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1회/물위를 떠다니는 빈집 (단편소설, 4회 분재)
Home > 소설/콩트
1회/물위를 떠다니는 빈집 (단편소설, 4회 분재)
2011-08-19 조회 6437    프린트스크랩

                                                           
  
  안개가 스러지자 영도 섬이 어둠속에서 자태를 들어내고 있다.
밤새 모습을 감추고 있던 사물이 살아나고 있었다. 팔천톤급 무역선의 선미를 잔물결이 애무하듯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소금기를 머금은 북서풍이 상구의 콧구멍 속으로 깊이 들어왔다.
 
 삼 십년동안 배를 탔지만 이번 입항은 엠파이어호 선장 상구에겐 또 다른 의미가 있었다. 이제 돈도 좀 저축이 되어있고, 보험회사에 가입한 연금도 내년부터 매달 일백 오십 만원이 나올 것이다. 아들 녀석들도 대학을 마치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며 독립생활을 하고 있었다. 오랜 선원생활로 상구의 몸과 마음은 지쳐가고 있었다.

 이제 새로운 목표를 향해서 자신만을 위한 항해가 절실히 필요했다. 오십 중반의 사내가 해상생활을 그만두고 육지에서 뿌리를 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었다. 상구가 선장 직을 그만두어야할 또 다른 이유는, 빈집을 지키고 있던 아내가 집을 나간 것이었다. 아내는 상구에게 몇 번 긴급 신호를 보내왔었다.
 
-뻐꾸기 아빠 이제 당신이 남긴 아이들이 훌쩍 커버려 어미의 둥지를 떠나는군요. 당신을 바다로 떠나보낸 세월이 우리가 결혼생활을 한 날과 같군요. 빈 둥지를 지키는 어미의 심정을 헤아려 주세요. 당신은 고등학교 졸업 후 군 제대와 동시에 나와 결혼했죠. 신혼생활의 재미도 알기 전 한달 만에 바다로 훨훨 날아갔었지요. 우리는 반평생을 살아왔지만 당신과 정말 살을 맞대고 살아온 날은 삼년도 채 되지 않는 것 같아요. 이제 우리도 남들처럼 오붓하게 한 번 살아보자 구요.-

  삼년 전에 아내는 혼자 남은 생활에 외로움을 느끼고 상구에게 호소하였다. 상구는 그 때 목표가 하나 있었다. 해상생활을 접고 육지에서 선장이상의 대우를 받는 생활을 하려면 도선사가 되어야 했다. (2001.3월 현재 우리나라에 도선사는 184명뿐이었다). 선원들의 꿈인 도선사야말로 상구가 넘어야할 마지막 관문이었다. 자격이 까다롭고 시험이 어려웠으므로 도선사의 절대수가 부족하였다. 도선사 시험을 치기위해선 육천톤급 이상의 오년 선장경력이 필요했다. 십 오년 째 팔천톤급 선장경험을 쌓았으나 실력이 문제였다. 도선사시험을 보기 전에 필히 도선수습생 전형시험을 먼저 통과해야 했다.

 삼년 전에 경험삼아 한 번 시험을 치러보았지만, 세 과목 중 (영어, 선박 운용술 및 항로표지, 법규 등 ) 선박 운용술만 40점이 넘고 다른 두 과목은 과목낙제를 하였다. 그렇지만 삼년간 배안에서 틈틈이 시험 준비를 하여 이제는 자신이 붙었다. 아내는 상구가 엠파이어 호에서 내려 한 달 휴가를 받아 집에 있을 때마다, 누누이 이런 말을 하곤 했다.
 
“영민이 아빠 이젠 배 그만 타고 육지에서 할 일을 찾아보는 게 어때요? 우리도 남들처럼 한번 재미있게 살아봅시다.”
 
