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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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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뭉크의 절규처럼 (13)
2013-12-16 조회 8490    프린트스크랩
▲ 뭉크(Edvard Munch)의 '절규'

 

 


소녀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은 용인에 있었다. 호철도 한번쯤 들어봤을 만큼 정신병원으로서는 대명사처럼 쓰이는 역사와 권위를 자랑하는 병원이다. 산속에 자리 잡은 병원은 크기를 짐작하지 못할 만큼 넓은 대지에 여러 개의 병동이 서있었다. 삼천 명의 환자를 수용하고 있다는 병원은 믿을 수 없을 만큼 적막했다. 삼천 명은커녕 단 삼십 명의 환자도 있을 것 같지 않았다.

호철은 시원하게 분수를 뿜어내는 연못 옆 벤치에 앉아 주변을 돌아보았다.

정신병원이라면 쇠창살 창문이 있는 삭막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호철로서는 뜻밖이었다. 고전적인 병동 건물과 잘 꾸며진 정원수, 온갖 꽃들이 피어 있는 병원은 마치 고급 콘도에라도 온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주변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하고 있는 호철의 시선에 허겁지겁 걸어오는 의사가 보였다. 호철이 벤치에서 일어나자 의사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말을 건넸다.

“절 찾아오셨다고요?”

“한승준 선생님이십니까?”

“네. 맞습니다.”

40대로 보이는 의사는 이미 반쯤 벗겨진 대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을 손수건으로 훔치며 말을 이었다.

“죄송합니다. 환자 진료 때문에 좀 늦었습니다.”

“아닙니다. 오히려 제가 폐를 끼친 것 같아 죄송합니다.”

“경찰이라고 들었습니다만 무슨 일이신지...”

의사는 잔뜩 긴장한 표정이었다. 누구나 경찰이라고 소개하면 이런 표정을 짓는다. 이미지로 따진다면 썩 좋은 직업은 아니다.

“그렇게 긴장하실 것 없습니다. 사소한 문제입니다. 일단 앉아서 말씀 나누지요.”

의사가 벤치에 앉자 맞은편 벤치에 앉은 호철이 습관처럼 수첩과 볼펜을 꺼내며 말을 이었다.

“선생님께서 진료하신 환자에 대해서 몇가지 묻고 싶은 게 있습니다만.”

“환자라면 누구를...”

“이미 2년전쯤 퇴원한 환자라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이름이 유리애라고 합니다.”

“유리애요? 당연히 기억하지요. 지금도 6개월에 한번씩 진료를 받으러 옵니다.”

“아, 그렇군요.”

지금도 소녀가 치료를 받는다는 건 소녀의 이모도 말하지 않았다. 의사의 얼굴에서 긴장이 사라졌다. 자신의 환자에 대한 문제라면 오히려 의사 쪽에서 당당할 수 있다. 의사는 손으로 안경을 치켜세우며 말을 이었다.

“진료라고 해봐야 병의 진행에 대한 추적관찰과 상담 정도입니다만 그 환자에 대해서 뭘 알고싶으신지...”

“유리애 양의 상태를 알고 싶습니다. 현재는 물론이고 이곳에 입원해 있을 당시 어땠는지...”

“죄송합니다만 환자의 병에 대해서는 타인에게 누설이 금지돼 있습니다.”

의사의 말투는 지극히 사무적으로 변했다.

“의사의 환자 비밀보호 의무는 저도 알고 있습니다만...”

호철은 수첩에 두었던 시선을 의사에게 옮기며 말을 이었다.

“저는 지금 어떤 사건에 대한 참고인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물론 참고인은 선생님이십니다. 만약 필요하다면 영장을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영장이란 말에 의사의 얼굴이 굳어졌다. 영장을 가져온다면 정식 절차를 거치게 될 것이다. 어떤 경우든 좋을 리가 없다. 좀 전에 사무적이었던 의사의 말투가 다시 조심스러워졌다.

“도대체 무슨 사건인지...”

“그건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호철의 간결한 대답에 의사는 뭔가 위압감을 느꼈다. 의사는 손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훔치며 말을 이었다.
 
“유리애 양이 큰일을 당했다는 건 아시지요?”

“물론 알고 있습니다. 그 사건 때문에 실어증에 걸렸다고 들었습니다.”

“실어증은 유리애 양이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한 증상 중 하나일 뿐입니다. 그것 외에도 여러 증상으로 유리애 양의 정신 상태는 폭풍이 쓸고 간 황폐한 들판 같았어요. 제 개인적으로 너무 안타까운 환자였지요.”

“어떤 점에서 말씀하시는 건지...”

“천재였어요. 유리애 양은.”

“천재라고요?”

