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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과 상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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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역(周易)과 상징
2013-05-12     프린트스크랩

 

<문용직의 수담手談한담閑談●>
봄날의 세우(細雨)처럼 (2편)



3. 周易과 상징

 

주역이라는 만만찮은 세계가 있다. 한 권의 책 이상인 그런 것이 있다.

 

관심 깊은 분들이 아니라면 다음 이야기는 재미가 없겠지만, 가볍게 읽어주시라. 나이 중년을 넘고, 인생이 가끔은 우울해지는 분들은 주역 읽은 분들 많으리. 물론 주역을 읽는 많은 분들이 주역 읽었다는 이야기는 꺼내지도 않는다. 다들 주역에 뭔가가 있다고 말들 하니까 오히려 숨기는 걸까. 만약 그렇다면 오해한 것이다. 주역에는 특별한 것이 없으며, 신비는 더더욱 없다. 오래 공부할 책도 아니다. 안개가 자욱할 뿐이다.

 


[그림1] ()괘



[그림2] 서합(噬嗑)

 

[그림1] ()괘를 먼저 보자. 괘사(卦辭)貞吉 觀頤 自求口實이다.

대충 해석해서, 바르니 길하다. 턱을 보는 것이니 먹는 것을 구하는 것이다. 그리 말하면 족하다. 그런데 이 괘에는 괘사의 연원에 관한 유명한 해석이 있다.

 

[그림1]을 다시 보시라. 양효가 아래위로 하나 있는데, 그리고 가운데 4개의 음효가 있는데, 이를 두고 이리 본다. 위턱과 아래턱 사이가 텅 비어 있으니 바로 입을 뜻한다. 먹는 것을 시사한다. 그래서 괘사(卦辭)가 이리 나왔다. 貞吉 觀頤 自求口實. 요컨대 그림(기호, 상징)으로 뜻을 밝히는 해석이다.

 

그럴듯하다. 그것은 [그림2] 서합괘를 함께 보면 더욱 그럴듯하다. 서합괘를 유심히 보면, 가운데에 양효가 하나 음효를 대신해서 들어가 있다. 그래서 이리 의미를 붙인다. 입 속에 먹을 것이 하나 있다. 그러니 서합(噬嗑) 즉 씹는다는 뜻이 나왔다.

 

그럴듯하다. 처음 읽었을 땐 감동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주역의 그림을 이리 붙이고 저리 붙여서(이를 괘변이라 한다), 그림과 점사(占辭)를 결부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전체 64괘 중에서 이런 경우가 더 있는가? 서합괘가 아닌, 산화비괘도 입 사이에 뭔가 물린 형상인데-아래위만 다를 뿐-왜 다른 점사가 나오는가?

그에 대해 답을 준 책도 없었지만, 애초에 의문부터 없었다.

 

오늘 말하고 싶은 것은 다음이다.

 

저 두 개의 그럴듯한 그림은 정지된 것이다.

 

정지된 것은 힘을 발휘한다. 우리의 의식에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최면의 핵심은 하나로 주의를 모으는 것. 그러면 생리적으로 이마 쪽 전두엽에 힘이 모인다. 판단력이 낮아지는 것은 그 부정적인 효과. 물론 긍정적인 효과도 적지 않다.

 

정지 속에서 집중하면 최면 상태에 들어가기가 쉽다. TV를 오래 보는 것도 일종의 최면상태에 들어가는 것인데, 그러나 TV는 화면이 움직이지 않는가? 그렇다. 그러나 판단을 불러일으킬 상태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기에 최면의 효과가 적지 않다.

 

공부할 때 뭔가에 집중하지 말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또 최면이 나쁘다는 것도 아니다. 자신을 이완시키는 최면은 우리가 일상에서 행하는 바다. 자기 자신을 조절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점은 정지라는 단어에 있다. 여기에 가치판단은 개입하지 않는다.

