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준석은 의사 앞에 죄인처럼 고개를 떨구고 앉았다. 미향이 방뇨를 한 다음날 눈을 뜨자마자 병원을 찿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비로소 느낀 것이다.
“지난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선생님...”
“괜찮습니다. 제가 선생의 입장이었어도 그랬을 겁니다. 42살에 치매라면 쉽게 받아들일 수가 없지요.”
준석은 고개를 떨어뜨린 채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제...아내...미향이...조선족입니다. 중국에서 왔습니다. 26살에...집안을 살리겠다고...팔리듯이 온 여잡니다. 첫남편한테...죽도록 맞고 헤어지고 나서...저란 놈 만났습니다. 저한테 시집와서도 고생만 한 여잡니다. 그런데 저 나이에 치매라니...”
준석은 고개를 들었다. 촉촉하게 젖은 눈이 빨갛게 충혈이 돼 있었다.
“선생님, 차라리 암이라고 해주십시오. 암이라면 죽을 때 죽더라도 수술이라도 해볼 수 있지 않습니까. 부탁입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선생님, 오진이라고...암인데 오진했다고...그렇게...그렇게 말씀해주십시오.”
준석은 기어코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한번 터진 눈물은 막을 수가 없었다. 남자의 울음은 슬프다. 소리 없이 온몸으로 울어서 섧다. 참으려고 해서 더욱 애잔하다.
준석의 오열을 보는 의사도 가슴이 아려왔다. 의사란 처지가 아니라면 같이 오열을 했을 것이다. 한참동안 준석의 오열을 착잡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의사는 자신의 손수건을 말없이 준석에게 내밀었다. 준석은 의사의 손수건으로 차마 자신의 눈물을 닦을 수 없는지 손등으로 얼굴을 훔쳤다.
“죄송합니다...”
“아닙니다...오히려 제가...의사로서 아무것도 해드릴 수 없는 제가 죄송하군요.”
의사는 잠기는 목을 헛기침으로 추스르고 말을 이었다.
“앞으로 많이 힘드실 겁니다. 이제 합병증도 나타날 테고...”
“합병증이라면...”
합병증이란 말에 준석은 번뜩 눈에 힘이 들어갔다.
“치매는 일반인들이 흔히 알고 있는 기억감퇴나 배변실금이나 요실금 말고도 여러 가지 합병증을 동반합니다. 아마 우울증이나 불면증은 이미 진행 중에 있을 겁니다.”
“그러고 보니...그런 것 같습니다. 짜증도 잘내고 밤에 잠도 잘 못자고...”
미향이 치매란 걸 인정하자 의사의 말이 족집게처럼 준석의 귀에 들어왔다.
“그런 정신적인 문제 외에도 치매환자는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요도염이나 폐렴에도 쉽게 노출됩니다. 또 한번 걸리면 쉽게 치료가 안되니 일반인보다 몇 배 더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고 행동장애로 인한 욕창도 신경써야할 부분이지요. 하지만 이런 것보다 더 큰 문제는 환자의 수발입니다. 치매는 단순한 기억력 감퇴뿐만 아니라 추론장애를 동반합니다. 다시 말씀드려서 자신이 하는 행동의 결과를 예측하지 못하는 거지요. 예를 들면 가스렌지를 그냥 켜둔다든가 칼을 휘두른다든가 잠시라도 감시를 게을리하면 큰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겁니다.”
“저...메모지 좀 없을까요?”
준석은 아무래도 자신의 머리로는 의사의 말을 다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에 메모지를 찾았다.
“치매환자에 대한 간병요령은 저희 병원에서 작성해둔 게 있으니까 이따 드릴 겁니다. 그것보다...직접 환자를 수발하실 생각이십니까?”
“제가 아니면 누가 하겠습니까?”
“치매환자를 위한 요양원이 있습니다.”
“요양원? 요양원에 아내를 보내라는 겁니까?”
“생업을 하면서 치매환자를 수발한다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리고 환자를 위해서도 그게 좋구요.”
“안됩니다. 아내는 제가 보살피겠습니다.”
