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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꽃처럼 산뜻한 묘수넘은 귀수(鬼手)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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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은 만물이 소생하는 시간.우리 바둑 두는 사람들은,귀수(鬼手) 하나로 봄을 맞이하자.얼어붙은 땅에서 생명이 소생하듯 죽어있는 돌에서 삶을 찾으면 되지 않겠는가?
다음 기보는 지난 98년 일본 명인전 리그에서 임해봉 9단(백)과 요다 9단이 초읽기에 몰린 장면.55세의 임해봉은 31살의 요다를 맞이하여 분투하고 있었다.인생으로 본다면 봄이 지나간 임해봉.한창의 봄을 맞이한 요다.요다는 일본 바둑계에서 세대교체의 기수로 주목받는 화려한 청춘.
그러나 임해봉은 만물의 소생 법칙을 마치 알고나 있다는 듯이 묘수를 넘어선 귀수(鬼手) 하나로 봄은 언제나 숨쉬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백1.죽어있는 돌을 하나 움직이는 것이 기막힌 착점.다음 흑A는 백B가 묘수.C와 D를 맞본다.흑C면 백D,흑E,백F.초읽기에 몰린 상태에서 백1의 묘수를 찾아낸 임해봉은 과연 바둑의 명인.
그렇지만 어떨까.이런 묘수 정도로 짧디 짧은 봄밤을 이겨낼 수 있을까.한편으로 봄은 회의의 계절이기 때문이다.우울한 심정을 안고 사는 사람들에게 봄은 마음을 더욱 쓸쓸하게 만든다.
그렇다.반상의 소생력 하나로 봄밤을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도 애절하건만,우리가 스스로의 의지를 찾지 못하고서는 짧은 봄밤은 그저 슬픈 추억에 머물 것도 사실일 것이다.아마도 바둑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을 지 모르겠다.그냥 그런 것이 바둑이라고 해도 할 말이 없고,무궁한 인생의 철리(哲理)가 반상에 담겨 있다고 주장해도 덧붙일 말이 없다.
(2000.4.5 / 문용직 프로四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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