 

이괘와 서합괘 같은 것에 홀려서 시간 낭비한 자 그 얼마나 많았던가.

다산 정약용도 오랜 시간을 그런 문제에 쏟아 주역사전 周易四箋을 펴냈다. 두꺼운 번역본도 있고 높은 평가도 받지만, 아쉽게도 오류로 시작해서 오류로 끝난 책. 그런 책이 주역학계에서는 높은 대접을 받으며 학술대회까지 열리고 있으니, 자기만의 잔치요 다산의 이름에 기대는 것이 아니라고, 과연 어느 누가 변명할 수 있을까?

 


 숫자괘 (방정명문과 서주유지계수)




위 사진은 숫자괘라 불리는 것으로, ()나라 출토 유물의 일부다. 1980년대부터 널리 출토되고 해석되어 중국의 학계에서는 움직일 수 없는 증거로 자리 잡았다. 왼쪽사진 왼편 아래를 보시라. 오른쪽 약간 조잡한 듯한 숫자의 획을 보시라. 여기에 음양의 표시는 없다.

 

앞서 [그림1][그림2] 음양으로 표시된 이괘 서합괘의 괘획은 본래 여기 사진처럼 숫자로 표시되었는데,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표시 방법이 변했다. 그러니 알 수 있다. 숫자로 괘를 표시했던 주역의 초기 시절에는, 이괘와 서합괘가 본래 입을 연상시키는 그런 그림이 아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은 이렇다. 점사는 괘획과 같은 그림을 이용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림3] 6획괘의 예(건괘 乾卦)

 

()의 본질을 알아보자. 주역에서 6획괘를 얻기 위해서는 계사전(繫辭傳)에서 밝힌 대로 하나 하나 6번을 점친다. 서죽이라는 것을 사용하는데, 이는 주사위를 던져서 숫자 얻는 것과 다름이 없다. 주사위를 던져서 짝수가 나오면 음효(­­) 홀수가 나오면 양효()를 그리면 된다. 짝수를 양효, 홀수를 음효로 해도 된다. 이치는 1:1 대응에 있다.

 

, 여기서. 지난 2천년 동안 모두가 간과한 것이 하나 있다. 너무나 단순해서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일. 믿을 수가 없는 일.

주사위를 6번 던졌을 때 순서대로 1, 2, 3, 4, 5, 6이 나왔다고 하자. 그 경우 다시 한번 던지면 1이 나오게 되어 있나? 누구나 이에 대해서는 그렇지 않다고 답할 것이다. 중학교 확률 배울 때 주사위 던지기와 같은 1회적인 사건의 경우 각각의 확률이 모두 독립적인 것을 배웠기 때문이다. 그렇다. 주역의 6획괘에서 첫째와 둘째는 서로 아무런 관련이 없다. 서로 독립적인 점을 통해서 얻어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주역학자는 예외 없이 괘획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고 본다. 그것이 상수학자(象數學者)들의 입장. 점사의 뜻을 중시하는 의리학(義理學)이라고 해서 다르지 않다. 상과 수와 뜻(점사)이 동일한 연원을 갖는다는 것을 전제한다.

 

그러나 이제 여러분도 알다시피 6획괘 6개 부호는 서로가 독립적이다.

 

하나 더.

6획괘를 볼 때 거의 대부분의 학자, 술사(術士)들이 전제로 삼고 있는 것은 6획괘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간다는 것이다. 나무가 땅에서 싹을 터 하늘을 향해 자라난다는, 소위 나무(tree) 은유를, 실제의 구성 원리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방금 보았듯이 6획괘 괘획이 점()으로부터 얻어진다면 나무 은유는 은유일 뿐이다. 실제 구성의 원리는 아닌 것이다.

 

그래도 옛 성인이 막대기를 앞에 놓고 궁리해 뜻을 얻었다고 주장하는 분들에게는, 결정적인 것으로, 괴델(K. Godel)의 불완전성 정리가 증명의 수준으로 알려준다. 괘변의 방식은 참과 거짓의 문제를 답할 수 없는 형식이라고.

