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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점 접바둑에서의 사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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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의 취미 하나는 산책. 저녁 나절 동네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재미는 중학교 시절부터 얻은 버릇. 술이 깬 늦은 아침, 쏟아지는 햇살을 한 몸에 맞으며 한 세상 다 살다온 듯한 느낌 갖는 것도 기막힌 맛이다.
바둑과 관련하여 즐겨 걷는 산책로는 최규병 사범의 연구실과 한국기원 기사실. 그 어딘가의 산책에서다. 만난 건 다음 기보에서 보듯 묘한 바둑. 홍장식 3단(흑)이 18점을 깔고 박영훈 3단과 두고 있었던가.
흑이 백을 잡으러 가는 게임이다. 돌이 하나라도 살면 백이 이기지만,실패하면 흑이 이기는 그런 규칙의 바둑. 살 수 있을까? 젊은 기사들의 중론은 흑 돌이 요처를 점거하여 백이 살기 어렵다는 것이다. 직관적으로도 흑 돌 18개는 백의 활로를 남김 없이 차단하는 바로 그 요소에 자리잡고 있다.
백은 정말 살 수 없을까? 백은 변화를 찾아 헤매지만 흑은 그 의도 자체를 억지(抑止)한다. 우상과 좌상의 흑▲빈삼각은 대표적인 대처 요령. 우하귀 흑2로 두는 건 어떨까. 그건 백3의 붙임으로 어렵게 된다. 백의 탄력성이 아주 높은 모양이기 때문에 백의 삶을 거의 확신할 수 있다.
좌하귀는 우하귀에서 연속되는 수순으로 하나의 가상도이다. 흑6 이하 백9까지를 예상할 때 그 다음 흑의 응수가 어렵다. 백을 잡는 건 요원해졌다. 백A,흑B,백C가 있기에 흑이 이를 피하여 B로 따내면 백a,흑b,백c의 이단젖힘으로 탄력이 넘친다 - 흑d 반발엔 백A 되돌림이 있다! 그렇다고 백9에 대해 흑이 b로 이으면 백A,흑B,백c의 코붙임 맥점으로 흑이 무너진다.
요약하면 우상과 좌상의 흑▲가 무서운 응수로, 차갑고도 메마른 형상이 백의 숨소리조차 앗아가 사위는 적막하기만 하다.
그런데 프로들은 왜 이런 바둑을 두는 걸까? 단순히 시간을 메우기 위해서? 아니다. 실험정신이 배경을 이룬다. 물리학자가 물질의 궁극을 파헤쳐 우주를 설명하고 싶은 것처럼,프로에게도 더 이상 환원할 수 없는 그 어떤 모양의 극한을 찾고 싶은 욕구가 있다. 어떻게 찾는가? 끊임없는 가설의 제기와 실험을 통해서다. 오늘 18점 접바둑도 그렇게 이해할 수 있다.
자,그러나 프로에게 묻자. 흑이 17점을 깔면 백은 살아갈 수 있을까?
( 문용직 프로4단 2003.0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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