호철은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현대는 천재가 난무하는 시대다. 조금만 뭘 잘해도 천재가 된다. 바둑의 천재, 수학의 천재, 컴퓨터의 천재, 바이올린의 천재, 심지어는 사기꾼에게도 천재라는 수식어를 아낌없이 붙여주는 세상이다. 도대체 소녀는 무엇의 천재인가.

“유리애 양은 보통 사람들하고 뭔가 남다른 게 있었어요. 자신의 능력을 표현을 안해서 보통사람들은 잘 알지 못했지만 전 알 수 있었죠.”

“어떤 능력이죠?”

“뭐든지 머리 속에 집어넣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여기 입원하고 6개월쯤 지나서 이모라는 분이 노트북을 사왔습니다. 유리애 양이 부탁했다고 하더군요. 제가 볼 때 유리애 양은 그때 당시 컴퓨터를 전혀 하지 못한 상태였어요. 컨트롤과 알트의 사용법도 몰랐으니까요. 제가 가르쳐 주겠다고 하니까 거절하더군요. 그렇게 혼자 컴퓨터를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한달 정도 지나서 저한테 USB 하나를 주더군요. 그걸 열어보고 깜짝 놀랐어요. USB 안에는 병동 환자들의 행동 루트가 프로그래밍 돼 있었습니다. 정확도 100 퍼센트에 환자 성향에 따른 변수 루트까지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가슴이 서늘했어요. 도대체 어느 정도 머리인지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지능검사를 해보기로 한 거죠. 결과는 상상 이상이엇습니다. 유리애 양은 한시간 만에 풀어야할 문제를 이십분 만에 풀었어요. 건성으로 보였어요. 그런데 결과는 178이었습니다. 아이큐 178."

호철은 의사의 입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아이큐 178. 그것이 도대체 어느 정도인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호철은 자신의 아이큐가 얼마인지 생각해보았다. 중학교때 120 정도 나왔다. 그것도 대단하다고 했었다. 그런데 178이면 어느 정도인가. 그것을 의사가 친절하게 대답해준다.

“아이큐 148 이상이면 멘사클럽에 가입할 수 있는 자격이 주어집니다. 멘사클럽이라고 아시지요? 천재들의 집단 말이죠. 거기서도 아이큐 178이면 상위 클래스입니다. 그것도 대충 건성으로 한 테스트에서요. 만약…정상인이라면 대단한 사람이 됐을 겁니다.”

의사는 안타까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의사는 전혀 알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안타까움보다 호철의 안타까움이 몇 배 더 크다는 것을.

“그 말씀은 유리애 양이 정상인이 될 수 없다는 뜻입니까?”

“유감스럽습니다만 완치는 불가능합니다.”

호철의 말에 의사는 안경을 벗어 손수건으로 닦으며 답했다.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유리애 양은 여러가지 정신적 병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실어증이나 대인기피증, 의욕상실, 무기력 등이죠. 이런 건 실어증처럼 시간이 흐르면 완치가 가능합니다. 하지만 다른 한가지 때문에 완치 가능한 증상들도 불가능하게 만듭니다. 실감증이죠.”

“감정을 잃어버린 거 말씀이십니까?”

호철의 말에 의사는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알고 계셨군요.”

의사의 말에 호철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경찰이 알고 왔다면 오히려 말하기가 편하다고 생각하는 의사다.

“어떻게 아셨는지 모르지만 유리애 양은 감정을 잃어버렸어요. 기쁨과 슬픔, 분노, 즐거움 같은 걸 느낄 수 없는 거죠. 즉 인간이 살아가는 에너지원과 목적을 상실해버린 겁니다. 즐거움이 없으니 먹는 것도 보는 것도 누굴 만나는 것도 다 심드렁합니다. 기쁨이 없으니 인생의 목적도 사랑도 필요없는 겁니다. 그런 포지티브 이모션이 없으니 당연히 네가티브 이모션도 없습니다. 다시 말씀드려 즐거움과 기쁨이 없으니까 반대로 슬픔과 분노도 느끼지 못하는 거죠. 이런 무감정이 유리애 양이 가지고 있는 다른 정신적 병증을 치유하지 못하게 하는 겁니다. 당연히 실감증 자체도 치유가 불가능합니다.”

의사의 말은 우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절간같이 적막한 병원이 갑자기 시끌벅적해졌다. 돌아보자 병동에서 환자복을 입은 환자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환자 산책시간입니다.”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서로 웃고 떠들면서 걷는 환자들을 보며 의사가 말했다.

“우리한테는 별것 아닌 산책도 저 사람들한테는 조그만 기쁨이지요. 저런 조그만 기쁨마저도 유리애 양은 느끼지 못하지만 말입니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곁들여 말씀드리자면...”

의사는 시선을 호철에게 옮기며 말을 이었다.

