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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경언의 "이야기 현현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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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알려진 대로 「현현기경(玄玄棋經)」은 바둑 최고의 고전(古典)이다. 특히 고수의 반열에 오른 이들의 「현현기경」에 대한 자세는 애정의 선을 넘어 외경심으로까지 이른 경우를 왕왕 찾아볼 수가 있다.
따라서 「현현기경」이 「바둑도서리뷰」코너의 손님이었을 뿐만 아니라 같은 페이지에 재등장하게 된 것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라 하겠다.
「현현기경」에 대해 약간만 복습을 해보자면 중국 원(元)나라 때 바둑국수 대접을 받던 엄덕보(嚴德甫)와 안천장(晏天章)이란 두 고수가 그 동안 중국대륙에 전해져 온 바둑이론과 수법들을 모아 집대성한 일종의 바둑백과사전으로 1349년에 완성된 책이라는 것. 정석, 포석, 맥, 바둑논설 등 바둑에 관한 분야가 총망라 된 「현현기경」이지만 개중에도 역시 백미는 '사활'이다.
오늘 소개할 「이야기현현기경」의 저자 권경언 六단조차 "650년 전에 출간된 옛 책에 어떻게 이처럼 다양한 맥과 기기묘묘한 수법들이 망라될 수 있었는지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서문에서 찬탄하고 있을 정도이다.
「현현기경」에는 이러한 맥과 사활문제가 300여 편이 넘게 실려 있다. 그런데 자칫 독자들은 문제풀이에만 정신을 쏟게 되는 나머지 문제 하나마다 붙어 있는 표제읽기를 놓치기가 쉽다. 마치 서당 학동들이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다'라는 천하의 이치를 설명한 천지현황(天地玄黃)의 속뜻을 이해하지 못한 채 무조건 몸을 흔들어 가며 '하늘천, 따지'만을 냅다 질러대듯.
바둑사학계의 권위자로 꼽히는 권경언 六단의 「이야기현현기경」은 이러한 점에 착안, 각 문제에 얽힌 사연과 스토리를 마치 노신사의 노변정담(爐邊情談)을 듣듯 구수하게 풀어내 「현현기경」을 읽는 재미를 한 차원 높여주고 있다.
사실「현현기경」의 묘수풀이 문제에 붙어있는 표제들은 가볍게 넘길만한 것들이 아니다. 고대 역사책에 나오는 명인·영웅들의 이야기며, 전쟁, 설화 등 방대한 고전을 다루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시경(詩經) 등에 나오는 시인들의 걸작 시도 접할 수 있다. 사활풀이 하나만으로도 바둑사에 길이 남을만한 명작인데 이러한 품격과 심오함을 겸비하고 있으니 과연 「현현기경」이 수백년을 이어오며 최고의 '바둑 스테디셀러'가 되고 있는 이유를 알 만하지 않은가.
「이야기현현기경」은 권경언 六단이 93년도 월간『바둑』지에 1년간 연재한 「고전사활묘수」와 97년 바둑 TV 개국초기에 방송했던 「현현기경 묘수풀이」의 내용을 정리, 보완한 책이다. 상하권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00여 개의 원본 문제 중 고르고 고른 120여 문제를 2권에 고루 풀어 놓았다. 고수들의 전유물로만 인식돼 온 「현현기경」을 초중급자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낱낱이 상세한 해설을 붙였고 어린이와 눈이 침침한 노인들을 위해 활자도 큼직하게 박았다.
「현현기경」에 붙어있는 표제들이 얼마나 멋들어진 것들인가에 대해 저자는 간단한 표제 하나를 예로 들어 놓았다. 돌 일곱 개로서 당당한 진지를 구축하고 있으나 묘수 하나를 당하면 죽음을 면치 못하는 문제를 두고 붙인 '칠자지모세(七子之母勢)'. 아들이 7명이나 있으나 어머니 한분을 봉양하지 못한다는 시경의 글귀를 인용한 제목이라 하니 가히 표제와 문제의 절묘한 만남이라 아니할 수 없다.
끝으로 프로기사로, 바둑필자로 눈코 뜰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는 김성룡 六단의 감상평.
"입단을 준비하며 피나는 공부를 하던 연구생 시절에도 다 못 봤던 「현현기경」이었는데 「이야기현현기경」은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모조리 읽어버리고 말았다. 아마도 난해한 「현현기경」을 이처럼 읽기 쉽고, 재미나게 엮은 책은 지금까지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영원히 나오기 힘들 것이라 확신한다."
<양형모 기자/ryuhon@baduk.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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