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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3장 태허(太虛)의 자리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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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회/ 3장 태허(太虛)의 자리 (5)
2010-08-12 조회 4116    프린트스크랩

 

장지문 밖에서 눈이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눈이 내리는 소리는 사락사락 버선발이  대청마루를 살짝살짝 걸어가는 소리 같았다. 조금 열려 있는 문틈으로 장승처럼 서 있는 내금위의 튼튼한 어깨가 보였다. 그의 어깨위에도 눈이 내려 쌓여 있었다.

"바둑이 무엇이냐?"

"네에...?"

"너는 바둑이 무엇이라 생각하느냐  물었다."

군왕이 자리를 고쳐 앉으며 물었다. 군왕의 모습은 여유가 넘쳤고 눈길을 따뜻했다. 김려가 대답을 했다.

"전하, 바둑은 숭례문 바깥의 멍충맞은 서생이 아닐는지요?"

"뭐라?  니가 야담을 하자는 거는 아닐께고...오라? 하하하. 그래 너의 말도 일리가 있구나."

"황공하옵니다."

김려가 고개를 숙이고 대답을 했다. 군왕이 배꼽을 잡고 웃다가 말을 이었다.

"하하하, 그래 바둑은 성산월이다. 성산월이고 말고. 아하하...!"

군왕이 호탕하게 웃으며 바둑판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군왕의 손길은 바둑판의 오랜 연륜을 느끼기라도 하는 듯 조심스러웠다. 김려가 말하고 군왕이 이름을 특정한 성산월(星山月)은 '어유야담'에 전하는 천하절색의 기생을 말한다. 이 성산월이 어느날 유회에 불려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큰비를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돌아오는 길에 큰비를 만났다. 소매와 치맛단이 반쯤 물에 젖었다. 남대문 밖에 도착하자 시간이 늦어 성문이 닫혔다. (성산월은) 주변을 살펴보았다. 근처 연못 근처에서 불빛이 새어 나오는 집이 보였다. 그 안에서  책을 읽는 소리가 들려왔다. 창틈으로 보니 서생이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성산월은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서생을 불렀다. 서생이 놀라면서 창가로 와 묻는다. (성산월)이 말했다. 자기는 기생으로 주연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비를 만났고 너무 늦어 묵을 곳이 없으니 청컨대 서생의 책상 앞 한쪽이라도 내주면 있다가 가겠노라 말한다. 서생은 성산월의 아름다운 얼굴과 울긋불긋 화려한 옷을 보고 크게 놀라며 소리를 친다.

"어찌 이리 누추한 곳을 찾아 잠자를 청하느냐?  너는 필시 요물일 터...썩 물럿거라."

서생의 버럭질과 손가락질을 받고 성산월이 대꾸를 한다.

"아이고 서생아? 대명천지에서 니가 나를 어찌 보겠느냐? 불행하게 큰비를 만나 잠자리를 구걸하듯 청하거늘 굴러온 떡을 걷어차니 이 지지리도 복 없는 인간아?" (주1 . 어우야담 중)

 

"그렇지, 바둑은 멍충맞은 서생에게는 성산월이지. 하하 그 말 한번 과연이로다."

군왕은 김려를 흥미로운 눈길로 바라보며 즐거워했다. 안으로는 모두 바둑을 즐기면서도, 입으로는 잡기를 운운하며 바둑을 지탄하는 세상의 풍토를 단순명료하게 설명하는 김려의 임기응변의 화법이 절묘했다. 좋은 임기응변도 인재의 덕목이었다. 군왕은 항상 시대의 인재에 목말라 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국정의 기초가 인재 모으기에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말이 나온 김에 바둑을 화제로 시 한수를 짓거라. 시가 좋다면 상을 주리라."

"전하...?"

"선비는 언제나 묵향과 함께 하는 법. 하여 때가 되면 하겠다는 것도 기약 없는 짓이니라. 자 ..."

군왕이 김려의 서안(書案 ) 위에 가지런히 놓인 문방사우를 지목하며 시짓기를 청했다. 김려는 머리를 조아리고 종이를 펴고 먹물을 붓에 찍었다. 그리고 시 한 수를 써 내려갔다.

 

조용한 친구와 바둑판 마주하고

깊은 밤이면 시 한수를 읊네.

무릉도원만 별천지라 하리오.

한가한 이곳도 그 못지 않도다.

(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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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1. 어유야담 성산월조.  途中逢大雨 翠袖半濕 步到崇禮門己鑰矣. 回睇蓮塘西岸 有川窓照燈 窓內有讀書聲 完窓而점 卽少年書生也 我低聲馨咳 輕手叩窓 書生宿然傾聽 我曰 余城中妓 逃酒遇雨 無居寄宿 請榻下尺之經夕 書生拓窓 見粉面佳姬 衣裳容色俱絶麗大驚意謂 如此絶麗 豈有自投寒生而宿 必是妖魅 輒牢曰 彈指大祝曰 何物怪魅敢來眩人耶. 哀栽邇書生 邀我於靑天明月 我肯顧邇乎 不幸値雨 哀聲乞宿 而反不余許 邇眞寡福男子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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