“유리애 양의 실감증은 사건의 충격으로 단번에 생긴 게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아무리 정신적 충격이 크다고 하더라도 감정을 한번에 그렇게 잃어버릴 수는 없습니다. 아마 어렸을 때부터 그런 증상이 있었을 겁니다. 완전히 감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좀 무디다는 거죠. 사람은 나이가 어릴수록 감정 전달이 빠릅니다. 기쁜 건 금방 기뻐하죠. 기분이 나쁘면 금방 우는 걸로 감정을 표현합니다. 그런데 유리애 양은 그게 무뎠을 겁니다. 기뻐도 뇌에서 빠르게 감지를 못하는 겁니다. 기쁘다고 표현을 하려고 할 때는 이미 순간이 지나가 버리니까 기쁜 표정을 짓지 못하게 됩니다. 부모는 어린애가 그런 걸 보고 침착하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실제로 유리애 양의 이모도 그렇게 말을 했어요. 어릴 때부터 나이답지 않게 어른스러웠다고요. 그렇게 무딘 감정이 그 사건의 충격으로 그나마 완전히 상실 돼버린 겁니다.”

“혹시...”

묵묵히 듣고만 있던 호철이 입을 열었다. 잠시 뜸을 들이는 호철에게서 조심스러움이 느껴졌다. 의사가 호철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혹시 유리애 양의 정신적 병증이 법적 효력이 있습니까?”

돌려서 말하는 호철이지만 의사는 그 질문이 얼마나 예민한 문제인지 금방 알아차렸다. 의사는 시선을 연못으로 옮겼다. 어느 순간 분수는 물을 뿜는 걸 멈추고 있었다. 넓은 연못에는 팔뚝만한 잉어들이 여유롭게 유영을 즐기고 있었다.

“이어령 비어령이지요.”

의사가 호철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정신병이란 건.”

이어령비어령(耳懸鈴鼻懸鈴).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의사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이건 만약의 경우입니다만 혹시 법정에 출두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물론 의사로서 참고인 증언입니다. 해주실 수 있습니까?”

“기꺼이 하지요.”

의사는 어떤 사건이지 묻지도 않고 대답했다. 사건이 뭐든 소녀에게 유리한 증언을 하겠다는 의지가 담겨져 있었다. 호철의 가슴에 매달린 묵직한 납덩이 하나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다.

말을 마치고 호철이 일어나자 의사는 뭔가 생각난 듯 호철을 기다리게 했다. 한참 후 의사는 납작한 나무상자를 가져왔다. 상자는 가로 세로가 거의 1미터 정도 크기였다. 우편물인 듯 보이는 상자는 주소가 영어로 써있었다. 발신지가 노르웨이 오슬로였다. 수취인에는 의사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유리애 양을 만나면 전해주십시요.”

“이게 뭡니까?”

“감정이 없는 유리애 양이지만 그나마 좋아하는 겁니다. 사실 우리 입장에서는 좋아한다는 표현이 맞지만 유리애양 입장에서는 그저 익숙하고 친근한 정도일 겁니다. 어쨌든 제가 주는 선물이라고 전해주십시요. 다음달 진료하는 날에 주려고 했지만 어쩐지 그날이 올 것 같지 않아서 부탁드리는 겁니다.”

‘그날’이 올 것 같지 않다는 의사의 말이 호철의 가슴을 아프게 찔렀다.

 

어쨌든 호철의 머리 속에 가득 차있던 ‘왜’라는 궁금증이 풀렸다. 소녀는 강도에게 살해당한 부모로 인해 마음속 깊은 곳에 자신도 모르게 폭력성이 길러졌을 것이다. 그것은 실감증이란 병으로 조금의 죄의식이나 두려움도 없이 겉으로 표출된다. 그나마 죽어도 싼 인간들을 고른 건 잠재된 도덕성이나 자기 위안 같은 건지도 모른다. 마지막으로 궁금한 건 왜 나에게 범인이라는 걸 고백했느냐는 것이다. 그건 소녀 스스로 밝히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단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우연이 이유라면 이유일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민규에게서 연락이 왔다. 녀석의 목소리는 잔뜩 들떠 있었다.

“형, 드디어 찾아냈어. 당나귀 싸이트 말이야. 그 놈 정말 보통이 아니더라구. 가짜 IP를 70만 개나 돌렸어. 그걸 보름 만에 찾아낸 건 기적이나 다름없는 거야. 역시 난 천재야. 그렇지 않아?”

“네 놈 천재라는 건 내가 일찌감치 인정했잖아. 그만 나불대고 본론이나 말해. IP주소 어디야?”

“놀라지 마. 형 동네야. 상계동.”

너무나 당연해서 놀랄 일도 아니다. 오히려 상계동이 아니라면 놀랐을 것이다. 핸드폰 너머로 잔뜩 흥분한 민규의 말이 이어졌다.

