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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기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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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모기의 꿈
2002-10-15     프린트스크랩
'주 7일 휴무제’는 편하긴 해도 역시 좀 따분하다. 아침 나절엔 컴퓨터로 통신 바둑을 즐기는 게 변덕수의 유일한 낙이었는데, 한 대 뿐인 컴퓨터가 부상을 입고 병원에 실려간 뒤부터 할 일이 없어졌다. 성희룡 등 대국 상대들은 오후나 되야 나타날 것이다. 변덕수는 하릴없이 전날 밤 모기에게 뜯긴 다리와 엉덩짝 쪽으로 손을 가져간다. 긁을 수록 더 가렵다. 그러고 보니 어제처럼 모기로부터 시달림을 받은 날도 없었던 것 같다. 한 여름 다 지나서 웬 모기들이 그렇게 극성일까. 도처에 벌겋게 솟아오른 상처를 바라보면서 그는 혀를 끌끌 찼다.

이를 박박 갈면서 두 시간을 뒤져 찾아낸 살충제로 모기떼는 퇴치됐고, 변덕수는 새벽 3시가 넘어서야 잠을 이룰 수 있었다. 아침 청소 때 쓰레받기 위에 굳은 자세로 죽어있던 서 너 마리 모기의 유해들. 죽어 마땅한 놈들이었지만 자신이 살생을 저질렀다는 사실이 찜찜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어쨌거나 자신과 하룻밤이나마 피를 나누었던 혈족이 아닌가. 변덕수는 언젠가 읽었던 법정 스님 수상록의 한 대목을 떠올리며 피식 웃었다.

땅거미가 지고 사위가 어두워지자 시아버지 모기가 외출을 준비한다. 문 밖으로 발을 내디디면서 그는 며느리 모기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야, 내 저녁 밥은 짓지 말거라.”
“무슨 잔치 집에라도 가시는지요, 아버님.”
시아버지 모기는 먼 산을 바라보면서 힘없이 중얼거렸다.
“마음씨 좋은 사람을 만나면 저녁 한 상 잘 얻어먹겠지. 하지만 모진 놈을 만난다면 맞아죽는 수 밖에 없지 않겠느냐. 어느 쪽이든 오늘 저녁 내 밥 준비는 필요 없겠다.”

변덕수가 상념에 빠져있는 사이 기원 출입문이 조용히 열린다. 구경만(具敬晩) 선생이었다. 50대 중반의 노신사 구경만 선생은 인격으로나 학식으로나 존경할 만한 어른이다. 만방기원 멤버들의 인생 상담역도 종종 맡는다. 소규모 건설업체를 경영해 먹고 살 만큼 돈을 벌었지만, 뜻한 바 있어 사업을 접은 뒤 10년 가까이 기원을 직장 삼아 출근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의 정확한 기력(棋力)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 누구도 구 선생이 대국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허구헌 날, 줄창, 애오라지 그는 남의 바둑을 구경만 한다.

구경만 선생의 시선이 변덕수의 손을 따라 그의 털 수북한 다리 위에 꽂혔다. 하도 긁어대서 시뻘개진 다리. 구선생은 짐작이 간다는 듯 빙그레 웃더니 말한다. “미스터 변이 모기들한테 좋은 일 많이 했군. 사람을 무는 모기는 모조리 암컷 뿐이야. 여성들한테 폭발적으로 인기가 있는 걸 보니 장가들 날이 머지 않은 모양이네.”

그는 모기에 대해서도 엄청난 지식을 갖고 있었다. 인류의 역사가 고작 250만년 남짓인데 지구 상에 모기가 처음 등장한 것은 2억년 전으로 추정된다는 것, 모기가 사람 또는 동물의 피부에 한 번 빨대를 꽂으면 최고 90초 동안 자기 몸 크기의 2, 3배에 달하는 피를 빨아먹는다는 것, 수컷 모기의 수명이 1주일에 불과한데 비해 암컷은 최고 6개월까지 생존한다는 것. 지구상 모기의 종류는 무려 2500종이나 된다는 것….

