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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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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10)
2013-11-29 조회 8690    프린트스크랩
▲ 영화 '소녀'(감독 최진성)의 티저포스터.

          

 

낮부터 내리던 비는 밤까지 끊임없이 쏟아 붓고 있었다. 호철은 38구경 리볼버를 조심스럽게 꺼내들었다. 강력반에 배치되면서 지급받은권총이다. 아직까지 한번도 사용한 적이 없지만 어쩌면 오늘은 이놈을 사용하게 될지도 모른다.

“여기가 확실해?

지현은 불빛 하나 없는 어둠속에 흉측하게 서있는 공장을 바라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틀림없어.

민규가 당나귀 싸이트 IP주소를 알아냈다고 전화한 건 한시간 전이다. IP주소는 이 공장으로 돼 있었다. 신도시예정지에 들어서 있는 공장은 폐쇄된 지 이미 오래전이다. 주인이 버리고 간 공장은 마치 괴물 같은 모습으로비를 맞고 서있었다. 연쇄살인자와 아주 잘 어울리는 장소라고 호철은 생각했다.

공장 안은 버려진 기계와 쓰레기들로 한 걸음 옮기기가 힘들 정도였다.칠흑 같은 어둠속에서 볼펜 크기의 플래시가 비추는 손바닥만한 불빛이 시야확보의 전부였다. 어둠속을조심스럽게 걷는 두 사람의 발걸음은 달팽이보다 느렸다. 호철은 후회했다. 아무리 급해도 지원을 받아서 왔어야했다. 두 사람이 갈라져서 수색한다면그나마 좋겠지만 아무래도 지현이 마음에 걸렸다. 그런 호철의 마음을 훔쳐보기라도 한 듯이 문득 지현이말한다.

“이래가지고는 날이 새도 힘들겠어. 갈라져.

호철이 지현을 바라보았다. 걱정이 가득한 표정이 어둠속에묻혀 있었다. 그런 호철의 마음을 아는지 지현이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이래봬도 강력반 최고의 형사라구. 난 오히려 자기가 더 걱정이야. 괜찮겠어? 혼자서.

“애가 어른 걱정하는 꼴이군.

호철의 말에 지현이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느낌상 놈은 일층에는 없어. 이층이나 지하실 같은 데가있을 거야.

지현은 말하면서 위를 올려보았다. 높은 천장에는 크레인이매달려 있었고 공장 벽면을 따라 난간이 어둠속에서 어슴프레 보였다.

“어딘가에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있을 거야. 난 이층으로올라갈 테니까 자긴 지하실을 찾아봐. 조심해. 혹시라도 위험한상황이면 아무 생각 말고 방아쇠를 당겨. 생포할 생각 말고. 총은쏴봤어?

“연습은 해봤지.

“이건 연습이 아니라 실제야. 실제상황. 안전핀 풀었어?

그제야 권총의 안전핀을 푸는 호철이다. 역시 베테랑은 뭐가달라도 다르다. 지현의 앞에서 애가 돼버린 호철이다.

“조심해. 알았지.

지현이 그윽하게 호철을 바라보고 몸을 돌렸다. 어둠속에서지현의 플래시 불빛이 멀리 사라지는 걸 본 호철은 비로서 발길을 옮겼다. 시선은 손바닥만한 플래시 불빛에고정돼 있었다. 들리는 건 아득하게 멀리서 들리는 빗소리뿐이다. 발걸음이한없이 느렸다. 마치 정지돼 버린 것 같았다. 문득 자신이왜 여기 있는지조차 알 수가 없었다. 호철은 플래시 불빛에서 어둠속으로 시선을 옮겼다. 쓰레기더미와 기계들이 괴물 같은 모습으로 그림자를 드리고 있었다. -그래. 맞아. 연쇄살인자를 잡으러 왔지.민형사가 지하실을 찾으라고 했었다- 호철이 공황에 빠진 정신을 추스르는 순간!

“꺄아아아아악!

찢어지는 듯한 여자의 비명소리가 공장안의 적막을 깨트렸다. 지현이다! 호철은 본능적으로 소리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플래시 불빛도호철의 시선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층 난간 쪽이다. 플래시불빛이 이층 난간까지 다다르지 않아 자세히 보이지는 않지만 지현이 난간에 기대서 있고 그 앞에 누군가가 있었다.연쇄살인자! 호철은 난간 쪽으로 달렸다. 이상하게조금전까지 한치 앞도 보이지 않은 어둠이 훤하게 보였다. 이층으로 올라가는 철재 계단이 보였다. 한걸음에 계단을 오르는 호철이다.

