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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특집]이창호, 무패의전설 언제까지 이어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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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결산과 2003년 전망
이창호는 지난 98년 12월 제6기 배달왕타이틀전에서 유창혁에게 2승 3패로 패한 이후 2002년 제33기 명인전까지 이어진 15개 도전제 타이틀전에서 모조리 수성(守成)에 성공하며 '번기(番棋)의 제왕'이란 명성이 결코 과장된 것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다(2000년 KBS바둑왕전 제외).
말 그대로 무패의 전설. 일찍이 그 누구도 이루지 못했던 이 신화는 언제까지 지속될까. 이 공포의 철권통치를 저지할 영웅은 누구일까.
일단, 중년의 기적(奇蹟)을 연출하며 50고개에 올라선 조훈현이나, 목표를 세계타이틀로 맞추고 시야를 멀리 중국리그까지 넓힌 유창혁은 사천왕의 자리를 고수하기에 바빠 보인다.
사실, 팬들의 입장도 '질리도록 본 영화를 또 보고 싶지는 않다'는 쪽이 강하다. 욕심 많은 팬들은 이들이 타이틀전선에서 보다 강인하게 버텨주기를 바라면서도 늘 또 한편으로는 '새로운 영웅의 출현'에 목말라한다.
'타도 이창호'의 선봉장 이세돌
 그런 의미에서 2002년을 가장 빛낸 스타는 이세돌이다. 2000년 32연승의 쾌속질주와 2001년 LG배세계기왕전 결승5번기를 통해 '타도 이창호'의 기치를 들어올린 풍운아의 정상진입 속도는 일반의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것이었다.
비록, 제36기 왕위전 도전5번기에서 타이틀을 빼앗지 못하고 무대를 내려왔지만 전판을 휩쓸 듯 밀어붙인 이세돌의 박력은, LG배에 이어 또 한번 이창호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데 부족함이 없는 것이었다.
이세돌이, 국내무대에서는 최대규모를 자랑하는 제7회 LG정유배와 KTF배를 삼키고 세계무대에서는 제15회 후지쯔배를 움켜쥐었으면서도 '난 아직도 배가 고프다'고 외치는 이유는 단 하나. 최고의 목표 이창호를 아직 뛰어넘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한 그 하늘을 찌를 듯한 야망은, 팬들이 이창호의 독주를 저지할 수 있는 후보로 이세돌을 첫손가락에 꼽아주는 이유이기도 하다.
지각변동의 징후와 이창호의 독주
2002년부터 2003년 초반까지 이어질 '조훈현의 대 신예전쟁'은 향후 한국 프로바둑사에 한 획을 긋는 중대한 시기로 기록될 지도 모른다. 이미 정상의 구도를 재편하는 지각변동은 시작된 것인지도 모른다.
 신예들에 의한 지각변동의 징후, 그 풍운의 서막은 3월에 올랐다. 국내 최대상금이 걸린 제1회 KT배 마스터즈기전 결승무대에 오른 조훈현의 상대는 얼굴에 솜털이 보송보송한 최철한.
농심신라면배 세계바둑최강전을 통해 스타덤에 오른 신예강호였지만 대다수 관측자들의 예상은 '조훈현은 최철한이 넘어서기에 아직 버거운 상대. 이번에는 조훈현이 편안하게 초대챔프에 오른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예상은 절반만 맞았다. 조훈현이 초대챔프에 오른 것은 맞았으나 그 과정은 편안하기는커녕 '지옥' 그 자체였다. 최철한은 최종라운드에서 당대의 거인을 그로기상태까지 몰아붙여 뉴페이스를 기다리는 팬들의 뜨거운 갈채를 받았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크로스카운터를 맞고 무너져 '이창호 이후 타이틀전에서 조훈현을 꺾은 최초의 신예'가 되는 꿈을 접었으나 최철한의 분전은 많은 신예들의 가슴에 '조훈현은 결코 구름 위의 사람이 아니다'라는 도전의 의지를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사실, 이창호를 향한 파도를 막아내는 방파제로만 본다면 조훈현의 역할은 상당부분 의미를 잃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창호의 독주는 계속 이어졌으나 도전무대에는 조훈현을 넘어선 또는 우회해온 신예들의 얼굴이 하나, 둘 비치기 시작한 것이다.
조훈현과 유창혁이 정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었으나 도전무대는 더 이상 '그들만의 리그'가 아니었다. 여름 끝물, 이세돌이 왕위전에서 물러서는 순간 '타도 이창호의 기치'는 명인전의 안조영에게 넘겨졌다.
본선리그 7전 전승의 기세로 명인무대에 오른 안조영은 도전3국에서 대 이창호전 10연패의 사슬을 끊으며 대반전을 노렸으나 3년 동안 이어진 '무패의 전설'을 가로막기에는 역부족, 도전4국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창호는 강했다. 2002년도에는 세계타이틀을 추가하지 못했지만 국내에서는 여전히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춘계 사제쟁기를 통해 4년만에 국수를 탈환했고 이세돌·안조영의 합작으로 이루어진 하계·추계 차륜공세에서 왕위, 명인을 무사히 방어했으며 KBS바둑왕 2연패에 성공, 6관왕에 오르며 만천하에 변함 없는 1인자의 위용을 과시했다.
