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가다는 한동안 그분이 말한 ‘열등의식’이라는 말의 의미를 선악과라는 상징과 또한 우리들의 현실에 어떻게 적용할지 알지 못해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자 그분은 열등의식에 대비되는 의미로 ‘자존의식’을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분이 말한 자존의식은 신의 존귀함을 지향하는 믿음에 대한 다른 표현이었다. 그리고 자존의식은 곧 생명의 나무를 의미했다. 

  “데이비드. 하와가 열등의식을 갖게 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우리는 충분한 사랑을 주었고, 필요한 만큼 가르쳤다네. 그러나 짧지 않은 시간들이 흘러가는 가운데, 우리들의 딸은 많은 딸들의 어미가 될 운명을 거부하지 못하고 육체에 안주하고 말았지. 결국 하와는 자신 앞에 존재하는 관계와 사회의 소중함보다 자신의 실체가 더 소중하다는 착각이 내면에서 자라나는 것을 막아내지 못했어.

  이 우주 안에 실재하게 된 첫 열등의식은 그렇게 탄생하게 된 거야. 그런가하면 아담은 하와로부터 전염된 열등의식이 자신의 영혼을 적시고 있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지. 부모가 되어 보고 관찰력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거야. 사내아이들이란 특유의 적극성에서 비롯된 총명함을 지닌 반면 놀랍도록 단순하다는 사실을.”

  나는 그분이 농담을 던진 것을 알고 있었으나 입가에 미소를 떠올릴 만한 여유도 없었다. 하와와 아담이라는 첫 사회에서 시작된 균열을 나는 떠올릴 수 있었다. 그것은 나와 샬롯과의 사이에서 발생한 균열을 설명할 수 있는 적절한 비유였으므로 나는 반가웠지만 소름이 끼쳤다. 그것은 마치 까마득한 태초부터 나와 샬롯의 사랑이 실패하도록 예정되어 있었다고 말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분은 나의 혼란스런 마음은 상관 않고 이야기를 이어가기를 원하는 듯했다. 그런데 그분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다도 견디기 힘들어 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그녀의 눈가는 젖어 있었다. 그렇지만 그녀는 잠시 목소리가 떨렸던 것을 제외하고는 전과 다름없는 속도로 그분이 전하는 말을 이어갔다.

  “옛 기록에 의하면 하와가 선악과를 취하도록 뱀이 유혹했다고 되어 있지. 그런데 뱀은 곧 짐승이며, 사람이 지닌 육체를 뜻해. 선악의 열매가 과일이 아니었던 것으로 이해하기 시작했다면 뱀도 땅을 기어 다니는 냉혈동물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이해하도록 노력해줬으면 좋겠어.

  이제 사람은 생각을 할 수 있고 말로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에 얼마든지 존귀할 수 있음을 알 거야. 그렇지만 사람은 육체를 지니고 있기도 하기 때문에 얼마든지 땅을 기어 다니는 짐승 중 하나처럼 비천해지는 일이 가능하다는 걸 늘 잊지 말게.

  물론 사람이 홀로 존재한다면 이야기는 복잡해질 이유가 없어. 나의 첫 사람인 나의 아들만이 이 우주 안에 홀로 존재하게 될 계획이었다면 열등의식 따위는 생겨날 이유가 없지. 그렇지만 나는 나를 설명하고 증명하기 위해 복수의 사람들이 필요했어. 그러한 이유로 상대적인 작용들과 반작용들 속에서 열등의식은 필연적으로 탄생하게 된 거야.

  자존의식은 반드시 겸손의 외양으로 나타나기 마련이지. 그런가하면 열등의식은 필연적으로 교만의 외양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이치는 세상에 존재하는 어떠한 학문이 축적한 유익함보다도 중요해.

  누군가 타인에 대하여 짜증을 느낀다면, 그것은 적극적이든 소극적이든 자기 불만에서 비롯된 감정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어. 누군가 타인을 가르치려든다면, 그것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내세우고 싶어 하는 욕구에 사로잡히는 순간이야. 청하지 않는 충고를 하려 드는 일만큼 어리석은 태도는 없는 법이지. 누군가 타인에게 악행을 저지르고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면, 그는 이미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노예가 된 상태야. 누군가 배우려 하지 않고 무지한 상태로 머물러 있는 상태에 만족해한다면, 자신이 알지도 못했던 오만함이 어느 날 그와 그의 자녀들을 삼키는 일을 피할 수 없게 돼.

  열등의식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네거티브를 표현할 수 있는 하나의 색이야. 그것은 어둠의 색깔이며 우주에 가득 찬 암흑물질처럼 실존하는 모든 것들을 구성하는 원소이며 입자이다.    

  반면에 자존의식을 지닌 이들은 가난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오해를 변명하지 않으며, 명예를 얻는 것과 잃는 것을 구분하지 않아. 이들은 한줌의 햇살이 얼마나 따뜻한지 느낄 수 있게 하여 주는 육신을 고마워 할 줄 알지. 그들이 지닌 기특한, ‘마음’이라는 것. 아침에 도를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믿는 마음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몰라.

