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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함부르크여행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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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시콜콜 함부르크여행기 (3)
2013-06-07     프린트스크랩
▲ 함부르크 시청

130년의 역사 함부르크 시청 앞에서
함부르크 여행 이틀째는 도심 버스투어가 기다리고 있었다. 가이드는 윤영선 프로. 연일 고생이 크다. 조만간 이어질 그녀의 인터뷰가 약간이나마 위로가 됐으면 좋겠다. 외교관들이 많이 산다는 한적하고 우아한 전원 주택가를 지나 아름다운 내 알스터 호수를 보고 도심을 달려 함부르크 시청 앞에서 하차. 함부르크 시청은 광장 정면에 있으며 1886년부터 1879년에 걸쳐, 신 르네상스(Neo-renessance) 기법으로 건축된 사암벽돌 건물이다. 한눈에 들어오는 시계탑의 높이는 112m. 외부의 조각이나 내부의 장식 모두 정교함으로 눈길을 사로잡는다. 647개의 방이 있는데, 이는 영국의 버킹엄 궁전보다 여섯 개가 더 많은 수라고 한다. 

한자동맹 때 정부나 시 의회의 소재지로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증권 거래소와 전통적인 상공회의소도 있어 내부를 참관할 수 있다. 이상은 가이드북에서 볼 수 있는 설명이고 실제로는 들어가지 못했다. 윤영선 프로가 ‘들어가 보실래요?’라고 물었는데 적극적으로 나서는 사람이 없었고 어느 순간부터 일행의 영도자가 된 어르신은 딴청딴청, 손모 씨의 손을 잡아끌면서 사진이나 찍자고 하신다. 함부르크가 처음이 아니라는 어르신은 ‘야, 여기선 좀 찍어줘야 되는 거 아냐?’라며 슈팅장소까지 직접 골라 적극적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으니 ‘일단, 시청 내부나 좀 구경하고…’란 말을 할 수가 있나. 에잇, 신…발 한 켤레 사야 하는데 말이지. 

어디서 점심을 먹을까요. 이 근처에서 점심 먹고 각각 쇼핑 좀 하면서 자유롭게 시간 보내다가 총영사관 만찬에 가면 될 거 같아요. 윤영선 프로와 함께 몇몇이 앞장을 섰다. 알아서 따라오란 뜻인데 어르신들은 점심보다 사진놀이가 더 좋았나보다. 광장 한쪽에서 행위예술 같은 이색 분장의 모델 앞에 선다. 사진 찍으라는 거지, 뭐. 양쪽에 지팡이를 세우고 공중부양을 하듯 떠 있는 두 행위예술가들은 손모 씨가 보기에도 그럴 듯했다. 자세히 살펴보니 피아노줄 같은 선을 밟고 서있는 것인데 워낙 가늘어서 공중에 떠있는 것처럼 보인다. 

얼른, 카메라 셔터를 누른 뒤 ‘저도 한 장!’을 외치며 카메라를 넘겨드렸다. 슈팅은 ‘내가 찍어줄게’라며 자원한 조선일보 L부장님. 여행기간 중 1천장에 가까운 사진을 찍었는데(중복된 숫자를 빼면 700장쯤?) 딱 7장밖에 없는 손모 씨의 사진 중 한 장이 여기서 완성됐다. 그것도 독사진이 아니고 S위원님과 함께. 제일 먼저 기념사진을 찍은 어르신은 이미 또 다른 슈팅장소를 찾고 계신다. 아, 저 왕성한 탐구심, 기록에 대한 집념이라니.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저만치 다리 건너에서 아리따운 처자가 손짓을 한다. 아아늬, 생전 처음 와본 독일하고도 함부르크 땅에서 날 알아보고 손짓씩이나 해주는 아리따운 처자가 있다니!.. 라는 생각은 2초 만에 사라졌다. 조금 더 가까이 다가와 보니 예쁘긴 한데 익숙한 얼굴이다. 일행 중에는 유럽을 순회하며 일반인들과 현지 바둑교사들에게 바둑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황인성-이세미 부부도 있었는데 윤영선 프로와 식사장소를 정하고 뒤를 돌아보니 몇몇이 보이질 않아 이세미 씨가 찾아 나선 거란다. 단체여행 땐 인솔자를 잘 따라다니셔야죠. 물론, 착하디착한 이세미 씨가 그런 말을 할 리가 없다. 환청이라고 생각한다고. 난, 죄 없다고. 날 붙들고 사진 찍어! 호령하신 어르신을 탓하라고. 시청 앞에는 알스터호수와 엘베강을 잇는 샛강이 흐르는데 그 옆에 가설된 노천카페에서 점심을 먹었다. 

