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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4국 종료 직후의 장면. 왼쪽의 최철한이 결과를 확인하고는 괴로워하고 있다. 최철한은 이 장면에서 5분 가량 말없이 반면을 응시하다가 자리를 떴다. |
티브로드가 리그 초반을 질주하고 있다. 벌써 3연승째다. 앞의 선수가 지면 뒤의 선수가 더욱 힘을 낸다. 본리거, 락스타리거 구분 없이 서로를 믿고 혼연일체가 되어 싸운다. 위 아래로 구멍 하나 없는 것이 마치 전성 시절의 레기온(Legion.로마 군대 조직)을 보는듯 하다.
가랑비가 이틀째 대지를 적시던 10일 금요일, 홍익동 바둑TV에서 벌어진 2013KB국민은행 바둑리그 3라운드 1경기 둘째날 대국에서 티브로드가 전날 2대0의 여세를 몰아 SK에너지를 4대1로 완파하고 3연승을 달렸다.
티브로드는 1,2국을 이겼지만, 승부처인 3국에서 김세동이 '리틀 이창호' 변상일에게 패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하지만 이어 벌어진 4국에서 락스타리거 김현찬이 상대 1지명 최철한을 꺾으며 SK에너지의 추격을 보란듯이 따돌렸다.
마지막 5국 역시 티브로드 이지현의 승리. 이로써 티브로드는 3연승 행진을 이어갔고, SK에너지는 1승2패를 기록하며 선두 경쟁에서 한걸음 밀려났다.
10일 저녁 10시 반 티브로드의 승리가 확정된 직후, 이상훈 감독에게 "김현찬이 대박이네." 했더니 "사실 최철한을 겨냥해 점찍어두었던 선수입니다." 라는 답이 나온다. "김현찬은 전에 김지석. 이영구를 꺾었을 정도로 힘바둑에 강한 면모를 보이고 있었거든요. 최철한이 요즘 장고대국으로 출전하니 한번 붙여보자 마음먹었죠."
이런 전략이 그대로 먹혀들었다. 티브로드는 류수항에 이어 김현찬 같은 락스타 선수들을 적재적소에 활용함으로써 바뀐 규정의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감독의 뛰어난 용인술(用人術)과 그것을 믿고 최선을 다하는 선수들, 그리고 기대 이상의 운까지 3박자가 척척 맞으니 어찌 승리가 뒤따라오지 않으랴.
■ 제1국: 조한승, 마침내 첫 승!
"나만 잘하면 될 것 같아."
티브로드의 1지명 조한승은 최근 이런 말을 자주했다고 한다. 본인은 2패를 했는데 팀은 선두를 달리고 있다.처음엔 민망함에 고개를 들기 어려웠으나 가만 보니 자신의 팀이 진짜 강팀이었다. 비단 KB리그 뿐 아니라 올들어 반타작도 못하는 부진을 겪고 있지만(2013년 5승 7패) 이제부터 잘해보자는 각오를 충분히 다졌을 법 하다.
1국은 초반부터 조한승의 적극적인 전략이 눈에 띄었다. 일찌감치 하변에 침입해 상대의 저자세를 유도하더니 이어 절묘한 수순으로 흑진 파괴. 그런 다음 선수를 뽑아 중앙을 끊음으로써 우변에 대가를 마련했다. 완급(緩急)이 조절이 뛰어났고, 유리한 상황에서 알기 쉽게 마무리하는 모습도 일품이었다.
직전 경기에서 넷마블을 꺾는데 수훈을 세운 이태현이었지만 이렇게 강한 조한승 앞에선 어쩔 수가 없었다(184수 백 불계승). 장고대국에서 거듭 패배를 당했던 조한승이 본연의 속기대국으로 돌아와 기분좋은 첫승을 올리는 순간이었다.
▲ 티브로드의 1지명 조한승(31).
■ 제2국: 안국현은 '천하장사'
"아니, 안국현 선수가 이렇게 천하장사였나요?"
해설자인 목진석도 놀란 튼튼한 심장과 완력의 승리. 평소 전투를 꺼려하고 장기전에만 능한 줄 알았던 안국현의 새로운 변신을 확인시켜준 인상적인 한 판이었다.
