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Home > 뉴스
"바둑은 고대의 신들이 즐기던 게임, 인간에게 준 선물"
"바둑은 고대의 신들이 즐기던 게임, 인간에게 준 선물"
‘영원한 반상의 로맨티스트’ 다케미야 마사키 9단 (下)
[기획/특집] 정용진  2017-10-25 오전 08:16   [프린트스크랩]


[월간바둑] 11월호에 동시게재하는 인터뷰입니다. 한 편으로 소개하기에는 기사가 길어 사이버오로에서는 상하, 두 편으로 나누어 싣습니다.

○● 다케미야 인터뷰 (上) ‘우주류’...나밖에 둘 수 없는 바둑을 두고 싶었다! ☜ 먼저 보기 클릭


일본바둑의 부진은 바둑 배우는 어린이 적어진 탓
첫 세계대회인 후지쯔배 우승했을 때 가장 기뻤다


- 일본바둑이 예전에는 세계를 대표하는 최강의 무대였지만 근래에는 저조합니다.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보시는지?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은 것은 중국, 한국에 비해 어릴 때부터 바둑을 공부하는 어린이가 적은 게 원인입니다. 중국이나 한국은 초등학교 때, 또는 그 이전에 바둑을 많이 공부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일본은 어릴 때부터 바둑을 배우는 어린이가 적습니다. 바둑의 좋은 점을 부모들이 인식해 어릴 때부터 바둑을 시작하는 어린이가 늘어나면 한국, 중국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 예전엔 기타니 문하같이 어린 재목들을 발굴, 육성하는 도장(道場) 시스템 있었는데 시대가 달라진 지금은 이런 시스템을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최근 젊은 기사들의 연구회가 매우 활발합니다. 중국, 한국에 늘 꺾이기 때문에 맞서기 위해 연구회가 많아졌지요. 기전 대국 이외에도 바둑을 공부하는 연구회가 많아졌어요. 따라잡겠다는 각오도 단단하고...분위기가 좋습니다.

뭐, 한중일이 이렇듯 선의의 경쟁을 펼치며 발전해 나가는 모양은 좋다고 봅니다. 다만 특별히 국가간, 국적을 구별하고 경계를 구획하고 넘버원을 매기는 건 큰 의미가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 한국인, 중국인은 거의 비슷한 인종이라고 할까. 문화나 사고하는 면에서도 공통점이 많습니다. 어떤 국가의 누군가가 넘버원이 되는 게 전혀 분할 것도 이상하게 받아들일 것도 아니지요. 적어도 바둑이라는 울타리 안에서면 더 그렇겠지요.

조금 이야기가 달라지지만 한국의 조남철, 조훈현...특히 조훈현은 내 친구이기도 하고 바둑도 세지만 정말 인간적으로 훌륭한 사람입니다. 조훈현 같은 한국의 일인자가, 지금은 국회의원이라 바쁘지만...이러한 훌륭한 분들이 일인자가 되어 끌어왔던 게 한국에게는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한국도 중국도 대단히 좋아합니다.”

▲ 1988년 봄(4월)에 일본이 주최한 후지쯔배(富士通杯) 세계바둑선수권전은 바둑역사상 최초의 세계대회였다. 이어 그 해 여름(8월) 상하이에서 응씨배가 연이어 개막했다. 1988년을 국제대회 원년이라고 하는 까닭이다. 당연히 뜨겁게 관심이 쏠렸던, 세계 최고 최강의 기사가 누구인가 궁금할 수밖에 없었던 1회 후지쯔배에서 우승한 사람은 일본바둑을 대표하는 조치훈이나 고바야시도 아닌, 중국의 녜웨이핑이나 한국의 조훈현도 아닌, 독특하기 이를 데 없는 중앙바둑을 두는 다케미야 9단이었다. 시상식에서 우승소감을 말하는 '원년 세계챔프' 다케미야 9단. [사진제공/일본기원]

▲ 1회 후지쯔배 결승에는, 당시 전성기를 넘기지 않았나 여겼던 다케미야와 린 하이펑(林海峯) 9단이 올랐다. 그런데 이들은 이듬해 2회 대회에서도 또 한번 약속이나 한 듯 결승에 올라 제한시간 3시간짜리 세계무대의 판도는 국내무대와 다르다는 걸 보여주었다. 문호를 개방하기 시작한 시대에 점차 짧아져가는 제한시간 등, 시대의 흐름을 읽고 준비한 승부사들이었다. 사진은 1회 후지쯔배 결승 장면.

