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문득 생각나서 돌아보는 일상 하나
|
|
|
|
|
지난 10월 초 쯤 되었을까. 독창적인 바둑 못지않게 여러 가지 기행(奇行)으로 유명한 후지사와 선생이 말씀을 남겼다. 바둑이란 무서운 거야. 이창호를 봐. 그렇게 잘 두던 그도 요즘엔 바둑이 예전 같지 않잖아?
나는 그 분이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모른다. 바둑의 깊이를 강조하신건가. 다만 나름의 이해는 할 수 있다. 바둑이 무섭다면 그건 다음 세 요인으로부터 온다. 바둑의 내용과 승부는 시대와 재능과 공부에 달린 것이다. 그리고 공부에 집중할 때도 재능이 표출될 때도 기껏해야 인생에 한두 번이다.
바둑은 실로 대단한 집중력을 요구한다.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을 우린 재능이 있다고 부른다.
재능은 무너지는가? 무너진다. 노력해도 무너진다. 다만 승부로 무너질 뿐이다. 그 어떤 천재도 20년을 버티진 못했다. 오청원 선생도 기껏해야 20년이었다. 그 이상 버틴다면, 그건 주변의 수준이 낮을 때에만 가능하다. 백년의 깊이가 쌓여야 나오는 그런 파우스트, 그런 토스토예프스키, 그런 제임스 조이스는 바둑에서는 나올 수 없다. 그러나 10년의 깊이가 백년보다 부족하다 할 수 없다. 영역이 다른 것이다.
기보는 죠와 명인 만년(晩年)의 대국인데 상변 백1과 같은 실수를 했다. 먼저 A를 선수할 자리다. 흑4가 묘수. 이로써 그만이다. 죠와는 흑4를 보고 던졌다. 굳이 진행한다면 하변처럼 될 것이다. 실로 두렵다. 그처럼 수를 깊고 넓게 보는 기사도 흑4를 놓친다. 명인에겐 간단한 맥점인데 말이다.
개인의 지적(知的) 성장은 한계가 있다. 한 번 섬광을 그린 천재는 그것으로 인생의 힘을 거의 다 소진한다. 천재가 아닌 사람만이 오래 견딜 수 있다. 언제나와 같이 변함없는 일상(日常). 그것을 아름답다고 여긴다면 천재 아닌 것을 다행으로 알아야 하리.
다시 한 번 돌아본다. 내용과 승부를 개인의 삶에 맞춘다면 바둑은 무서운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개인의 시선을 넘어서서 본다면, 천재들의 안목과 경험이 남아있는 바둑은 무서운 것이 아니다. 우리의 지혜 없음이 아쉬운 거다. 잠언(箴言)은 있는가. 나에겐 없다. 누군가 바둑에서 얻는다면 알려주기 바란다.
|
|
|
|
|
|
|
|
|
|
|
|
|
|
|
|
|
.gif){kind=logo}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