피자, 생선요리, 돼지고기 스테이크 등등. 파스타 좋아하는 손모 씨는 알리오올리오 스파게티에 새우토핑 추가. 음료는 와인과 홀스타인 드래프트(음…, 와인이 선택메뉴에 있다는 걸 몰랐다니. 아아, 억울하다). 유럽에 와서 맥주를 많이 마시게 되는 이유는 맛도 좋거니와 대체로 생수보다 값이 싸기 때문이다. 어느 식당엘 가도 공짜로 주는 물은 없다. 유럽국가 대부분의 물이 석회가 많이 섞여 그냥 마실 수 없다. 대부분 탄산수나 생수를 마시는데 식수를 생산(?)하는 비용이 크니까 당연히 비싼 값을 지불해야 한다. 

문득, 두 가지 생각이 겹친다. 정수과정을 거친다 해도 수돗물을 그냥 마실 수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첫 번째 생각은, 그게 가능한 내 나라의 토양에 대한 감사다. 두 번째는, 그런 나라에서 살면서 왜 밟은 지 하루밖에 안 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이 부러운 걸까. 이 나라의 국민소득이 내 나라의 2배라거나 서울보다 큰 땅덩어리에 200만도 안 되는 인구가 산다는 이유만은 결코 아닐 거다. 참고로 비교해드리면 서울 605㎢, 함부르크 755㎢ 서울인구 1020만, 함부르크인구 180~200만. 

자유로운 함부르크 쇼핑 체험
점심식사 마치고 각각 자유 시간을 갖기로 한다. 야호! 해방이다. 호텔 앞 알스터 호수에 산책을 다녀온 뒤로, 아침 일찍 호수 한 바퀴를 도는 달리기를 하고 싶어 안달이 났었다. 서울을 떠날 때 반바지를 하나 챙기긴 했는데 티셔츠도 마땅치 않고 무엇보다 운동화가 없다는 게 치명타였다. 해서, 쇼핑할 시간만 있으면 반소매 티셔츠와 러닝 운동화를 사리라고 마음먹고 있었는데 드디어 기회가 온 것이다. 

함부르크 여행 경험이 있고 영어가 되는 이세미 씨의 도움으로 마음에 드는 운동화와 반바지, 티셔츠를 샀다. 파란색 나이키 운동화는 정말 마음에 들었는데 값은 서울보다 오히려 싼 거 같다. 게다가 택스 프리(tax free- 외국인이 국내제품을 구입했을 때 제품가격에 포함된 부가가치세를 돌려주는 일종의 면세품)여서 10%를 환불 받을 수 있었는데 미처 몰라서 챙기지 못한 게 아쉽다(나중에 운영선 프로의 안내로 일행이 우르르 몰려간 잭 울프 브랜드점에선 배운 대로 착실하게 택스 프리 영수증을 챙겨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10%를 돌려받았다). 약속시간이 조금 남았다. 백화점거리 근처 노천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오가는 행인을 구경한다. 예전엔 그런 한가한 모습들을 이해하지 못했는데(아무 것도 안 하고 왜들 저러고 있나) 이제, 알 거 같다. 너무나 당연한 것인데도 예전엔 몰랐다. 눈앞으로 스쳐 지나가는 한 사람, 한 사람의 표정이 모두 다르다는 게 이렇게 재미있는 거였나. 마음의 여유는 인위적으로 만드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도 아니다. 오롯이 내 마음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여유. 같은 차, 한 잔을 마셔도 느낌이 이렇게 다르구나.

