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ro 세계 인터넷바둑의 허브
  • 겜임&채널
시시콜콜 함부르크 여행기 (2)
Home > 컬럼 > 손종수
시시콜콜 함부르크 여행기 (2)
2013-06-03     프린트스크랩



여행 첫날, 뤼베크와 발트해를 가다



호텔 아틀란틱이 좋은 이유
일행이 여장을 푼 아틀란틱(Atlrantic)호텔은 함부르크의 명소 중 하나다. 100년 전통을 자랑하는 유럽양식의 건물에 중후한 품격을 갖춘 내부 인테리어가 돋보이는 5성급 호텔. 뭐, 이 정도만 해도 고개를 끄덕여줄 만한데 호텔에서 횡단보도만 건너면 바로 눈앞으로 펼쳐지는 알스터(Alster) 호수가 그렇잖아도 도도한 호텔의 어깨에 날개까지 달아주었다. 내, 외 알스터로 나뉘어 불리며 수많은 지류를 따라 함부르크 시내를 누비다가 엘베(Elbe)강을 통해 바다로 이어지는 이 호수는 둘레길 8km에 이르는 거대한 인공호수다.

현지시간 오전 7시, 1층 뷔페식당으로 내려가 가벼운 식사. 천에 덮인 크라트프콘(Kraftkorn- 대두, 호밀, 귀리, 아마인 씨, 해바라기 씨 등이 섞임)식빵을 두툼하게 한 조각 썰고 블루베리 잼을 듬뿍 덜었다. 해외로 나오기만 하면 다이어트 식단을 생각하게 되는 이유는 뭘까. 닥치는 대로 다 맛보고 싶었지만 한국인의 우아한(?) 품위를 생각해 딸기, 파인애플, 메론 등의 과일만 조금 담았다. 손모 씨의 서울 아침 밥상에선 그림자도 볼 수 없는 진한 커피도 한 잔하고 느긋하게 방으로 올라왔다. 음, 속이 허하구나. 우아한 것도 좋지만 내일은 쪼금, 아주 쪼금만 더 먹어야겠다.

방문을 여는데 한참 동안 실랑이를 벌여야 했다. 묵직한 열쇠를 꽂고 이리저리 돌리며 손잡이를 잡아당기는데 좀처럼 열리지 않는다. 놋쇠로 만든 장난감 병정 같은 이느무 열쇠도 그렇고 뻑뻑한 방문의 잠금장치도 그렇고 어쩌면 그렇게 겉보기에 무뚝뚝한 이곳사람들이랑 닮았는지.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누가 보아도 그다지 똑똑해 보이지 않을 이 힘겨운 열쇠놀이는 하루를 더 거치고서야 비로소 적응이 됐다. 아니, 이렇게 쉽게 열리는 문이 왜 그랬을까. 그 참, 딱 이 동네 사람 성격이네.

방에 들어서자마자 요란하게 울리는 전화벨소리. 음? 누구지? 일행의 방 번호를 기록한 프린트용지를 받긴 했지만 벌써 연락할 일은 없을 텐데. 수화기를 들어 올리니 우렁우렁 천둥소리가 쏟아진다. ⊙⊙... 아, 이 어르신은 기가 정말 세다니까. 야, 일어났냐? 너, 아직 침대 위에 있지? 아뇨, 일어나서 샤워하고 아침도 먹었는데요. 그래? 그럼, 산책 가자. 간.단.명.료.일.사.천.리! 뭐, 시원시원하긴 하네.

음, 그렇잖아도 호수 쪽으로 산책을 나설까 생각 중이었는데 선수를 당했다. 역시 고수는 일상에서도 선수의 타이밍을 기막히게 잡는다. 새삼, 이 어르신은 내가 4점을 깔아야 비슷하게라도 판을 짜볼 수 있는 고수가 분명함을 깨닫는다. 아, 고수의 길은 멀고 험하구나.