“꼼짝 마!!

호철이 권총을 겨누며 소리쳤다. 살인자와 지현은 10미터 정도 앞에 보였다. 어둠속에서 두 사람은 마치 포옹이라도하듯 엉켜 있었다. 손바닥만한 플래시 불빛이 조금씩 상황을 설명했다.지현은 고개를 떨군 채 살인자의 어깨에 기대 있었다. 후드를 뒤집어 쓴 살인자의 얼굴은지현의 얼굴에 가려져 있었다. 놈의 손에는 칼이 쥐어져 있었다. 칼날은보이지 않았다. 이미 지현의 몸속에 박혀 있으므로. 호철의얼굴에 경련이 일었다. 눈에 눈물이 고였다. 눈물이 시야를가렸다. 그 순간 살인자가 지현의 머리를 잡아 천천히 들어올리며 고개를 돌렸다. 눈물 때문에 놈의 얼굴이 흐릿하게 보였다. 무표정한 새하얀 얼굴이었다. 호철은 어금니를 질끈 악물고 방아쇠를 당겼다.


 


 

때르르르르릉...

호철은 자명종 소리에 잠에서 깼다. 꿈이다.

꿈이라는 사실을 안 순간 가볍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민지현이눈앞에서 죽는 모습은 아무리 꿈이라고 해도 섬찟했다. 꿈은 생시처럼 선명했다. 혹시 범인을 예지해주는 선몽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아쉽게도범인의 얼굴은 정확히 보지 못했다. 범인이 고개를 돌렸을 때 눈물에 흐릿하게 보여진 이미지가 전부다. , , 입은 가물거리지만표정이 특이했다. 새하얀 얼굴에 마치 석고같이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러고보니 그 얼굴은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호철은 기억 속을 뒤졌다. 기억이 잡힐 듯 잡힐 듯하면서 잡히지 않는다.

-개꿈이겠지.

호철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켜고 느릿하게 침대에서 벗어났다. 모처럼만에 맛보는 느긋함이다.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민규의 전화는 일주일 넘게 꿩 꿔먹은 소식이었다. 연쇄살인범을 잡을 유일한 방안인 당나귀 IP조사가 지지부진해지자반장은 마치 선심이라도 쓰듯 호철에게 하루 휴무를 주었다. 얼마 만에 갖는 휴무인지 모른다. 아마 한달도 넘었을 것이다.

호철은 턴테이블에 LP디스크를 한 장 걸고 곰처럼 느릿하게시장기를 해결할 먹이를 찾았다. 모차르트의 음악을 들으며 풍요로운 조찬을 꿈꾸던 호철의 얼굴은 금방실망감으로 가득 찼다. 집안 어디에도 먹거리는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그 흔한 라면 하나 없었다.

결국 동네마트에서 아침거리를 구했다. 그래봐야 기껏 라면이다. 호철은 아침부터 부산스럽게 음식을 만들면서 모처럼 맞는 휴무를 보내고 싶지 않았다. 반바지 차림에 라면이 들은 비닐봉지를 들고 걸어가는 호철의 모습은 한가롭기 그지없는 동네 아저씨처럼 보였다. 그 한가로운 모습이 깨진 건 막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였다. 아파트입구에 소녀가 서 있었다. 이제 소녀만 보면 긴장부터 하게 되는 호철이다. 또 무슨 일인가. 설마 이 아침부터 바둑을 두자는 건 아니겠지. 모처럼 맞는 이 여유로움을 바둑두는 데 결코 뺏길 생각이 없다. 호철은단호히 거절하겠다고 명심하고 또 명심하면서 인사말을 건넨다.

 “오랜만이야.

“오랜만이어요.

“근데 여긴 웬일이야.

“집구경시켜 주세요.

이 애는 확실히 사람을 놀라게 하는 데는 기네스북에 올라도 부족하지 않을 것이다. 바둑이 아니라 집구경이다.

“우리 집 말이야?

소녀는 대답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호철은 가볍게 한숨을내쉬고 말을 이었다.

“지금은 좀 곤란해.

호철의 말에 소녀의 특기가 나온다. 소녀는 물끄러미 호철을바라보았다. 절대 자신의 고집을 꺾지 않겠다는 의지다. 하지만이번에는 호철도 만만치 않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은 안돼. 너무 이른 아침이야. 난 할일이 많아. 청소도 해야 하고 밥도 먹어야하고...꼭 우리집을 보고 싶다면 다음에 와.

