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개를 키운 게 3년 전인데, 요크셔테리아 숫놈이었습니다.

머리 비율과 몸 비율이 거의 1:1로 이등신의 늘씬한(?) 몸매에 이목구비가 뚜렷하고(다 그런가요?) 부리부리한 눈에 촉촉한 콧등의 건강체질에...뭐 또 없나요? 하여간 개치고는 정말 이쁘더만요. 개는 머리가 커야 이쁜가 봅니다.

생김대로 이름을 '대가리'로 지었고 나름대로 애지중지하면서 두어 달쯤 키웠었는데 그게 그만 사고를 치드만요.

먹다죽은 귀신은 때깔도 좋다는 말을 아는지 모르는지 사료를 주기 무섭게 플라스틱 밥그릇이 빵구가 나던지, 지 혓바닥이 걸레가 되던지 상관없이 핥아대며 처먹던 놈이 언제부터인가 식음을 전폐하며 단식투쟁에 들어가대요.

입으로는 뭐라고 구호까지 "끙끙~"거리며 외치는 게, 딱 마빡에 빨간띠만 둘러주면 한총련 되겄드만요.

저도 예전에 어머님께 단식투쟁했던 경험이 있는지라 '삼일만 굶어봐라 이놈아...' 하면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삼일도 넘기고 사흘도 넘기고 하드만 걍 드러눕대요.

산송장 치운다 싶어 얼른 동물병원에 가서 전문의와 상의를 했습니다. 엑스레이를 찍어봤더니 뱃속에 뭔가 있더군요.

동그랑땡 같은 게 떡하니 하나 있는데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하는 의사와는 달리, 전 바로 눈치 챘지요.

어디 처먹을 게 없어서 제가 복기하다 말고 놓아둔 바둑알을 처먹는답니까.

아무리 조개 바둑돌이라지만 그게 뱃속에 들어가면 어디 해물탕이 되나요? '대가리' 이놈은 머리만 컷지 똘팍이드만요.

역시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거 아니고, 머리 크다고 머리 좋은 건 아닌가 봐요.

의사가 그러드만요.

개가 너무 어려서 자신도 자신이 없다. 솔직히 수술하면 가능성이 반이 조금 못된다. 어떻게 할 것이냐?

산목숨 죽이는 것은 안됐지만, 주먹댕이 만한 것의 배를 가르고 수술을 할 엄두는 더욱 안 나더군요. 뭐 포기했습니다.

지금 생각은 수술을 시켜볼 것을...하는 생각에 '대가리'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지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졸지에 호스피스가 되어서 '대가리'의 배를 쓰다듬으며 마지막 가는 길을 함께 해주는 수밖에요.

집으로 그냥 데리고 온 후 하루 만에 몸 안의 것을 토한 후 몇 시간이 지나 생을 마감하더군요.

몸속에서 나온 게 흑돌인지 백돌인지는 기억이 나질 않습니다.

깨끗한 담요에 쌓아 산기슭에 묻어줄 때 그가 토해낸 바둑돌도 함께 넣어줬습니다. 그가 목숨을 잃어가며 남겨준 의미 있는 바둑돌이었지만 그에겐 더 없이 소중할 수도 있겠기에요.

혹시 모르겠습니다.

그 옛날 이름 모를 고수가 '대가리'의 몸을 빌려 저에게 잠시 왔다간 것인지도요.(바둑 좀 가르쳐주고 가시지 않구...)

옆에서 밥 달라고 칭얼거리는 '바둑이'를 보다보니 잠시 옛날생각에 글을 빌려봤습니다.

설마 이놈도 바둑알을 먹는 건 아니겠죠? 

2003-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