횡단보도 건너다가 한걸음 먼저 산책을 나갔다 돌아오던 S위원을 만났다. 일찍 다녀오시네요. 어, 난 이쪽, 저쪽 조금씩 다 가봤지. 좋던데?..라는 말과 함께 지나치려던 이분도 어르신의 마수(?)에 걸렸다. 야, 너도 가자! 상대가 누구건 거침없기는 매한가지. 아니, 저는 1시간이나 돌았다니까요? 거부의사를 밝히며 저항했으나 강력한 눈빛에 눌려 결국, 동행하게 됐다. 자동차 전조등처럼 불휘불휘한 안광까지는 어떻게 버틸 수 있을지 몰라도 그 뒤에 ‘이 좌식이!’라는 묵직한 돌직구가 날아들면 대적이 불가하다. 그저, 자신의 불운을 원망하는 수밖에 없다. 재수도 없지, 하필이면 그 시간에 횡단보도에서 딱 마주칠 건 뭐냐고.

그래도 산책길은 좋았다. 짙푸른 호수가의 풀, 나무도 넉넉한 웃음으로 긴장을 풀어주었고 모처럼 따사로운 볕을 즐기러 물가로 나온 오리가족이며 큰고니들은 이방인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바로 곁을 지나치는데도 달아나기는커녕, 특이한 얼굴을 가진 인간들이군. 어디 자세히 좀 볼까..라는 표정으로 성큼, 다가와 오히려 나를 주춤, 물러서게 만들었다. 에잇, 간뎅이 작은 인간 같으니라고! 물오리 처음 보냐. 촌스럽기는! 아니, 도시스럽기는!

휴일이 아니라도 알스터 호수의 아침 산책길에는 자전거를 탄 사람들과 짧은 팬츠와 민소매셔츠차림으로 이어폰을 귀에 꽂고 달리는 사람들이 제법 많다. 1년쯤 됐나. 사무실 책상 밑에 처박아두었던 소니 a700 슈팅 테스트. 아! 카메라 뷰파인더에 잡힌 알스터 호수 산책길은, 그냥 그대로 화보였다. 언젠가 외국잡지를 뒤적거리다 숲속의 잘생긴 나무 한 그루가 무성하게 얽힌 나뭇잎 사이로 쏟아지는 한줄기 햇살을 즐기는 사진을 보고 얼마나 감탄했던가. 그때는 전문 포토그래퍼의 사진이니까 그렇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닌 거 같다. 함부르크 여행 못 해보신 분, 염장을 지르자면 여긴 포토그래퍼가 아니라도 어느 곳이든 카메라를 들이대면 다 화보가 된다. 이런 곳에 살면서 시와 소설, 산문도 좋아. 어쨌든 문학과 가까워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감정 없는 사이보그가 분명할 거란 생각이 든다.

한자동맹의 여왕
오전 10시에 윤영선 프로와 약속이 있었다. 바둑행사는 이틀 후에 시작되니까 그동안 이동이 편리한 곳으로 골라 일행의 관광 안내를 해주겠다는 것이다. 행사준비만 해도 분주할 텐데 염치없는 짓이지만 그렇다고 이틀 동안 제자리 뛰기만 할 수도 없지 않은가. 일행을 이끌어줄 눈 밝은 영도자(애초 동행하기로 했다가 급한 사정으로 함부르크 여행을 접으신 회장님의 부재가 실로 크도다)가 없는 처지라 황송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리하여 함부르크 여행 첫날, 오전은 뤼베크(Lubeck) 방문. 󰀎트라베(Trave)강이 발트(Biltic)해로 흘러드는 어귀에 위치한 뤼베크는 중세(14~15세기) 독일 한자동맹(Hanseatic League)의 중심 도시로 ‘한자동맹의 여왕’으로 불리던 곳이다. ‘한자동맹’이 뭐냐고? 에잇, 그 정도는 좀 찾아보셔. 17세기 이후 북유럽 무역의 패권을 쥐고 있던 한자동맹이 쇠퇴하면서 뤼베크의 전성기도 막을 내렸으나 뤼베크 구시가에는 지금까지도 과거의 흔적이 남아 있다. 성문과 교회를 비롯한 과거 한자도시 시절의 유적이 집중적으로 남아 있는 구시가는 198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독일 북부 슐레스비히 홀슈타인(Schleswig Holstein) 주에 위치한 뤼베크에 상인거주지가 형성된 것은 12세기 중엽이며 ‘한자동맹의 여왕’이라는 화려한 칭호를 얻으며 북유럽의 해상무역을 주도했던 시기는 14세기 중엽부터다. 당시에는 발트해를 지나 스웨덴, 핀란드 등으로 가는 대부분의 배가 뤼베크 부두에서 출발했다. 특히 뤼네베르크에서 북유럽으로 이어지는 소금중개무역이 가장 큰 부의 원천이었다. 소금은 워낙 벌이가 좋아 ‘북쪽의 금’ 또는 ‘백색의 금’이라 불렸으며, 뤼네베르크에서 뤼베크로 소금을 나르던 길을 ‘소금길’이라고 불렀으며 현재 뤼베크에는 당시 소금창고 건물이 남아 있다.󰀏-두산백과 참조-

