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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십결의 허구에 관한 가벼운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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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십결의 허구에 관한 가벼운 생각
2012-03-02     프린트스크랩
▲ 위기십결 액자, 주식시장의 트레이더들이 바둑인들보다 위기십결을 더 좋아하는 경향 이 있다. 깊은 생각을 할 틈이 없고, 순간적인 판단을 빨리 내려야 하는 사람들에게 위기십결은 한가지 기준이 되는 것 같다.

외세, 봉쇄, 집버리기


I. 맞바둑은 물론이고 접바둑의 지침으로도 이만한 것이 없다

명인 죠와(丈和 1787-1847)가 말했다.

1) "무릇 혁기(奕棋)에는 3법이 있다. 즉, 포석, 중반전, 끝내기이다. 이 3법을 잘 할 때는 그 성과가 크다. 3법 중 하나를 터득하면 비범하다. 대체로 30수 혹은 50수, 100수에서 승부를 아는 것을 수업의 첫째로 한다.“

2) “수업에는 정(正)과 사(邪) 두 가지가 있다. 정도를 뜻하면 진보하고 사도를 뜻하면 후퇴한다. 사도라는 것은 과욕을 말함이다. 욕심이란 안 보이는 수를 찾아내려 굳이 시간을 끌어서 생기는 수법을 말함이다. 모르는 수는 생각을 해도 여간해서 보이지 않는 법이다. 따라서 둘수록 후퇴한다.
정도란 욕심이 크지 않음을 말함이다. 그 기술은 속기로서도 맥법(脈法)을 잊지 않는데에 있다. 빠르면 욕심이 생길 여지가 없다. 욕심이 안 생기면 수법이 훌륭하여 차츰 진보한다. 이는 초보자가 첫째로 유의할 일이다.“

3) “또 집취하기, 말잡기, 적지에 깊이 들어간 돌이 달아나는 따위는 모두 좋지 않다. 무릇 집취하기는 틈이 생기고 돌잡기는 무리하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욕심이다. 돌이 달아나는 것은 비겁하다. 고로 집취하기 돌잡기를 아니 할 것이며 깊이 들어갔으면 돌을 버리고 두어라. 집을 취하지 않으면 견고하고 돌을 잡지 않으면 온건하고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무욕(無慾)하다. 돌을 버리는 것은 날카로움이다. 어쨌건 나의 돌을 굳히는 일을 첫째로 한 연후에 적의 간격을 치라. 이와 같이 할 때는 수법이 온건하여 진보할 수 있다. 초보의 기량이 정도에 들기 쉽고 진보도 쉽다는 것을 적었을 따름이다.”


현현각에서 펴낸 “일본명국선” 중 “丈和”편에 실린 글인데(여기서는 셋으로 나누었다) 재밌는 것은, 이에 이은 다음 글이다. 물론 이는 평론가의 글이다.

丈和라 하면 무류의 싸움바둑으로 세상에 전해지지만, 이 훈계를 보는 한 그의 인상은 전연 다른 것이라고 말해야 되겠다. 그러나 丈和도 만년에 이르러서는 대국보다는 가르치는 일이 능해졌을지 모른다.

인간.
판단은 어렵다.


자, 다시 바둑.

놀랍다. 실로 놀랍다.
이런 안목을 밝혀놓다니, 실로 놀랍다.


II. 古今의 바둑 글을 생각해본다

바둑에 관한 글은 고금에 적지 않다. 그러나 반상에 대한 통찰을 담은 글은 찾아보기 쉽지 않다.

그 대부분은, 2류 문인들이 심심할 때 써둔 잡글로서 읽을 가치가 별로 없다.
고대 중국의 경우 이름은 거창한데, “현현기경”의 머리말은 물론이고, “弈旨” “老子 洞微說” “原弈” “棋經十三篇” “李泌 度情論” 등도 내용은 다 고만고만하다.
반상 위에서 지침이 되는 내용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

심득(心得)? 그런 것도 없다.
이런 내용과 수준이다.

“바둑의 도는 정직함에 있으니, 곧 신명의 덕이다. 바둑에 흑백이 있으니, 음양으로 나눈 것과 같다. ... 매복하고 꾀를 내서 돌연히 적을 둘러싸며 횡행하는 것은 곧 전단(田單 전국시대 齊나라 장수)의 기책이요, ...” (班固, “弈旨”)

매우 드물게도, 다음 글의 끝부분은 그래도 내용이 있다.

