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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줄기 소낙비 같은 맥을 만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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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말 청초 혼란기의 문인 김성탄(金聖嘆)은 인생을 평탄하게 보내지는 못했지만 삶의 여유를 꿰뚫고 살다간 사람이었다. 그가 볼 때 인생에는 서른 가지 유쾌한 한 때가 있었다. 폭우를 만나 길이 묶인 두 나그네가 깊은 산 절간에 보름동안 갇혀있으면서 무료해서 만든 거라고 하던가.
그 하나는 다음과 같다. “비는 아니 오고 무덥기 짝이 없는 여름날의 한낮. 그저 나무 그늘 밑에서 숨을 허덕이는 판에 저 멀리 들판에서 먹구름 밀려오는 것이 눈에 뜨인다. 그래,땀을 비 오듯 흘리면서 열심히 뛰어간다. 폭우를 만날 때까지. 자,그리곤 비를 맞으면서 유유자적 되돌아온다. 이 얼마나 유쾌한 일이냐!”
필자는 프로. 바둑을 업으로 삼는 사람이기에 바둑이 싫어질 때가 없지 않다. 그토록 재미있는 게 싫다고? 사실이다. 바둑이 좋아서 프로가 되었지만 정말 따분하고 싫을 때가 적지 않다.
무더위가 하늘을 찌른 얼마 전. 직업상 바둑을 검토해야 하는 고역을 치르던 날. 지겹다고 투덜거리면서 인터넷에서 기보를 검색하던 중. 순간 “아! 이 경치,이 소리,듣고 싶구나!” 끓어오르는 바둑에의 본능적인 충동.
흑5! 이 얼마나 시원한 전환인가. A에 끊을 듯하더니 딴 세계로 안목을 훌쩍 넘기는 순간. 무더운 여름 한 줄기 시원한 소낙비를 머금은 먹구름이 하늘을 가린다. 좌중앙부터 우하귀까지가 아득히 먹장구름에 뒤덮이지 않는가. 이럴 때 한 판 두고 싶은 충동은 바로 저 멀리 들판으로 뛰어나가고 싶은 심정. 수주(樹洲) 변영로가 성균관 뒷산에서 그랬다던가. 맑은 날 친구 공초(空超),횡보(橫步)와 더불어 소주 잘 먹으며 노는 판에 구름 한 점 모이는가 싶더니 곧 하늘을 뒤덮고 비가 쏟아졌을 때 맹자의 ‘유연작운 패연하우(油然作雲 沛然下雨)를 떠올렸다던가. 소(牛)를 탔다던가.
기보를 다시 보자. 흑5가 예리한 맥점이다. 속기에서 흑5를 순간적으로 찾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유창혁 9단의 내면에서도 시원한 빗줄기를 때리고 싶은 충동이 강하게 일어났던 걸까? 구름을 만들고 싶었던 걸까?
더운 여름도 이제 한 달 남지 않았다. 더울 때는 더워야 한다지만 그래도 빗줄기 한 번 더 맞기를….
(2003-08-07 문용직 프로5단 사이버오로 자문위원)
○... 관련기보는 2003 KAT배 통합결승 주장전. 유창혁 9단과 박영훈 4단이 만났다. 유창혁 9단은 주장전에서 승리했지만 소속인 서울 北팀은 박영훈의 서울南팀에게 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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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ZERO6 |
｜ 2003-08-13 오전 10:58: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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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유창혁 사범의 맥점도 시원하지만 문박사의 명쾌한 표현은 더욱 시원하군요. 어느새 여름이 다 지나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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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끝에 쏟아지는 왕죽과 같은 햇살! 구름이 구름을 불러 만든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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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비 끝에 쏟아지는 왕죽과 같은 햇살! 구름이 구름을 불러 만든 무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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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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