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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환, 중원을 훨훨 날다
박정환, 중원을 훨훨 날다
후지쯔배 8강전 집중조명
[후지쯔배] 데일리오로  2011-08-13 오후 01:06   [프린트｜스크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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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선수로 유일하게 4강에 진출한 박정환 9단


중앙은 집짓기가 참 어렵다. 왜 어려울까? 그건 정확한 모범답안이 없는 미지의 세계이기 때문이다. 한 칸에 따라 국면이 좋을 수도 있고 한 칸에 따라 국면이 나빠질 수도 있는, 그런 애매모호한 세계가 중앙이다.

과거 다케미야 마사키 9단 이후로 우주류와 같은 극단적인 중앙 바둑이 없다는 것은 이와 같은 어려움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실례가 아닐까 한다.

박정환 9단과 박문요 9단의 바둑은 중앙에서 승패가 갈렸다.

초반 정석 선택의 결과로 중앙 바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박문요 9단은 처음 가보는 낯선 세계에 대한 두려움으로 인해 자신의 바둑을 전혀 보여주지 못했다.

더더군다나 상대가 실리에 민감하고 삭감에 능한 전형적인 아웃복서였으니 박문요 9단의 중앙 바둑은 명백한 작전 실패가 아니었을까 싶다.

바둑이 존재하는 한 중앙에 대한 해답은 없을 것이다. 중앙을 꿰뚫는 완벽한 감각과 두터움을 읽을 줄 아는 눈, 그리고 공격력과 정확한 끝내기가 두루 갖춰진 자만이 중앙 바둑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것인데 불행하게도 현실에는 그런 기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한다면 아마도 그건 바둑의 신이 아닐까? 박정환 9단과 박문요 9단의 8강전을 집중조명으로 다시 감상해보자.


제24회 후지쯔배 8강전
●박정환 9단 ○ 박문요 9단
장소: 일본 오사카
날짜: 2011년 8월 12일
결과: 215수 흑불계승


장면(한껏 중앙을 키우다)


흑의 사귀생과 백의 중앙 모양이 대비를 이루며 전형적인 실리와 세력의 대결구도가 형성됐다. 백1로 한껏 중앙을 키워왔을 때가 문제인데 백1이 과연 최선의 수였는지 파악해보기로 하자.

실전진행1(흑, 중원을 훨훨 날다)


실전 진행을 보면 알겠지만 백△는 최선의 수가 아닌 아주 이상한 곳에 위치한 이적수였다.

단도직입적인 흑1의 삭감에 뚜렷한 공격수단이 보이지 않았던 백은 멀찌감치 포위망을 펼쳐보지만 뭔가 효과적인 공격을 기대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이하 2부터 11까지 흑이 중원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참고도1(맞끊는 수는 없다)


보통 주위가 두터우면 2로 붙이고 4로 맞끊는 수가 상용적인 공격 수단으로 작용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흑5부터 11까지 우상 백△가 되레 고립되는 모양이 나오면서 전형적인 소탐대실의 우를 범하게 된다. 백세력이 보기보다 견고하지 못하고 간격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맞끊는 수는 성립하지 않는다.
참고도2(잇는 수는 무겁다)


백2로 들여다봤을 때 흑3으로 이어 전체를 살리겠다는 생각은 욕심 사납다. 백4의 둔탁한 철주가 놓이면 안형의 여지가 상당히 많이 사라져 흑대마가 엄청 시달리게 된다.

흑대마가 죽지는 않을지 몰라도 어디 한 군데는 출혈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자고로 적진에서는 가볍게 행마하는 것이 불변의 법칙이다.

참고도3(공격 포기)


흑5로 붙였을 때 백6으로 상변 집을 지키겠다는 건 중앙 공격을 포기하겠다는 의사로 볼 수 있다. 흑은 기분 좋게 흑7의 단수를 선수하고 9로 힘차게 밀어가면 이 대마는 공격권에서 완연히 벗어나게 된다.



참고도4(반대쪽이 다친다)


흑3으로 붙였을 때 백4로 뚫는 것은 어떨까? 흑은 아낌없이 흑▲ 한 점을 버림돌로 삼아 모양을 정비할 것이다.

흑11까지 모양을 갖춘다면 좌변 백모양이 세력인지 공격대상인지 구분이 안 간다. 참고도1과 비슷한 맥락이다.

실전진행2(잡을 자신이 없다)


이어지는 실전진행이다. 실리가 현저히 부족한 흑은 싫더라도 중앙 공격을 포기할 수가 없다. 공격을 통해 뭔가 이득을 취하지 않는다면 앉아서 지는 형국이기 때문이다.

백5의 들여다봄부터 백7의 기대기는 중앙 공격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보였는데 백13이 의외의 선택이었다. 아마도 중앙 흑대마에 죽기 살기로 달려들기에는 자신이 없었던 것 같다.

참고도5(박정환의 배짱)


백3으로 붙였을 때 4로 젖힌 수는 대단한 배짱이다. 안 잡힌다는 확고한 믿음이 없이는 둘 수가 없었을 것이다.

9로 둬 안형의 여지를 없앤 다음 11, 13으로 총공세를 펼쳤으면 이 흑대마의 사활은 어땠을까? 잡힐 수도 있고 안 잡힐 수도 있는 50대 50의 확률이라 봐야겠다.

참고도6(확실한 길)


만약 사활에 자신이 없었다면 백3의 붙임에 4로 양보했을 것이다. 백5로 손해를 봤지만 흑6을 둘 수 있어서 이 흑대마 안위는 걱정이 없다. 이렇게 둬도 전체적인 형세는 흑이 우세하다.

조금이라도 양보하지 않고 최대한 실리를 챙긴 실전은 대단한 배짱인 동시에 기세싸움에서 한 발 앞섰다는 증거겠다.

참고도7(좁혔으면 어땠을까?)


실전진행과 참고도를 보면 알 수 있겠지만 애초 중앙 지킴에 문제가 있었다. 흑의 중앙삭감이 그렇게 통렬했다면 백은 몇 발짝 더 좁히는 것이 정수가 아니었을까?

중앙은 해답이 없는 곳이니 백1의 곳이 확실한 정답이라 말하긴 힘들다. 그러나 실전보다는 조금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지 않았을까 싶다.

참고도8(정석 선택의 문제)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초반 좌상귀 정석 선택의 문제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상대방이 실리에 민감하고 타개에 능한 기사라면 실전보다는 백8로 막는 변화를 취해 장기전을 꾀하는 것이 올바르지 않았을까 한다.

이 바둑은 아무래도 박문요 9단의 입맛에 전혀 맞지 않는 어색한 취향을 박정환 9단이 제대로 간파했다는 느낌이 짙다.

[글 ㅣ 김상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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