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을 앞두고 집주변을 청소하고 선산의 벌초를 하는 것은 전래(傳來)의 일이다. 조상의 덕을 기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후손들이 한자리에 모여  마음가짐을 다지는 장소로 추석은 유용했다. 물론 오늘날에 와서 추석이 고달픈 하루로 전락(?)한 것도 일정부분 사실이다. 지독한 교통지옥 그리고 개인 생활주변의 잡다한 스트레스 등이 그것이다. 그러나 지남규의 추석은 즐겁다.

8월8일. 맑음. 
1년 장사가 오늘만 같다면 좋겠다. 물건을 다시 들였다. 2백냥 이익을 보았다. 박초시댁, 동생댁, 좌수, 형리, 상개네 집 등에 쌀과 마른반찬, 팔포어, 북어, 술 등을 각기 선물로 보냈다.

8월9일. 맑음. 
장사를 처와 부리는 사람에게 맡기고 아우와 선산을 다녀왔다. 박초시댁 문중묘가 근방에 있어 박초시를 그곳에서 만났다. 묘 근방에서 술 한잔을 나눠 마셨다. 박초시가 문중묘를 자랑했다. 사방이 사신으로 두루 감싸 안아 전후좌우가 비거나 삐치지 않았으니 명당(四合周顧 言左右前後無空缺 明堂也)이란 것이다. 과연 낙토(樂土)다.

지남규는 박초시의 주장에 동조를 한다. 주변을 돌아보니 사방이 둘러싸여(四合周顧) 운운은 '청오경(靑烏經)'에 나오는 말이다. 청오경은 동양풍수의 근간이 된 지리서로 환경과 인간에 대한 고려가 깊은 책으로 조선과거의 하나인 '잡과'의 중요 과목이기도 했다.

물론 유몽인 같은 사람은 청오경 같은 부류의 책을 강력히 부정하기도 했다. 유몽인은 '산천의 조화가 깨진 이유가 우임금의 치수에 있다고 한다. 지금 무엇으로 길흉을 판단할 거냐며 청오경이나 금랑경은 지엽말단에 매달린 믿을 수 없는 말(今者山川之位 失其天造於何卞其凶 所謂 靑烏 錦襄之說者 皆治其緖 不足信也)이라 한다. 그러나 풍수설은 이런 시각에도 불구하고 조선시대를 관통하며 맹위를 떨친 것도 사실이다.

지남규는 박초시 문중묘의 풍수(風水)를 보고 낙토(樂土)라고 한다. '낙토'는 승지(勝地), 무릉도원, 유토피아, 천당 등과 비슷한 용어로 '시경(詩經)'이 출처다. 시경은 영원히 울지 않는 곳이 낙토라고 한다.

너를 두고 간다.

낙토 찾아간다.

낙토

낙토

그곳에 나는 살리.

(逝將去女  適彼樂土 樂土 樂土 爰得我所)

-시경 위풍(衛風)

시경은 낙토에 가면 영원히 울지 않을 것(誰之不永號)이라 했다. 강압적 폭정과 약탈적 세금독촉을 받지 않는 세상이 울지 않는 곳이라 한다. 사시사철 꽃피고 새가 울며 생사의 걱정과 생활고 없는 유토피아와는 조금 다르지만 사람이 죽어 누운 땅을 낙토라 말하는 지남규이 발언이 이해 안가는 것은 아니다.

지남규는 상대적으로 초라(?)한 집안의 선산을 말하지 못하고 박초시 선산의 풍수에 도취되어 추석을 맞고 있다. 산에는 시원한 바람이 불고 들판에는 오곡이 익는다. 큰달이 뜨는 대보름 추석에 바둑대회가 없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