“지금 보고 싶어요. 청소랑 밥은 내가 할 거여요.

“리애야, 사람한테는 예의란 게 있어. 남의 집에 찾아가기에는 너무 이른 시간이야. 이건 예의에 벗어나는행동이야. 다음에 초대할게. 약속해.

“같이 먹고 싶어요.

“같이? 아침을?

소녀는 대답대신 호철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언제나처럼무표정한 소녀의 얼굴에서 외로움을 읽는 호철이다. 혼자서 먹는 밥. 그것이얼마나 외로운지 호철은 충분히 알고 있다. 호철이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온 건 고등학교 때였다. 사람은 뭐니뭐니해도 서울로 가야한다는 부모님의 극성에 등을 떠밀려 서울의 고등학교에 입학한 호철은 그때부터혼자 자취생활을 해야만 했다. 호철은 학교 끝나는 것이 너무 싫었다.집에 가는 것이 두려웠다. 아무도 없는 썰렁한 방이 싫었다. 그 방에서 혼자 먹는 밥은 더더욱 싫었다. 밥을 먹다가 눈물을 흘린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다 아침이 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득달같이 학교로 달려가는 호철이었다. 겨우 저녁 한끼 먹는 것이 그토록 외로웠다. 그런데 하루 세끼 아무도없는 아파트에서 혼자 밥을 먹는 소녀라면 오죽하겠는가. 좀 전의 단호함이 짠한 마음에 덮혀버린다.

“기대는 하지 마. 라면뿐이니까.

또 다시 지고 마는 호철이다.


 


 

호철의 아파트로 들어선 소녀는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아파트구조는 같았지만 집안은 완전히 달랐다. 한쪽 벽면을 가득 매운 LP디스크와거실장 위에 놓여진 앰프와 턴테이블이 신기했다. CD플레이어와 MP3만보아왔던 소녀로서는 처음 보는 물건이다. 소녀가 앰프를 빤히 들여다보자 냄비에 물을 올리던 호철이 말한다.

“마크레빈슨이야.

“마크레빈슨.

“그 앰프 말이야. 마크레빈슨 제품이야. 턴테이블에 디스크를 올리면 앰프가 그것을 받아서 스피커로 보내는 거지. 턴테이블은데논이고 스피커는 뱅앤올룹스야. 맘 같아서는 진공관 앰프 아카펠라에 매킨토시 XR290 스피커를 걸고 싶지만 그랬다가는 이 아파트가 날라갈 것 같아서 참고 있지.

“아파트가 날라가요.

"이 좁아터진 아파트에서듣기에는 소리가 너무 크다는 거지."

소녀는 턴테이블의 플래터를 신기한 듯 손가락으로 빙글빙글 돌리고 나서 말을 이었다.

“청소할게요.

“놔 둬.

가스불을 켠 호철이 거실로 걸어오며 말을 이었다.

“뭐 듣고 싶은 노래 있어? 하긴 세대가 다르니까 리애가듣고 싶은 건 여기 없겠지만.

“무슨 노래를 좋아해요.

“나?

“가장 좋아하는 거요.

“여기 있는 건 다 좋아하지만 그래도 특별히 좋아하는 게 있다면...

호철은 디스크장을 손으로 훑으면서 말을 하다가 한장을 뽑았다. 허리가구부정한 노인이 나뭇짐을 지고 있는 그림이 그려진 자켓이었다. 호철이 디스크를 꺼내 턴테이블에 올리자스피커에서 맑고 투명한 기타 연주가 조용히 흘러나왔다. 잠시 기타 독주가 이어지더니 플루트가 기타와합류한다. 기타와 플루트의 하모니 속에 금속성의 차갑고 딱딱한 남자의 목소리가 나지막이 흘러나왔다.


 

There's a lady who's sure all that glitters is gold

And she's buying a stairway to heaven.

When she gets there she knows, if the stores are allclosed

With a word she can get what she came for.

Ooh, ooh, and she's buying a stairway to heaven.


 

호철이 끓는 물에 라면을 넣으며 말을 이었다.

“레드 제플린의 스테어웨이 투 헤븐이야.

“스테어웨이 투 헤븐.

“천국으로 가는 계단이란 뜻이지. 팝의 명곡으로 따지면아마 삼대 명곡에 들어갈 거야. 대단한 곡이지.

