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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람 좋은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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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바람 좋은 날
2012-05-09     프린트스크랩
▲ 이자람(33), 판소리 브레히트 억척가에서 1인 15역을 한다. 독일 극작가 베르톨트 브레히트(1898~1956)의 원전 '억척 어멈과 그 자식들'은 유럽 의 30년 전쟁(1618~1648년)을 배경으로 삼았지만, '억척가'는 한국 판소 리 다섯 마당 중 하나인 '적벽가' 의 중국 삼국시대(2~3세기)로 장소를 옮겼다. LG아트센터에서 제공한 공연사진

화창한 봄. 응? 그렇지도 않나?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하늘 높이서 쏘아져 들어오는 햇살이 따뜻하다기보다 따갑다는 느낌이 든다. 하긴, 아폴론의 화살이라면 따가워야 제 맛이지. 이런 여유를 보이기에는 후덥지근한 열기까지 느껴지니 지금은 봄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생각이다.

그런데 또, 언제 화창한 봄날이 있기는 했어? 그렇게 귀 언저리 후두부를 스치는 생각. 정말이다. 불과 얼마 전 출근길 회사 건물 앞까지 옷깃을 여미고 다니게 했던 찬바람은 영락없는 겨울의 그것이었다.

아무리 길다 해도 겨울 지나면 산책길 언덕마다 개나리 폭포 흐드러지고 산중턱마다 진달래, 철쭉 포화 작렬하는 생기발랄한 봄이 와야 정상인데 내 기억의 봄은 생략되고 없다. 이즈음 시도 때도 없이 쏟아진 소나기는 늘 더운 나라의 스콜, 그대로다. 대체 우리나라가 언제 열대국가가 된 거야?

한국바둑 위기론, ‘바둑토토’ 시행 찬반 논쟁, 우상과 친구의 경계에서 모호하게 웃고 있는 이창호의 부진, 예상에 없던 한국바둑리그 참여, 막다른 골목에 몰려버린 무력감들이 하나로 뭉쳐져 온몸을 번쩍, 들어 올렸다가 사정없이 내동댕이친다. 긍정과 부정의 의미를 절묘하게 믹스한 스테로이드주사를 맞은 것 같다고나 할까. 

때로는 당황스럽고 때로는 황당한, 의지와는 무관한 일들이 심심찮게 벌어지는 건 시절이 하수상한 탓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심신이 혼미하고 나른하다. 몇 안 되는 괜찮은 버릇이라고 자위하곤 했던 책읽기도 어느새 멀어지고 매사가 시큰둥하다. 이거, 오래 방치하면 곤란한 병 같다는 진단을 내리기는 했는데 처방이 궁했다.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있어. 어느 선배의 자조적인 푸념 그대로의 나날이었다.

그런데, 아직은 고이지 않고 좀 더 흐를 날이 남았다는 의미인지도 모르겠다. 아득한 기억의 술자리가 되살아난 것은. 누군가 그랬다. 세상에 사방이 꽉 막힌 인생이란 없다고. 삶의 한쪽 문이 닫히면 반드시 또 다른 쪽의 문이 열린다고. 그러니 포기하지 말라고. 우리 인생의 모든 문이 닫히는 그때는 바로, 스스로 포기하는 순간이라고.

잊고 살았던 그 말을, 생각도 못한 두 사람이 아주 우연히 일깨워주었다. 한 사람은 주말에 날아든 부록잡지 지면 위에서. 또 한 사람은 늘 드나드는 한국기원에서.

한 사람은 30대 초반의 소리꾼 이자람. 오래 전 ‘내 이름 예솔아’란 노래를 앙증맞게 부르던 꼬마숙녀가 어느새 대가의 풍모를 보이는 소리꾼이 됐다(맥이 탁 풀린다. 난 그동안 뭘 하고 살아온 걸까. 이건, 그의 재능에 압도당한 자조와 약간의 질투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전통의 판소리’는 있어도 ‘판소리가 전통은 아니’라고? 인터뷰 한 마디, 한 마디가 정수리에 끼얹는 얼음물 같다. 명징하고 간결한 표현에서 천재의 직관을 느낀다. 한때 바둑계를 뜨겁게 달구었던 ‘바둑이 스포츠냐 예술이냐’에 관한 해답도 이자람의 말 속에 있다.

