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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Ⅱ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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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女子(Ⅱ 중반)
2009-05-21 조회 5449    프린트스크랩

 


봄은 찰나였다.
눈깜박할 사이에 꽃들은 피고 졌고 부드러운 봄바람은 어느덧 작열하는 태양에 사우나 열기처럼 뜨겁게 달궈졌다.
매미가 여름의 전도사처럼 목청을 길게 뽑아 바야흐로 도래하는 잔인한 계절을 알리고 있었다.


5월의 끝자락 어느날.


와당탕...


적막을 깨트리는 파열음과 함께 박회장 저택의 거실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너, 이년! 이리와!!”


“꺄아악...”


박회장은 육두문자를 쓰면서 휠체어를 움직여 유정을 쫓았고 유정은 기겁을 해서 도망을 쳤다.

박회장을 필사적으로 막는 건 영민이었다.


“회장님! 진정하세요.”


“저리 비켜!!”


박회장은 하체를 쓰지 못하는 대신 팔심이 대단했다. 자신을 붙드는 영민을 뿌리치자 영민은 그야말로 썩은 나무토막처럼 바닥에 나자빠졌다.

유정은 2층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휠체어는 2층을 올라오지 못하지 않는가.

박회장은 계단을 오르지 못해 분함을 참지 못하고 화병과 도자기 등을 닥치는 대로 바닥에 박살을 내며 고래고래 소리를 쳤다.


“이 쌍년!! 너 이리 안와!! 빨리 내려와!! 당장 내려와!! 이 개같은 년!!”


박회장은 울분을 참지 못해 기어서라도 계단을 올라갈 기세였다. 영민이 득달같이 달려가 박회장을 말리려는데 그보다 한발먼저 제우스, 아니, 이기사가 거실로 뛰어들어와 박회장을 말렸다.


“회장님, 진정하세요.”


“넌 뭐야!! 새꺄!! 저리 비켜!!”


이기사가 무릎을 꿇고 자세를 낮춰 박회장과 눈높이를 맞추며 필사적으로 박회장을 달랬다.


“회장님!! 이러시면 안됩니다, 진정하세요.”


도자기로 이기사의 머리통을 금방이라도 내려칠 기세로 들고 있던 박회장이 그제야 제정신이 돌아온 듯 동작을 멈췄다.

도자기를 들고 있던 그의 손은 부들부들 떨렸다.


“회장님.”


이기사가 조심스럽게 박회장을 달래듯이 불렀다.

박회장이 마치 맥이라도 풀린 듯이 도자기를 들은 손을 내리자 이기사가 도자기를 조심스럽게 받아들었다.


이기사는 도자기를 자기자리에 놓으며 비로소 거실을 둘러보았다. 거실은 그야말로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내팽개쳐진 바둑판, 그리고 자갈처럼 바닥에 가득 흩어져 있는 바둑돌...

깨어진 화병과 도자기, 커피잔..모든 것이 전쟁의 파편처럼 흩어져 있었다.


영민은 반쯤 넋이 나가 서 있다.

왜 이렇게 된 건가...

아무리 생각해도 영민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무슨 꿈이라도 꾼 듯했다.




오늘은 박회장과 유정이 대국을 하기로 돼 있었다. 박회장의 기력 테스트 같은 것이었다. 

원래 두점 바둑인 박회장이 정선으로 두기로 했다. 치수가 한점이 내려간 것이다.

영민은 바둑 두기 전에 침착하게 두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수차례 코치를 했다. 그러나 20수가 채 되기도 전에 영민은 흑의 패배를 직감했다.


흑이 굶주린 늑대라면 백은 약아빠진 여우였다.

늑대는 멍청하게 직선적이었다.

무지막지하게 공격해오는 걸 뻔히 보고서 가만히 있는 여우가 어디 있겠는가.

살살 꼬리를 흔들며 교묘하게 빠져나가는 여우였다.

더군다나 빠져나가면서 흑돌을 야금야금 뜯어먹었다.


그때 영민은 보았다. 박회장의 손이 떨고 있었다. 그 정도로 치밀어 오르는 분을 참고 있다는 얘기다.  이미 이성을 잃은 박회장이었다.

그때...땅...박회장이 거칠게 한점을 놓았다.

1선이었다. 귀에서 한점을 1선으로 밀고나갔다.


영민은 깜짝놀라 귀를 보았다.

흑은 이미 귀곡사로 죽어 있었다.


박회장은 아마 그 돌이 패 정도는 되는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백으로서는 죽은 돌이 기어나가는데 굳이 한칸 뛴다든가 해서 막을 필요는 없었다.

백은 한점을 늘어서 따라나간다.

다시 흑이 기어나간다.

박회장은 한번 나갈 때마다 부서지는 백집을 보고 그나마 희열을 느꼈다.


그때라도 영민이 그걸 막았어야했다.

귀곡사...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 말이 차마 나오지 않았다.


흑은 기어나가고
백도 그저 따라나간다.

박회장이 신이 나서 6점쯤 나갔을 때 유정이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귀곡사인데...”