그러더니 구경만 선생은 조금은 엉뚱한 얘기를 끄집어냈다. 지난 여름 무더위가 극성을 부리던 어느 날 겪은 일이라고 했다. 자택의 그리 넓지 않은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었는데, 모기 한 마리가 앵앵거리며 달려들더란다. “별로 잽싸지도 않은 게, 좀 영양실조 같이 보이더라구. 처음엔 신문지 몽둥이라도 만들어 쳐 죽이려고 했는데, 웬지 좀 불쌍한 생각이 들어 그냥 놔 두었지.”

하지만 방심하던 구경만 선생은 기어이 팔목 부근을 한 방 물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붉게 솟아오르면서 가려움증이 엄습하자 선생은 불쑥 기분이 상하더란다. 그래도 제 목숨을 아깝게 여겨 먼저 공격하지 않았었는데... 그는 이 배은망덕한 모기를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 하지만 그 일타가 빗맞으면서 모기는 한쪽 날개 쭉지가 떨어져 나갔을 뿐 목숨은 붙어 있었다.

구 선생은 내친 김에 사형을 집행하기 위해 한쪽 손을 높이 치켜들었다. 바로 그 순간에, 아 글쎄 모기가 말을 하더란다. 그야 말로 모기만 한 소리로. 변덕수는 그의 말을 제지하는 대신 입가에 미소를 머금은 채 구 선생의 다음 이야기를 기다렸다. 팔목의 가려움증이 극에 달해있던 구경만 선생은, 눈 가에 눈물까지 글썽이던 모기의 애절한 호소를 들었다. 지구 역사상 최초의 인간과 모기 사이의 단독 회담이었다.

“만물의 영장님, 님이 저같이 하찮은 미물의 목숨을 불쌍히 여겨 살려두셨던 걸 저는 알고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걸 안다는 녀석이 내 피를 빨았다구? 아무리 미미한 곤충이라지만 괘씸해서 더 이상은 살려 둘 수 없다.”
“영장님, 하지만 저희 모기들에겐 동물의 피가 주식(主食)입니다. 영양 보충을 안하면 죽는 것은 사람이나 우리 모기들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렇다고 하필 내 피같은…아니 진짜로 피를 빨다니 용서할 수 없어.”
“이 방안에 영장님과 저 외에 누가 또 있습니까. 저로선 영장님의 피를 빨아먹지 못하면 살지 못합니다. 아무 것도 못 먹고 굶어죽으나, 식사 도중 영장님의 손바닥에 맞아서 죽으나 죽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가만히 앉아 굶어죽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변덕수는 “에이, 선생님 소설도 참 잘쓰시네요”하며 껄껄거렸지만 그는 웃지 않았다. 구경만 선생과의 대화는 그걸로 중단됐다. 점심 시간을 맞아 근처 샐러리맨 손님들이 기원에 밀어닥친 것이다. 변덕수가 식사를 마치고 돌아오니 성희룡이 도착해 있었다. “음, 저 웬수를 오늘은 기필코.” 둘은 누가 먼저라기 무섭게 바둑판을 경계삼아 마주 앉았다. 두 사람은 요즘 왕년의 오청원과 기다니 뺨칠 만큼 뜨거운 라이벌 혈전을 계속 중이다.

바둑은 종반으로 접어들었다. 오늘따라 흑을 쥔 변덕수에게서 변덕스런 떡수가 속출한다. 이 바둑 역시 아무리 살펴봐도 집이 모자란다. [장면도] 성희룡이 막 △에 백 돌을 내려 친 장면. 좌우의 흑을 연결하려면 [1도] 흑1 이지만 4까지 아랫쪽 흑 석점이 들어가게 된다면 승패는 보나마나가 된다. 그거야말로 굶어죽는 꼴인데, 그럴바엔 장렬히 싸워나봐야 하지 않겠는가..


결심을 굳힌 변덕수는 두 눈 딱 감고 [2도] 흑1로 이었다. 하지만 그 순간 백4까지 좌우가 양단됐다. 백 8을 맞는 순간 눈 앞이 아찔하다. 우하귀 흑도 백A때 흑B면 백C로 빈사 상태에 처한다. 흑D의 건너붙임엔 백E로 받아 그만이다. 흑은 이 후에도 10여수를 더 발버둥쳤으나 양쪽 대마를 모두 구출할 묘수는 없었다. 굶어죽지 않으려다가 기어이 맞아 죽은 셈이었다.