바둑은 예술’ 또는 ‘바둑은 스포츠’라는 분류는 그 시대의 흐름에 적응하기 위한 표현양식의 효율적 변화다. 분류가 바뀐다고 해서 바둑의 본질이 훼손되거나 가치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관계자들은 적극적으로 그런 변화를 주도하고 활성화시켜야 한다. 그것이 문화의 발전이며 진보다. 

이자람은, 전문 지식인이 아니라면 알아먹기 어려운 용어를 중언부언 늘어놓는 ‘무늬만 전문가’들과는 확연히 다르다. ‘진짜’들은 결코 어렵게 설명하지 않는다.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라면 그 대상이 할머니라도 쉽게 알아듣도록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한다. 천재 물리학자 아인슈타인의 말이다.

아무튼 이자람의 인터뷰가 주는 신선한 자극은 잿더미처럼 웅크린 뇌를 들쑤셔 ‘나도 무엇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의 불씨를 일으켜 세운다. 맞다. 내게도 간절하게 하고자 했던 그 무엇이 있었다. 판소리에 무지한 내게 막연한 호감과 관심을 갖게 만드는 힘은 그런 ‘진짜’의 재능에서 나오는 것이리라. 재능에 노력을 더하는 그의 박사공부가 기대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나른한 어깨 위로 맑게 공명하는 죽비를 날려준 또 한 사람은 한국기원 하훈희 부장. 바둑동네의 오랜 친구인데 몇 해 먼저 태어난 덕으로 공 없이 형님 대접을 받고 있으니 늘 과분한 마음이다.

중국문학을 전공하고 대만유학을 다녀온 하 부장은 너그러운 품성도 그렇고 평소 서예를 즐기는 천생선비다. 이창호가 즐겨 써왔던 ‘성의(誠意)’라는 검박한 휘호를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 사람도 바로 그다.

하 부장은 여름이 되면 합죽선 위에 좋은 시구나 사자성어를 휘호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하는 덕을 쌓고 있는데 해마다 빠지지 않고 그 귀한 부채를 얻어 쓰고 있으니 나는 제법 복이 많은 사람이다. 

어느 더운 날, ‘무슨 날씨가 봄도 없이 여름부터 오냐’고 툴툴거리는 내게 하 부장이 웃으며 부채를 여럿 내밀었다. ‘마음에 드는 걸로 골라보슈’라며. 내가 갖게 된 부채 위의 휘호는 ‘정관자득(靜觀自得)’이었다.


흔들림 없는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을 관조하면 스스로 이치를 깨닫게 된다는 뜻인데 또 다른 출전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북송의 유학자 정호(程顥)의 수행시(修行詩) ‘추일우성(秋日偶成)’에서 유래한 것으로 안다.

하 부장은, 내가 휘호를 음미하며 ‘좋은데?’라고 하자 빙그레 웃더니 ‘그게 바둑이잖아.’라고 한다. 아, 놀랐다. 바둑을 전혀 둘 줄 모르는 그가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으로 20여 년 바둑에 관한 글을 밥줄로 삼아온 내게 이런 통렬한 반전을 안겨주다니.

부채를 활짝 펴니 한줄기 청량한 바람이 인다. 은은한 묵향 배인 합죽선의 바람은 옛 여인네의 치맛자락처럼 풍성하고 부드럽다.

아, 그러고 보니 잡지 속 사진의 이자람도 합죽선을 내저으며 열창을 하고 있었지. 그게 ‘사천가’였는지 ‘억척가’였는지는 이제부터 알아볼 참이다. 가까운 사람들아, 모여라. 내 언젠가 날 잡아 판소리 한마당 쏘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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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choho |  2012-05-09 오후 12:11:0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군더더기 없이 은은히 써내려간 글이 평온한 일상을 느끼게 해 입가에 엷은 미소를 떠올리게 하네요, 평안한 마음을 갖게 해 줘 감사합니다.  
용문객잔 |  2013-06-16 오후 6:51:3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관자득..., 좋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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