▲ 다케미야 9단(사진 중앙)은 1989년 2회 후지쯔배도 석권했다. 2년 연속 우승함으로써 명실상부 세계바둑챔프임을 만천하에 고했다. 왼쪽은 3위를 차지한 조훈현 9단이고 오른쪽은 준우승한 린하이펑 9단.

여담 하나 덧붙인다면, 특히 후지쯔배는 예전부터 항아리 모양의 고급 도자기를 트로피로 줘 눈길을 끌었는데, 이창호 9단을 모델로 그린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세계대회에서 우승한 최택이 여자친구 덕선이에게 바로 이 항아리 트로피를 선물로 준 대목이 있었다. 그런데 덕선의 반응이 이랬다. "답답해 미치겠어. 바보 아니야? 대회에서 받은 거 아무거나 하나 가져오랬더니 저거 가져왔어."

- 조훈현 9단 얘기를 하시니 갑자기 여쭙고 싶은 질문이 생겼습니다. 선생께선 1988년과 89년 1~2회 후지쯔배를 연속 우승했습니다. 세계대회를 석권한 최초의 챔피언이었고요.

조훈현 9단은 이어 1989년 1회 응씨배를 우승했지요. 당시 세계대회라곤 후지쯔배와 응씨배 두 개뿐이었는데 이 양대 챔피언을 한번 붙여보자, 누가 더 센지...당시 분위기를 타고 급조한 이벤트대회가 1990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효성에바라배였지요. 말하자면 통합챔피언전 같은 것으로 3번기로 두었는데 그때 조훈현 9단을 2-0으로 눌러 한국팬들에게 낙담을 안겨주었지요. 기억하실 겁니다. 하하. 월간바둑 기자로 현장 취재했기에 생생합니다.

그런데 이 대결 말고도 조훈현 9단에겐 역대전적 9승3패(비공식 포함)로 강한 면모를 보였습니다. 조훈현 9단이 일본에서 돌아온 이후 86년부터의 대결만 따져도 6승3패로 강했습니다.

그런데 조치훈 9단에게는 후배에게 쫓기는 처지라 부담스러우셨는지 좀 졌습니다(통산전적 33승62패). 타이틀전에서는 기성, 명인, 혼인보 3대 기전(도전7번기)에서 네번 다 졌고, 랭킹4위 기전인 십단전(도전5번기)에서만 두 번 이긴 바 있습니다. 조훈현에겐 좀 강했고, 조치훈에겐 열세를 보였는데 일종의 기풍 차이 같은 게 작용했을까요?


“호오~ 그런가요? 하하...조치훈은 꽤 장고파고 독특한 기풍으로 대국 때 기세가 당당하고, 기합이 대단해 눌린 면이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조치훈하고 나는 바둑이 아주 다르지만 내가 없는 면이 많아 존경하고 있습니다. 조훈현에게는 어쩌다 이긴 것입니다.”

- 기사 인생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을 텐데요, 아무래도 우승했을 때일까요?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음~ 그렇군요. 무엇이었을까. 역시 세계선수권인 것 같네요. 후지쓰배 우승 당시 모두 기뻐했으니 역시 세계선수권에서 우승했을 때가 가장 기뻤다고 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다 좋았긴 하지만...”

▲ 1990년 3월 서울에서 열린 효성에바라배 세계바둑정상대결 3번기는 후지쯔배 우승자인 다케미야 9단과 응씨배 우승자인 조훈현 9단의 통합타이틀매치 격이었다. 전야제에서 기자들의 요구로 악수 포즈를 취한 두 대국자.

▲ 3번기 결과는 2-0으로 후지쯔배 우승자가 이겼다.

바둑은 고대의 신들이 즐기던 게임, 인간에게 준 선물
바둑을 두면 인간의 마음이 대단히 아름답게 되는 게 매력


여기까지 인터뷰가 꽤 길게 이어졌다. 슬슬 마무리를 해야할 시간. 그런데 이 대목에서 다케미야 9단이 할말을 자청했다. 여러 기회가, 때가 있을 때마다 하는 얘길 모처럼 한국기자와 인터뷰를 하는 자리이니만큼 이번에도 꼭 하고 싶다며 말문을 열었다.

“나는 여러 곳에서, 바둑은 신이 보낸 것이라는 얘기를 자주 합니다. NHK 방송해설 등에서도 하는데...바둑은 중국에서 한국을 거쳐 일본으로 온 것이라고 하는 게 일반적 상식이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합니다.

