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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의 환각에 빠져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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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의 환각에 빠져들다
| 한창규 2006-07-03 오전 11:42 [프린트｜스크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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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석에서 신음하던 어느 기사는 고통을 삭이며 되뇌었다. ‘인생에도 패가 있다면 어떻게 해보련만….’
프로에게도 패는 골칫덩이다. 꺼져가던 생명에 기운을 불어넣고, 뽕나무밭을 푸른 바다로 바꾸는 변환술을 부리기도 한다.
후지쯔배의 이세돌이 컨디션 난조와 겹쳐 패의 환각에 빠졌다. ‘형제 결승전’은 무산됐고, 떼어 논 당상으로 비쳤던 한국의 9연속 우승도 낙관하기 어려워졌다.
제19회 후지쯔배 준결승전
○저우허양 9단(중국) ●이세돌 9단(한국)
- 장소 : 일본기원
- 날짜 : 2006. 07. 01
- 결과 : 264수끝, 백불계승
장면 (정적 깨는 패싸움)
침착과 끈기의 저우허양. 냉정한 운영으로 전투 성향의 한국기사를 연파하며 준결승까지 뛰어올랐다. 이세돌과의 상대전적은 2전 2패.
여섯 군데 두칸벌림의 고요함을 깨는 백1. 이세돌의 흑2는 재치일까. 백5로 응수를 묻고, 백7부터 패로 가져간 저우허양의 전략이 산뜻했다. 지금이라면 흑6으로 응수하는 정도이다.
실전진행1 (대세를 잃다)
흑이 패를 굴복하는 것은 중복형. △가 적시의 활용이 되며 가에 붙이는 끝내기를 남겨 놓는다.
팻감을 둘러싼 수순이 이어지는 가운데 흑2로 받고 백이 패를 따낼 때 흑4로 단속하는 이세돌. 그 결과 흑10으로 물러서게 됐고, 좌변은 백17까지의 호형을 허용했다. 패의 공방에서 흑이 대세를 잃었다.
참고도1 (무난)
1수를 더 들일 바에야 잠자코 흑1로 받아두는 편이 무난했다. 흑의 팻감은 3의 곳이 떠오르며, 하변은 백4로 판을 키워야 본격적인 패.
이하의 변화는 9로 젖히는 수가 통렬해 흑이 충분히 둘 수 있다.
참고도2 (패 계속)
△가 준동하는 것에 신경이 곤두섰던 걸까. 당장은 백A에 흑B로 눌러 급박한 화를 입지 않는다. 따라서 흑1로 팻감을 쓰며 계속해서 패를 다투고 싶다.
실전진행2 (무모한 움직임)
흑1은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반증. 2의 곳을 밀어가는 것이 순리이나 ▲가 악수로 변하는 게 거슬린다. 그래서 모험을 무릅쓰고 움직인 것인데 결국 무모한 저항에 지나지 않았다.
흑5, 9로 나가는 모양새가 사납기 그지없다. 여기서도 이세돌의 착오가 있었던 듯하다.
참고도3 (흑, 곤란)
실전처럼 구겨진 형태를 감수하며 끌고나가려 한 건 아니었을 터. 당초 1, 3으로 젖혀나갈 계획을 세웠는지 모른다. 그러나 백12가 호착. 백14로 패를 걸어갈 경우 백20의 팻감을 당해내지 못한다.
6번 출전에 3번을 우승으로 이끈 후지쯔배는 이세돌의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세계대회 우승컵의 절반을 후지쯔배로 채운 강세를 보였으나 올해는 복병 저우허양에게 결승길을 내주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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