약속시간 다 됐다. 호텔로 돌아가서 옷 갈아입고 함부르크 총영사관 만찬에 참석해야 한다. 만찬은 서대원 전 헝가리 대사님(현재 대한바둑협회 부회장)의 주선으로 이루어졌다. 시청 앞에서 빨간색 시티투어버스(30분 주기로 온다)를 타려다가 시간이 넉넉해 호텔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보통걸음으로 20분이면 간다고 하니 굳이 복잡한 도로에서 이리저리 막히는 버스를 타야 할 이유가 없다. 응? 그런데 어르신이 안 보인다. 약간 놀라서 물어보니(절대로, 절대로 어디선가 길을 잃고 헤매시기를 고대하진 않았다), 쇼핑에 별 흥미가 없다면서 일찌감치 호텔로 돌아가셨단다. 설마, 혼자 길을 찾아서? 에이, 그럴 리가 없지. 황인성 프로가 호텔까지 모셔드렸다는군. 

외국여행은, 길 밝은 가이드만 있다면 자동차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걷는 게 훨씬 좋다. 그건, 함부르크가 아니라 어디라도 마찬가지인데 하물며 함부르크에는 현지인이나 다름없는 윤영선 프로가 있고 다년간(?) 함부르크에서 유학(공부도 하고 바둑도 가르치면서)했다는 강승희 프로까지 동행했으니 두려울 게 뭐 있겠나. 시청 앞에서 중앙역 쪽으로 방향을 잡아 아틀란틱 호텔로 가는 길에는 명품거리도 있다던데 함부르크 초행자의 눈에도 볼거리가 적지 않았다. 

누가 먼저 말을 꺼냈는지 모르겠다. 아무튼 누군가 주방용 칼 이야기를 꺼냈다. 독일, 하면 기계가 유명하잖아. 칼도 그중의 하나 아니겠어? 독일의 쌍둥이 브랜드 칼은 세계적으로 알아준다고. 츠빌링(Zwilling) 헹켈(Henckels)이란 낯선 단어가 춤을 춘다. 아, 그게 그렇게 유명한가. Y프로가, 사다줘야 한다며 가게를 묻고 피고하다며 ‘택시 타고 호텔 갈 사람 없어?’라고 호객행위하던 L부장님도 가세했다. 그럼, 사실 분들만 제가 모시고 갈 테니까 다른 분들은 그냥 호텔로 가세요. 일행은 시청 앞에서 조금 내려오다가 두 파로 갈라졌다. 식칼파와 호텔파. 흠, 어쩐지 조직의 냄새가 나는데? 이참에 한번 결성해볼까. 함부르크 식칼파와 호텔파! 

함부르크 총영사관 만찬
오후 7시 함부르크 총영사관 저녁만찬. 원래는 6시 30분이었는데 30분 늦춰졌다. 차량 두 대로 나눠 타고 총영사관을 향하는데 비가 내린다. 세차게 쏟아지는 것도 아니고 슬금슬금 뿌리는 비인데 우중충한 하늘을 보니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다. 지난 이틀 동안 따갑게 쏟아진 햇살을 두고 ‘보기 드문 행운’이라던 윤영선 프로의 말이 무슨 뜻인가 했는데 비로소 ‘함부르크는 흐리고 비오는 날이 많은 항구도시’라는 친구들의 말이 피부로 느껴진다. 

그래도 그렇지. 이봐요, 미스터 아폴론! 의기양양 쏘아대던 당신의 황금화살은 고작 이것뿐이었소? 헤파이스토스에게 특별주문이라도 해두지, 이게 뭐요? 꼴랑 이틀이라니! 우리가 돌아갈 날은 아직 멀고 우린 당신이 쏘아대는 황금화살을 이리저리 피하는 스릴을 만끽하며 조금은 더 쏘다니고 싶다고요. 너는 떠들어라, 나는 자련다. 어두운 구름 뒤로 숨은 신은 말이 없고 황금화살 대신 조금 더 굵은 비를 뿌려준다. 엣취!! 