바둑은 적어도 몇 만년 전, 몇 십만년 전 지구상에 존재했다고 생각합니다. 고대문명이 지금보다는 더 발달되지는 않았겠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고대문명 때부터 바둑이 본격적으로 발달되지 않았을까 생각하는 거지요. 이 이야기를 들으면 머리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바둑은 고대의 신들이 즐기는 게임이지 않았을까. 몇 만년 전, 몇 십만년 전인지 모르지만 그때부터 이어진 바둑이 지금까지 두어지는 게 기적적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 고대 발달한 문명 가운데 하나, 고대의 신들이 즐기는 게임이 바둑이다는 말씀, 참 인상적이군요. 이렇게 오랜 세월 존속해 왔다는 게 기적이라면 생명력을 이어올 만한 매력이 있었을 것인데, 선생께서 생각하시는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은 무엇인지요?

“바둑의 가장 큰 매력은, 신들이 즐기는 게임이어서일까. 바둑을 두는 사람만 알겠지만, 바둑을 두면 인간의 마음이 대단히 아름답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승패가 있어 승부를 만끽하는 재미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바둑의 가장 좋은 점은 마음을 닦을 수 있고, 정화된다는 거지요. 또 바둑을 두면 처음 만난 사람도 곧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의식이 생긴다는 겁니다. 그런 게 세계평화에도 연결된다고 봅니다. 그것은 신이 하는 게임이기 때문입니다. 바둑은 이 세상의 무엇보다도 최고의 게임입니다.”

- 바둑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승부사입니다. 승부를 할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점이 있을지...가령 질 수 없다는 오기, 상대를 제압하는 기백, 평정심을 유지하는 자세랄까 뭐 이런 다짐 같은 게 있을 것도 같습니다만.

“바둑은 무한한 가능성, 수들이 있기 때문에 나로서도 그 어떤 다짐을 다졌다한들 어떤 바둑이 될지, 흘러갈지 전혀 상상이 안 됩니다. 물론 두면 이기고 싶은 감정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가장 진짜는 자신의 기분대로, 의지대로 둔다면 그것이 행복한 것이고 이상적인 것이라는 겁니다. 단지 인간이기 때문에 어느 대목에선가 꼭 이기고 싶다든가 안전하게 이기고 싶다든가 하는, 욕망의 감정이 나오는 순간이 있고 흐려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어쨌든가 자신의 바둑을 두는 게 중요합니다. 어쩌면 그런 싸움...자기자신과의 싸움이 바둑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렇다면 ‘이것이 내 바둑이었다’ 생각한, 그런 바둑이 있었을까요?

“역시 조치훈을 상대해서 둔 7번기 중 몇 국 있는 것 같습니다. 패한 바둑도 있겠지만, 패한 바둑은 여러 가지 실수가 있기 때문에 아마도 이긴 대국일 것입니다.”

▲ 기자가 [월간바둑] 재직 때 일본기자에게 선물받아 보관해 온 다케미야 9단의 음반 테이프. 앨범 타이틀이 '백로와 까마귀의 러브게임'...그러니까 까마귀(烏)와 백로(鷺)면, 즉 오로(烏鷺)는 바둑을 달리 칭하는 말이니까 '바둑 러브송' 같은 것이려나. 이 테이프를 가지고 있다는 말에 다케미야 9단이 깜짝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

- 마지막으로 요즘은 어떻게 소일하시는지? 바둑 외에도 다재다능하신 걸로 유명합니다. 예전 음반도 취입한 걸로 아는데...그 중 테이프 하나를 아직도 제가 보관하고 있답니다. 어떤 여자분과 함께 불렀던 것인데...요즘은 댄스를 즐긴다고 들었습니다.

“앗, 그런가요? (호탕하게 웃음) 듀엣으로 노래 부른 건 예전의 일인데...지금은 춤추는 것을 가장 좋아합니다. 매일 하고 있습니다. 바쁘실 텐데, 일부러 멀리 오셔서 이런 애기들을 할 수 있게 해줘서 오히려 고맙습니다. (이 대목에서 느닷없이 어설픈 한국말로 한국팬에게 인사를 한다. 역시 멋진 마무리, 볼수록 유쾌하고 멋있는 기사다.) 안뇽~하세요~ 감싸~합니다!”

▲ 2014년 일본기원 창립 90주년 기념식에서 다케미야 9단은 댄스 특별공연을 펼쳤다. 무대에서 댄스 공연팀을 소개하고 있는 다케미야 9단.

▲ 흥겨운 춤사위가 느껴지시는가? 다케미야 9단의 댄스 실력은 프로급이라고 한다.



이것이 우주류!

