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로 기우들도 잘 아시다시피 진신두(鎭神頭)라는 바둑용어가 있습니다. '진신두'라는 말을 잊으셨거나 혹 모르시는 기우님도 모양을 보시면 "아하~이거"라고 하실 분이 많을 것입니다. 

'진신두'라는 말이 적합한 말이냐, 아니냐의 논란도 있고 해서 이 글에서는 '진신두'를 임의로 붙인 이름 쌍축머리라는 말로 설명하겠습니다. '쌍축머리'는 한 수가 2개의 축머리 구실을 한다는 뜻입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모양을 봐야 하겠지만 그 전에 확인해 두어야 할 점이 있습니다.

기우들께 소개해 드릴 다양한 '쌍축머리'는 중국의 톰닷컴 기우논단 (오로광장과 비슷합니다) 에서 발췌했음을 미리 밝힙니다. 톰닷컴의 중국기우 万年小平頭 , 아이디 hexiaoce001 님에게 감사드립니다.

기우들이 미처 접하지 못하셨던 다양한 '쌍축머리'의 묘미를 혼자 맛보기가 아까워서 저를 지배하고 있는 귀차니즘의 망령을 떨쳐버리고 우리말로 옮기기도 하고 저의 해설도 덧붙였습니다.

기우들이 이미 접하신 모양도 몇 개 나올 것입니다.

첫 번째로 소개해 드릴 '쌍축머리'는 기록상 최초로 등장한 '쌍축머리'입니다.
송대의 바둑책 망우청락집(忘憂淸樂集)에 처음 등장합니다.

이 바둑의 주인공이 '왕적신'인지 아니면 '고사언'인지에 대한 논란이 있지만 실제 두어진 바둑이라기보다 꾸며낸 바둑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개인적인 견해로는 그런 논란은 무의미하다고 봅니다.

이 바둑과 관련하여 전해져 오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바둑을 잘 두는 일본 왕자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당 선종은 당시 일인자였던 '고사언'을 내세워서 자국의 명예를 걸고 일본왕자와 대결케 합니다.

고사언의 백선(白先)입니다.

장면1
백은 양쪽의 축을 동시에 방비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두 번 착수할 수는 없습니다. 뾰족한 수가 없는한 고사언은 일본왕자에게 패했다는 멍에를 평생 뒤집어쓰고 살아야 합니다.

(픽션이 많이 가미되었을 이런류의 이야기에 멍에 어쩌구 하는 게 우습기도 합니다. 재미로 들어 주시기 바랍니다^^)

고사언의 대책은 무엇일까요?

백이 1로 따내면 아래쪽의 백이 축으로 몰립니다.

백이 1로 아래를 늘어도 위쪽의 백이 축에 걸려듭니다.

백1이 고사언이 터트린 회심의 일착입니다. 이 수로 두 곳의 축을 동시에 방비하고 있습니다.

고사언이 중국의 자존심을 지켰습니다.

다음은 90년대 중반 일본 랭킹1위 기성전에서 우리의 영원한 영웅 조치훈 9단이 당시 기성이었던 고바야시 사토루와 건곤일척의 승부를 펼쳤던 장면입니다.

조치훈 9단의 흑선입니다.

장면2
백이 6으로 걸치고 흑7 붙임수에 백8로 끼우는 수는 흔히 볼 수 없는 수입니다.

한 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갯속에서 흑의 조치훈 9단은 어떤 수를 준비하고 있을까요?

흑1로 아래를 늘면 위쪽의 흑이 요상한 축으로 잡히고 맙니다.

 
흑1이 조치훈 9단이 장고끝에 선보인 곡예입니다.

두 곳의 축을 절묘하게 방지하고 있습니다. 역시 조치훈 9단입니다.

다음은 2001년 제6회 엘지정유배 결승2국에서 이창호 9단이 바둑팬에게 선사한 우리나라에서는 최초라고 여겨지는 '쌍축머리'입니다.

상대는 최명훈 9단으로 이창호 9단의 흑선입니다.

