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석점을 놓은 이벤트 페어바둑. 예상을 깨고 이의범-최정 조(오른쪽)가 조훈현-박지연 조를 꺾었다.
이벤트 대국은 승부가 중요하지 않다. 프로와 프로가 두어도 그렇지만, 프로와 VIP의 대국이라면 관전하는 사람도 승패를 더욱, 염두에 두지 않는다.
한데 이 대국은 승패를 지켜보는 게 흥미로웠다. 제3기 SG배 페어바둑최강전의 본선이 한창 진행되는 가운데, 30일 서울 성동구 홍익동 바둑TV스튜디오에서 열린 이벤트 대국은 후원사 SG세계물산 이의범 회장과 여류명인 최정 3단이 한 팀이 되고, 조훈현 9단과 박지연 3단이 한 팀이 되어 대결하는 페어바둑이었다. 이의범-최정 조가 석점을 깔았다. 어느 팀이 유리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당연히 바둑황제 조훈현 9단과 전 여류국수 박지연 3단의 조합이 크게 우세하다고 봤다. 석점으로 프로기사에게 수월하게 이기는 아마추어는 그리 많지 않다. 게다가 페어바둑은 파트너와의 호흡까지 필요하니까 아마추어가 있는 팀이 더욱 불리한 것이 당연했다. 어려운 대목에서 순서를 우리 편에게 넘기는 요령을 발휘할 수 있겠지만, 상대도 순서를 넘기지 못하게 하는 대응책을 어느 정도 마련할 수 있기에 한계가 있다.
▲ 이의범-최정 조.
▲ 조훈현-박지연 조.
그런데 막상 대국이 시작 되고 보니 만만치 않았다. 이의범-최정 조는 정석 과정에서 벌써 한 번 당하고 들어갔고 행마도 세련되진 않았지만 점수를 크게 잃지 않았다. 더구나 시간이 지나면서 흑이 리드하는 양상까지 보였다. 이의범 회장은 잔 실수가 적고 물러섬이 없는 스타일인데, 최정 3단의 호전적인 성향과 잘 맞았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최정은 파트너와 리듬이 생각보다 잘 맞는다고 느꼈는지 점점 더 강력한 수단을 구사하기 시작했다.
아마추어라면 실수가 벌써 몇 차례 나오게 마련인데 이의범 회장의 실수는 좀처럼 눈에 띄지 않았다. 백이 약간 불리한 형세. 초조해지는 쪽은 조훈현-박지연 조였다. 그래서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자신들 우변 거대한 대마의 삶을 돌보지 않고 좌상 흑에 대한 총공격을 감행했다.
흑에게 수습이 자신 있느냐고 물었다. 이의범 회장은 대마가 살기만 하자는 수를 택하지 않았고, 일전을 불사했다. 그때까지 이의범 회장의 접전을 보아 안심한 최정은 공격해 들어오는 적진 가운데로 오히려 돌진했다. 흑은 문제 없이 살았고, 백은 집만 깨지는 결과가 됐다. 집 균형이 무너졌다.
흑이 아주 넉넉한 형세. 끝내기 실수가 몇 차례 나와도 흑이 이길 것 같았다. 끝내기에 들어서자 조훈현-박지연 조는 거의 날아다녔다. 집 차이는 급속도로 줄어들었다. 꽤 큰 실수도 흑에게서 나왔다. 하지만 워낙 차이가 나 있었다. 이의범-최정 조는 271수 끝에 1집을 승리했다. 이 바둑을 바둑TV에서 해설한 김영환 9단은 “흑이 중앙 접전에서 많이 당했지만 그 전에 많이 유리했다”고 말했다.
예상을 뒤집고 이의범-최정 조가 이겼다. 과감함이 낳은 승리였다. 최정과 호흡을 맞춘 이의범 회장은 이번까지 방송 대국이 네 번째인데 한 번도 진 적이 없다.
국후 조훈현-박지연 조는 최정 3단에게 원성을 쏟아냈다.“그렇게 심하게 공격하는 법이 어디 있어! 대마가 다 죽는 줄 알았네~^^” 최정 3단은 싱글싱글 웃었다.
▲ 대국 전 대기실에서 환담을 나누는 선수들.
▲ 상대팀 전력이 만만치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만방을 지든지 만방을 이기든지 하게 되지 않을까요. 승부수를 띄우겠습니다.
▲ 가공할 전투력을 자랑하는 최정의 착수. 이의범 SG세계물산 회장과 함께 호흡을 맞추면서 느슨함을 최대한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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