 

그런데 왜 그런 이해를 했을까?

그 이유 하나는, 바로 이 글이 앞서 인도에서 이야기했던 이미지의 힘에 있다.

6획괘 구성 자체가 쌓여진 것처럼 보여 하나의 정적(靜的)인 인상을 주기 때문이다. 정지된 것은 상징적인 이해를 불러일으킨다.

 

또 다른 증거를 하나 보여드린다.

상수(象數)의 이치가 맞다면, 하나의 괘 내에서 점사는 서로 통일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하다.

 

[그림4] 괘를 대표하는 문자의 추상성 정도와 효사 간의 (괘를 대표하는) 문자 공유 관계


 

[그림4] 그래프가 알려주는 바와 같이, 괘를 대표하는 글자가 추상적일수록 그 글자는 6개 효사에 적게 나타난다. 당연히 구체적일수록 6개 효사 간에 같은 글자를 공유하는 비율이 높다.

 

예를 들면,

(, )괘의 경우, 모든 효사가 제각각이다. 통일성이 없다. (이라는 글자를 사용한 효사가 하나도 없다)

(, )괘의 경우, 5개의 통일성을 갖는다. (을 사용한 효사가 전체 6개 중에서 5)

괘를 대표하는 단어가 괘사 속에 나타나는 경우는 64개 중에서 겨우 12개에 불과하다.

 

왜 차이가 있을까?

은유의 속성 때문이다. 은유는 구체적이고도 물질적인 것을 통해서 추상적인 것을 설명하는 언어 기법. 주역의 언어는 시()처럼 은유를 속성으로 하고 있다.

 

괘를 대표하는 글자의 의미가 추상적일수록 효사들은 같은 단어로 통일되지 못한다.

괘를 대표하는 글자의 의미가 구체적일수록 효사들은 같은 단어로 통일될 수 있다.

 

이런 것을 왜 몰랐을까?

이런 논리는 자연과학적인 것이라 인문학자들이 무시하는 경향이 있었다고나 할까.

 

정적(靜的)인 이미지가 우리에게 주는 신비로운 힘은 있지만 그렇다고 현실이 그 이미지와 같은 것은 아니다.

신비로운 현상은 있어도 신비는 없는 것이다. (3편, 바둑의 모호성,으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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高句麗 |  2013-05-12 오전 7:04: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용직 사범님의 글을 읽고 생각해 보니 제가 보기에 주역은 점치는 책이 아닙니다
그냥 세상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을 뿐이죠
학문은 어디까지나 학문으로 끝나야지 이것으로 점을 친다는 것은 사기라고 봐야죠
그러나 주역으로 점을 쳐서 맞추는 경우가 없지 않아 있읍니다
그런 분들은 영적으로 도통한 도인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술사들도 영적으로 통했지만 욕심이 개입되어서 정확히 맞출수 없죠
 