빗길을 달려 도착한 총영사관(Kaiser-Wilhelm-Str. 9 (3.OG), 20355 Hamburg 소재)은 한적한 전원주택가에 다소곳이 앉아 있었다. 우아한 정원과 이웃 주택의 나무숲에 둘러싸인 이곳은 공관이라기보다 아담한 별장 같았는데 인터폰으로 일행이 도착했음을 알리자 낮은 문이 자동으로 스르르 열린다. 문 앞으로 펼쳐진 짙푸른 정원 길을 따라 예쁜 카페 느낌을 주는 공관으로 걸어가는 기분이 상쾌하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총영사 내외가 반가이 맞아주는데 명함을 교환하고 보니, 어라! 손.선.홍. 총영사. 성씨가 같군요. 대뜸 날아오는 말. 밀양이 본이시죠? 십중팔구는 그렇다. 

함부르크 총영사관은 1964년 유럽최초의 대한민국 총영사관으로 개관했다가 1999년 폐쇄됐으며 2007년 12월 김희택 총영사가 부임하면서 재개관(2008년 3월)됐다. 현임 손선홍 총영사는 2011년 3월에 김희택 총영사로부터 바통을 넘겨받았다. 일행과 인사를 나누고 잠시 서서 가벼운 화제로 담소하다가 만찬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아무 구별 없이 네임택을 한곳에 올려두었으니까 각자 앉고 싶은 자리에 자기 네임택을 놓고 앉으시면 됩니다. 그렇게 말해도 그렇게 앉지 않으리란 걸 잘 안다. 서열을 잘 알 수 없는 소규모 단체 방문객을 맞을 때 유력한 자리배정 방법. 식사를 겸한 행사를 많이 치르는 사람이라면 배워둘 만한 아이디어다. 손선홍 총영사가 방문해준 일행에 감사를 표하며 총영사관에 관하여 간략한 소개를 마치자 서대원 대한바둑협회 부회장이 일행을 대표하여 총영사관의 만찬 초대에 답례하고 일행을 일일이 소개했는데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매너가 인상적이다. 와인을 곁들인 샐러드와 양갈비구이, 바다가재, 된장국과 잡곡밥으로 알차게 채워진 만찬은 2시간쯤 화기애애하게 이어졌다. 

손선홍 총영사는, 함부르크 주정부 주관 ‘영사관 개방행사(Lange Nacht der Konsulate)’에 참여, 청사를 개방하고 전통문화 소개 및 각종 체험행사를 가졌다고 소개했다. 이 행사는 함부르크시 주관 특별행사로서 한국, 스페인, 프랑스, 인도네시아 등 총 33개의 영사관과 6개의 외국문화기관이 참여해 각국의 사회, 문화 등을 홍보한다. 

동석한 김평호 영사의 말에 의하면 약 100명의 방문객들이 총영사관 민원대기실을 방문, 전시돼 있는 다양한 전통의상, 전통악기, 서예 등을 직접 체험했는데 특히 현장에서 찍은 즉석 기념사진을 받아 볼 수 있는 ‘전통문화체험 코너’와 현지에서 활동하고 있는 서예가 함양분 씨가 서예 및 작품을 소개하고, 방문객들이 직접 붓글씨를 쓸 수 있도록 지도하는 ‘서예코너’의 호응도가 매우 높았다고 한다. 

