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은 지남규의 생활에 큰영향을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렇다해서 전혀 무관한 것은 아니다. 10월2일 지남규가 사는 읍내에서는 마을 회의가 소집된다. 안건은 동학을 대비한 회의다. 동학은 관군의 입장에서 동적(東賊)이라 하고 있고 여타 향촌 자료에도 동적, 동비라는 기록이 다수인 것을 볼 때 관만이 아니라 대민관계에서도 일정부분 호평(?)을 받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안중근 의사도 청년시절 황해도에서 동학을 토벌한 공로(?)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을 볼 때 더욱 그렇다.

10월1일. 맑다가 비.
반나절 바둑을 두었다. 신시경에 비가 오기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검었다. 며칠 후가 좌수의 환갑이라 30냥과 선물을 조금 보냈다. 밤에 주막에가 주모와 정담을 나누고 돌아왔다.

(晴晩雨 半日圍碁 至申時始雨 乾坤陰鬱 座首廻甲數日後云故 三十兩生物買得次送 夜酒幕母精談上來)

10월2일. 맑음.
일찍 일어나 세면을 마쳤는데 이장이 와 동학 일로 마을모임을 갖기로 했으니 참석하라 하기에 알았다 했다. 시국이 비상하다.

(晴 朝起盥洗後 洞任來見 今日對東鄕案通告矣  余可也 世上廻事 急拍也)

동학은 전북 충청도 일원의 문제만이 아니었던 듯하다. 동학은 경기 황해도 강원도 영서지방까지 큰 영향을 미쳐 이 지역 전체에 위수령이 발동되는 단계까지 이른다. 이런 상황에서 지남규의 생활도 일정부분 영향을 받는다.

동학의 기록 중에 바둑기록이 여러 건 있다. 대부분 준비작업 과정에 바둑을 핑계로 모여 사람들의 시선을 피하는 모습이다. 이 기록은 부여 선비 이복용(李復榮)이 쓴 일기 남유수록(南遊隨錄)으로 손화중이 금강 일대를 돌며 동지들을 찾는 대목으로, 칭병을 문안과 바둑 등을 핑계로 삼으며 여러 동지들에게 거사자금을 융통하는 모습이다. 기록의 손찬중이 바로 손화중(孫華仲, 1861-1895)이다.

(二十五日陽  書房洞尹生員來 孫贊仲來去 金錦東來畏寒閉戶今始出頭
衰病者事柰何主令要圍棋辭以神疲難任而去 曉丑時且暹生女)

'손화중'은 동학의 대접주로 정읍 나주 일대의 동학군을 모아 전봉준과 합세하여 논산 공주 방향으로 한양입성을 도모했던 동학의 가장 중요한 인물 중 한명이다. 남유수록의 바둑기록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몇 건 더 있다. 모두 동학교인을 심문한 공초기록으로 사전모의 과정에 바둑이 빈번하게 등장한다. 당시대 바둑의 유행이 어느 정도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자료라 하겠다.

동학은 오늘날 많은 연구와 필자들의 노력으로 '성역'으로 완성이 되었지만 과거에는 우호적인 시각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미륵불사상에 편승했던 고창동학이나, 대원군과의 정치적 결탁을 마다치 않았던 행보, 그리고 공주 우금치 전투에서의 시대착오적인 지휘부의 작전과 선무활동은 동학의 치부(?)의 하나로 남은 아쉬움이다. 그러나 봉건시대 암흑의 2천년을 뚫고 상류층이 아닌 하층 민초들의 자각 속에 갑오농민운동의 개혁의 바람이 불었던 것은 놀라운 일이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