준석은 단호했다. 의사도 강경했다. 의사는 원래부터 환자에게 헌신적인 성격이었지만 유독 송미향이란 환자에게는 더욱 그런 심정이었다. 그렇다고 여자로서 무슨 연정 같은 게 있어서 그런 건 아니다. 젊은여자가 치매에 걸린 데다 특히 그 맑은 눈이 의사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의사는 어떻게든 환자를 도와주고 싶었다.
“부인을 위한다면 제 말대로 하세요. 지금은 이러실지 모르지만 곧 후회하게 됩니다. 그 후회하는 시간동안 환자가 받을 고통을 생각해보세요. 전문인이 아니고는 치매의 간병은 힘든 일입니다. 요양원으로 보내세요. 제가 잘 아는 곳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얼마나 삽니까?”
이 고집불통 보호자를 기어코 설득시키고 말겠다는 의사의 협박성 발언은 준석의 뜬금없는 질문에 끝이 났다.
“치매환자 오래 사는 거 못봤습니다. 우리 장모님, 치매로 돌아가셨습니다. 벽에 똥칠하고 1년도 채 못사셨습니다. 제 아내는 얼마나 삽니까? 1년, 5년, 10년? 남아있는 인생이 얼맙니까?”
의사는 할말을 못했다. 치매환자의 평균 생존기간은 4년이다. 미향의 현재 상태로 봐서는 아무리 길게 봐줘도 2년이 채 안된다.
“선생님도 모르겠지요. 그 사람 얼마나 살지...내년 봄이나 볼 수 있을지...별로 남지 않은 시간, 그 시간을 다른 사람한테 맡길 수는 없잖습니까. 제가 같이 있어줘야죠. 그게 그나마 이 땅에서 부부로 맺은 인연의 마지막 도리라고 생각합니다.”
의사는 부끄러웠다. 할말이 없었다. 그저 정성껏 환자를 위한 처방전을 쓰는 것이 자신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준석은 1시간이 넘게 의사에게 치매환자의 간병요령과 주의점을 교육받고서야 병원을 나섰다. 준석의 손에는 작은 쇼핑백 크기의 약봉지가 들려 있었다. 약종류만해도 10종류가 넘었다. 하루에 먹는 양만해도 웬만한 감기약 3일 분량은 되었다. 이제부터 힘든 전쟁이 시작될 것이다.
준석의 집은 양계장 옆에 지어놓은 농가주택이다. 준석이 집에 돌아오자 미향은 정숙이란 여자와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정숙은 동네 사는 여자로 미향이와 언니, 동생하는 사이였다. 미향을 혼자 두고 병원에 갈 수 없어 부랴부랴 정숙에게 미향을 부탁한 터였다.
준석이 들어오자 깔깔대면서 신이나 고스톱을 치던 두 여자가 동시에 반색을 한다.
“당신 왔어?”
“형부, 다녀오셨어요.”
“어, 고스톱 치고 있었어? 누가 딴 거야?”
“어휴...제가 잃었어요. 오늘 언니가 얼마나 잘되는지...”
“당신도 이리와, 같이 쳐.”
“아냐, 난 할일이 있어.”
“나도 가봐야 해. 식당 나가야지.”
정숙이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오자 준석이 따라나섰다.
“오늘 고마웠어, 정숙씨.”
“어휴...무슨 말씀이세요. 형부, 그나저나 언니 무슨 병이어요?”
정숙의 물음에 준석은 입을 떼지 못했다. 그런 준석을 보고 머쓱했던지 정숙이 어색하게 인사를 하고 돌아설 때 준석은 무겁게 입을 열었다.
“치매야.”
준석의 대답에 정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치매, 치매요?”
“응.”
정숙은 이 천지개벽할 사실에 물어볼 말이 수십 수백 가지가 넘었지만 정작 입만 떡 벌린 채 아무 말도 못하고 망연히 준석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정숙씨한테 부탁이 있어. 잘 알겠지만 치매환자는 누군가가 수발을 해야 하는데 난 그럴 형편이 아니잖아. 정숙씨가 해줄 수 있겠어? 미향이 하고 언니, 동생하는 사이니까 아무래도 남보다 나을 것 같아서...물론 공짜로 해달라는 건 아냐. 한달에 150만원이면 어때?”