뤼베크는 함부르크에서 대중교통으로 약 1시간쯤 걸리는데 일행은 윤영선 프로가 준비한 차량 2대를 이용해 좀 빠르게 이동했다. 운전은 황인성 프로와 함부르크 교민 이종하 사장님(정확하게 말하면 그, 예쁜 따님)이 수고해주셨다. 뤼베크로 가는 도로는 편안했다. 왕복차도 옆은 끝없이 너른 들판이었는데 노란 유채꽃 군락이 장관을 이루는가 하면 장난감보다 예쁜 뾰족지붕의 전원주택들이 푸른 들판 곳곳에 꽃처럼 피어있었다. 함부르크에서 뤼베크로 가는 길은 캔버스 위에 그려진 한 폭의 유채화였다.

뤼베크로 들어서자마자 김호남 교민 회장을 만나 이곳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홀스타인문(Holstentor)으로 이동. 여기서 이 여행의 첫 번째 단체 기념촬영이 있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유일하게 일행 전체가 함께 모인 기념사진이었다(이 사진만큼은 모두 꼭 챙겨드려야겠네.). 아치형 성문 위에 'CONCORDIA DOMI FORIS PAX'라는 문자가 붙어있었다. 나중에 찾아보니 ‘안으로는 화합, 밖으로는 평화’라는 뜻이란다. 진짜?

햇살 따갑다. 유럽에서 맞는 아폴론의 황금화살은, 타히티 보라보라 섬 마티라(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으로 선정된) 해변에 길게 누운 비키니여인을 떠올려주는 관능을 보여줄까 기대했는데 비키니여인이 다 뭐냐, 헤파이스토스의 화덕에 넣었다가 막 빼어든 화염화살인지 살을 태울 듯이 따가워 죽는 줄 알았다. 선크림 없이 그냥 따라나섰던 Y프로(다수의 세계타이틀을 획득한 바 있으며 한때 일지매란 별명으로 많은 여성 팬들의 호감을 독점했다), 급기야는 견디지 못하고 나의 키플링 백에서 대기 중이던 선크림요원에게 구조를 요청했다. 덕지덕지 잘도 바르시는고나.

토마스 만과 빌리 브란트
뤼베크에서는 세계적인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토마스 만(Mann, Thomas 1875~1955)의 흔적도 만날 수 있다. 한때 토마스 만 가문의 소유였으며 소설 ‘부덴부로크 가(家)의 사람들’의 무대이기도 했던 부덴부로크 하우스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싶은 충동이 솟구치는, 금발머리에 눈이 파란 이국사람들이 샌드위치 먹고 커피 마시며 담배 피는 노천카페 거리를 지나 오! 토마스 만의 생가를 간다고? 그렇잖아도 여행 떠나기 전 가까운 사람들이 ‘토마스 만 생가는 꼭 찾아보고 오라’고 하는 바람에 꼭 들러봐야 한다는 의무감 비슷한 게 생겨 내심 좋아라..했는데 여기서 머문 시간은 딱 3분…. ㅡㅡ^ 아오~~~. 내가 뭐 열렬한 문학청년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건 아니지. 이 배신감이라니, 도대체 여긴, 왜 온 거냐고. 건물 꼭대기 ‘다윗의 별’이 시큰둥, 웃는 게 안 보이냐고.

