드나드는 선한 영과 악한 영은 천사이거나 악마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분은 마침내 현대사회와 정신세계의 민감한 부분을 직접적인 언어로 적나라하게 묘사하며 실상을 말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필연적으로 땅과 하늘 사이에 종교라는 이름으로 존재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말 할 차례야. 그것은 선악의 열매와 생명의 열매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와 생명의 나무에 관한 이야기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어. 그렇지만 나를 중동 지역에서 발생한 종교의 신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으면 좋겠군. 다시 말하지만 히브리인들이 남긴 기록이 가장 정확한 편이기 때문에, 종교에 관한 이야기의 서두에 그들의 기록이 등장할 ‘필요’가 있을 뿐이야.

  선악과의 이야기는 다만 비유라는 사실이 중요해. 하지만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오른 쪽의 세상은 글자를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썼고,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왼쪽의 세상은 글자를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썼다는 점을 생각해 보길 바라. 그럼 그것만으로도 선악과의 이야기가 담겨 있는 기록을 먼저 언급하는 일에 의미가 있다는 걸 알 거야.

  먼저 세상에는 물질을 극복하고 영적인 세계를 지향한 의인들이 많이 있었다는 사실을 짚고 넘어갔으면 해. 그들은 그들의 내면에 빛을 담고 태어나기도 했지만, 내가 직접 그들의 영을 흔들어서 그들이 내면을 들여다보도록 유도하기도 했지. 그리고 중요한 사실은 그와 같은 일들이 선악과의 이야기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도 발생했다는 거야.

  나는 실상을 지니지 않기 때문에 가시적인 측면에서 많은 것을 바꾸거나 하는 일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필요한 순간에는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었어. 다만 육체에 철저하게 갇힌 채 짐승으로서의 울부짖음이나 내고, 운명에 순응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손길을 내밀 필요를 느낄 수 없었을 뿐이야. 그런데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이 부분이 중요해.

  데이비드. 내가 그와 같은 영적인 속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을 이제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거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이름도 없어. 나는 처음부터 그저 세상 속에 머물러 있었을 뿐이야. 다만 재채기 한 번 크게 한 적이 없었을 따름이지.

  그러한 가운데 내 아들의 활약은 대단했어. 그는 내가 할 수 없는 많은 일들을 해냈지. 나는 그가 한 사람이라도 더 내게로 이끌기 위해서 노력하는 모습을 오래도록 지켜보았고 감동은 커져만 갔어.”

  이제 바야흐로 가장 높은 신은 다시 자리를 비켜주려 하고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대행자를 소개하는 일을 큰 기쁨인양 호흡을 가다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