청로사랑 문용직 사범님의 글은 훌륭합니다. 그리고 주역은 점서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문사범님의 글은 일종의 개인적인 추론일 뿐입니다. 그런데 점을치는 것을 사기라고까지 비약한 것을 보니 참으로 가관입니다. 물론 점의 철학적 사변과 대중적 인식사이에는 괴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좀더 차원을 높여 바라보면 점은 참으로 과학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高句麗 |  2013-05-12 오전 7:07: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역을 통해 점을 제대로 치려면 주역점을 치지 않아도 앞을 내다볼 정도의 예지력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즉 관상이나 사주 보지 않고도 이사람의 앞날은 어느 정도일 것이다라는것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거기에다가 더 알고 싶을때 주역의 힘을 빌어 더 상세히 알수 있을 뿐이죠
즉 주역이 일종의 망원경이나 현미경 역할을 할수도 있는 것인데
소경이 아무리 망원경이나 현미경을 들여다 보아도 사물의 이치를 알수  
청로사랑 주역을 일종의 망원경이나 현미경 역할을 한다는 비유는 참으로 탁월합니다. 그러나 망원경이나 현미경은 소경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들여다볼수 있으며, 들여다보는 사람의 능력에 따라서 소경이나 다름없는 사람이 있는가하면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두가 소경일 것이라는 전제는 참으로 안타까운 님의 안목입니다. ㅎㅎ
高句麗 |  2013-05-12 오전 7:10:32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없듯이 앞날을 내다보는 예지력 즉 영적인 능력이 없이 주역점을 통해 앞날을 정한다는 것은 일종의 사기입니다 사주나 관상 별자리로 점을 치는 전문도 마찬가지 입니다.
역사에서 점으로 나라일을 보는 사람이 있는데 그사람은 이미 앉아서 천리를 손바닥으로 들여다 볼수 있을 정도의 영적인 능력이 이미 도통의 경지에 가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제갈공경이나 강태공이 그 경지에 도달한 분이죠
 