흑1은 불가피합니다 
 

  

만약에 흑1로 중앙 백을 잡는다면 백은 2와 4를 이용하고 6으로 건너갑니다.

백 7점을 잡았지만 흑의 불만입니다. (흑5-이음)

 
흑1, 이 수를 이창호 9단이 두었을 때 최명훈 9단의 심정은 어땠을까요? 

흑1은 알고나면 쉬울 수 있지만 막상 실전에서는 프로도 찾아내기 힘든 맥입니다.
역시 양쪽의 축을 동시에 방지하는 수입니다.

이 수의 여파인지는 모르겠지만 도전기에서 최 9단은 무기력하게 물러나고 맙니다.

이창호의 '쌍축머리'는 그 후 계속해서 회자되고 있습니다.

다음 장면은 인터넷 속기대결에서 나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인터넷 속기에서 이런 환상적인 수가 나왔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입니다.

장면4
흑의 양쪽 중에 하나는 꼼짝없이 축에 걸려드는 모습입니다.

진정, 흑의 묘책이 있단 말인가요?

흑 3이 정말 꿈속에 나타날만한 수입니다. 백은 이 수로 양쪽의 흑을 잡을 수 없습니다.

기가 막히는 기상천외한 수입니다.

좌우동형은 중앙이 급소라는 말이 생각나기도 합니다.

다음 모양으로 넘어갑니다

장면5
백1과 3으로 야욕을 노골화하는 백.

백의 의도는 분명해졌습니다.

백은 B와 C의 쌍칼을 쥐고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잡았다고 장담하고 있습니다. 

백을 닭 쫓던 개 신세로 만들 수 있는 흑의 묘착은?

 
흑1이 백을 허망하게 만드는 수로 백은 지붕만 쳐다보고 있습니다.

이제 종착역에 다다랐습니다.

마지막 문제입니다.

 
장면6
백은 A와 B가 맞보기입니다

흑은 이 위기를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까요?

 
 흑1로 두면 백 5점은 잡을 수 있지만 백에게 중앙을 싸발림 당합니다.

 
지금까지 보아 오신대로 흑1이 맥입니다.

 






지금까지 쌍축머리의 다양한 예를 살펴 보았습니다.

기우들께서 완벽하게 이해는 못했다 하더라도 '쌍축머리'에 대한 느낌은 어느 정도 간직하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전에서 보긴 어렵지만 만약에 이런 모양이 정말로 나온다면 기회를 놓치지 마시고 '쌍축머리'의 짜릿함을 맛보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쌍축머리'라는 용어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 끝을 맺겠습니다.

중국에서는 '쌍축머리'를 무엇이라고 할까요? 확실하지 않지만 중국인들은 일자해쌍정(一子解雙征) 이라는 말을 주로 사용하는 것 같습니다.

이 말은 앞서 말했던 송대의 바둑책 '망우청락집'에 등장합니다.

풀이해 보면 일자(一子)는 하나의 돌이고 해(解)는 풀어 낸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쌍(雙)은 둘이라는 뜻이고(쌍을 二 라고도 표현함) 정(征)은 정벌한다는 의미로 중국에서는 '축'의 뜻으로 이 정(征)을 씁니다.

그러니까 '일자해쌍정'은 한 수로 두 곳의 축을 해결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일자해쌍정'은 말 자체로 그 의미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쌍축머리' 기보를 톰닷컴에 올린 중국기우는 '쌍축머리'를 일관되게 일자해쌍정(一子解雙征) 이라고 칭했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흔히 사용했던 '진신두'라는 용어는 논란이 많아서 이 글에서는 '쌍축머리'라는 말을 사용했지만 쌍축머리는 어디까지나 임의로 붙인 이름에 불과하다는 것을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덧붙이는 말

지금까지 소개해 드린 '쌍축머리'의 여러 모양 중에는 제가 월간바둑에서 본 것도 있고 추측컨대 오로에서 이미 소개한 모양도 몇 개 있을 수도 있습니다.

'쌍축머리'의 출처인 중국기우 万年小平頭 님이 무엇을 참고 했는지 알 수 없어서 조심스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