“대개 만물의 수는 1로부터 시작된다. ... 바둑 돌의 배치는 서로 연결하는 것에 힘쓰며 처음부터 끝까지 착착 선수를 구한다. ... 세력이란 것은 중앙에 있으니, 귀를 치지 말라.” (張擬, “棋經十三篇”) 


그 동안 이 글은 태도를 강조했다.
반상을 대해서, 또는 대국하는 자신을 돌아보면서.
태도를 강조하면서 태도가 지침과 안목에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바둑이 본래 그런 것인데 이제야 비로소 알게 된 것이다. 그래도 실력이 줄어드니, 경중(輕重)을 구분하지 못해서 그러한 걸까. 태도를 강조한다고 하면 마음을 중시하는 걸까.

조심한다. 태도를 강조한다고 해서 심득(心得)의 격언 정도로 이해되는 “위기십결(圍棋十訣)”과 같은 것을 초점으로 삼은 것은 아니다. 조금 전 보여드린 여러 고대의 바둑 글 같은 것도 아니다.
다만 반상을 대할 때 내면이 왜 동요하는가, 정도를 강조했던 것이다.

위기십결을 생각해본다. 솔직히 말해서 위기십결은 신통찮은 말들의 모임이라고 본다.
바둑을 둘 때 위기십결로 알려진 것에서 대체 어떤 지침을 얻을 수 있을까.
바둑이 아니라 세상살이에 쓸모 있는 것일까. 그런 거 같지 않다.
잠언? 아니, 잠언 수준이 아니 된다. 그 영역에 들어갈 수 있는 그런 지혜가 없다.

바둑에서 지침이 될 수 있는 격언이 되려면 그 격언은 구체적인 지침으로 전환될 수 있든지, 아니면 다른 명제를 착상이라도 할 수 있을 정도의 작은 징검다리라도 되어야 한다.
그것도 아니면 인간의 심리를 잘 반영하는 그 무엇이라도 구비하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런 거 찾을 수가 없다. 위기십결에서는 그런 거 못 읽었다.
그에 대해서 어느 누가 쓴 글도 하나 모른다. 과문이어서 읽지 않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어느 누구도 위기십결을 활용해서 반상에 대하는 태도를 말해준 적 없다.

“이러이러하기 때문에 바람직하다”든가, 그 십결에서 반상 수법의 지침이 될 수 있는 조건적인 명제라도 하나 끄집어낸 것을 읽은 적이 없다. 들은 적도 없다.

바둑 같이 오래 된 지적(知的)인 놀이에서 그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즐겨온 그 세계에서
위기십결 한 장을 그토록이나 벽면에 높이 붙여놓은 세상에서
실제로 도움 받았다는 실례(實例)를 들은 적이 없다.

이런 경우는 가끔 있을 수 있겠다. 한두 번 들은 적도 있고.
A가 말했다.
“아, 오늘 그 바둑, 가볍게 삭감했으면 넉넉히 이겼을 텐데. 아, 그 참. 입계의완(入界宜緩)이란 말씀을 그만 잊었단 말이야. 참으로 십결은 큰 지침이 되는군.”

그 경우, 입계의완이란 일결(一訣)이 과연 쓸모가 있었을까.
그렇지 않다. 단지 나중에 자탄(自嘆)의 거울이 되었을 뿐이다.

이러 이러한 조건에서는 가볍게 침입하라. 그렇게 말하지 않았는데, 그런 조건도 없는데, 왜 입계의완이란 일결이 그 A의 바둑을 미리 예상한 지침으로서 기능한단 말인가.
만약 깊이 침입하지 않아서 졌다면 그 때는 입계의완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릴 것인가.

사실 이 글은 위기십결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옛날에 눈으로 스쳤을 뿐. 그건 기억난다. 그래서 방금 찾아봤다. 당나라 고수 왕적신이 후세에 남긴 바둑 둘 때의 태도라고 하는데 저자가 맞는지 여부도 불확실한 거 아닌가 싶다.

지금 보니, 위기십결이란 이런 것이었다.
그 열 개의 조언 중에서 대부분은 중국의 고대 바둑의 관념과 관련된 것이다.

