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바둑이 뒷전으로 밀려났다지만 요다 노리모토는 늘 경계의 대상이었다. 전성기를 누릴 적에도, 서산의 낙조로 꺾인 때에도 한국기사들을 무던히 괴롭힌 요주의 인물이었다.
작년 농심신라면배의 쓰라린 기억은 지우고 싶어도 생생하다. 바로 1년 전, ‘상하이 대첩’을 일으킨 곳에서 한국바둑의 농심신라면배 불패신화가 조각났다. 지지 않는 이창호를 최종국에서 꺾고 우승컵을 가져간 요다 노리모토.
기세등등하던 요다 노리모토를 이번 대회의 히어로 박영훈 9단이 멋지게 설욕했다. 4연승으로 날아오른 박영훈의 수훈으로 한국은 중국과 동등한 입장에 섰고 일본은 탈락했다.
제8회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 제11국
백 : 박영훈 9단(한국)
흑 : 요다 노리모토 9단(일본)
장소 : 중국 상하이 화팅호텔
날짜 : 2007. 02. 06
결과 : 246수끝, 백1집반승
장면 (마지막 승부수)
기대 속에 일본의 주장 요다 노리모토를 맞은 박영훈은 필승 의지가 강했던 탓인지 마음에 드는 국면을 만들지 못했다. 실리를 크게 허용한 탓에 모양으로 승부해야 하는 껄끄러운 패턴으로 흘렀다.
집차지 경쟁으로는 승산이 희박한 종반의 문턱. 갈 길 바쁜 박영훈은 우변 흑의 공격에 승부수를 띄웠다. 백4가 도남의재북. 그 전, 달콤한 실리에 끌린 흑1이 빌미를 제공했다.
실전진행1 (시기상조의 끝내기)
초중반은 요다 노리모토가 잘 두었다. 후반으로 갈수록 힘을 내는 박영훈이지만 실점이 쌓인 데다 상대방이 두터워서 실마리를 풀기가 쉽지 않았다.
흑1이 시기상조. 초읽기 속에선 가능한 간명하게 매듭짓는 게 능사(흑1은 지금 두지 않더라도 백이 먼저 젖히지 않을 터이므로 흑의 권리가 될 가능성이 높다). 백2~6으로 압박한 박영훈은 백8로 내려서서 10집짜리 흑9를 당해주었다. 노림수를 품은 비틀기. ‘정수 대 정수’로선 희망이 멀어지므로.
참고도1 (간명한 코스)
흑이 이길 길은 많았다. 그중 흑1이 알기 쉬운 코스. 이 마늘모로 좌우의 흑은 연결형이다(백A에는 흑B).
유일한 걱정거리라면 우변 ▲ 석점인데 C에 넘는 수도 있고 해서 이 단곤마가 크게 위협받을 우려는 없다.
참고도2 (희망이 사라지다)
▲는 크다. 백이 그 자리를 두는 것과 비교할 때 안팎의 차이가 두드러진다(그렇더라도 A 부근에 수비하는 게 냉정한 태도가 아니었을까).
백은 1로 받아줄 만큼 여유롭지 않다. 흑2로 반상최대의 곳을 취하거나 우변 흑을 적당히 보강하게 되면 희망의 끈이 끊긴다. ‘기회는 지금뿐.’ 박영훈의 레이더가 본능적으로 작동했다.
참고도3 (굴복)
하변을 응수하지 않으면 백1을 당한다. 흑이 살 수는 있지만 굴욕적으로 움츠려야 하므로 몹시 괴롭다.
이때 백△는 흑을 압박하는 힘이 된다. 흑집은 줄어들고 백집은 불어나므로 흑이 취할 바가 아니다.
실전진행2 (사생결단)
적어도 <참고도3>은 막아보자는 심정에서 요다 노리모토는 흑1, 백2를 교환하고 나서 흑3쪽을 밀었다. 쌈지 뜨고 살기 싫다는 흑3은 그러나, 백4 급소를 노출했으므로 6의 곳이 무난.
박영훈은 웬만해선 과격한 수를 잘 두지 않지만 지금은 물불을 가릴 때가 아니라고 판단했는지 노도와 같이 흑대마를 집어삼킬 태세다.
참고도4 (사활 승부)
흑1에는 필시 백2로 되젖힐 작정이었을 것. 과연 백6 이후 흑대마가 살지 못할까(수순 중 흑3으로 5에 몰면 백A로 버틴다).
줄곧 우세한 형세를 이끌어왔던 요다 노리모토로선 우변 흑의 생사에 몸을 던질 만큼 극단적인 승부는 피하고 싶었을 것이다. 시간도 없고….
실전진행3 (바꿔치기로 역전)
요다 노리모토는 모양을 정리하는 데는 능하지만 낙관에 젖어들어 간혹 역전패를 당한다. 이 판은 형세판단의 착오까지 겹쳤다.
죽을 말이 아니라고 확신했는지 모르나 흑5는 수를 제대로 읽지 않았다. 그리고 이하의 바꿔치기는 10집 이상 손해를 본 결과. 형세판단을 제대로 됐다면 타개하는 수를 찾지 않고 속절없이 지고 마는 바꿔치기를 결행했을 리가 만무할 것이다.
참고도5 (다른 공격)
백1로 끊는 공격을 구사해봄 직도 했다. 흑2로 잇는 것은 백9까지 자체로 두눈을 만들 공간이 부족하다.
계속해서 흑A 등 외곽 백의 단점을 찔러야 하는데 변화가 복잡하다.
참고도6 (살 길이 있었다)
본디 흔들기는 초읽기 상황이라야 효험이 있다. 시간이 많을 때는 반격받기 십상이다. 초읽기의 혼돈 속에서 요다 노리모토는 수읽기의 냉정함을 지켜내지 못했다. 흑1과 3이 들어 변쪽에 선수 한눈이 확보되는 곳. 그런 다음 5에 껴붙였으면 대마를 살릴 수 있었다.
박영훈의 공격을 계속 강요하면서 타개로 쏠쏠한 재미를 봐왔던 요다 노리모토는 마지막 칼날을 비껴가지 못했고, 초읽기에 몰린 상황에서도 형세판단이 정확한 박영훈은 2004년 후지쯔배 결승전에 이어 다시 요다 노리모토를 1집반 차로 제쳤다. 이창호의 최근 부진을 감안할 때 박영훈이 거둬들이는 1승은 더욱 값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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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마1234
칠뜨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