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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백 대결로 보는 돌의 생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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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바둑에 대해 문득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다.얼마전 필자는 도쿄의 한 병원에서 오청원 선생을 뵈었다.미수(米壽)에 다다른 선생은 백내장 수술을 위해 입원하고 계셨다.저녁 시간,찾아뵈니 먼저 휴게실에 나와 계신다.병 문안도 그렇지만,바둑인으로서 선생을 한 번 뵙는 것은 누구나 바라는 바.
선생은 지팡이에 의지한 채 바둑에 대한 정열을 감추지 않고 계셨다.말씀 중의 하나는 일본식 규칙과 중국식 규칙에 대한 것이었는데 중국식 규칙이 바둑의 본질에 좀더 가깝다고 강조하셨다.
선생의 말씀을 듣는 순간 머리를 스쳐가는 것이 하나 있었다.규칙의 차이는 관념의 힘을 흔들어,결과에 있어 현격한 차이를 가져다 준다.필자는 ‘바둑의 발견’이라는 졸저에서 그 문제를 따져 보았는데,일본식 규칙이 돌의 효율을 발견하는데 큰 기여를 했다고 논했다.(승부를 결정하는 데 있어 일본식은 반상에 남아 있는 집으로서,중국식은 반상에 남아있는 돌의 개수로서 결정한다.반상에 내집이 많으면 그곳에 내돌을 메울 수 있으니까,대부분의 승부는 일본식과 중국식에 별 차이가 없다.우리는 일본식이다.)
그러나 과연 그럴까?기보를 보자. 중국 송나라의 명수(名手) 유중보(劉仲甫)가 산에서 노파를 만나 피를 쏟으면서 두었다는,토혈(吐血)의 우선도(遇仙圖)이다.중반 흑의 절묘한 묘수가 널리 알려진 바둑인데,초반은 어떨까? 좌하귀의 흐름에 대해서 독자들은 어떻게 생각하시는지?
오늘의 관념하고는 동떨어진 것 같다.어찌 이렇게까지 투쟁적일까!
오늘 필자는 흔들린다.돌이란 생명이 있구나.우리의 창조력은,생동하는 생명력에 있구나.돌의 생명인 흑백 의 마찰을 빼놓고,무엇을 관념할 수 있겠는가.효율 이전에,생명이 먼저 아닌가? 사회에서도 그렇지만,반상에서도 우리는 생명을 간과하고 효율만을 추구하여 많은 것을 잃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00.4.26 / 문용직 프로四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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