이창호가 올해 수중에 넣지 못한 타이틀은 LG정유배와 KT배, KFT배, 천원까지 넷. 공교롭게도 모두 타이틀홀더의 프리미엄이 없는 선수권전이다.
아예 출전하지 않은 천원전을 제외하면 국내 10대타이틀 중 선수권전 타이틀 셋만 이창호의 손을 벗어난 것인데 국내바둑계의 풍운은 바로 이들 네 개의 타이틀전을 중심으로 일어나기 시작했다.
포스트사천왕시대에 떠오르는 별들
LG정유배 최고의 스타는 이창호를 격침시킨 송태곤이었으나 정상결전은 최명훈과 이세돌의 몫이 됐다. 최명훈은 2002년도 내내 부진에 시달렸으나 'LG정유배의 사나이'답게 이 대회 결승에만 다섯 번째 오르는 분전을 보였다.
그러나 생애 두 번째 타이틀획득의 꿈은 '폭풍의 아들' 이세돌의 힘에 밀려 물거품이 됐다. 이미 유창혁을 제치고 KTF배를 품에 안은 이세돌은 일본열도 공략(후지쯔배 우승)의 여세를 몰아 LG정유배까지 쓸어담으며 2인자 굳히기에 나섰다.
KTF배의 전신 배달왕전에서 이세돌에게 패하는 바람에 최우수기사상까지 놓쳤던 유창혁은 리턴매치에서도 패퇴하고 후지쯔배 결승에서도 이세돌에게 반집을 패하는 등 2년 동안 이세돌에게만 세 개의 굵직한 타이틀을 헌납하며 무관(無冠)에 머무는 아픔을 겪었다.
LG정유배에서 이창호를 꺾어 스타덤에 오른 송태곤은 시즌 내내 80%를 넘나드는 최고의 승률을 기록하면서 천원전 결승무대로 뛰어올랐다.
상대는 해가 바뀔수록 강해진다는 전신(戰神) 조훈현이었으나 이창호를 꺾으며 자신감을 얻은 송태곤은 그저 패기만을 앞세운 신예가 아니었다.
천원전 직전에 펼쳐진 국수전에서 조훈현을 2-0으로 밀어내고 도전권을 따낸 조한승의 박력이 송태곤에게 그대로 전이된 듯 첫 대국을 내주는가 싶더니 2, 3국에서 연승을 거두며 조훈현을 벼랑으로 몰아붙였다.
조훈현의 입장에서는 이미 사천왕에 자리매김한 이세돌부터 최철한, 조한승, 송태곤으로 이어진 '신예의 화(禍)'였다. 결승4국에서 천신만고 끝에 타이스코어를 만들어 최종승부를 2003년으로 미루는 데 성공했으나 그렇게 만들어진 여유는 결코 달콤한 휴식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조훈현이 천원전에 뒤이어 맞은 기성전 본선무대는 신예강자군으로 이루어진 첩첩산중이었으나 4강전에서, 자신에게 2연패를 안겨준 바 있는 박영훈을 뿌리치고 도전자결정전에 올랐을 때만 해도 조훈현의 얼굴에는 여유가 있었다.
도전자결정전의 상대가 입단 초년병었기 때문이다. 87년 11월 20일생으로 2001년 12월에 입단, 프로기사가 된지 만 1년 밖에 되지 않는 햇병아리 윤준상.
그러나 윤준상은 그냥 햇병아리가 아니었다. 지난 3월 입단 3개월만에 '최단기간 세계대회 본선 진출'이라는 기록(몇개월 뒤 박진솔이 경신)을 세우며 LG배 세계기왕전 본선에 올라 센세이션을 일으킨 주인공.
병아리는 병아리로되, 12월 들어 연일 이어진 도전자결정전과 결승전에 몸살감기까지 겹쳐 체력의 한계를 드러낸 조훈현으로서는 감당하기 벅찬, 독수리의 발톱을 가진 슈퍼병아리였던 것이다. 도전자결정전 제1국은 기관총난사를 방불케하는 매서운 펀치를 작렬시킨 윤준상의 승리로 끝났다.
 '천하의 조훈현'이 2003년 벽두부터 부담스런 두 신예 송태곤, 윤준상과 천원전 결승5국, 기성전 도전자결정전 제2국을 치르게 됐다는 사실, 아울러 두 기전 모두 벼랑에 몰려 있다는 사실은 시대의 흐름을 명쾌하게 웅변해준다.
떠오르는 별 조한승, 최철한, 박영훈, 송태곤, 윤준상…. 2003년도에도 이창호의 독주는 변함 없이 이어질 것으로 보이지만 조훈현, 유창혁, 이세돌의 단조로운 각축전으로 전개되던 정상권의 승부는, 이들 패기 넘치는 신진기예의 가세로 훨씬 다양하고 복잡한 구도로 바뀔 것이라는 게 관측자들의 일치된 견해다.
경천동지(驚天動地), 바야흐로 하늘도 놀라고 땅도 흔들리는 난세(亂世)가 도래했다는 얘기다. 변화의 바람과 구름 그 위로 새로운 별들이 속속 떠오르고 오랫동안 '어지러운 세상'을 기다려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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