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20일. 맑음.
일꾼 6명을 얻어 들일을 했다. 술값으로 3냥을 썼다. 조금 먼 김좌수댁을 갔는데 동생이 따라와 잠시 대화를 하고 돌아와 오후에 동료들과 어구를 챙겨 강으로 가 고기를 잡아 술을 마셨다. 밤에 희설을 읽었다. 낙화유수라는 말이 참 멋지다. (晴 收收雇六名 酒行三兩 往遠洞金座首 同弟道來 陪話移時辭歸 晩諸僚出江邊 擧網得魚 醉飽而家 夜讀戱說 落花流水 眞善文也)

지남규는 바둑만큼이나 소설도 좋아한다. 밖에서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서도 잠을 자기 전 책 한권 읽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낙화유수'를 운운한 글을 보고 좋은 문장이다 말하고 있다. 정확한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금병매'에 등장하는 낙화유수 운운 그 문장 아닌지 싶다.
'금병매'에도 낙화유수가 나온다. 한문의 함축을 잘 살린 멋진 구절이다.

낙화는 뜻을 갖고 물을 따라가지만 유수는 낙화에게 무정하다. (落花有意隨流 流水無精變落花)

이 구절은 무송을 유혹하는 반금련을 풍자한 내용이지만 함의와 스펙트럼이 넓고 깊어 훗날 희설을 폄하하던 문사들도 즐겨 인용하는 명문이다. '금병매'가 왜 중국의 '사대기서'인지 가늠되는 장면이기도 하다.

지남규의 생활을 보면 한가지 특징이 있다. 술자리의 빈도수다. 지남규는 거의 날마다 술을 마신다.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고 술을 마시고 책을 읽는 등 술문화가 오늘의 그것과는 조금 다르다. 술과 바둑이 어우러진 사례는 너무도 많다. 필자가 수집한 천여 편의 바둑시 중 태반이 술과 바둑이 등장하는 것으로 볼 때, 술을 마시고 바둑을 두고 바둑을 두며 술을 마시는 것은 조선의 일상이었던 듯하다.

조선의 술문화는 고질병(?)이었던 듯하다. 조선사람들은 열살만 되면 술을 배웠고 남녀를 딱히 가리지도 않았던 듯하다. 이문건(李文建, 1494-1567)의 일기에 '열살난 손자가 술을 너무 마시고 주사가 심한 것이 흠이다' 걱정하는 대목이 나오는 것도 당시 분위기의 반영인 듯하다. 가을이기에 가을 이전의 봄과, 가을 이후의 겨울을 노래한 시 한 구절씩이 떠오른다. 성당시대 '노륜'과 조선인 '이세원'의 작품이다.

달은 몇번이나 나무를 비추었고

꽃은 몇번이나 사람을 만났나.

(月照何年樹 花逢幾遍人)

잎진 나무  바람소리 들리는 냇가에

옛날 친구 소식 물으니 물처럼 아득하다네.

 (落楓瑞各自喧  故人消息渺川原)

다시 가을이다.

이 가을 그냥 읊조리면 시가 된다.

낙화여

유수여.

그렇지 않으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