일행은, 서독 총리를 지낸 빌리 브란트(Willy Brandt 1913~1992) 기념관에서 더 오래 머물렀다. 한국인은 유독 정치에 관심이 많은 걸까. 한국에서 책이 잘 안 팔리는 이유 중 하나가 책보다 요지경 같은 정치를 더 재미있어 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을 지경이다. 뭐, 빌리 브란트가 싫다는 뜻은 아니다. ‘동서화해 정책을 추구하여 냉전시대 동서의 긴장을 완화함으로써 통일의 밑거름을 마련한 그는 독일인은 물론, 세계인들에게 존경 받는 정치인이다. 어려운 성장환경과 역사적 혼란을 극복하면서 정치인으로 우뚝 섰고 끝까지 자신의 신념을 잃지 않고 평화와 화해의 시대를 앞당긴 위인이니까 요지경놀이에 여념이 없는 한국의 정치인들은 한 번쯤 와볼 만한 곳이다.

아, 일본의 극우 정치인들이 이 글을 볼 리는 없겠지만 요즘 하는 짓들이 하도 같지 않아서 이 일화만은 소개해야겠다. 󰀎1970년 12월 7일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의 2차 세계대전 시기에 희생된 유태인을 기리는 위령탑 앞. 서독의 총리 빌리 브란트가 헌화를 하던 도중 털썩 무릎을 꿇었다.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빌리 브란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당황했다. 한 나라의 총리가 무릎을 꿇는 광경은 그리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 아니었기에 일부에서는 총리가 현기증으로 쓰러진 것인가 생각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것은 서독 총리 빌리 브란트가 2차 세계대전 시기 독일 나치에 의해 희생된 폴란드 유태인들에게 올리는 진심 어린 사죄였다. 빌리 브란트는 위령탑 앞에 무릎을 끓고 고개를 숙여 오랫동안 묵념했다. 12월 추운 겨울날 위령탑 앞 콘크리트바닥은 차가웠지만, 빌리 브란트의 참회는 뜨거웠다. 빌리 브란트의 이러한 행동은 폴란드와 독일뿐만 아니라 전세계에 알려 졌다. 서독을 대표하는 총리의 과감한 행동은 그 동안 전범국가 독일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세계인들의 선입견을 바꾸어 놓았다. 빌리 브란트의 진심이 담긴 사죄는 서방국가뿐만 아니라 공산진영국가들의 마음도 흔들어 놓았다. 언론 인터뷰에서 빌리 브란트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인간이 말로써 표현할 수 없을 때 할 수 있는 행동을 했을 뿐이다.” 라고 말했다. 세계 언론들은 빌리 브란트의 이 사죄를 “무릎을 꿇은 것은 한 사람이었지만 일어선 것은 독일 전체였다” 라고 평하기도 하였다. 이것은 빌리 브란트가 시작한 독일 통일 프로젝트, 나아가 유럽전체의 평화와 통합을 향해 나아가는 ‘동방정책’ 의 상징적 출발점이었다.󰀏-네이버 지식백과 네이버캐스트 참조- 나는, 당신들이 빌리 브란트의 언행을 반만 따라도 ‘이코노믹 애니멀’이란 수치스런 별명 하나쯤은 바로 떼어낼 수 있을 거라는 데 500원 건다, 시바!!