전쟁을 모형으로 하는 싸움 바둑이 태도나 행마의 주류가 된 상황에서,
그런 반상에서 “이런 거 조심하면 좋다”는 그런 말씀의 모임이다.

예를 하나 들자.

피강자보(彼强自保).
세고취화(勢孤取和).

이 두 말씀은, 별로 차이가 있는 말도 아니며 또 싸움바둑에서나 필요한 말이다.
두 집 못나면 잡힌다. 그와 다를 바 없는 수준의 말이다. 현상의 서술 수준을 벗어난 명제가 아닌 것이다.

그 뿐이다.    

참, 고약도 하다.
선인(先人)들의 말씀은 금과옥조가 되어야 당연할 텐데 이런 글을 쓰고 있으니, 이런 난감함을 떠안다니. 고약도 하다. 죄의식이 약간 붙는다. 


III. 죠와의 가르침을 생각해본다

앞서 셋으로 나눈 죠와의 가르침은,
일본의 바둑이 중국과는 어떻게 다른 길을 걸어왔던가를 여실히 보여준다.

그 동안 첫 번째와 두 번째는 한두 번 말씀 옮기고 강조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셋째 글은 오늘 처음인데, 먼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맞바둑에서나 접바둑에서
저만한 지침도 찾기 힘든 거 아닌가, 그것이다.

다시 그 일부를 옮겨본다.
 
“집취하기, 말잡기, 적지에 깊이 들어간 돌이 달아나는 따위는 모두 좋지 않다.

무릇 집취하기는 틈이 생기고 돌잡기는 무리하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욕심이다.
돌이 달아나는 것은 비겁하다.

고로 집취하기 돌잡기를 아니 할 것이며 깊이 들어갔으면 돌을 버리고 두어라.
집을 취하지 않으면 견고하고 돌을 잡지 않으면 온건하고
깊이 들어가지 않으면 무욕(無慾)하다. 돌을 버리는 것은 날카로움이다.”

다시 요점을 옮기면 세 마디다.

“집취하기는 틈이 생기고 돌잡기는 무리하다.
깊이 들어가는 것은 욕심이다.
돌이 달아나는 것은 비겁하다.“

접바둑과 관련해서 말씀은 하나로 요약된다.

귀를 가볍게 여기고 중앙을 중시하라.
반상을 넓혀라.

세력을 중시하라. 그런 것도 같은 내용이 되겠다.
봉쇄하라. 그런 것도 같은 내용에 들어가겠다.

접바둑의 가장 큰 지침이 되겠다.


 
IV. 봉쇄, 막는 거, 밀어버리는 거


      1도 (외세의 가치 - 봉쇄하라)

1도 (외세의 가치 - 봉쇄하라)

비록 8점 바둑이지만 흑이 저리 두면 백은 마땅히 던져야 할 것이다. 왜 저런 정석을 사용해서 바둑을 이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느냐. 그런 비판 마땅히 들어야 할 것이다. 백은 흑에게 저리 밀리게 되는 정석을 사용하며 아니 된다. 깜박 했다면 수순 중 어디선가 비틀어야 한다.

비유를 약간 쓰겠다. 동서남북 사방을 봉쇄하면 천지를 혼돈으로 몰고 간다. 모든 자타(自他) 구별이 하나로 융해된다. 이제 어디에 백이 두던 그 백은 곤마가 될 듯하다. 이제부터 반상에 놓이는 모든 백돌은 앞이 막혔다. 원군이 없다. 모든 돌은 외롭기 그지 없다.


      2도 (꼬부림의 가치 - 세력이 무너진다. 하늘이 무너진다)

그러니 백은 - 여기서는 흑1이 작은 것에 눈을 돌린 큰 완착이니까 - 얼른 백2를 두어야 한다. 이런 기분 얻으실 것이다. 햇살이 검은 구름 사이로 비취면, 만물이 생동한다. 숨겨졌던 비경이 드러난다.
접바둑에서 특히 꼬부림은 반상을 크게 넓히는 수법이다.


      3도 (외세의 가치 - 반상을 크게 구도 잡으라)

밀어가는 수 - “미는 수”를 강조했다 - 는 흑이든 백이든, 맞바둑이든 접바둑이든 크게 익혀두어야 할 수법이자 태도이다.
밀어두어서 나빠질 형세는 없을 것이다.
밀면 반상은 끌려온다. 상대도 끌려온다.