청로사랑 주역을 관상이나 사주 별자리보는 것 등으로 싸잡아서 보는 시각은 님의 견해가 그만큼만 생각할 수 있기 떄문 아닐까요. 영적인 능력이 없이도 얼마든지 가능한데말입니다. 물론 님은 역술을 업으로 삼거나 잘난척하는 경우를 빗대어서 한 말이겠지만 님의 예지력과 통찰력이 어느정도인지는 모르겠으나 함부로 비하하거나 단정지어 말할 정도인지는 스스로 생각해 뵈기 바랍니다. 제갈공명이나 강태공이 주역을 응용하였다는 사례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얼마나 알고계신지요. 막연한 추측과 이미지로 말해서는 좀 곤란하지 않을까요.
高句麗 |  2013-05-12 오전 7:13: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렇지 않고 주역이나 사주 관상으로 점을 친다는 것은 소경이 망원경이나 현미경으로 사물을 본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사주나 관상 주역을 세상의 이치를 연구하는 학문적인 분야에서는 영적으로 통하던 통하지 않던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입니다
이는 바둑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조금씩 깨우치는 것과 같은 것이죠  
대대박나라 |  2013-05-12 오전 9:44: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역으로 수백 수천시간의 고민이 깃들여 나오는 한 두 마디의 토설입니다. 거기에 마치 세상을 모두 아는 영통한 이처럼 토를 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 이치를 먼저 깨달으시길.  
高句麗 저도 나름대로 공부하고 수련도 하고 깊이있게 연구해보고 내린 결론이라 그리 틀리지 않으리라 봅니다 틀리면 어디가 왜 틀린지 님이 지적해 주시기 바랍니다.
高句麗 |  2013-05-12 오후 12:51:59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저는 사주도 배워보고 주역도 배워보고 도 닦는다고 단전호흡도 배우고 지금도 꾸준히 수련하고 있읍니다 그래서 내린 결론입니다
저는 세상을 모두아는 영통한 사람처럼 말한적 없읍니다
저는 백운산같은 유명한 사람에게 사주를 보았지만 맞히지 못하더군요 주역점은 연필굴려서 맞히기 식이고
주역은 영적으로 통하지 않은 사람이 점을 칠수 없지만 주역을 통해 세상의 오묘한 이치를 공부할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청로사랑 고구려님의 도통하시려는 수련을 통해 내린 결론이라니 참으로 안타깝지만 겉표지만 보고 다 읽었다고 말하는 경우처럼 느껴집니다. 예를 들면 연필굴려서 맞히기 식일는 것은 전문적으로 연구하고 궁리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겠지요? ㅎㅎㅎ
高句麗 |  2013-05-12 오후 12:56:1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역도 엄현한 하나의 학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오죽하면 공자께서 몇천번을 읽었다고 나왔겠읍니까 설마 공자가 주역을 학문이 아니라 일반 점쟁이 같은 점이나 치려고 공부했다고 생각안하겠죠
저는 남의 운명을 봐줄 정도은 아니지만 그래도 운명이 어떻게 흐르는가는 조금 압니다.  
지풍승 |  2013-05-12 오후 1:40:3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역은 ... 점쟁이에게는 점치는 점사로.. 학자에게는 학문으로 ..어떤자에게는 불쏘시게로 .. 닉이 궁한 자에게는 닉으로.. 어디든 누구든 진가가 쓰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대자리 |  2013-05-12 오후 6:45: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중세 이후 동양이 서양에 뒤진 가장 큰 이유가 동양이 주역같은 요설과 미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동안 서양은 신에서 벗어나 인간과 자연의 문제로 돌아갔기때문이다.주역 천번 읽는 것보다 소크라테스의 변론(또는 변명)을 한번 읽는 게 정신을 깨우치는데 훨씬 도움이 된다고 본다.  
철권미나 |  2013-05-12 오후 10:17:4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정지된 것은 움직이나니 움직이지 않으면 정지할 수 없으리 - 조로아스터 암흑서 5장 16절  
高句麗 |  2013-05-13 오전 7:30: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주역은 미신이 아닙니다 미신이라 함은 남의 나라의 정신과 문화를 말살시키려는 기독교의 논리인데 기독교의 논리대로 따져도 기독교보다 더한 미신은 없읍니다
기독교인들은 예수 믿으면 천국가고 안 믿으면 지옥간다고 믿는데 현대 과학적으로 따져도 이보다 불합리하고 비과학적인 미신은 없는 것이죠
예수가 행한 기적 또한 다른 종교인이나 일반인이 기독교의 논리를 빌어 말한다면 다 미신으로 치부될 것이고  
高句麗 |  2013-05-13 오전 7:34: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동정녀 마리아가 예수를 낳는 다는 것도 다른 종교인이나 일반인이 볼때 이보다 비 상식적이고 비 과학적이고 이보다 더한 미신은 없는 것이죠
성경을 들여다 보아도 비상식적이고 비 합리적이고 비과학적인 구절이 많읍니다 이것 또한 일반인들이 기독교의 논리로 따지면 미신입니다
기독교의 병폐가 무엇인고 하면 자신의 논리는 현대 상식에 맞지 않아도 믿으라고 강요하면서 다른 지역의 문화나 다른 종교는 기독교이 논리에  
高句麗 |  2013-05-13 오전 7:37:0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맞지 않으면 무조건 미신이나 우상으로 치부한다는 것이죠
제가 볼때 여러 종교중에 기독교보다 더한 우상이나 미신은 없읍니다 비종교인인 제가 기독교의 논리대로 예수를 논한다면 예수또한 우상입니다
제가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동정녀가 예수를 잉태하고 예수가 기적을 행단하는 말을 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의 교리는 상식에 맞지 않아도 온갓 이론을 끌어들여 주입시키면서 다른 종교나 문화는 자신의 교리에 맞지 않는  