SK에너지의 락스타리거 김형우(25)는 현재 23승 5패(승률 82%)로 다승 선두를 질주하면서 프로가 된 후 최고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KB리그만 해도 본리그와 락스타리그에서 4전 전승 중. 하지만 상대인 안국현(21) 또한 리그 2승 포함 12승 4패(승률 75%)로 만만찮은 상승세여서 과연 이 판을 누가 가져갈지 모두의 관심이 집중되었다.
하지만 바둑은 예상외로 일찌감치 안국현의 우세가 두드러졌다. 초반 두 사람의 배짱이 정면으로 충돌한 하변 전투에서 안국현은 중앙 백의 요석을 잡는 큰 전과를 올린 다음, 계속해서 힘으로 김형우를 밀어붙이며 승세를 확립해 나갔다.
후반 불리해진 김형우는 극단적으로 집을 챙긴 다음 흑진 속에서 수를 내는 마지막 승부를 걸어봤지만 이 역시 안국현의 정확한 대응에 걸려 허사였다(171수 흑 불계승).
▲ 제2국에서 승리한 안국현. 최근 거친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스타일로 변하고 있다. KB리그 선수 가운데 최초로 3승 고지를 밟았다.
■ 제4국: 저격수 '김현찬'
저녁 9시경 이지현-박정상의 마지막 5국이 시작되자 양팀 검토실의 모든 시선이 이 판에 쏠렸다. 이 무렵 제4국 최철한-김현찬의 장고대국이 종국을 향해가고 있었지만 최철한이 약간 유리하다는 의견들이어서 이 판에 대한 검토는 사실상 중단된 상태였다. 사실은 눈터지는 계가 바둑의 형상이었지만 으례 최철한이 이길 걸로 보고 다들 신경을 안쓰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마지막 5국의 양상이 희한했다. 이 판은 시작한지 얼마 안돼 박정상이 대마의 사활을 착각해 죽이는 바람에 일찌감치 이지현의 승리가 굳어진 상태. 하지만 이후 이지현이 계속 부자몸조심으로 일관하면서 역전까지 허용하는 것 아니냐는 긴박한 상황이 연출되고 있었던 것이다.
승리를 예상했던 티브로드 이상훈 감독의 얼굴엔 긴장하는 빛이 역력했다. 한데 이 때 뜻하지 않은 낭보가 티브로드의 모든 걱정과 근심을 날려버린다. 신경도 안썼던 장고대국에서 김현찬이 311수까지 가는 집요한 추격 끝에 1집반차로 최철한을 물리친 것이다!
■ 주말 '킬러들의 대결' 승자는?
주말에는 3라운드 2경기 이세돌의 신안천일염(2승) 대 박정환의 정관장(1승1패)의 대결이 펼쳐진다. 첫날은 ①강유택-홍성지 ②박대영(락)-안성준이, 둘째날엔 ③김정현-박정환 ④온소진-박승화(장고) ⑤이세돌-한웅규의 대결이 차례로 벌어진다.
일단 양팀의 주장인 이세돌-박정환의 맞대결은 없다. 하지만 양팀 다 1지명을 꺾을 비장의 킬러들을 배치해 놓았다는 점이 재밌다.
박정환을 상대하는 김정현, 이세돌을 상대하는 한웅규가 그들이다. 이들은 요즘 컨디션이 좋은데다 상대의 장단점을 속속들이 알고 있는 '선수'들이어서 천하의 이세돌, 박정환이라 할지라도 꽤 땀을 흘려야할 것으로 보인다. 다른 세판의 전력은 거의 막상막하여서 어느 팀의 킬러가 성공하느냐에 따라 승패가 갈릴 공산이 크다.
▲ 제3국에서 SK에너지의 2지명 변상일(16)이 티브로드의 김세동(24)에게 물샐틈 없는 단단한 승리를 거두며 추격의 고삐를 당겼다. 그동안 온소진, 이창호에게 패배해 의기소침했던 변상일의 자신감 회복은 SK에너지로선 큰 수확이다.
▲ 5국 이지현-박정상전. 이지현이 일찌감치 질 수 없는 형세를 구축해 놓고 크게 흔들렸으나 후반들어 다시 냉정을 찾으면서 박정상의 추격을 따돌렸다(174수 백 불계승. 티브로드 4-1 승리).
▲ '이거 혹시 잘못되는거 아냐?' 제5국에서 이지현이 흔들리는 기색을 보이자 긴장의 빛이 역력한 티브로드 검토실(왼쪽부터 김세동 안국현 김혜민(락) 이상훈 감독).
[사진/기사 제공 ㅣ KB바둑리그 운영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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