150만원. 식당일 허리 빠지게 해봤자 한달에 100만원 남짓인데 150만원이라면 정숙에게는 큰돈이었다.
“언니가 그 지경인데 제가 그냥이라도 수발을 해줘야하는데...”
“그런 말 하지 마. 힘든 일 해주는 것만해도 고마운데 공짜는 안되지. 그럼 내가 부담돼서 안돼. 그럼 정숙씨가 해줄 거지?”
“그래요, 형부.”
“그래, 그래 고마워. 그럼 내일부터 부탁할게.”
“근데 언니는 알아요? 치매인 거...”
“아직은 몰라.”
“어떡해. 언니, 불쌍해서...”
정숙은 금방이라도 울 듯했다.
“언니한테는 그런 내색하지 마. 그리고 동네사람들한테도 당분간 비밀로 해줘. 언니가 치매인 게 부끄러워서 그런 거 아냐. 혹시라도 소문이 돌면 언니가 자신이 치매인 걸 알게 될까봐 그래. 알 땐 알더라도 될 수 있으면 늦게 아는 게 좋겠지.”
“알았어요. 형부.”
정숙을 보내고 집안으로 들어오자 미향은 혼자 고스톱을 치고 있었다. 마치 아직도 정숙이와 치는 듯이...준석을 보고 미향이 반색을 한다.
“당신 왔어.”
“어...어.”
“당신도 이리와 같이 쳐.”
미향은 조금 전 말을 앵무새처럼 반복했다. 그런 미향을 보고 준석은 발등을 찧고 싶을 만큼 후회스러웠다.
왜 몰랐을까. 전에도 저런 적이 있었다. 금방 한 행동을 똑같이 반복했다. 그럴 때마다 준석은 왜 같은 말을 하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상하다고 생각했어야 했다.
그렇다고 후회만하고 있을 수는 없다. 준석은 집안의 문손잡이부터 바꿨다. 잠금장치가 없는 손잡이다. 치매환자는 안에서 문을 잠그고 못 열어서 난동을 부릴 수도 있다.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는 모든 문을 잠금장치가 없는 손잡이로 바꿔야한다. 의사가 준 치매환자 간병요령에 써 있는 내용이다.
준석은 그것을 틈나는 대로 보면서 머릿속에 집어넣었다. 원래 암기가 썩 좋지 않은 준석으로서는 5장 분량의 내용을 외는 데도 꽤 큰일이었다.
꿈인가 생시인가.
준석은 모기소리를 들었다. 귀 근처에서 앵앵거리는 모기소리에 준석은 큰일이란 생각이었다. 아직 여름도 안왔는데 모기가 이렇게 극성이면 닭이 문제였다.
“이놈의 모기...!!”
준석은 손을 허우적대다 벌떡 일어났다. 꿈인가...모기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다 문득 준석은 이상한 느낌이 들어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미향이 보이지 않았다. 준석은 방문을 박차고 나왔다. 미향은 거실에도 없었다. 옆방에도, 화장실에도, 창고에도 없었다.
“여보!! 미향아!!”
준석은 집밖으로 뛰쳐나오며 미향을 불렀다. 미향의 기척은 어디에도 없었다. 준석의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미친 듯이 미향을 부르며 찾던 준석은 문득 양계장에서 닭소리를 들었다. 이 저녁에 닭소리가 날 일이 없다.
준석은 득달같이 양계장으로 달려갔다. 양계장문을 박차고 들어선 준석은 아연실색했다. 미향은 케이지에 들어있는 닭들을 칼로 무자비하게 살육하고 있었다.
“미...미향아...”
“여보...”
미향은 태연하게 준석을 돌아보며 웃었다.
“이게...무슨...”
“당신 요즘 몸이 허약한 것 같아 한 마리 고아줄려구...어떤 게 좋을까...너무 늙은 건 안되는데...”
미향은 닭을 고르고 있었다. 이미 자신이 죽인 닭들은 인식하지 못하고...
“난...난 됐어. 그러니까 칼 이리 줘.”
준석은 조심스럽게 미향에게 손을 내밀었다.
“싫어, 닭 잡아서 당신 줄 거야.”