음…. 일행이 토마스 만 생가를 후딱 지나쳐버려 기분이 좀 꿀꿀하긴 했지만 뭐, 그렇다고 BLOCK HOUSE(체인점인데 무지 맛있다. 우리나라엔 이런 식당 좀 없나?)의 점심식사까지 꿀꿀했다는 얘긴 절대 아니다. 땡볕에 무거운 카메라가방 메고 쏘다니느라고 힘들고 목마르고 허기지고 그랬다고. 뭔가 벌컥벌컥 마시고 싶고 와구와구 먹고 싶었다고. 두툼한 송아지 스테이크와 에딩거 드래프트 한잔에 모든 불만이 사라진다. 즐겁다. 처음 만난 분들은 조금 어색하게 어울렸지만 그래도 모두 표정은 밝았다. 식사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함부르크의 느낌과 생각. 분명, 7시간 시차의 저 너머에 있을 서울과 똑같은 24시간을 돌고 있을 텐데 이곳의 시간은, 걸음이 참 여유롭구나. 식사를 산책하듯 느긋하게 즐기긴 아마도 처음인 거 같다.

산책 같은 점심식사의 나른한 포만감에서 채 빠져나오지 못하고 흐느적거릴 때 윤영선 프로가 묻는다. 여기저기 갈 곳이 제법 되는데 어딜 가고 싶으세요? 모두 꿀 먹은 벙어리처럼 눈치만 살피고 있는데 어르신이 나섰다. 역쉬, 쵝오예요!!(2년 전 함부르크에 왔었던 사이버오로 최모 팀장이 생각났다) 어디, 탁 트인 바닷가 없을까. 그런 데 가서 시원한 맥주 한잔 했으면 좋겠다. 발틱 해안 어때? 거기, 좋다고 하더라고! 음…. 어떠냐고 묻는 게 아니라 가자는 거다. 이럴 때 눈치 없이 딴소리하면 바로 돌직구 날아온다. 아니, 어르신의 간절한 눈빛으로 보아 여기서 딴죽을 걸었다간 이번엔 돌직구가 아니라 LA 천사들 식겁하게 만든 류현진의 패스트볼이 날아올 거 같다. 모두 군소리 없이 발트해를 가기로 했다.

유럽의 보물바다 발트해를 가다
오늘 역사공부, 지리공부 많이 한다. 이거, 다 머릿속에 우겨넣으려면 고생 좀 하겠다. 발트(Baltic)해. 사실, 같은 지명이지만 우리 어르신 말씀처럼 내 귀엔 ‘발틱해’라는 명칭이 더 익었다. 그렇다고 발틱해에 대해서 잘 아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생각나는 건 딱 하나다. 러시아 ‘발틱함대’. 왜 그런지는 모르겠다. 어렸을 때 무슨 관련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었던 것인지도 모르겠는데 지우개로 지워버린 것처럼 싹 사라지고 이름만 달랑 남았다. 그것도 아주 또렷하게. 세계최강의 함대로 명성을 떨치던 발틱함대는 러시아의 자랑이었으나 1905년 5월 27일(딱 100여 년 전, 이 시기네), 일본의 군신(軍神)으로 추앙받는 도고 헤이하치로(東鄕平八郞)의 함대와 격돌해 처참하게 괴멸되고 러-일전쟁 수모의 상징이 돼버렸다. 이 전쟁 이후 일본은 아시아의 패자로 부상했다. 그런데 그 도고 헤이하치로가 "이순신 장군에 비하면 나는 일개 하사관에 불과하다. 만일 그가 나의 함대를 가지고 있었다면 그는 세계의 바다를 제패했을 것"이라며 한껏 머리를 조아렸다는데 그게 사실일까. 뭐, 듣자하니 그렇다는 거니까 흥분할 건 없다.

󰀎발트해는 면적 43만 평방km로 평균깊이 55m이며 가장 깊은 곳은 463m나 된다. 옛 이름은 호박(琥珀)의 산지로서 알려진 마레수에비쿰(Mare Suevicum), 독일어로는 오스트제(Ostsee:동쪽 바다).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유틀란트 반도에 의하여 북해와 갈라져 있으나, 두 반도 사이의 스카케라크 해협과 카테가트 해협으로 외양(外洋)과 통한다. 스웨덴 ·덴마크 ·독일 ·폴란드 ·러시아 ·핀란드에 둘러싸여 있다. 구조적으로는 북해(北海)의 연장에 해당하는 천해(淺海)이며 덴마크 동부의 여러 해협 및 카테가트 해협으로 북해와 통하는 한편, 인공의 킬 운하로 연결된다. 또, 러시아의 운하와 발트해 운하로 백해로 배가 통하게 되었다. 북쪽에는 보스니아만이 들어와 있고, 동쪽에는 핀란드만과 리가만이 있다. 천해인데다가 염분도 적기 때문에 동부 및 북부의 대부분은 겨울철에 3~5개월 동안 얼어붙는다.