高句麗 |  2013-05-13 오전 7:39:4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는 이유로 함부로 재단하고 난도질하여 우상이나 미신으로 치부한다는 것이 기독교이 병폐입니다
어느 종교나 문화를 보더라도 예수의 기적이나 동정녀의 아낳는 다는 신화가 내려오기 마련입니다 이것을 문화나 신화로 이해해야지 함부로 남의 학문이나 종교 문화를 자신의 교리에 맞지 않는 다는 이유로 미신이니 우상이니 하는 것 보다 비상식은 없는 것입니다  
高句麗 |  2013-05-13 오전 7:45: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그리고 서양이 동양보다 앞섰다는 것은 주관적인 서양인의 논리입니다 서샹이 앞선것은 과학기술과 경제입니다
철학은 동양에 비하면 초등학교 수준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서양에서 주역을 연구하고 불교를 연구하고 공자나 맹자 노자 같은 동양철학을 연구하여 서양의 혼란을 해결하려 한다는 소리를 들었읍니다
동양은 서양것을 맹종하여 추종하지만 서양은 동양것을 연구하여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는 것이죠 그래서  
高句麗 |  2013-05-13 오전 7:49:31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양에서 갈수록 동양의 문화나 사상에 대해 관심이 높아진다고 들었읍니다.
제가 볼때 서양의 철학은 물질중심 돈 중심 철학입니다 이 사상이 세계에 판치고 있읍니다
이것은 사상도 철학도 아니죠 물론 정신을 중시하는 인격을 중시하는 철학도 있지만
지금 서양에서 판치는 철학은 정신철학도 인간존중 철학도 아니고 돈중심 경제줌심으로만 움직인다는 것이죠 우리나라도 그렇게 움직이기 때문에 병폐가 심해지는 것이죠  
高句麗 |  2013-05-13 오전 7:53:2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서양은 물질 동양은 정신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서양의 사상과 철학이 동양보다 앞섰다면 동양 정신 서양 물질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았겠죠
물질이나 경제 과학은 서양이 앞선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법이나 제도 정신이나 철학은 동양에 비하면 서양은 제가 볼때 원시수준에 지나지 않다 봅니다
서양의 법과 제도도 국민을 위한게 아니고 국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1%의 권력층이나 기득권층을 위한 제도이지  
高句麗 |  2013-05-13 오전 7:56:0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절대로 국민을 위한 제도나 법이 아닙니다
늑대가 말로만 민주주의 탈을 쓰고 국민을 우롱하는것이 서양의 법과 제도 입니다
진정으로 서양의 법과 제도가 국민을 위한 민주주의라면 갈수록 인간성을 상실하고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고 파괴하고 또 사회가 혼란을 겪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모든 법과 제도가 강자를 위한 약육강식의 논리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사회가 갈수록 방황을 잃고 혼란을 겪는 것입니다  
高句麗 |  2013-05-13 오전 7:59:1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현재 우리나라도 모든 법과 제도가 실제로는 1%의 기득권층을 위해 움직이고 있읍니다
그래서 갈수록 빈부격차가 더 심해지고 사교육이 난동부리고 기득권 층은 아무리 법을 어기고 부정부패해도 제대로 처벌받지 않고 풀려나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제도는 아무리 민주정부가 들어선다 해도 바뀌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서양의 법과 제도 자체가 국민을 지배하고 다스리는 기득권층을 위한 제도 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高句麗 |  2013-05-13 오전 8:01:4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우리의 현실이 입증해 주고 있읍니다 이것은 아무리 제2의 노무현 김대중이 수두룩 하게 탄생해도 바뀌지 않읍니다 왜냐하면 서양의 법과 제도 자체가 국민을 위한게 아니라 기득권층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아무리 노무현 김대중이 바뀌려 해도 바꾸지 못한 이유입니다
민주주의 다 늑대가 양의 탈을 쓴 것이고 하나의 꿈이고 허상일 뿐이지 현실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高句麗 |  2013-05-13 오전 8:04:4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진정한 공산주의가 이루어 질수 없는 허상이 듯이 진정한 민주주의 또한 하나의 허상이지 현실이 될수 없읍니다 이땅에 진정한 민주주의가 이땅에 실현된다면 그거야 말로 모든 종교인이 꿈꾸는 지상천국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세상은 오지 않읍니다
그래서 진정한 민주주의는 신기루같은 허상이지 현실이 될수 없다는것이죠
이는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 입니다
권력은 국민의 힘에서 나오는것이 아니라 투표기에서 언론에  
高句麗 |  2013-05-13 오전 8:07: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의해서 권력자의 의도대로 재탄생하는 것 뿐이지 절대 국민의 힘으로 탄생할수 없는 일입니다 국민은 자신의 의도대로 권력자를 뽑는다 생각하지만 결국은 권력자가 쥐고 있는 언론에 의도된 여론에 따라 국민은 권력자를 선택하는 것이지 자신을 위해 권력자를 선택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독재자가 권력을 움켜쥐는 이유입니다  
세빌라 |  2013-05-13 오전 11:32:1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일장연설 하시나
 