승부? 아, 그거야 그 다음 문제. 
여기 흑이 죽죽 밀어오면 上手는 고민하라. 던질까 말까. 몇 수만 더 두어볼까.
5에 뻗자니 흑이 5를 가져갈 것이 걸리고, 백5 두자니 흑5 맞는 것이 아프기 짝이 없다.


      4도 (젖히고 봐야 한다 - 생각해서 얻은 것 없다 - 죠와 선생의 말씀)

볼 것 없다. 젖히고 봐야 한다.
밀어가는 수에 반발하여야 한다.
그러니 밀려오는 수에는 반발하여야 한다.
주눅 들면서 이길 바둑은 어디에도 없다. 이건 태도의 문제다.


반상에서 태도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 보고 싶다. 앞서의 글 중에서 이런 이야기 했던 것이 떠오른다.

마음이 불안하면, 또는 상대가 강하다거나 하면, 돌이 밑으로 내려간다.
중앙을 지향하지 못한다. 제1선은 언덕이자 땅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그 무의식적인 인식이 수법의 한계를 정한다. 발전 지향적인 중앙 지향적인 수법은 두지 못한다. 한칸 뛰어 머리를 내밀 것이냐, 아니면 문단속하여 근거를 얻는 것으로 만족하느냐, 하는 두 가지 갈림길이 있다면 - 무게가 후자로 쏠릴 가능성이 크다. 비슷한 가치를 지닌 두 선택지(枝) 중 하나를 고른다면.

그런 것을 이해해서 우리가 그 한계를 벗어나고픈 마음이 들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불안을 직시한다.
“바둑은 중앙 지향적이어야 발전한대.” 그런 말을 돌이켜본다.

그런 것이 태도.
이 글은 그런 것을 반상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태도의 내용이라고 본다.

접바둑과 관련해서는 이런 것.

접바둑은 처음부터 上手에게 불리한 조건에서 출발하는 것. 그러한 조건을 달리 표현하면 “좁다”라고 할 수 있다. 4점일 경우만 하더라도 착점할 수 공간이 4개가 줄어들었다는, 그 이상으로 좁다. 귀는 흑이 화점으로 선점하고 있으니 소목도 외목도 고목도 얻을 수가 없다.
 
그 이상으로 좁다.
귀가 상대 품에 안겨 있으니 변에서의 착점도 그 자유가 지극히 제한된다.

바로 그럴 때, 어떤 것이 태도라고 불러지느냐?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느냐?

접바둑의 조건을 인정하는 것.
그 좁혀진 세상을 어떻게 하면 넓은 세상으로 바꾸느냐?

그에 대한 가장 높은 단계의 지침을 태도라고 말할 수 있다.
두 개의 태도 A와 B가 있을 때, 그리고 A로부터 B가 추론될 수 있다면 그 때는 A가 태도가 된다. B는 태도라고 부를 수 없다.

그런 시각에서 보면
접바둑의 태도는 몇 개의 태도로 축약될 수 있다.

“넓혀라.”
“가벼워라.”

승부를 대하는 자세가 가벼워야 한다. 승부를 대하는 마음, 가벼운 것이 좋다.
그러면 과감한 수법 선택할 수 있다.
안정적인 수법을 택하려는 마음으로는 모험은 물론이고, 불확실한 그러나 전망 좋은 수법 선택하지 못한다.

가벼우면 열어젖힐 수 있다.
창을 열어젖힐 수 있다.



      5도 (고개를 위로 젖히면 - 한 눈에 삼라만상이 다 잡힌다)

“가벼워야 한다.”

3도에서 흑이 여기 5도로 돌아서면, 백에게 주어진 선택은 단 하나.
반상을 가볍게 굽어봐야 한다.

마음이 불안하거나 자신감이 결여되어 있으면 몸이 무거워져서 밝은 안목은 사라진다.
하늘 - 중앙 - 을 열어 반상을 넓히는 안목은 사라진다.
중앙 중시 수법 - 젖히는 수, 한칸, 밀어가는 수, 꼬부리는 수 - 은 떠오르지 않는다.