그 말에 박회장이 흠칫 고개를 들어 물었다.


“귀곡사라니...”


“귀곡사, 죽었어요.”


“무슨 말이야! 이건 패야!”


그러자 유정이 실소를 한다.


“깔깔깔...”


박회장이 폭발할 듯한 눈빛으로 영민을 보자 영민이 쭈삣거리며 대답을 했다.


“귀곡사는...죽는 겁니다. 제가...가르쳐 드렸는데요, 회장님...”


그 순간 바둑판이 허공을 날았다.


와당탕...


그 소리와 함께 박회장이 유정한테 소리를 쳤다.


“니년이 지금 날 무시하는 거야!! 어? 바둑 좀 둔다고!! 이 쌍년, 너 이리와!!”


아수라장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박회장은 고개를 떨어뜨리고 혼잣말처럼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고사범 모셔다 줘.”


“아..아닙니다. 전 혼자 가도 됩니다, 회장님.”


“이기사, 모셔다 드려.”


“회장님...”


이기사가 걱정스런 눈빛으로 박회장을 보았다. 두 사람이 없을 때 혹시 무슨 일이 있지 않느냐 묻는 눈빛이었다.


“걱정 마, 아무일 없을 거야. 내가 눈이 뒤집혔나봐. 이기사, 자네 나 알잖아. 욱하는 성질이어도 앞뒤 구분은 하는 놈이야. 내가 고사범한테 볼 낯이 없어서 그래.   고사범도 이해하라고. 내가 워낙에 성질이 개떡 같아 그러는거니까...”


“...”


“가시지요, 사범님.”


영민은 걱정이 되는 눈빛으로 계단을 보았다.

유정은 보이지 않았다.

영민은 이기사를 따라 저택을 나왔다.




벤츠는 한강을 건너고 있었다. 

박회장 저택을 나온 지 벌써 30분이 지났지만 두 사람은 아무말 하지 않았다. 뒷좌석에 앉은 영민은 망연히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


침묵을 깨고 이기사가 먼저 말을 꺼냈다.


“잊어버리세요. 회장님...원래 그런 성격입니다. 그래도 지금은 성질이 많이 좋아진 거지요. 사고 나기 전에는 일주일에 한번씩 싸웠지요. 아니, 싸웠다기보다도 회장님의 일방적인 폭력이라고나 할까...”


“네에...”


영민의 대답은 건성이었다.


다시 침묵이 흘렀다.

이번엔 영민이 침묵을 깨트렸다.


“전부터 궁금한 게 있는데...”


“무슨...”


“회장님하고 사모님 말씀입니다. 결혼은...”


“아...물론 사모님이 본부인은 아닙니다. 저도 들은 얘기지만 회장님은 본부인하고는 아주 오래전에 사별했다고 들었어요. 어쨌든 사모님하고는 결혼한 지 10년쯤 됐을 겁니다. 사모님은 서점을 하셨지요. 회장님이 우연히 책을 사러 들어갔다가 한눈에 반해서 매일같이 책을 사러 갔다고 들었습니다. 그때 당시 거의 1년 동안 산 책이 수백 권이 넘는다고 하더군요.”


“그럼 자식은...”


“없어요. 이유는 저도 모릅니다만...”


벤츠는 신림동의 복잡한 골목으로 들어서 멈춰 섰다. 영민이 기거하는 원룸이다.


“수고하셨습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럼 금요일 모시러 오겠습니다.”


“네...조심해서 가십시오.”


영민이 벤츠에서 내리자 사우나 도크 같은 열기가 후끈 올라왔다.




밤이 됐는데도 기온은 떨어지지 않았다.

열대야였다.

선풍기는 오히려 뜨거운 바람을 불어대고 있었다.

영민은 뚫어지게 컴퓨터 화면을 바라보았다.


왕별대국이다.

초읽기가 숨가쁘게 계속되고 있었다.

영민이 둘 차례다.

순간 영민은 자신이 흑인지 백인지 혼란스러웠다.


초읽기가 여덟을 소리칠 때...딱...한점을 놓았다.

영민의 돌이 떨어지자 대화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백인 영민이 흑이 놀 자리에 착점을 한 것이다.

20개가 넘는 멀쩡한 돌이 죽었다.

영민은 불계를 눌렀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줄곧 바둑을 둔 영민이다. 눈은 바둑판을 보고 있지만 생각은 다른 곳에 있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창가에 서서 담배를 한대 입에 물었다.

후끈거리는 열기, 뒤엉킨 머릿속, 담배연기...

머릿속에 파리라도 한마리 들어 있는 것처럼 왱왱거렸다.

그때 컴퓨터에서 딩동...소리가 들렸다.


모니터를 보자 일창이 하나 떠있다.


대화명, 라임나무.


     →미안해요.


“미안해요? 누구지”


     ←누구여요.


     →유정이어요.


     ←유정이 누구여요.


     →박회장님...


순간 영민은 심장이 멎는 듯했다.

...탁탁탁탁...떨리는 손으로 타자를 두들겼다.