  사람의 마음속에 깃들어 있는 자존의식이란 자존심을 내세운다거나 자존심을 지킨다거나 하는 태도와는 상관이 없어. 그렇다고 자존의식이 줏대도 없게 되는 상태를 뜻하는 것은 아니야. 다만 자존의식은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중요하지 않은지 바로 알고 있는 가운데 자신이 아는 것을 믿는 상태라고 할 수 있어.

  열등의식은 썩어 없어질 육체를 위해 해 줄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드는 마음을 일으키지. 그것은 천 년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지 않아. 지금 살고 있는 순간만이 중요하다고 믿게 만들어. 사람이 백 년의 눈으로라도 세상을 볼 수 있다면, 부모의 세대와 자신의 세대와 자녀의 세대로 이어지는 흐름 속에 어떤 의미가 담겨 있는지 알 수 있기 마련이지. 그 정도만 되어도 자신과 주변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소질은 충분한 거야. 하지만 순간만이 중요하다고 믿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이 만들어내는 지옥이 유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해.”

  나는 그만 그 부분에서 눈물을 쏟고 말았다. 그동안 나와 샬롯은 빌리 앞에서 싸우는 모습을 보이지 않기 위해 애썼으나, 결국 우리의 딸을 법정에까지 세우고 말았던 것이다.    

  그분은 나의 격한 감정이 진정되기까지 기다려주고 있는 것인지 한동안 이야기를 멈추고 있었다. 어쩌면 가다도 나처럼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지도 몰랐다. 나는 내 안의 열등의식 때문에 샬롯과의 관계를 망쳐놓았던 일들을 일기에 적어 놓았던 내용처럼 하나하나 떠올릴 수 있었다.

  아. 나는 왜 샬롯이 소개하는 목사와 진심으로 악수를 나누지 않았던가. 그녀가 존경하는 목사마저도 하찮게 여기고 있는 나의 본심을 눈치 채던 샬롯의 얼굴이 기억났다.

  그녀의 종교적 성향이 강한 취향들. 그녀의 친구들의 수다를 짜증스러워 했던 일. 그녀가 대화중에 인용구를 자주 사용하는 일을 비웃던 내 모습. 그녀가 간절히 원했던 애완 고양이를 사는 걸 끝내 반대했던 건 결코 그녀의 건강을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녀가 전업주부로 지내면서 우리의 수입이 적다고 불평하는 일을 내 친구들에게 투덜대었던 내 모습은 역겨웠다.

  나는 사람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허점투성이임을 인정하면서도 내가 남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제 보니 허점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 혹시 내게 붙어 있는 허점이라는 유통기한이 남들보다 여유가 남아 있는지는 몰라도,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로 열등의식이라는 구멍이 잔뜩 난 에멘탈 치즈 덩어리 같은 존재였다.

  3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그분의 메시지가 도착하고 있는 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나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도 진지했으며, 내가 ‘진리’라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었다.

  유대인 박물관의 전광 안내판에는 뻬레쉬트의 내용 중 여섯째 장의 부분이 재생되고 있었다.

  ‘신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았더라.’

  위의 내용은 그러고 보니 지난 수천 년 간 논란이 되었던 구절이었다. 하지만 이제 나는 신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이 천사와 인간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내게 찾아와 가르침을 주고 있는 그분은 하늘에 사는 천사들이 땅 위로 내려와 사람들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고 ‘네피림’이라는 신인류를 만들어 내었다는 ‘사건’ 같은 것에는 관심이 없는 분이었다. 그렇다면 그분이 의도하는 모든 기록은 언어와 대화와 영을 설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해야 했다.

  곧 열등의식을 지닌 사람의 딸들과 자존의식을 지닌 신의 아들들의 만남은 하와가 처음 열등의식을 마음속에 품었던 사건의 연장이었다. 그것은 개인을 넘어서 사회적으로 선악의 열매를 범한 현상에 대한 설명이었다. 

  나는 어떠한 랍비들이나 목사들도 내게 뻬레쉬트 여섯째 장의 의미를 납득할 만큼 설명해주지 못했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고대의 기록에 존재할 수 없었던 언어인 열등의식이라는 표현이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로 환치됨에 따라 생겨난 의도치 않은 비밀이며 묵시였던 것이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몸에 전기가 흐르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그러고 보니 저 유명한 가인과 아벨의 이야기는 열등의식과 자존의식의 충돌에서 비롯된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지 않았던가.

  나는 너무나 기가 막혀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어째서 아벨을 시기해서 죽인 가인의 심리를 깊게 들여다 볼 생각을 못했던가. 가인이 느꼈던 시기심은 당연히 그의 깊은 곳에서 용암처럼 끓고 있었던 열등의식의 한 파편이었을 뿐이었다.