김생원 |  2013-05-14 오전 9:35:37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른 데로 좀 안가나  
블로우 |  2013-05-15 오전 10:03:5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괴델의 불완정성의 정리를 자주 인용하시는데(제가알기론 일본의 한 철학자분께 감수받으셨다고 하던데요), 易과 탈현대의 논리(전 한신대 교수 김상일 저)에 보면 오히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로 주역의 논리를 해석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물론 괴델의 정리만 나오는 것이 아니라 러셀 칸토어 라이프니츠 소쉬르 화이트헤드 데리다 등등 기라성 같은 철학자의 정리와 주역의 관계를 긍정적인 방법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블로우 |  2013-05-15 오전 10:05:08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런 내용이 바로 전문성이라 생각됩니다. 두뇌 좋은 것과 전문성이라는 것은 무서운 차이입니다.  
청로사랑 저도 동갑입니다. 괴델의 불완전성의 정리가 완전한 이론이며 앞으로도 영원히 오류가 없을 것인지는 확신하지 못합니다. 문 사범님의 책을보면서 저도 날카롭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고개를 갸우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로사랑 |  2013-09-21 오후 7:10:36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문 사범님! 이(頤)괘 속에서 서합괘로 변했을 때와 산화비괘로 변했을 때의 차이는 분명합니다. 그런것을 말한책이 없다고 했는데 님이 공부를 안한탓이고 너무나 많습니다. 그 이유는 다양한해석으로 나와있지만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 차이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걸음 더 나아간 공부라는 것입니다. 역을 너무 가볍게 단언하시고 속단하시니 숙제를 드립니다. 님도 공부를 해야 알것이기에.... ^^  
청로사랑 |  2013-09-21 오후 7:25:35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다산의 주역사전도 읽었다니 놀랍습니다. 그런데 그 평을 보니 너무 심합니다. 주역은 오래 공부할 책도 아니라고 했는데, 사범님이야 천재니까 그런지 몰라도 제가 다른표현으로 해석해 볼까요. '바둑 오래공부할 것이 아니다' 이런 명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너무 허망한 것에 시간을 빼앗긴다고 쓸데없는 것이라고 할수있는가요. 마찬가지입니다. 존중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청로사랑 |  2013-09-21 오후 7:42:23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이천년동안 간과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듯해서 가만히 들여다보니 제가 웃음을 금치못하겠습니다. 점괘의 해석은 독립적으로 나오면 독립적으로 해석하고 전체적으로 나오면 그렇게 해석하는 것입니다. 의미를 압축하여 표현하는 방법으로 '상징'하지 않으면 자칫 의미의 전달이 불급할 수 있으므로 그리된 것 아닐까요. 점은 확률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묻는 사건에 대하여 상징(답 또는 지혜)하는 것이라는 것임을 강조합니다.  
강릉P |  2015-08-17 오후 3:22:44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청로사랑님은 난독증이 있으신듯..글의 흐름과 리듬을 볼때 오히려 역설적으로
주역에 대한 관심을 끌려는 글로 보이는데 폄하로 해석하다니요..ㅎㅎ
 
강릉P |  2016-12-11 오후 1:48:20  [동감0]  이 의견에 한마디
사카타의 말처럼 과거의 것은 결국 참고가 되어야 한다..약간은
비관적인 관점에서 주역을 해석을 한것은 맞지만 냉정하게 현대
과학의 수준에서 본다면 주역에서 새로운것을 찾는다는것은 불
가능에 가까울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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