 그때마다 상구는 애써 아내의 의견을 묵살하였다. 그도 내심으로는 육지에서 생활하곤 싶었다. 그 동안 바다에서 생활하며 집도 두 채나 마련하였고, 영도에 계시는 어머니집도 새로 지어드렸었다. 아이들의 결혼문제가 당면한 과제였고, 아무런 준비 없이 선장자리를 선뜻 내놓고 싶지 않았다. 아내와 중매로 결혼하였다. 상구의 아버지도 어선을 탔었다. 그러므로 상구에게 바다는 보통 직장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비바람이 몰아치고 시커먼 해일이 일면, 예전에 상구의 엄마는 먼 태평양쪽 바다를 바라보며 파도가 잠잠해지기를 정화수를 떠놓고 밤새워 얼마나 빌었든가.
 
 사라호 태풍 때 그의 아버지는 풍랑을 만나 불귀의 객이 되고 말았다. 상구가 여덟 살 무렵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목숨을 바쳐 일했던 바다에 자신도 가 보아야한다는 운명적인 생각이 스쳤다. 상구는 초등학교 다닐 때 공부를 잘하여 P시에서 제일 일류인 K중학에 시험을 쳤지만 떨어지고 말았다.

 집에서 가까운 H중학을 갔는데 공교롭게도 중학교 옆에 T해양고등학교가 있었다. 대학에 갈 형편이 안 되어 자연히 T해양고등학교의 항해학과로 입학하게 되었다. 졸업 후 실항사 부터 시작하여 고생 끝에 3항사, 2항사, 1항사시험을 통과하여, 선장이 된 것이었다. 맨 처음 탔던 배는 참치 잡이 어선이었다. 남태평양바다에서 참치들이 많이 잡혔다.

 장남인 상구는 홀어머니와 여동생과 함께 살았다. 이제 연봉만 해도 상당한 대우를 받는 그였지만, 언제부터인가 상구의 사회적인 신분상승과는 별개로 가정이 슬슬 무너져가고 있었다.

자식들은 다 성장하여 어엿한 직장을 다니고 있지만, 아버지가 직업이 없다면 그네들의 혼사에도 적지 않은 불이익을 당할 것 같았다. 자신만 희생하면 모든 게 다 잘 되어 가리라 생각했지만, 자식들이 둘 다 직장 따라 외지로 나가자, 거의 삼십여 년 간 지탱해 오던 결혼생활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빈집을 지키던 아내가 가출해 버리자 상구는 이제 더 이상 막막한 바다에서 돈을 버는 게 별 의미가 없어졌다. 상구는 이번에 뭍에 내리면, 회사에 사직서를 낼 생각이었다. 약 한달 간 여유가 있으므로 천천히 생각하면서 진로를 보아놓고, 결정하면 될 것이었다. 상구가 익숙하게 잘 할 수 있는 일은, 배에서 키를 잡고 먼 대양을 향해하는 일이었으나 육지생활은 그리 쉽지 않을 것이었다.


 아내와 아이들이 없는 집은 썰렁했다. 상구는 부둣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한 병 마시고 왔지만, 다시 울적한 심정이 들어 뒷주머니에 차고 온 소주를 다시 병째로 목구멍에 들여 부었다. 최고의 지위와 그에 상응하는 월급을 받으며 성공하였지만, 그 성공을 자축할 가족이 곁에 없음이 심히 안타까웠다.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
  상구는 12층 아파트 베란다를 통해 바다를 바라보았다. 언제나 바다만 보면 고향에 돌아온 듯 마음이 푸근해지곤 했다. 서울에 있는 큰 아들 영민이와 작은 아들 영찬이에게 전화를 하였지만, 한 달 전부터 엄마와 연락이 끊겼다고 말했다. 또한 처갓집과 처남들에게도 연락을 하였지만 아내의 행방은 묘연했다.
 
  상구는 곱게 포장한 진주목걸이를 안주머니에서 꺼내어 서랍에 넣었다. 결혼 삼십 주년을 기념하는 아내에게 줄 선물이었다. 지중해의 모나코에 정박했을 때 샀는데, 여성들이 선호하는 아주 값진 보석이었다. 심란한 생각을 하고 있던 상구에게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언 듯 일어났다.