다케미야 9단은 조치훈을 상대하면서 원없이 자기의 우주류를 펼쳐 보았다 생각한 바둑 중, 바로 이 판이라고 꼭 집어주진 않았지만, “패한 바둑은 여러 가지 실수가 있기 때문에 고르라고 한다면 아마도 이긴 대국 중 하나”일 것이라고 말했다. 해서, 기자가 나름 한 판 골라 보았다. 1985년, 서울에서 도전1국을 내준 뒤 일본으로 돌아와 보름 뒤 나고야에서 재개한 9기 기성전 도전7번기 2국이다.

<장면2> 말할 것도 없이 이런 바둑은, 굳이 대국자 이름을 찾아볼 것도 없이 흑이 다케미야 9단임을 알겠다.

백△로는 흑의 대세력을 예방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고개를 치켜들 때조치훈 기성은 역시 실리의 화신답게 ‘마이 웨이’를 고집했다. 국후 “어디에 두어야할지 알 수 없었다”고 말했지만 애초 이것이 조치훈 바둑의 본령. 어쨌거나 흑1, 이 한수로 우주류가 확연해졌다. 백2에 56분을 장고했지만 기실 다음 중앙 삭감수를 고심한 시간이었을 터. 다시 59분이나 숙고하다가 “도대체 무엇을 생각한 거냐” “안되겠다. 시간이 없다”며 결행한 수가 백4였다.

여기서 도전자는 1시간이나 장고하고 다음수를 봉수(封手)했다. 어디였을까?
다음날 오전9시, 입회인의 “시간이 됐으므로 시작해 주십시오”라는 소리와 동시에 양 대국자가 첫날의 수순을 한수 한수 바둑판에 놓은 뒤 봉투를 열어 봉수점을 확인했더니, 다음수는 예상치 못했던 흑A 붙임수였다(어딘가 알파고 냄새가 난다).

흑은 B로 집차지를 했어도 좋았을 법한데 과연 다케미야였다. “세력을 집으로 만드는 데 급급하지 않고 백4를 역습하겠다는 노림을 내포한, 자유자재한 기풍이 엿보인다. 백의 허점을 찌른 것인지도 모르겠다(하네 야스마사 9단)”는 평을 들었다. 결국 이 바둑은 흑이 백대마를 잡고 109수 만에 단명국으로 끝났다. [참조/제9기 위기명인기성전(법문사 발행)]

또 하나의 기록, 5시간 7분의 장고(長考)

<장면3> 흑3 한수에...

<장면3> 흑1에 두고 백2로 받자 이 다음수(흑3)에 다케미야 9단은 물경 5시간 7분이나 생각했다. 흑A에 둘 것이냐 흑3을 택할 것이냐, 단 한수를 결정하는데 제한시간 8시간 중 5시간 7분을 썼다면 곧장 이해하시겠는가.

1988년 6월, 43기 혼인보(本因坊)전 도전5국에서 도전자 오타케 9단을 맞아 둔 바둑이다. 이 한수의 갈림길로 승부가 좌우되진 않았겠지만, 다케미야 9단은 이 바둑을 불계로 이기고, 결국 종합전적 4-3으로 혼인보 타이틀을 방어하며 4연패를 이뤘다. (다음 기에서 조치훈 9단에게 타이틀을 빼앗긴다.)

이것은 일본이 3대 기전(기성, 명인, 혼인보)에서 제한시간 8시간의 이틀바둑을 도입한 이후 아마도 최장의 장고기록일 것이다. 국후 다케미야는 "저는 정석을 잘 모르고요, 게다가 수읽기하는 게 즐거워져서요~"라고 웃으며 말했다.

장고(長考), 하면 우리는 조치훈 9단을 먼저 떠올리지만 다케미야 9단도 이렇듯 단 한수에 몇 시간이고 들였다. 그러면서도 속기에도 천부적인 감각을 발휘했다.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에서 4년 연속 우승한 게 그 증거다. 장고면 장고, 속기면 속기, 세계대회에서 양쪽 대회 우승타이틀을 한꺼번에, 동시에 죄다 움켜쥔 기사는 다케미야 9단이 유일했다. 진정한 원년챔프였다.

▲ 속기대회에서도 다케미야의 우주류는 그 세계가 단연 넓고 깊었다. 그의 우주에 자칫 휩쓸리게 되면 다들 블랙홀에 빠지는 운석과도 같았다. 1992년 4회 TV바둑아시아선수권전 결승에서 다케미야 9단이 한국의 조훈현 9단을 꺾고 대회 4연속 우승을 달성했다.