물론 노력은 필요하다.
마음이나 태도는 갖겠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어떠한 노력이 없다면, 그리고 그 어느 단계에 오르지 못하면 절대로 변하지 않는다.
변했다고 말해도 소용이 없다. 열이면 열, 착각에 불과하다.



      6도 (틀어막으면 - 반상이 넓어진다)

여기 이 바둑은 접바둑은 아닌데 - 조훈현과 섭위평을 떠올릴 분 많으실 텐데, 그러나 중간에 달리 둔 것이다. 실전인지, 연구바둑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반상을 넓히는 수법으로 또 하나 추천할 만한 것으로는 “틀어막는 수”이다.
“막는 수”보다 어감이 강한데, 이리 쓰고 싶다.

틀어막는 수법의 가치는, 집을 생각하지 않는데 있다.
반상 전체를 눈발 날리게 하는 태도로 두어야 한다.

틀어막는 수는, 끊는 것과 같은 힘을 갖는다.
 
저 백1을 두면, 상변과 우상귀, 그리고 중앙의 흑돌은 서로의 연결이 완전히 끊긴다.
그래서 끊는 수와 같은 효력을 갖는다고 한 것이다.
다음에 흑은 상변을 보강해야 할 것이다. A를 맞을 수야 없을 것이니.

그러면 백은 B, C, D 아무 수나 두어도 좋을 것이다. 단 E는 아니다. 지금은 흑을 공격해서 반상의 변화를 이끌어가야 할 국면이다.
E는 집을 구한 것으로 백1을 둔 이유와 어긋난다.


      7도 (막으면 상대의 선택이 좁아진다 - 그래서 넓어진다)

지난 번에 보여드린 장면인데, 막는 자리가 있으면 막으시라. 어떤 벌림보다도 어떤 공격보다도 반상 전체를 크게 구성하는 힘을 얻을 것이다.


본래 이 글의 내용은 가볍게 일부의 분량으로만 쓰려고 했었다.
그런데 그만 죠와 명인의 글을 보다가 좀 더 길게 썼는데, 중언부언이 없지 않다.
강조하고픈 맘이 있어서 그런가 싶다.

이제 하나만 더 쓰고 접바둑의 셋넷을 마칠 것이다.

지난 2005년에 쓴 “접바둑의 하나 둘”을 약간 보충하긴 한 듯한데
역시 책이 아니기에 헝클어진 인상 - 내용에 대해서 - 갖는다.

읽는 분께 굳이 권한다면, 가볍게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지침이란 것이 너무 강하게 다가오면 그 지침에 묶일 수가 있을 것이다.
또 이 글의 지침이란 것이 과연 얼마나 실전에 도움이 될 것인가. 자신할 수도 없다.

“응, 주로 이런 거 강조하는구나.”

그리 대해 주셨으면 한다.

다음 글에는, 그 동안 미처 다루지 못했던 삭감을 다루겠다.
삭감은 6점부터는 있을 수가 없고 4점도 그 상황이 오기 쉽지 않으니, 2점 3점 바둑이 주된 대상이 되겠다.

접바둑을 다루어가는 上手 명인들의 힘을 좀 보고 싶어 다루는가 싶다.


비유 하나.

하얀 백설 분분할 때 어느 누가 그 눈 아니 맞을 수 있나?
봉쇄를 하거나, 틀어막거나 하면 상대는 그 눈 아니 맞을 수 없다.

봄날의 아지랑이, 겨울의 눈발,


봉쇄하고 틀어막고 한칸 뛰고 밀어붙이고 꼬부리면
그런 비유, 말이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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固然 |  2012-03-07 오후 6:04:4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6도의 기보는.. 1회 후지쯔배 준결승전 武宮-小林의 대국이 아닌가 합니다..  
하이디77 |  2012-09-17 오후 11:17:5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참 무서운 글입니다.
통찰이라는 것이 이런 파괴력을 가지는구나 싶습니다.
저는 막연히 위기십결에 불만이 있었는데, 시원하게 긁어주시는군요.
잘 읽었습니다. ^^*  
정령왕 |  2016-03-03 오후 7:35: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배운게 많습니다.
저도 위기십결을 보면서 이게 무슨 소리인지?
뜻도 모르면서 그냥 외웠는데
그냥 공격이 최선의방어다. 이렇게 쉽게 쓰면 될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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