“자세한 주소를 알려면 하루 이틀 더 걸릴 거야.”

“그래. 수고했어. 이 사실 누가 또 알고 있어?”

“누가 알겠어? 찾아내자마자 형한테 폰 때리는 건데.”

“이 사실 말이야. 당분간 아무한테 말하지 마. 비밀이란 말이야. 알겠어?”

“형이 독식하려고?”

“그래. 나도 공 좀 세워보자.”

“웬일이야. 형은 그런 거에 관심 없는 줄 알았는데.”

“암튼 입조심해.”

“알았어. 이번 사건 끝나면 진짜 한턱 쏘는 거야.”

“알았어.”

민규는 당나귀 싸이트의 상세 주소를 알아내기 전에 연쇄살인범의 체포 소식을 알게 될 것이다. 연쇄살인범이 호철의 아파트 바로 앞 동에 산다는 사실을 알고 호들갑을 떠는 녀석의 얼굴이 눈에 선했다.

 

“웬일이어요”

아파트 현관문을 연 소녀가 특유의 무표정한 얼굴로 말했다.

“전해줄 것이 있어서 말이야.”

호철이 의사가 준 커다란 나무상자를 보여주자 소녀는 물끄러미 그것을 바라보았다. 무엇인지 묻지도 않는 소녀다. 질문 없는 대답을 호철이 한다.

“리애가 입원했던 정신병원에 갔어. 한승준 의사가 리애한테 전해달라더군. 뭔지는 나도 몰라.”

“들어오세요.”

나무상자는 뚜껑의 틈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정교하게 밀봉이 돼 있었다. 소녀가 미세한 뚜껑의 틈에 칼을 밀어넣자 아주 작은 못으로 결합된 뚜껑이 열렸다. 여자들이 쉽게 할수 없는 작업을 소녀는 아주 쉽게 해냈다. 능숙하면서도 정교한 솜씨다.

나무상자 안에는 솜 같은 완충제가 가득 들어 있었다. 완충제를 들어내자 내용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급액자에 들어 있는 그림이었다.

 “뭉크의 절규여요.”

호철도 한번쯤 본 적이 있는 그림이다. 강렬한 색체와 기형적인 그림이 인상적이다. 하늘은 붉은 노을로 물들어 있고 다리 밑에는 노을과 대비되는 푸른색 물줄기가 회오리 치고 있다. 다리 위에 해골같이 생긴 남자가 얼굴을 감싸고 비명을 지르는 그림이다. 호철로서는 썩 호감이 가는 그림이 아니었다.

그림을 유심히 바라본 소녀가 입을 열었다.

“이 그림은 뭉크 탄생 15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서 오슬로의 뭉크미술관에서 특별히 제작한 모작이여요. 원작하고 똑같은 크기에 화법도 원작처럼 템페라 화법으로 그렸어요. 미묘한 색채와 아주 섬세한 부분까지 원작하고 똑같아요. 뭉크미술관에서 150점만 한정 제작한 거여요.”

“한승준 선생님이 귀중한 걸 선물했군.”

호철의 말에는 소녀에게서 고맙다는 말이라도 끄집어내려는 의도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소녀는 끝내 그런 말은 입밖에 내지 않았다. 역시 그런 걸 모르는 소녀다.

“어디 걸 거지? 내가 걸어줄게.”

호철의 말에 소녀는 소파의 맞은편을 바라보았다. 호철이 망치와 못을 찾아서 소파 맞은편 벽에 그림을 걸었다. 벽에 걸린 그림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녀가 문득 입을 열었다.

“사건은 어떻게 됐어요”

“사건?”

소녀의 느닷없는 말에 깜짝 놀라 앵무새처럼 말을 따라하는 호철이다.

“집구경할 때 말했어요. 사건이 생겼다면서 급히 나갔어요.”

호철은 소녀를 바라보았다. 두 사람의 눈빛이 허공에서 부딪쳤다. 무표정한 소녀의 눈과 복잡한 심정이 담긴 호철의 눈이다. 가증스럽기 그지 없다. 당장이라고 소녀의 손에 수갑을 채우고 싶은 심정이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 소녀에 대한 연민이 스멀스멀 그러한 감정들을 감싸고 있었다.

“연쇄살인이야.”

“연쇄살인이여요”

“여러 사람을 죽였어.”

“여러 사람을 죽였어요”

“그래. 여러 사람. 하지만 이제 끝이야.”

호철은 소녀의 눈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곧 잡힐 거야. 범인은.”

무표정하게 호철의 눈을 바라보던 소녀의 시선이 그림 쪽으로 옮겨졌다. 잠시 그림을 바라보던 소녀가 입을 열었다.

“바둑 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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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박고래 |  2013-12-20 오전 12:25: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재미나게 읽어습니다 다음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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