손선홍 총영사는, 서대원 부회장의 현지 바둑행사에 대한 총영사관의 지원 요청에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화답했는데 ‘이전에는 바둑도 영사관 개방행사에 포함됐었다’는 윤영선 프로의 말을 마음에 담아두셨으면 좋겠다. 그럴 자격은 없지만 일행을 대신해, 따뜻하고 풍요로운 만찬을 베풀어주신 손선홍 총영사님과 김평호 영사님 그리고 총영사관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알스터 호수, 나를 잊고 달리다
혼자만의 시간을 오롯이 즐길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운이다. 단체여행씩이나 와서 약속(? 사실, 의례상 함께 하면 좋다는 정도였지, 꼭 지켜야 할 특별한 약속은 없었다)도 잊고 호텔방에 누워 죽은 듯이 잠을 잤다. 휴가라고, 여행이라고 생각하기엔 너무 많은 일(?)에 시달렸다. 뭐, 자업자득이긴 하다. 오랜만의 해외여행이라고, 좋은 사진 담아보겠다고 여행자 자신에겐 그닥 좋을 일이 없을, 무거운 소니 a700 카메라 가방을 들고 나선 것부터가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무엇인가 욕심이 생기면 그만큼 평온을 잃는 것이 세상살이의 이치다. 모두 여행의 좋은 추억을 간직하고 싶으니, 압축된 행복의 이미지를 갖고 싶어 하니 그럴 듯한 그림으로 정지된 시간만큼 좋은 게 어디 있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일을 겸해서 온 사람도 있다. 이런 사람들에겐 미션을 열심히 수행했다는 증좌로써 더더욱 사진이 필요하다. 그러니 유일하게, 고가의 카메라(일행의 똑딱이에 비해서)를 들고 나타난 것부터가 고생을 자초한 셈이다. 사람들의 선입견만큼 단순한 게 또 있을까. 비싸다는 것만으로 믿음을 준다. 생전 가져본 적 없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지만 명품이 갖는 소비자들의 신뢰라는 게 그런 거 아닐까. 일반인들이 볼 때 뭔가 포스를 뿜어내는 DSRL 카메라를 들고 나타난 순간부터, 이놈은 뭔가 제대로 찍어줄 거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게 하는 것이다. 그러니 내가 원하는 만큼만 해주겠다는 생각은 처음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또 싫어하는 사람만 아니라면 어지간한 요구를 다 들어주는 미련한 성품도 한몫 했겠다. 단체로 한 묶음이 되어 무엇인가(꼭 여행이 아니라도)를 함께 하면서 그중 누군가를 불편하게 만들면 딱 그만큼 내가 불편해지는 성격이라는 게, 또 그런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게 문제라면 문제다.

하루가 그렇게 또 지났다. 오늘은 작심하고 나를, 나의 생각을 배신했다. 아니 따지고 보면 배신이 아니라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간 거다. 가능하다면, 누구의 간섭도 받지 않고 오롯이 나를 즐기고 돌아오겠다는 처음의 생각 말이다. 오늘 아침, 호텔을 나와 알스터 호수 산책길을 뛰면서 그 생각은 더욱 확고해졌다. 온전한 나를, 나의 시간을 즐기는 완벽한 기쁨에 눈을 떠버린 것이다. 호수를 한 바퀴 도는 8km의 산책길은 그만큼 좋았다. 적어도 그 시간만큼은 모든 것을 버린다 해도. 

산책길을 1km쯤 달렸을 때 휴일의 고즈넉한 벚꽃나무 언덕에 웅크려 새벽공기를 즐기는 물오리들의 나지막한 이야기가 귓속을 파고드는 그 기쁨을 누가 알겠는가. 실은, 마주치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기에 오로지 나만이 그 이야기를 듣는다는 것이 더욱 황홀했는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다. 그 호젓함만으로도 나른해지는 벚꽃나무 언덕은 그렇게 지나쳤다. 운동화를 통해 발바닥에 닿는 부드러운 흙의 탄력이 두 다리를 타고 올라 심장에 이른다. 처음엔 안마를 하듯 가만히 두드리다가 마침내 격렬해지는 북소리, 그것은 심장의 거친 메아리가 아니고 대지의 뜨거운 응원이었다. 두 다리와 가슴이, 등과 팔, 다리가 드디어는 온몸이 열기를 뿜기 시작했다. 나는 이렇게 뜨거운 몸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구나. 예열된 엔진, 폭음을 토하면서 질주하는 기관차가 거기 있었다. 

