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현기경 연구의 어려움 (1)

중국 원(元)나라 말기 (1347년, 1349년) 여릉(廬陵: 현 강서성 길안) 사람 안천장(晏天章)과 엄사부(嚴師傅)가 만들었다는 고기서 현현기경(玄玄棋經)은 바둑사를 연구하는 데 있어 귀중한 자료가 될 뿐 아니라 오늘날까지도 바둑인들의 기력 향상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는 훌륭한 바둑 실용서이다.

서문을 쓴 우집(虞集)에 의하면 이 책의 명칭은 원래 현현집(玄玄集)이었고, 이것은 노자(老子) 도덕경(道德經) 속의 ‘玄之又玄, 衆妙之門 (현묘하고 또 현묘하여 온갖 묘함의 문이다’라는 어구에서 따왔다고 했다.

우집은 서문을 써준 1347년 다음 해인 1348년에 죽었는데, 그 당시 원나라 조정에서 활약하던 고급 관리이자 학자인 구양현 (歐陽玄)이 1349년에 이 책의 서문을 다시 써주었다.

일본이나 한국 대만 등에 퍼져있는 현현기경에는 구양현의 서문이 누락된 채 우집의 서문만 수록되어 있는 경우가 많은 데, 우집이 서문을 쓴 1347년에 현현집이 이미 발간되어 나왔는지 아니면 구양현이 서문을 써준 1349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했는지는 현재로선 단정하기 어렵다. 다만 이 무렵(1347년, 1349년)에 현현집이 발간되었다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그 때엔 이민족(몽고족)이 중국을 지배하고 있었으므로 한인(漢人)들이 바둑 같은 걸 핑계삼아 함부로 모이는 걸 꺼려했기에 위진남북조 시대나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때처럼 바둑이 공개적으로 성행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당시 바둑 매니아들과 부유층, 관리들에게는 체계적으로 잘 정리된 현현집이 암암리에 인기를 끌었던 것으로 추정 된다.

후에 명나라 사람들은 이 현현집을 여타 바둑책들과 달리 존경해주는 의미로 ‘현현기경(玄玄棋經)’이라 고쳐 불렀고, 이러한 명칭은 그대로 쭉 이어졌는데, 그러나 청나라에 들어와 현현기경은 엉뚱한 수난을 당하고 만다. 즉, 강희(康熙) 황제의 이름 현엽(玄燁)에 현(玄)자가 들어있다고 해서 ‘현(玄)’자를 ‘원(元)’자로 바꿔 원원기경(元元棋經)이라 억지로 고쳐 부르게 된 것이다. 물론 서문을 써줬던 구양현(歐陽玄)의 이름자까지도 덩달아 구양원(歐陽元)으로 고치게 되는 데, 구양현과 구양원이 동일한 인물임은 학계에 널리 잘 알려진 사실이다.

현현기경은 원나라 말기 명나라 초 쯤에 도종의(陶宗儀)가 편찬한 철경록(輟耕錄) 기보조(棋譜條)에 처음 수록이 되었고, 청나라 때에 들어와 장금운(張錦雲)이란 사람이 철경록(輟耕錄)에서 자기가 편찬한 원사예문지보(元史藝文誌補)로 옮겨 갔다.

명나라 때의 바둑 명저인 석산선기(石山仙機)와 선기무고(仙機武庫) 그리고 적정록(適情錄)과 일본의 기경중묘(碁經衆妙), 청나라때 나온 관자보(官子譜) 등등도 모두 현현기경의 영향을 받았으며, 명나라 영락대전(永樂大典)과 청나라 사고전서(四庫全書)에도 현현기경이 수록되어있다.

현현기경의 판본(版本)으로는 원나라 때 청성양씨(靑城楊氏)의 청강서당(淸江書堂)에서 판각한 현현집(玄玄集)이 있다는 기록이 있지만 그러나 이 책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이미 소멸되어 버렸을 가능성이 크다. 사실 1349년 현현기경이 출간될 무렵 중국은 점차 민란에 휩쓸리기 시작하다가 1368년 원나라가 망하고 주원장(朱元璋)의 명나라가 들어섰으니 이런 기간에 판본이 온전하게 보존되기에는 현실적으로 어려웠으리라 추정된다.

그 다음 현현기경 판본은 왕창조(汪昌朝)가 명나라 만력년간(萬歷年間)에 원나라 때의 정본(正本)을 번각(飜刻)한 것으로 원래 책 이름은 ‘좌은제선생자정기보전집(座隱齊先生自訂棋譜全集)’이다. 그 후 청(淸)나라에 들어와 ‘원원기경(元元棋經)’이란 명칭으로 변경되어 판각한 것들이 있는데, 이것은 명나라 때의 판각본들과 같은 것으로 오직 글자체만 다를 뿐이다.

이 외에도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 현현기경 필사본(抄本)과 절록본(節錄本)등이 많이 발견되고 있는 데 이런 것들은 현현기경 연구에 오히려 어려움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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