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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바람, 그리고 고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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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시계를 바라보던 중이었다. 누군가 옆에서 고전(古典)이란 무엇인가? 그 질문을 했다. 널리 읽히는 책이 고전인가. 오랫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는 책이 고전인가.
고전이란 무엇인가. 나의 견해는 이랬다. 개념이 잘 뛰어놀고 있는 책이 고전이다. 어떤 개념인가? 그것은 추상성의 수준이 높은 개념들이다. 마치 바람과 같고 시간과 같은 개념들, 그런 것들이 바람직하다.
개념의 정의는 명확해야 한다고 하지 않은가? 바람이나 시간과 같은 개념은 손에 잡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모순이 없지 않은 듯도 하다. 그러나 이리 생각해보자. 세상은 변화한다. 변화하는 과정은 분화의 과정. 시간이란 것이 존재하는지 여부는 우리의 상식 밖이지만, 우린 그 존재를 구별한다. 세상은 경계로 구별된다. 너와 나. 나와 너는 이름으로 구별된다.
구별로 모호한 세상을 붙잡는 것이 인식. 그랬다. 사회나 문화의 설명에 있어서도 갈등, 경계, 불안, 질서, 이런 것들이 좋은 개념이었다.
바둑을 돌아보자. 어떤 개념들이 숨을 쉬고 있는가? 협공, 수비, 날일자, 형태, 감각, 이런 개념들이 언뜻 떠오른다. 충분한가? 아니다. 충분하지 않다. 조화, 발전성, 두터움, 가벼움, …. 그렇다. 이런 개념들이 반상을 수놓는다. 비록 바둑의 발전 방향을 예단할 수는 없더라도, 현재 우리가 놓여있는 이 순간에는, 모호하여 경계가 무너지는 그런 개념들이 우리의 인식을 그물처럼 잘 짜이게 해 준다. 그 그물로 관념을 형성해서 세상을 알게 한다.
자, 저 흑1은 매우 두터운 착점이다. 다른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형태로 보아서는 마늘모로 부르는 것이 답이긴 하다. 그러나 두텁다는 것이 저 흑1의 가치를 나타내는 가장 적절한 언어이다.
우리는 개념 속에서 살아가고 또 변화하는 존재이다. 그러므로 시간과 같이 형태가 분명하지 않은 그런 개념들만이 우리의 모습을 온전히 드러낸다. 바둑의 발전을 볼 때에도 두터움이 활발하게 놀게 된 것은 최근의 현상. 150년 전부터야 두터움의 세계를 알았던 것이다. 그래, 고전의 세계란 모호한 개념들이 잘 뛰어놀면서 주변을 설명하고 밝히는 그런 세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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