그러나 남부에서는 연안빙(沿岸氷)이 생길 정도에 불과하다. 연안에는 섬들이 많아 다도해를 이루고 있는데, 주요 섬으로는 셸란 ·퓐 ·롤란 ·보른홀름(덴마크), 욀란드 ·고틀란드(스웨덴), 욀란드(핀란드), 히우마 ·사레마(러시아) 등이 있다. 어업은 그다지 활발하지 않으나, 발트 청어의 어획은 상당하며, 그 밖에도 대구 ·송어 ·가자미 등이 잡힌다. 또한 염분이 적어서 담수계의 동식물이 늘어나고 있다. 연안의 주요 항구로는 코펜하겐 ·스톡홀름 ·헬싱키 ·상트페테르부르크 ·리가 ·그단스크 ·킬 등이 있다. 근세에는 이들 연안도시가 한자동맹의 영향 아래 있었으며 호박을 비롯하여 모피 ·철 ·목재 등의 지방 산품을 취급하여 크게 번영하였다.󰀏-네이버 지식백과, 두산백과 참조-

시간, 장소를 제대로 기록해둘 걸 그랬다. 뤼베크에서 얼마 걸리지 않은 것 같은데 메모엔 젬병이라. 어쨌든 발트해에 와서 해변을 거닐었다. 무리를 지어 다니는 모습이 뭐, 그렇게 썩 아름다워 보이진 않겠지만 그래도 모두 즐거워한 것만은 분명하다. 일행 중 S부회장님(대한바둑협회)은 전직 고위 외교관답게 발틱해(어르신들은 다 이렇게 부른다)에 얽힌 역사를 상세히 설명해주신다. ‘한자동맹’이 다시 등장하고 명멸해간 연안의 도시국가들이 일일이 호출된다.

몇몇이 짝을 지어 사진도 찍고... ㅡ,.ㅡ 물론, 찍사는 나이 어린(?) 손모 씨다. 모래사장, 등대를 보고 겁 없이 달려드는 갈매기들을 희롱하다가 해변에 인접한 야외카페 파라솔 아래서 시원한 맥주를 마셨다. 이곳에선 맥주를 많이 마시게 된다. 맛도 풍부하지만 어차피 마셔야 할 거라면 물보다 싸고 짜릿한 맥주가 낫겠지. 말수 적고 점잖은 L부장님(조선일보), 반나절 동안 운전하고 안내해준 김호남 회장님, 이종하 사장님과 드디어 정분나셨다. 맥주잔 부딪치고 나이 따지더니 이런, 갑장이란다. 이래저래 한 장 더 찰칵!!

발트해에 인접한 마을은 정말 그림 같았다. 오죽하면 어르신께서 함부르크 시내 한식당 ‘만남’의 예약을 취소하고 여기서 바다를 바라보며 저녁을 먹자!..고 고집하셨을까. 모처럼 여러 사람이 동조하는 듯했으나 이미 단단히 약속을 해둔 터라 변경이 불가했다. 어르신, 이번만큼은 저도 아쉬웠다고요. 저도 동화처럼 예쁜 바다마을에서 로맨티스트가 되고 싶었다고요. 돌직구 던져가며 조금 더 우겨보시지 그랬냐고요. 에잇, 신발!!

  • 페이스북
  • 구글+
  • 카카오스토리+
  • 이메일
  • 트위터
이전 다음 목록
┃꼬릿글 쓰기












* 띄어쓰기 포함 200자까지 쓰실 수 있습니다. (000 / 400바이트)
대국실입장하기
다운로드 이용안내 고객센터
정회원가입
오로볼구매
가장 많이 본 기사
스폰서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