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이 바다를 흘러보지 않았다면 물이라 하기 어렵고, 무산(巫山)을 휘감아보지 않은 구름은 구름이 아니라 했다. 떨어진 낙엽을 보고 떨어지는 이유를 묻는다면 반은 가을 탓이고 반은 묻는 사람 탓이라 할 것이다. 무덥던 여름날도 가을의 찬물 한 바가지 덮어쓰고 나면 후덥지근하던 기온은 간데없고 따가운 가을햇살에 들볶이는 가을나락이 고개를 숙인다. 그렇게 가을이 왔다. 지남규의 가을도 여전히 유현(幽微)이다.

8월6일. 가을햇살이 따갑다(秋光裂火)
대목이어서 바쁘다. 50냥 이익을 보았다. 아이들 옷감을 한감씩 끊고 담배 술 고기값으로 5냥을 썼다. 늦게 박초시와 바둑을 두었다. 박초시가 바둑에 백을 알고 흑을 지키면 무탈하다 말했다. 과연 그러하다.

지남규는 박초시의 말을 들어 백을 알고 흑을 움직이면 무탈(知其白 守其黑 無事也)하다고 한다. 이 말의 출처는 노자 '도덕경'이다. 도덕경 28장이다.

-知其白 守其黑 爲天下式.

노자는 현현기경에 '노자동미설'이란 바둑론을 남긴 사람이다. 도덕경을 지은 '노자'라는 인물을 의심하는 학계의 시각까지 있는 상황에서 현현기경에 출현하는 '노자'를 묻는 질문은 허망(?)한 일이다. 어쨌든 도덕경의 저 구절은 궁금하다. 도대체 저 문구는 무슨 뜻일까?  아래는 도덕경을 '국역' 또는 '해설' 했다는 한중의 전문가들의 번역이다. 하나하나 찾아보았다.

(성현영) 백색을 알고 흑색을 알면 천하의 본이 된다.

(김용옥) 밝음을 알면서 그 어둠을 지키면 하늘아래 모범이 된다.

(김형효) 아는 것은 흰것과 통하고 지키는 것은 검은것과 통한다.

(장기근) 밝게 알아 혼돈하고 유현한 도를 지키면 천하의 모범이다.

한자 열 자에 불과한  저 문장을 설명하는 네 분의 말씀이 이해가 되시나? 과문한 필자는 도무지 이해불가다. 하여 필자만의 생각으로 다음과 같이 이해하고 넘어기기로 했다.
식(式)은 점문(占文)으로, 성인이 세상을 만들던 천지공사의 신화와 관계 있는 문자로, 이치(방법)로 이해된다.

- 백의 움직임을 알고 흑을 지키는 것이 (세상살이의) 방법이다.

도가(道家)에는 예로부터 바둑을 유현한 맛이 있다(碁家之幽微也) 하는 식의 바둑친화적인  문화가 있었다. 도덕경의 저 문장을 바둑을 통해 해석한다 해서 지나친 견강부회일까. 도덕경은 한글로 옮겨놓는 즉시 도덕경이 아닌란 생각이 든다. 원문의 맛과 울림의 느낌만이 도덕경 감상의 최선(?)으로 보인다. 울림과 느낌의 층층구조로 쓰여진 책을  맹인모상(盲人摸象) 한다 해서 그것이 도덕경일 수는 없다. 물론 이 생각은 허접한 필자의 생각이다.

다시 책읽기 좋은 계절이다.  이 계절에 좋은책 한권씩 읽기를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