┃꼬릿글 쓰기 동감순 | 최신순    
해안소년 |  2017-10-28 오전 11:49:00  [동감0]    
바둑은 고대의 신들만 즐기던 게임이 아니고, 요즘도 신이 바둑 많이 두는갑네. 세상에 온갖
문제들이 넘쳐나는데 신이라는 게 뭐하는지 전혀 관심이 없으니. 홍수가 나고, 병이 창궐하
고, 불의가 판치는데, 신이라는 게 뭐하는지 그런데 전혀 관심 없는 듯. 가만히 보니 바둑 둔다
고 정신 없는갑네. 신이라는 게 전혀 믿을 게 못되는 듯. 바둑 때문에 신이 고무신 되는군.
Unify |  2017-10-26 오후 12:48:00  [동감0]    
댓글 수준들 하고는..ㅎㅎ 오로에 너무 오래있었나 보다..
킹포석짱 |  2017-10-25 오후 2:57:00  [동감0]    
아직 소년이라 고무신만 알고 어른을 몰라서^^ 이해들 하삼....
팔공선달 |  2017-10-25 오후 2:51:00  [동감1]    
추억의 우주류 어쩌면 마지막일지 모르는 인터뷰 같습니다.
역시 호방하네요.
하지만 갠적으로 세계 최초를 강조한 후지쓰배는 너무 미화한 느낌도 있습니다
인터뷰 당사자를 배려했다고 보지만.
최초란 발상부터 선지자적 의미가 있어야 하는데.....
시대적으로 본다면 급조 된 자존심의 대회였고 그 후 일본의 고질적 상술에 의해 사라졌지요.
여튼 그는 바둑의 한 획을 그은 대인이고 귀인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__)
..돌.. |  2017-10-25 오후 1:11:00  [동감1]    
오로 기사 배치를 이따위로 하나?
메인에 걸어놓고는 눌르면
거기에는 없고 더보기를 눌러서 찾아야만 보게 해놓다니...ㅉㅉ
생각이 있는 것인지...
운영자55 죄송합니다...메인기사를 누르면 당연히 서브페이지에 가장 크게 뜨도록 설계돼 있습니다만....하필 잠시 페이지(관리자페이지)가 에러가 났었네요. 바로잡았습니다. 불편을 끼쳐 대단히 죄송합니다.  
자객행 |  2017-10-25 오전 11:17:00  [동감1]    
좋은 기사 잘 읽어었습니다. 다께미야 추억의 기사 반갑네요^^
해안소년 |  2017-10-25 오전 8:45:00  [동감0]    
바둑을 신들이 즐겼다고? 바둑에 미치면 이상한 소리를 하게 되는갑다. 황제나 고관대작들이
두었다고 하면 이해하겠는데, 신들이 바둑 즐겼다니? 어떤 신이냐? 몽당신이냐, 조왕신이냐,
아니면 삼신할마시냐? 바둑이 역사 오래 되었다는 말은 지당한 말이지만, 신들이 즐겼다니?
신을 아무데나 붙이면 귀신이 아니라 짚새기가 된다.
오로검객 가위 바위 보나 주사위 게임은 누구나 할 수 있는 데중의 놀이요. 천변만화의 수가 숨겨져 있는 바둑이야말로 그 오묘함의 끝을 모르는 게임이기에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신들이 즐기는 게임이라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신선놀음이라는 말도 결이 같은 의미라고 봅니다.  
태극유연 흠 신이 즐겼다는 얘기가 그렇게 이상한가요? 사람도 신의 후예고 바둑을 만든 누군가는 영감을 받아 만들었을테고 그렇다면 그 영감은 신으로부터 오지 않았을까요? 그리고 신도 게임을 즐긴다면 바둑이야말로 신이 즐기기에 가장 이상적인 게임이 아닐까 하는게 전혀 무리한 생각으로 보여지지 않는데요?^^  
팔공선달 바둑의 깊이에 빠져보면 최소한 폄하하는 말은 안합니다. 그렇다고 탓할 이유도 없지요.^^  
전경 ㅋㅋㅋㅋㅋㅋ 인간이 신의 후예라니;;; 중세시대도 아니고 21세기에 이런소리를 하는 사람이 있다니 슬픈일인가.... 아니면 초딩?  
김동은 일본 사람들의 기본적인 사상을 이해못해서 그런다. 일본 사람들은 만물에 신이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마을 곳곳마다 신사를 세우고, 죽은 사람도 신이 된다고 믿는다. 그럼 옛날에 신이 바둑을 뒀다는 것도 이해 불가한 게 아니다. 어디 옛날만 그런가? 요즘에도 신들이 바둑을 두지. ㅎ  
멀라 도끼자루 썪는 줄 모른다는 말도 있죠? 신선들이 두었습니다 그거 참 날카로우시군요  
FirstPage PrevBlock   1   NextBlock LastPage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