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남규는 기본적으로 순하고 나름 덕인이라 할 수 있다. 비록 10여개월의 일기지만 그 속에 담긴 지남규의 따뜻한 인간성은 충분히 느껴진다. 그러나 지남규는 자신의 유일한 취미인 바둑에 한해서는 누구에게도 지고 싶은 마음이 없는 나름 승부사기도 하다.

지남규는 '포천 서(徐)'의 대국요청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김을 기다리다가 이상한 장면을 목격한다. 시장 한쪽에서 김과 서가 싸우는 모습을 본 것이다.

6월23일. 흐리고 흙비가 내렸다(陰且土雨).
시장에서 김이 서와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 서가 김의 옷소매를 잡고 죽일 듯 노려보며 욕을 했다. 니가 도박을 아느냐, 바둑을 아느냐, 너는 여우새끼다.

이 장면을 보고 나는 살이 떨리고 간이 오그라들며 마음이 찢어지는 듯했다.

(場市金徐相鬪 徐甚金袖 弑目而罵曰 爾何博乎 爾何碁乎 汝狐種子 當是時 余肉跳膽悼 心如裂當是時 余肉跳膽悼 心如裂)

지남규는 우연히 김과 서가 싸우는 모습을 본다. 말이 싸우는 것이지 일방적으로 김이 당하는 장면이다. 서는 김을 쥐잡 듯한다. 이 장면을 본 지남규는 자신이 당하기라도 한 듯 분노하고 아파한다. 서는 김을 보고 니가 도박을 아느냐 바둑을 아느냐 묻는다. 서의 범상치 않은 포스(?)가 느껴지는 장면이기도 하다.

6월24일. 흐림.
모처럼 50냥 이익을 보았다. 잡화를 들여 놓았다. 200냥이 들었다. 김이 왔다. 서와의 대국을 묻기에 한집에 열냥이면 하겠다고 했다. 본때를 보여주리라.

내 의사를 확인하고 김이 돌아갔다. 김에게 무슨 곡절이 있는 듯하다.

지남규는 흥분상태에서 도박에 한발을 들여 놓는다. 김은 도박장으로 사람을 꾀어들이는 주름이(바람잡이)다. 지남규가 도박사들의 설계에 빠져드는 위험천만한 장면이다. 도박은 조선 역사를 관통하는 큰 사회문제다. 조선실록은 물론 수많은 개인기록 속에 조선의 도박은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그중 가장 압권은 이학규의 전언이다. 이학규는 도박꾼들의 몰골을 기록한다. 

평소 인색하기로 소문난 사람도 도박장에서는 사람이 달라진다. 주변 사람들이 째째한 사람으로 볼까봐 전대를 쩔렁거리며 좌우를 돌아본다. 추운날 눈보라도 개의치 않고 더운날 촛불이 새벽을 밝힐 때까지 멈추지 않는다. (彼荀日入馬弔之場 惟恐籌侶之議我慳恢有失豪俠之望 於是乎鼓襄錚然場示左右 甚至祁寒之日 不問風雪 夏至之夜 明火燭達朝)

헝클어진 머리와 충혈된 눈. 설사 조금 돈을 땄다 해도 대분분 등불값 술값 밥값으로 나가고 개평까지 뜯기며 개털된다. 그래도 도박을 끊지 못하는 것은 소갈증 같은 것이다. (蓬首逅面 眼瞳紅腫 縱有些少慊得者  太半爲膏火酒食之費 及幇閑人所壤去矣 每見多失錢財者 正如病渴之夫)

-마조론

이학규의 이 말은 오늘날의 도박현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 시대는 변해도 인간살이의 속성은 변하지 않은 탓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