  그 후 벌어졌던, 인류가 신 앞에서 범한 모든 비극들은 역시 사람이 육체에 갇혀서 이상을 좇지 못한 결과였음을 알 수 있었다. 열등의식이라는 것은 곧 육체와 닿아 있었다.

  나는 오늘을 맞이하기 전까지 무신론자였던 만큼 홍수 심판과 노아의 방주 같은 것은 믿지 않았었다. 그러나 이제는 과학적으로 그 모든 일이 벌어질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해서 고려하는 일을 떠나서, 타락한 인류라는 게 어떠한 상태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상고시대의 사회 속에 만연하였던 세속주의가 사람들을 얼마나 끈적거리는 욕정으로 얽어 맬 수 있었는지 체감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사람의 자녀들이며 짐승의 새끼들로서 지식과 가르침과 교훈이 더 이상 발붙일 수 없는 상태로 오래도록 지속되어 갔을 것이었다. 결국 그들은 희망이 없는 세대였다. 어쩌면 그들은 말과 글을 배울 필요도 없는 삶으로 향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그러한 상태는 신이 첫 사람을 땅 위에 창조할 때 가졌던 기대와는 달랐을 게 분명했다. 적어도 지금 내가 만나고 있는 내게 메시지로 다가온 지적인 그분이라면, 그러한 옛 사람들 앞에서 침묵 외에는 어떠한 반응도 보일 수 없었을 것이었다.  

  그것은 조물주가 세상을 물로 쓸어버렸던 사건에 대한 확인은 아니었으나, 심판 받아 사라져버릴 수밖에 없는 사람들은 있었다는 증명이었다.

  나는 열등의식이라는 코드를 발견한 일의 놀라움에 빠져들어 생각의 가지를 역사의 전 영역으로 펼치려 하고 있었다. 술에 취한 채 벌거벗고 잠들어 있던 노아의 모습을 보고 돌아 나와서 자신의 아버지를 비판하려는 태도를 보인 함의 행동 역시 죄악으로 설명되어서는 안 되며, 열등의식의 결과였다.

  그런데 이 때였다. 내가 바벨탑의 사건 역시 사람들의 높아지려는 열망을 부추긴 열등의식의 작용이라는 생각을 떠올릴 때, 그분은 내가 한 가지 문제를 짚고 넘어가기를 원하는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과학적인 사고를 지향하며 무신론자로 남기를 원했던 지난날의 태도를 꾸짖는 듯했다. 

  “데이비드. 나는 나의 아들이 홍수로 세상을 쓸어버리려 할 때, 열등의식이 유전되는 일을 막고 노아와 그의 가족들을 통한 새로운 자존의식의 가능성을 열고자 하는 의도인줄로만 알았다네. 그런데 대홍수 사건 속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었지. 우선은 내가 가다와 데이비드를 만나기 전에 마스터 조를 먼저 만나 실행했던 예시의 측면이야. 즉 열등의식으로 점령당한 세상은 어떠한 형태로든 반드시 끝장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미리 보여준 것이지.

  그런데 그 후에 진행되어가는 상황을 보니 예시의 측면보다 현실적인 부분에 더 큰 의미가 있었어. 나의 아들은 상고시대와 고대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노아의 가족들을 중심으로 인류의 생육과 번성에 제한을 두어야 할 것을 처음부터 계획하였던 거야.

  옛 기록에서 보아 알 테지만, 아담에서부터 노아의 시대까지의 사람들은 완전한 육체를 지닌 것으로 보이지. 아담은 930살까지 살다가 죽었고 그 후 10대에 이르는 대다수의 사람들 역시 900살 가까이 사는 게 보통이었어. 그리고 홍수 사건 이후에 노아는 950살까지 살았는데, 그의 후손들은 수명이 급격히 줄어들기 시작하지.

  노아의 장자 셈은 600살까지 살았어. 그리고 셈의 6대손 르우는 239살까지 살았다네. 그러다가 르우의 5대손인 저 유명한 아브라함은 고작 175살까지 밖에 살지 못했지만 그의 시대에는 그가 장수를 하였던 것으로 인식되었지.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수명이 대홍수 사건을 기점으로 줄어들었다는 점이야. 오늘날의 사람들이 좋아하는 과학적인 관점으로는 두 가지 이유를 찾아낼 수 있지. 그 하나는 지구의 대기권에 과거에는 두꺼운 구름층이 뒤덮고 있어서 해로운 자외선이 완전히 차단되었다는 사실이야. 그에 대한 증명은 뻬레쉬트 첫 장에 등장하는 다음의 구절로 알 수 있어.

  ‘신이 공간을 만들고, 공간 아래의 물과 공간 위의 물로 나뉘게 하니 그대로 되니라.’

  어떤가. 믿어지나, 데이비드? 예전엔 구름이 훨씬 더 많았다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