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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에 와 금강을 보지 못하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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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9일.
마흔 여덟 번 째 국수전의 도전기 세 번 째 판이 북측(그곳에선 모두들 이렇게 부르고 있었다) 땅 금강산에서 열렸다.
최철한 9단이 도전자 이창호 9단에게 이겨 3-0으로 국수 2연패에 성공했다.
여기까진 누구나 다 아는 이야기.
이제 모르는 얘기 하나를 하기로 하자.
이것은 최철한의 이야기도, 이창호의 이야기도 아니다.
승부의 이야기도 아니다.
아니, 이것은 승부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그러고 보면 그 세계도, 반상 19로와 다를 바 없을지 모르므로.
이번 금강산 국수전에는 대국자와 스태프 외에도 프로기사, 기자단, 일반 관광객 등을 통틀어 정확히 156명이 함께 했다. 바둑도 보고, 관광도 하고.
금강산도 식후경이 아닌 금강산도 기후경(棋後景)이다.
운 좋게 이 일정에 동행할 수 있었지만 개인적으로 그리 즐거운 기억은 많지 않다. 무엇보다 북측 관계자들의 금제가 너무 심해 눈 덮인 금강산의 요염한 자태가 눈에 쏙 들어올 여유가 없었다.
이거 하지 마라, 저거 하지 마라, 이건 해도 되는데 가급적 하지 마라, 요거 하면 벌금이다, 조거는 했다 하면 집에 못 가는 줄 알아라 …
소심한 양실짱은 내내 주눅이 들어 할 일도 제대로 못 하고 왔다. 어쩐지 화장실에 볼 일 보러 갔다가 신문 한 장만 다 읽고 나온 기분.
가장 고심해야 했던 이들은 뭐니 뭐니 해도 기자들이다.
한 마디로 통신 시설 제로 지대.
인터넷은 고사하고 전화, 팩스도 없다. 당장 인터넷 생중계를 해야 할 사이버오로 기자들이 사색을 하고 있다.
그나마 월간지 기자들은 느긋한 얼굴이다. 어차피 가지고 돌아가 쓰면 그만. 유유히 카메라를 메고 휘파람을 불며 구룡연에 올랐다.
국수전의 주최사인 동아일보 S기자도 속이 편해 보였다. 당일 보도를 포기한 덕이다.
현지 사정을 자알 ~ 알고 있는 신문사 데스크 양반들의 배려로 이튿날 남측에 넘어와 고성에서 기사를 보내면 그만이란다.
문제는 인터넷 기자들이다. 이 사람들. 당일, 아니 실시간으로 기사를 보내지 못하면 안 되는 것이다.
일단 ‘실시간’은 사석으로 아낌없이 버렸다. 이건 대라신선이 와도 안 된다. 쾌속 배달의 대왕이신 ‘번개’ 아저씨가 와도 안 된다. 그렇다면 승부는 ‘당일’이다.
하지만 어이 한단 말인가. 전화도 팩스도 없는 고립무원의 지대에서 무슨 수로 기사와 사진을 송고할 수 있다는 얘기인가.
결국 북측의 남측 관계자(복잡하다)에게 사정 사정하여 간신히 팩스 한 대를 놓았다.
그것도 잠시 뿐이다. 아무나 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팩스 한 장이 곧바로 서울을 향해 날아오는 것이 아니라 중국을, 홍콩을, ○○ 등(들었는데 까먹었다)을 돌고 돌아 전송된다는 얘기. 당연히 팩스료건 통화료건 무지 비싸게 먹힌다.
팩스 한 장 보내려면, 팩스를 황금이 든 금고라도 되는 듯 소중히(?) 지키고 선 담당자에게 보내는 곳과 사유, 비용 계산 등을 일일이 적어 제출한 뒤에야 가능했다.
그나마 기자들에겐 별 소용이 안 됐다. 막상 대국이 종료되어 기사를 보내려 하니, 팩스가 사라진 것이다. 이곳은 워낙 팩스가 귀해서 지하 금고에라도 넣어두나 보다.
어쩔 수 없는 일. 모든 일행은 호텔 옆에 부속품처럼 붙어 있는 북측식당 금강원으로 밥을 먹기 위해 이동했다.
바글바글한 식당 안에 자리를 잡고 앉으니 여성 동무 하나가 쓰윽 나와 ‘주목해 주시라요’한다.
“오늘 요로분께서 드실 만찬에 대해 안내해 드리가씀네다. 우선 도루메기튀기(도루묵튀김)를드신 뒤 해금강에서 키운 흑돼지 구이를 드시고 … (중약) … 시원한 냉면을 드시면 되시가씀네다.”
흠 … 놀라운 일이다. 북측은 식당들이 가격이 아닌 메뉴에 대한 카르텔이라도 결성하고 있는 듯 했다. 도루메기튀기는 사흘 내내 호텔에서도 먹었는데.