“천국으로 가는 계단.

소녀는 무표정하게 허공을 응시했다. 마치 그곳에 천국으로가는 계단이 있기라도 하는 듯이.

“리애는 좋아하는 게 뭐야? 취미 말이야.

“취미 많지 않아요.

“누구나 취미는 많지 않아. 나도 기껏해야 음악이 취미니까.

“그림을 좋아해요.

“그림 그리는 거?

“그림 보는 거요.

호철의 생각에 그림 보는 거도 취미인가 싶다. 어쨌든 취미라면취미다. 부글부글 끓는 라면을 휘저으며 호철이 물었다.

“어떤 그림?

“다빈치나 고흐, 램브란트, 루벤스, 샤갈, 드가, 크림튼 같은 거요.

소녀는 시선을 방문에 두면서 무심하게 대답했다.

“아...명화 말이군. 좋은취미야.

“방구경하고 싶어요.

“혼자 사는 남자 방구경할 게 뭐 있다고. 열어 봐.

호철의 대답에 방문을 여는 소녀다. 방안은 조그만 옷장에싱글 침대 하나가 전부였다. 소녀의 시선은 침대에 고정되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때 호철의 말이 귀에 들어왔다.

“명화 중에 뭘 제일 좋아하지?

“절규를 좋아해요.

“절규? 누가 그렸는데?

“뭉크가 그렸어요.

소녀의 시선은 여전히 침대에 꽂혀 있었다. 침대에 그 여자가보였다. 그날 저녁 호철과 같이 아파트로 들어간 여자다. 검은색정장을 입은 여자는 키도 크고 꽤 미인이었다. 여자는 실오라기 하나 입지 않은 채 침대에 누워 있었다. 요염한 모습이었다. 소녀는 여자가 누구인지 알고 있다.

“뭘 그렇게 보는 거야.

어느새 소녀의 등 뒤에 서있는 호철이 물었다. 소녀의 시선을따라 침대 쪽으로 시선을 옮기는 호철이다. 깨끗하게 이불이 정돈된 침대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라면 다됐어. 먹자.

호철의 말에 식탁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소녀다. 식탁에는라면 두 그릇이 떠 있었다. 김치도 없는 단출하기 그지없는 식탁이다.

“미안해. 김치도 없어서 말이야.

“맛있게 보여요.

“그래. 어서 먹어.

음미하듯이 잠시 김이 올라오는 라면을 바라보던 소녀가 한 젓가락을 입에 가져간다. 그것을 그윽하게 바라보는 호철이다.

“어때?

소녀가 라면 한입 먹기를 기다린 호철이 묻는다.

“맛있어요.

“그래. 내가 다른 건 몰라도 라면 하나는 잘 끓이거든. 이 솜씨가 일이년 만에 터득되는 게 아냐. 아마 이십년은 됐을 거야.

자신이 말하고 한바탕 웃는 호철이다.

“혼자 살았어요”

“응. 고등학교 때부터.

“왜 혼자 살아요”

“부모님은 내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기를 바라셨거든. 그렇지않으면 아버지를 따라 목수가 될까봐서.

“아버지가 목수였어요”

“목수셨어. 손재주가 좋으셨어. 내가 원하는 건 언제나 뚝딱 만들어 주셨으니까. 사실 나도 목수가되고 싶었어. 뭔가를 만든다는 것이 신기하고 재미있었어.

“지금도 목수여요”

“아니, 돌아가셨어. 7년전에...

라면을 먹던 소녀가 물끄러미 호철을 바라보았다.

“사고였어. 12층에서 떨어지셨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어머니도 곧 뒤를 따랐어. 일년도 채 되지 않아서...딱히 병명도 없었어. 아마 아버지를 너무 사랑하셨던 모양이야.

잠시 어두운 기억에 빠져있던 호철이 황급히 표정을 바꾸며 말을 이었다.

“내가 아침밥상 앞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했군. 빨리 먹어. 라면 다 퍼지겠다.

호철의 말에 다시 라면을 뜨는 소녀다. 공연한 말에 입맛이달아난 호철은 라면을 먹는 소녀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제법 맛있게 먹는 소녀다. 그 순간 뭔가가 눈에 뜨인다. 왼손으로 젓가락질을 하는 소녀였다.

“왼손잡이야?

“왼손잡이여요.

“바둑은 오른손으로 두잖아.

