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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응씨배 우승컵에 새로 이름을 새긴 탕웨이싱. |
바둑을 즐기는 자
승부를 즐기는 자
인생을 즐기는 자
바둑이 매력적인 이유는 인간의 지력 또는 무지막지한 알파고의 계산력과 알고리즘으로도 완벽하게 읽을 수 없는 미지의 영역이 있어서다. 그런 영역에 들어서면 '승부를 즐기는 자'가 훨씬 유리하다. 그것은 절벽에 몰린 위기감을 짜릿함으로 즐기는 것과 부담감으로 느끼는 차이다.
결승 최종국에서 탕웨이싱은 시간 벌점 2점을 먼저 받았다. 새롭게 받은 시간은 20분뿐인데 장고를 마다치 않는 탕웨이싱을 보고 중국 취재진은 "정말 강심장이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시간 벌점을 더 받으면 자칫 미세해질 수 있는 상황에서 탕웨이싱은 아주 쉽게 냉정함을 되찾는 모습이었다. 쇠 가슴인가 강철 심장인가? 탕웨이싱은 '승부를 즐기는 자'다.
강자가 이기는 것이 아니라 이긴 자가 강하다. 흔들리지 않는 승부호흡과 부담감을 떨쳐버리는 능력 또한 실력이다. 자나 깨나 머리에 사활을 이고, 공식대국을 두고도 부족해 밤마다 인터넷 세계에서 상대를 찾아 헤매는 '독고구검(獨孤九劍) 박정환은 '바둑을 즐기는 자'다.
▲ 탕웨이싱은 최종국에서 '백번필승' 흐름을 뒤집었다. 실력도 훌륭했지만, 상대의 빈틈을 날카롭게 찌르는 특유의 승부기질을 잘 보여준 명국이었다.
탕웨이싱이 이겼고, 박정환은 패했다. 하지만 결국 자신의 길을 믿고 '인생을 즐기는 자'가 최후의 승자다. 승부를 즐기는 자나 바둑을 즐기는 자나 나중엔 모두 최후의 승자가 되길 바란다.
중요한 승부에서 지면 대국자가 가장 아프겠지만, 바라보며 응원하던 사람의 마음도 아프다. 박정환 본인에게 응씨배가 큰 승부였지만, 이 또한 지나가면 큰 인생에선 아주 작은 추억 한 부분이다. 박정환에겐 아직 즐길 '바둑'도 '승부'도 많이 남아 있다. 또한 평소 박정환이 두는 완벽한 바둑을 보며 행복하게 나름의 인생을 즐기는 많은 이들이 있음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 4년 만에 다시 도전한 응씨배 결승. 박정환 9단은 아쉽게 준우승에 머물렀다.
제8회 응씨배가 끝났다. 전기 대회 판팅위에 이어 우승컵과 상금 40만 달러는 중국기사 탕웨이싱이 가져갔다. 커제에 이어 중국에서 배출한 새로운 '90후 세대 세계대회 2관 돌파' 기사다.
결승 5국에서 탕웨이싱이 위기에 몰릴 때마다 검토를 주도하던 위빈 단장은 얼굴을 찌푸리며 머리를 감쌌다. 종반 박정환이 불리한 형세에서 탕웨이싱이 끝내기 수순을 착오해 형세가 바짝 좁혀졌을 땐 유창혁 단장의 얼굴이 활짝 폈다.
승부처마다 유 단장은 벌떡 일어나 컴퓨터 앞으로 향하며 "대국하는 것보다 지켜보는 게 더 힘들다."라고 푸념했다. 16년 전 LG배 결승무대에서 우승을 다투던 세기의 승부사가 단장으로 만나 후배들의 착점 하나하나에 가슴을 졸였고, 박정환 덕분에 유 단장도 위빈에게 '의문의 1패'를 당했다. 유 단장님도 4년 후에 꼭 한국 선수와 다시 와서 한을 푸시길 바란다.
▲ 시상식에서 잉밍하오 회장이 주먹을 쥔 오른손을 번쩍 들어 탕웨이싱의 승리를 축하했다.
개인적으론 이번 박정환-탕웨이싱의 응씨배 결승 5번기가 이세돌-알파고 대결보다 훨씬 흥미진진했다. 박정환 같은 높은 수준의 고수도 큰 판돈을 놓고(물론 40만 달러보다는 지난 응씨배의 한을 풀고자 하는 부담감이 더 컸을 것이다)는 흔들린다는 사실이 얼마나 재미있는가? 악동 이미지 탕웨이싱이 두둑한 배짱으로 자신보다 고수를 압도하며 이기는 솜씨는 얼마나 놀라운가?
철저한 계산으로 안전운행하는 알파고 바둑보다 떡수를 두고 착각을 하더라도 다시 극복해가는 인간의 바둑이 더 좋다. 이기면 이기는 대로 지면 지는 대로 그 느낌을 가슴 속 깊이 공감할 수 있어서다. 눈 앞이 캄캄해 포기하고 싶어도 본능을 꺾고, 인내하며 다음 기회를 기다리는 불굴의 의지에 우리는 감동한다.
나는 일주일 동안 반상에서 이뤄진 5부작 드라마 3, 4, 5편을 봤다. 결말이 슬프기에 더 기억에 남는 명작도 있다. 언젠가 먼 미래에는 박정환이 "그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열 받죠. 탕웨이싱 미워요."라는 조치훈식 농담을 할 날도 기대한다.
기우(棋友)들에게 묻는다. 자신이 둔 바둑 중에서 가장 아팠던 패배는 언제였나? 잠시 그 때를 회상하면서 오늘은 박정환을 위로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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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종국 계가를 지켜보는 박정환. 얼마나 아쉬웠을까? 4년 만에 찾아온 기회였고, 3국을 이겼을 때는 대부분 바둑 관계자들은 박정환의 우승을 의심하지 않았다.
▲ 응씨배 최종국 종국장면 끝내기에서 차이가 더 벌어져 결과는 흑번 탕웨이싱의 5점승이었다.
▲ 저녁에 바로 시상식이 있어 복기는 지난 3, 4국에 비해 아주 짧았다.
▲ 대국자들은 에워싼 취재진들. 중국은 창하오, 판팅위에 이어 세 번째 응씨배 우승자가 나왔다.
▲ 올해도 우승자는 중국기사다. 왕루난 중국위기협회 주석이 옆에서 활짝 웃었다. 4년 후 상영하는 대하드라마 응씨 시즌9에선 해피엔딩도 살짝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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