어쩌면 밑반찬 역시 이리 닮아 있단 말인가. 도라지무침과 이 근방에서 농사를 지었다는 야채등속들까지.
그런데.
허억! 이것은 또 웬 변고!
흑돼지를 굽기 시작하자 매연에 가까운 연기가 활활 솟는다. 석쇠 위의 고기는 순식간에 타 들어가고, 실내는 상대방의 얼굴이 잘 안 보일 정도로(절대 과장이 아니다) 연기로 가득 차버렸다. 나중에 들으니 식당 앞을 지나던 사람들이 불이 났나 싶었단다. 이 살인적인 연기는 식당 밖까지도 꾸역꾸역 번져 나갔던 것이다. 마치 끽연협회 회원들의 담뱃값 인상 궐기 대회장에 나와 있는 것 같다.
눈과 목에 고춧가루라도 뿌린 것 같은 통증이다. 돼지고기 한 점 맛보러 왔다가 연기만 실컷 흡입한 손님들이 컥컥대며 안내원을 찾았으나, 아무도 없다. 어인 일인가 눈을 부릅뜨고 살피니 세상에 이럴 수가.
종업원들은 멀찌감치 도망가 기둥 뒤에 몸을 숨긴 채 이쪽을 두려운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이 아닌가 ㅇ.ㅇ
어쩐지 모두들 해금강 흑돼지 운운 하고는 후닥닥 사라졌다 싶었더니.
평소 삼겹살 2인분은 간식으로 해치우는 양실짱도 흑돈 석 점 집어 먹고는 물러서고 말았다. 사람의 위장이 연기로 채워질 수 있다는 것을 오늘에사 깨달았다.
포연 자욱한 전장에서 냉면을 먹는 기분은 또한 어떠 하였던가. 모두들 전투적인 자세로 냉면을 먹었다.
그런데 빈 자리가 보인다. 어? 누구였지? 아까는 분명히 만석이었는데?
냉면 그릇이 바닥을 보일 즈음 누군가 슬그머니 자리에 앉는다. 낯 익은 기자 한 사람.
그러고 보니 꽤 오래도록 자리를 비웠던 것 같다.
“어디 다녀온 거요?”
“으응 … 그냥.”
배를 쓸어 보인다. 장이 안 좋다더니 화장실에라도 갔었겠지.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일단 이런 험한 곳에선, 나부터 살고 볼 일이다.
그로부터 1시간 뒤.
나와 그는 호텔방에서 조우했다. 낮에 사 두었던 북한산 황구렁이 술(50도 짜리다)과 캔 맥주 몇 개, 그리고 간단한 안주 몇몇.
술이 몇 순배 돌자, 그제서야 그가 털어놓았다.
그는 우리가 살인적인 독연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밤길을 달렸다고 했다. 무슨 소리일까? 갑자기 안 하던 야간 마라톤을?
오후 내내 남측으로 기사를 송고할 일만을 생각하던 그에게 번개처럼 묘수가 떠올랐단다.
금강산 어귀에 있는 온정각.
현대측이 지어 놓은, 금강산 등반을 위한 베이스캠프와도 같은 곳이다. 간단한 쇼핑 시설과 상점, 식당 등이 있는 곳. 그 동네에서는 제일 번화한 장소라 하여 ‘금강산의 명동’이라 부른다.
호텔에서 온정각까지는 도보로 약 30분.
그는 디스켓과 디지털 카메라를 둘러맨 채 온정각까지 숨이 턱에 차 오르도록 달렸다는 얘기였다. 온정각은 현대의 직원들 숙소가 있고, 그곳에 가면 팩스 한 대는 있으리라는 믿음 아래, 그는 달리고 또 달렸단다.
“그래서 … 팩스가 있었소?”
그가 목젖이 울리도록 맥주 한 모금을 마셨다. 그리고는 씨익 ~
“다른 기자들한텐 비밀이야.”
남들 다 가는 구룡연도, 만물상도(여긴 눈이 와서 아무도 못 갔지만), 기예공연도, 그 좋아한다는 온천욕도 포기한 그는 일정 내내 휘파람을 불고 있었다. 다른 기자들이 동동 발을 구를 때도 그는 표정 관리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엄마 몰래 사탕 봉지를 감추어 둔 아이처럼.
“저런, 나도 못 보내고 있는데 … ”
돌아오는 버스 안.
그는 피로해 보였지만, 반짝이는 눈을 하며 멋들어진 어록 하나를 남겼다.
금강에 와
금강을 보지 못하였네라
(아우! 얄미워 ^___^)
양실짱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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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단한 직업의식이네여^^ 구하라, 그러면 얻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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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ch428 |
｜ 2005-03-17 오후 6:34: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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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이 눈물은 흑돼지 굽는 연기 때문인가? 아니면 기자의 직업의식에 감동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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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