볼 때마다 도도한 큰고니의 집을 지난다. 처음에는 인위적인 것이 틀림없어 보이는, 물 위의 저 작은 둑이 큰고니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란 사실을 몰랐다. 안다고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지만 아니, 실은 달라졌다. 내가 그동안 얼마나 형편없는 곳에서 살아왔는지,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애국자였는지 알게 됐다. 

내가 떠나온 곳에서는 인간 이외의 것들과 ‘함께’한다는 생각을 가질 수 없었다. 심지어는 사람조차 ‘함께’였는지 하는 의문이 고개를 들어올린다. 외국의 화보를 볼 때마다, 그윽한 숲속에서 한줄기 햇살을 즐기는 잘 생긴 나무들을 볼 때마다 전문 포토그래퍼들의 사진이니까 그렇겠지 생각했는데 실은, 그게 아니었다. 이곳의 나무들은 모두 넉넉한 터전에서 온전한 삶을 누리고 있었기에 카메라 렌즈를 들이댈 때마다 풍요로운 미소를 드러낼 수 있었던 것이다. 산책길을 달리면서 우아하게 손 흔드는 나무들을 볼 때마다 내 떠나온 곳의 나무들이 가여워졌다. 하긴, 사람이라고 그렇지 않을까. 

다리 위에서 ‘당신 지금, 5km를 넘어섰다는 거 알아?’그런 표정으로 나를 지켜보는 까마귀는 더 이상 불길해 보이지 않았다. 아니, 종종걸음으로 내 곁으로 함께 달리며 ‘이봐, 힘내라고!’를 외치는 그 노란 부리는 더없이 친근했다. 안개보다는 거친, 이슬비보다는 섬세한 물방울들이 온몸에 내려앉는다. 전영관 시인이 말한 ‘는개’가 이런 건가.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는 몸을 식혀주는 이 고마운 물의 기운은 스스로 생각해도 기특하리만큼 달릴 수 있는 이유의 하나일지도 모른다. 

나를 잊었다. 반드시 완주하고 말겠다는 유치한 목표도 잊었다. 그저 달린다. 달리는 것만이 유일한 목적이며 목표가 됐고 끝내는 그마저도 잊었다. 길을 잃고 한순간 멈칫거릴 때마다 경련을 일으키던 두 다리의 불편한 감각마저 사라졌다. 신기한 일이다. 가슴을 뚫고 나올 것처럼 거칠게 오르내리던 숨소리가 잠든 아이처럼 부드럽게 가라앉다니. 펄떡이는 심장의 울림은 더 이상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갓 잡아 올린 물고기처럼 싱싱한 나의 삶이다.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살아있다.

바람이 불어온다. 무릎이 꺾일 때마다 가만히 나를 안아 일으켜주는 서늘한 바람. 문득, 어딘가에서 달리고 있을 지도 모를(이 별이 아니라도 좋다)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나를 안아 일으켜준 서늘한 바람이 그의 이마에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닦아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부드러운 바람의 손길을 통해 그 뽀얀 이마에 은은히 푸른, 힘줄 쓰다듬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그의 영혼을 가만히 안아주고 싶었다. 

그리 멀지 않은 저만치, 눈에 익은 풍경이 다가온다. 아틀란틱 호텔 지붕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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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엔틴 |  2013-06-08 오전 6:06: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예전 독일 남부와 스위스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습니다. 비슷한 느낌으로, 저 또한 피상적
인 느낌에 불과하나, 정돈이 잘 된 자연과 그 곳 사람들의 여유가 보기 좋았더랬습니다. 적
정한 노동의 댓가와 휴식이 보장되는 사회적 기반과 더불어 어떤 정신적 기율이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참, 그 곳 사람들은 영어를 그리 잘하는 편이 아니던데, 그럴 필요
가 없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여행 사진이 좋네요.  
눈길달빛 |  2013-06-17 오전 12:49:5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기자보다는 수필가나 여행기 프리가 더 나을듯... 잘 썼네요.. 몸에밴 지자랑만 빼면 독자가 더 많아질거고.. 글도 더 수준 높아질거고.. 어쩔수 없는 타고난 에고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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