“아버지가 말했어요. 바둑을 왼손으로 두면 예의에 어긋나는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바둑은 오른손으로 둬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이해가 되지 않는 호철이다. 호철의관찰력은 보통사람보다 뛰어난 데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까지 소녀가 왼손잡이인지 모른다는 게 이상했다. 그러고 보니 소녀와 같이 있으면 이상하리만치 감각이 둔해진다. 오늘아침만해도 그렇다. 소녀는 아침부터 호철의 아파트 입구에서 기다리고 서 있었다. 그것은 호철이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는 뜻이다. 어떻게그걸 알았을까?

“아까 말이야. 아파트 입구에서 날 기다리고 서있었지. 어떻게 알았어? 내가 출근하지 않는다는 것을.

“차가 서 있었어요.

라면을 다 먹었는지 젓가락을 놓으며 말하는 소녀다.

“차가? 내 차 말이야?내 차가 어떤 건지 알아?

“알아요. 코란도여요. 언제나경비실 부스 옆에 주차해요. 아침 750분이면 출근해요. 오늘은 그대로 서 있었어요.

소녀의 말에 머리가 쭈삣해지는 호철이다. 소녀 앞에서 발가벗겨지는기분이다. 문득 지난번 소녀가 스트레칭하던 날이 떠오른다. 그때소녀의 시선은 호철 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때는 그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했다.

“혹시 우리집도 알고 있었어?

자신도 모르게 호철의 말투가 딱딱해졌다. 소녀는 대답 없이호철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깊이를 알 수 없는 눈빛이었다. 알고있다는 건지 모른다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침묵이 흘렀다. 호철이 그 침묵을 깨트리려는 순간 호철의 입보다 자지러지게 울어대는 핸드폰 소리가 먼저였다.

핸드폰 액정에 민지현이란 글자가 떳다.

“아침부터 웬일이야.

“또 터졌어.

전화기 너머 지현의 목소리는 숨넘어가는 듯이 다급했다.

“뭐가 또 터져?

"연쇄살인 말이야. 오상복이하고 윤진우와 똑같은 사건이 터졌어."

"뭐야!"

지현의 말에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지는 호철이다.

“지금 어디야? 은평구에 있는 서울병원 시체안치실! 알았어! 지금 당장 갈 테니까 기다려!

전화를 끊은 호철이 다급하게 소녀에게 말한다.

“지금 나가봐야 해. 사건이 터졌어. 미안해.

“괜찮아요.

소녀는 무심한 표정에 무심한 말투다.


 


 

호철의 다 낡아빠진 코란도가 거의 부서질 듯한 소음을 내며 아파트를 빠져나가고 나서 20분 후에 택시 한 대가 미끄러지듯 들어와 멈춰섰다. 기사는 잔뜩초조한 표정으로 아파트 입구를 바라보았다. 10분 전에 콜 하나를 잡았는데 하루 임대라고 했다. 그런데 그 임대비가 상상을 초월했다. 100만원이다. 택시기사생활 20년을 했지만 하루 임대 100만원은 들어보지도 못한 금액이다. 그래서 득달같이 오기는 했지만아무래도 장난전화가 아닌가 싶다. 요즘 같은 불경기에 100만원이면거의 보름치 벌이다. 그걸 하루 만에 번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런벼락같은 행운이 나한테 올 리가 없지,라고 생각하는 순간 아파트에서 한 여자가 걸어 나왔다. 나이가 어린 여자였다. 기사에게 여자는 전혀 손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여자가 택시 뒷좌석에 올라탔다.

“손님, 죄송하지만 이 차는 이미 콜이 돼 있습니다.

“내가 했어요.

마치 기계음같이 특이한 여자 목소리에 기사는 고개를 돌려 뒤를 보았다.

“손님이 콜을 했다고요? 하루 임대 100만원에?

“먼저 50만원이어요.

여자가 내미는 봉투를 받아본 기사의 입은 더이상 찢어지지 못할 만큼 찢어졌다. 5만원권장이 봉투 안에 얌전히 들어있었다.

“나머지는 일이 끝나면 줄 거여요.

“아...네네..여부가있습니까. 당연히 그러셔야죠.

기분이 잔뜩 들뜬 기사는 죽으라면 죽을 시늉이라도 할 듯이 씩씩하게 소리쳤다

“어디로 모실까요. 손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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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대국 |  2013-11-30 오후 9:04:15  [동감1]  이 의견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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