 방금 책상서랍을 열었을 때 노트묶음을 본 것 같았다. 상구는 가슴을 두근거리며 다시 서랍을 끝까지 열었다. 서랍 깊숙한 곳에는 노트 묶음이 들어있었다. 대학 노트를 묶어놓았는데 무려 열권 가량은 되었다. 1977년 5월부터 2006년 12월 까지 적힌 아내의 일기였다. 상구는 죄지은 사람의 심정으로 아내의 일기장을 들쳐보았다. 첫 페이지에 따로 붙여놓은 종이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혀있었다.


 -뻐꾸기 아빠! 나는 당신을 이렇게 부릅니다. 나는 당신이 바다에 떠있는 집에서 24시간을 보내는 동안, 아이들 잠을 재워 놓고, 당신이 없는 무료한 시간을 달래기 위해 내 마음을 일기로 남겼어요. 당신이 바다위에서 흘러가는 집에 거주하는 동안, 나는 육지의 바다에 떠 있는 15층 아파트 배에 타고서 당신처럼 선장이 되어 세상을 누비게 되었지요.

 어린 아들 두 명과 이십대 후반에 홀로 되신 시어머니를 모시고 아파트 배를 운항하며 살아왔어요. 배를 타는 남편의 아내로써 세상으로부터 받아야하는 오해와 힐끔거림, 이런 것들을 아파트 배에 싣고 살아가는 세상살이도 험난한 파도를 헤치는 배 살이 만큼은 아니어도 힘든 나날이 많았답니다.

 정말 힘들었던 날은 당신이 꼭 옆에 있어야함에도, 당신은 육지 어디에도 없다는 거예요. 하늘밑 어느 곳에 있는지 조차도 몰랐으니까요. 투정을 부리고 싶어도 옆에 사람이 있거나 하물며 전화라도 받을 수 있어야 되는데, 우리의 결혼 생활은 집시처럼 지상을 헤매는 유량민이나 다름이 없었어요.

 그나마 당신을 느낄 수 있었던 아들 둘이 성장하여 내 곁을 훨훨 날아 가버리자, 그 때 까지 나를 지탱해 오던 인내의 끈이 끊겨버린 심정이었어요. 그동안의 결혼 생활이 허망하게 생각이 드는 건 나도 오십대 초로에 접어든 나이 탓일까요.

 여자의 일생이란 이런 것인가요. 누구는 남편 잘 만나 해외여행도 다니고 부부가 같이 손잡고 공연도 보러 다니는데, 당신은 바다를 유랑하는 선장이요, 당신의 아내는 육지의 물위에 떠있는 사면이 꽉 막힌 집안에서 숨 막히는 항해를 해야 되는가요. 갑갑해요. 이제 나도 아니 나 나, 박난희도 진정한 자기 자신을 찾는 항해를 해보아야 될 것 같아요.
 
 그 동안의 기록은 거의 빠짐없이 여기에 다 기록해 두었어요. 이미 지나간 결혼 생활의 일상이 기록되어있어요. 아마 당신이 다 보려면 시간 꽤나 걸리겠네요. 행여 도선사 시험을 치는데 방해가 될까봐 걱정이 되네요. 그래도 나 박난희의 희로애락과 당신 아이들의 소중한 생활의 기록이 들어있으니 시간 아깝다 생각 말고 다 읽기를 바래요. 당신이 육지에서 겪어야 할 일상이 고스란히 들어있어서 간접 경험은 되겠지요. 날 찾지 마세요. 하늘 아래에 있으니까요. 당신이 일기를 다 읽으면 박난희가 있는 곳을 자연히 알게 되겠지요. 2006. 12. 박난희가 뻐꾸기 아빠에게.
  상구는 제일 첫 장을 신혼의 첫 날을 치루는 설레는 마음으로 일기장을 펼쳤다.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