     ←사모님이신가요.


     →네, 잘가셨나요.


     ←네, 별일 없나요.


     →^^


     ←걱정 많이 했어요.


     →전 괜찮아요. 그런 모습 보여서 부끄러워요.


     ←아니어요.


     →아까부터 바둑 두는 모습을 보고 있었어요.

       바둑내용이 안 좋더군요. 저 때문인 것 같아 마음이 아팠어요.

       몇번 메모를 보내려고 망설이다 용기를 내서 보내는 거여요.


     ←그러셨군요.


영민은 가슴이 두근거렸다.

유정에게 자신을 보여주고 싶었다.

여자에게 힘을 보여주고 싶은 건 남자의 로망이다.


     ←다시 대국을 할게요, 보실래요?


     →네.




영민은 대국상대를 골랐다.

상대는 강할수록 좋다.


오로 최강자 악동스에게 대국신청을 한다.

대국이 이뤄졌다.

200명이 넘는 관전자가 들어왔다.

영민은 그중에 빛나는 대명 하나를 확인한다.


라임나무.


영민이 흑이다.

영민은 하늘을 나는 것 같았다. 바둑돌이 반상에서 춤을 췄다. 

화려한 행마.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강하게.


대화창에 관전자들이 감탄을 했다.

빈강에짱돌이 이렇게 잘두는 건 처음 본다.

빈강에짱돌은 영민의 대화명이었다.


악동스는 고전 끝에 145수 만에 돌을 던진다.

대화창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짱돌이 왜 이렇게 잘둬.”


     “이거 작판 아냐?”


     “운영자 불러!”


     “악동스가 고의로 진 거야.”


     “이건 짱돌대신 프로가 대타로 나온 거 아냐?”


관전자들의 아우성 속에 영민에게 일창이 날아왔다.


     →멋져요. ^^


     ←고맙습니다, 사모님.


     →어휴...사모님이 뭐여요 ㅡㅡ;;


     ←앗 그렇군요, 라임나무님.


     →^^


잠시 말이 없었다.

영민은 용기를 내 하고 싶은 말을 썼다.


     ←영화 좋아하시죠.


     →어떻게 아세요.


     ←지난번에 와인 마실 때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란 영화얘기를 하셔서...

     →^^ 네...좋아해요.


     ←영화...보실래요.


영민은 ‘같이’란 말은 뺐다. 굳이 쓰지 않아도 충분히 이해는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답은 오지 않았다.


침묵이 흘렀다.

1분...아니, 길어야 5분...

그러나 침묵의 시간은 1년은 지난 것 같았다.

그리고 침묵을 깨트리고 답이 떴다.


     →무슨 영화


영민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았다.

간단한 문장인데 자꾸 오타가 나왔다.


     ←님은 먼곳에...


     →그 영화 저도 보고 싶었어요, 언제?


     ←내일.


     →그래요, 같이 봐요.


누군가를 위하여 죽어도 좋다는 것. 그런 것이 이런 기분일 것이다.

영민은 그날 밤 뜬눈으로 밤을 샜다.

왜 밤은 이렇게 더디게 가는가.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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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28 본 내용은 작가의 순수 창작물이므로 무단복제나 도용, 표절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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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ndo~ |  2009-05-22 오전 12:22:5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와 넘 재미잇어요 근대 독자들이 박쥐님 글이 여기잇는거조차 모르나봐요 저도 오늘 처음 알앗어요 오로에서도 계속 소설 올려주시겟죠? 이 소설 오로광장으로 옮겨서 올리시면 어떨까요 박쥐님?  
한솔몽스 수애님...박찌님 소설은 반전을 주무기로 한 딘따 딘따 잼는 소설이지용~~ ^^* 맨밑에 보시면 2008년 12월 28일에 쓰신 소설로 광장 매니아분들은 이미 본 소설이랍니다. 박쥐님의 소설은 오로광장 매냐분들께 찬사를 받고 있지용~^^* 박찌님 만쉐~!! 수애님도 만쉐~!!!!
한솔몽스 오로에서 박찌님 소설이 오로광장에 있기에는 아까워서 이렇게 따로 점방을 주신걸로 알고이씸미닷~!!!!!! 이제 남은일은 수애님이나 저같은 독자들이 여기저기 댕기면서 자랑하고 광고하는 것이겠지엿~!!!! 헤헤^^*
바티즌 |  2009-05-22 오후 12:06: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음..수애님처럼 저도 이제 알았네요..
한솔몽스님의 글을 읽고..많이 오로에 대해 알고 갑니다..
박쥐님..우앳던가 빠이팅~!!! 아~뵤~!!!  
당근돼지 |  2009-05-23 오전 6:10:2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 보고 갑니니다.......감사 합니다.  
동주동주 |  2009-05-27 오후 3:27:1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아무리 그래도 내용에 개같은년 이라는말은좀..;  
js2215 |  2009-05-27 오후 4:24:0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잘보고갑니다 순수한글이며 표현력이좋아 감동입니다 어쩜내성질같으니까 바둑두다가 많이수양해야겟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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