이것으로 변덕수의 4연패. 요즘들어 성희룡에 대한 승률이 매우 좋지 않다. 덕수는 씁쓸한 기분으로 일어섰다. 기원 한 쪽에선 김치 찌개 냄비를 놓고 둘러앉아 몇 명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오늘도 오만방 원장의 ‘박학 다식’이 풀 가동중이다. 동서양 철학을 주제로 종횡무진, 한창 박식함을 과시하던 오만방 원장이 화룡(畵龍)에 점정(點睛)하는 순간이었다. 오원장이 중학 교사인 제갈길을 향해 물었다.


“제선생, ‘모기의 꿈’이란 고사 들어봤소?”
“글쎄요. 처음 듣습니다만.”
“중국 전국시대 사상가 장자(莊子)가 어느 날 꿈 속에서 모기가 됐어요. 꿈을 깨고 생각하니 자신이 꿈속에서 모기가 된 것인지, 아니면 모기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지를 구분할 수 없었던 겁니다.”
“?”
“이거 무서운 철학이에요. 꿈이 현실인지, 현실이 꿈인지, 물아(物我)의 구별이 없는 만물일체의 경지에서 보면 꿈과 현실의 구분은 무의미하며 보이는 것은 만물의 변화에 불과할 뿐이란 얘기입니다. 허허 참.”

소주까지 몇 잔 걸친 오 원장은 그런 고사도 모르다니 한심하다는 듯 혀를 찼다. 그 때 숙적 변덕수를 연파해 기분이 썩 좋아있던 성희룡이 나섰다.
“장인 어른, 아니 참 원장님. 그거 모기가 아니라 혹시 나비 아닙니까?


“엉?”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고, 장자의 제물론편(齊物論篇)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원장님이 착각하신 것 같습니다.”
“아니 모기가 언제부터 나비로 바뀌었을까. 옛날엔 분명 모기였는데?”
“바뀐 게 아니라 원장님이 바꾸셨어요. 우하하.”

그 시간 구경만 선생은 조금 떨어진 곳에 혼자 앉아 석간 신문을 뒤적이고 있었다. 연패로 입맛이 썼던 변덕수는 구 선생 맞은 편 자리에 다가가 앉았다. 그리곤 정색을 하고 물었다.
“구 선생님, 아까 얘기 마저 끝내시지요. 그래 그 모기는 살려 주셨습니까, 원래 생각하셨던 대로 내리쳐 죽이셨습니까?”
구경만 선생은 읽던 신문을 내려놓았다. 돋보기 안경 너머 변덕수의 얼굴을 지긋한 눈길로 응시하더니, 한 차례 빙긋 웃었다. 그 뿐이었다. 변덕수는 절실한 표정으로 대답을 기다렸지만, 선생은 가타부타 한 마디 말도 없이 어느 새 시선을 신문으로 옮겨간 채 다시는 고개를 들지 않았다.

변덕수는 다시 성희룡과 마주 앉았으나 도대체 바둑판이 낯설었다. 그리곤 온갖 상념이 머리를 어지럽혔다. 모기의 역사가 인류의 그것보다 훨씬 오래된다는데, 그렇다면 인류 등장 이전 모기는 사람의 피를 먹고싶어 어떻게 견뎠을까. 모기가 여러 사람의 피를 동시에 섭취했을 경우 모기 내장에서 서로 다른 혈액형들이 엉켜 응고되지는 않을까. 자기 몸의 2, 3배나 되는 피를 빨아먹는다는데 왜 그놈들은 과식으로 체하지도 않을까. 그나 저나 구경만 선생이 모기와 대화를 했다는 게 사실일까. 선생은 그 모기를 죽였을까, 살려 주었을까….

갈팡질팡하던 변덕수는 결국 성희룡에게 3연패를 추가한 뒤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기원 문을 나섰다. 맞아죽은 모기 처럼 얻어터진 지난 몇 시간의 나와, 모기를 박살내버렸던 간 밤의 나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나의 실체일까. 집에 들어와서도 한참을 헷갈리던 변덕수는 그날 밤 기어이 모기로 변한 꿈을 꾸었다. 그는 성희룡의 피를 배가 터지도록 포식했다. 잠에 빠져 고스란히 몸을 내 맡긴 녀석의 피 맛은 참으로 꿀 맛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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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1 |  2003-12-10 오후 7:1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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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디1 |  2003-12-10 오후 7:17: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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