미향은 마치 어린아이처럼 칼을 등 뒤로 숨겼다.
“그...그래, 알았어. 그럼 내가 할게. 내가 할 테니까 칼 이리줘.”
“싫어.”
“미향아...”
준석은 끓어오르는 분노와 좌절감에 큰소리가 터져나오려는 걸 억지로 누르고 있었다. 치매환자에게 화난 큰소리는 금물이다. 준석은 억지웃음을 지으며 부드럽게 유혹했다.
“우리 고스톱 칠까?”
그 말에 미향은 금방 얼굴이 활짝 폈다.
“고스톱!”
“그래, 그러니까 칼은 이리줘.”
“여기 있어.”
미향은 냉큼 칼을 준석에게 건넸다. 칼을 안전하게 건네받은 준석은 허리가 부러지도록 미향을 끌어안았다.
그래, 괜찮아. 이 정도면 괜찮은 거야. 더이상 나빠지지만 않는다면...
그런 기원을 미향에게 온몸으로 불어넣어주었다.
그러나 준석의 기원과는 달리 미향의 상태는 점점 악화됐다. 여름의 문턱을 넘자 미향은 모든 것에 흥미를 잃었다. 고스톱도 치지 않았다. 웃지도 않았다. 말수도 부쩍 줄었다. 그리고 가끔 자신을 잃었다. 어떨 때는 어린아이가 되기도 했고 어떨 때는 아주 딴사람이 되기도 했다. 그렇게 미향은 몇 개월도 되지 않아 급속도로 낯선 사람이 되어갔다.
장마가 끝나고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날 미향의 동생들이 미향의 병문안을 온다고 중국에서 날라왔다. 처남과 처제 둘, 세 명이었다.
준석은 그들의 방문이 왠지 달갑지 않았다. 마치 관광이라도 온 듯이 잔뜩 차려입은 그들은 중국술에 한약, 참깨 등등...한보따리를 짊어지고 왔다. 물론 선물이려니 생각하면 좋을지 모르지만 준석의 눈에 그들은 미향의 건강을 걱정해서온 병문안이 아니라 놀러온 사람들같이 보였다. 더군다나 미향을 본 큰처제의 첫마디가 준석의 비위를 상하게 했다.
“언니, 나야. 진향이...나 알아보겠어?”
“진향이...”
미향은 무표정하게 처제의 이름을 나지막이 부르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머, 어머, 알아보네. 알아봐.”
“처제! 무슨 말을 그렇게 해!”
그런 모습을 보고 준석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왜...왜요, 형부...”
“왜 그러세요, 매형.”
동생들은 한결같이 왜 그러냐는 표정이다. 준석이 한마디 더 하려는 순간 미향이 물끄러미 준석을 보았다.
그러지 마...내 동생들이야, 당신한테도 동생이고...
모처럼 중국에서 멀리 왔는데...당신이 잘해줬으면 좋겠어...
그렇게 말하는 눈빛이었다. 준석은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라왔던 말을 집어넣고 다른 말을 끄집어냈다.
“미안해...내가 피곤해서...”
밤늦게까지 동생들은 미향을 앉혀놓고 깔깔대며 얘기꽃을 피웠다. 미향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가끔 동생들의 얘기에 어눌하게 대답했다. 동생들은 그런 미향을 보며 자지러지며 좋아했다. 치매환자에게 이렇게 형제나 친구들과의 즐거운 대화는 아주 좋은 치료법이라고 간병요령에 나와 있다. 그런데 준석은 마음이 무거워 자리에 더이상 앉아있지 못하고 밖으로 나왔다.
준석은 자꾸 눈물이 글썽였다. 혹시 눈물이 날까 하늘을 보았다.
나는 속이 좁은 건가. 아니면 자격지심인가. 김준석, 넌 바보다. 옹졸한 놈이야. 행복해하는 동생들을 보고 질투를 하는 거야. 그래, 난 속좁은 쪼다라도 좋다. 그래도 묻고 싶다. 하느님한테...
“하느님!! 왜 저 사람입니까!!”
준석은 칠흙 같은 밤하늘에 대고 목이 터져라 외쳤다. <3편에 계속>
2009-05-13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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