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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의 대지(大地)에 귀 기울이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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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시. 박명(薄明)도 채 이르지 않은 시간. 창을 여니, 내 불 밝힌 방이 우주인양 덩그러니 어둠 속에 기운다. 다시 자리에 누우니, 후두둑 빗방울 창틀 때리고 풀벌레 잠시 소리를 죽인다. 쏟아지듯 솟구치듯 비바람으로 흘러가는 먼 시냇물이 풍만한 공간감을 그려준다. 비로소 잡히는 소리의 대지(大地).
내 알기로 옛날의 소리는 굵었다. 왜냐? 모든 것을 하나로 어울어야 했기 때문이다. 강물도 단선으로 흐르지 않고, 시내를 받고 여울을 건너 늪을 지나 평야를 훑어 내려갔다. 그래서인가. 추석도 달이 둥글게 굵은 바로 그 날로 잡았다. 부드러운 포용, 그것이 가을의 미덕 아닌가. 달인들 그 뜻을 벗어날 수 있으랴.
바둑도 그랬다. 17세기 이전, 본격적으로 경쟁의 시대에 들어서기 전엔 바둑도 둥근 곡선을 사랑했다. 비록 반상이 격자(格子)로 짜여져 있더라도 돌의 선(線)은 곡선을 지향했다. 기보 상변을 보자. 백4가 한 때 우리가 가졌던 바로 그 부드러운 곡선이었다.
그러나 이제 다르다. 오늘날은 하변 백12 꼿꼿이 세운 날을 애용한다. A 건너붙임을 엿보기 때문인가. 아니다. 어울려 들려오는 소리와 폭넓게 활용되는 다맥락적(多脈絡的)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소리도 시간도 우리는 잘게 나누고 있다. 높은 효율을 얻기 위해 쪼개진 시간과 공간을 필요로 한다.
그렇다. 수법도 사회적 가치에 영향 받는다. 제한된 시간과 장소가 오늘의 바둑을 이룬다. 남는 것은 압력. 베르누이의 정리(定理)에 따라 압력이 높아지면 흐름의 속도는 빨라질 수밖에 없다. 빠르게 되려면 날카로워야 한다. 그것이 바로 하변의 백12. 그리 될 수밖에 없다.
추석이 다가오니 문득 둥근 달이 그립고 반상에선 돌의 곡선이 기껍다. 우리 다시 얻을 수 없는 것을 애타 하나니, 바둑도 예외가 아니다. 상변 저 둥근 곡선을 이제 다시 얻을 수가 없나니.
그러나 얻을 수 없는 바를 아쉬워하는 그것이야말로 놓칠 수 없는 감성. 그 감성이 있기에 비로소 가을의 둥근 달도 존재하리니. 구조화된 사회의 뒤안에는 휴식을 찾는 우리의 둥근 표정이 반드시 존재하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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