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호와의 대국은 초반의 실타래를 어떻게 풀어나가느냐가 중요하다. 그를 상대로 종반에서 승부를 거는 작전은 어찌보면 무모하다. 그래서 가급적 일찍부터 싸우는 길을 택한다. 대부분의 기사가 그렇다. 싸움은 변수가 많으니까. 국수전 도전기에서 3국까지 최철한이 밀리고 있는 원인도 초반에서 포인트를 못 따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늘 바둑에서 최철한은 초반의 몸싸움이 여의치 않자 두터움에다 몸을 맡겼다. 그 두터움은 종반으로 갈수록 빛을 발휘해 실리면에서 균형이 잡혔다.
흑2, 4는 계속된 두터움을 이용한 점수 챙기기. 여기서 이창호의 백7을 보라. 훤하게 뚫려 있는 신작로를 놔두고 제자리걸음을 한 듯한 이 한수야말로 침착함의 극치다. 흔히 말하는 ‘계산서’가 나온 건지, 그렇지 않으면….
참고도1 (빅삶)
△는 이른바 ‘이창호의 수’. 이 수에 의해 중앙 백대마는 털끝만큼의 불안감도 없다.
가령 흑1부터 총부리를 겨누어 오더라도 이하 백6까지 빅. 빅은 물론 삶이다. 완생인 말은 힘을 지닌다. 이창호는 이런 점을 중시한다.
장면2 (때가 아니다)
좌상 흑1은 몇집짜리나 될까? 더욱이 백말의 사활과도 관계돼 있다. 무지하게 구미가 당기는 수. 이런 곳을 상대에게 거꾸로 당하면 피가 거꾸로 솟을 것이다.
그러나 적기(適期)가 아니었다. 좌상 대마를 방치한 채 백2에서 4가 △로 웅크릴 때부터 제조하기 시작했던 이창호의 핵폭탄. 흑대마의 호흡이 가빠졌다.
참고도2 (흑이 나아갈 길)
졌으면 패착의 오명을 뒤집어쓸 뻔한 <장면2>의 흑1로는 본도처럼 끝내기하는 것이 올바른 처신. 우하귀를 팽창시키는 직접적인 수익 외에 왼쪽 흑대마에 대한 간접적인 보강도 겸한다.
이렇게 진행시켰더라면 흑이 쉽게 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게 국후 검토에서 밝혀졌다.
장면3 (화를 자초한 패싸움)
난마처럼 얽힌 국면은 이창호가 공격하고 최철한이 타개하는 긴박한 흐름. 평소 서로의 기풍이 뒤바뀐 양상이다.
드디어 문제의 장면 출현! 백1로 눈을 빼앗은 데까지는 괜찮았으나 흑2 때 곧장 패를 다투자고 덤빈 것이 다 된 밥에 재를 뿌리고 말았다. 왜일까?
실전진행 (팻감 부족)
실전진행을 보면 백의 잘못이 확연히 드러난다. 백1부터는 이제 와서 돌이킬 수 없는 패싸움. 그런데 문제는 백에게 팻감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총알’이 모자라는 패싸움은 파국을 부를 따름이다. 결국 흑16을 보자 이창호는 돌을 거두어 들였다.
참고도3 (넉넉한 백승)
백으로서는 1을 행사하고 나서 3으로 패를 유발시키는 것이 정밀한 수순. 또 하나 중요한 점은 흑10의 팻감에 불청하고 11로 해소할 것. 흑12로 살 때 13, 15로 이득을 취한 뒤 좌상귀를 손질했더라면 넉넉한 승리였다.
초읽기가 시야를 흐려뜨렸다고 하더라도 신산(神算)으로 불리는 이창호에게서 좀처럼 볼 수 없는 계산 착오였다. 어쨌든 4국을 최철한이 승리하며 관전자에게는 흥미만점의 시리즈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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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망심재
풍류가인
하히호
최석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