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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한 때 기사실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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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운 여름이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이런 날 기사들은 어찌 견디나?
예선 날 오후 1시. 4층 기사실. 에어콘만으로는 가셔지기 힘든 더위. 너댓은 컴퓨터에 눈을 모으고 일고여덟은 가볍게 검토하는데, 조혜연 5단과 서봉수 9단이 큰 웃음을 터뜨리다. 시끌법적하다가 2시 5분 전엔 모두가 떠나다.
2시 5분 전. 1층. 부채에 쓰인 글을 감상하다. 나날이 새로워지다(又日新). 현묘한 기틀을 얻다(釣玄). 흐르는 물은 앞을 다투지 아니한다(流水不爭先). 꿈(夢). 무애(無碍). 바둑으로 근심을 잊다(手談忘憂). ….
2시. 2층 대국장. 기사 생활 20 여년에 처음 사용하는 쥘부채. 과연 시원하다. 옆 자리 나종훈 5단이 가볍게 던진다. 처음 사용해보는구만. 어! 어떻게 알지? 시끄럽게 부쳤나 보다. 내 귀엔 부채가 바람만 일으키지 소리는 들리지 않았는데! 인식은 그런 것. 돌 소리 바람 소리 쉼 없이 흐르는 대국장. 그러나 적막할 정도로 조용하다. 바둑삼매란 그런 것.
손에 잡히는 가벼운 쥘부채는 기사들에겐 대국의 소품(小品). 더운 여름에야 말할 것도 없다. 바둑은 손으로 두지만 정신이 맑아야 한다. 발은 따뜻하되 머리는 시원해야 정신도 맑을 터니 쥘부채는 영원한 친구다.
내 부채에는 단 한 글자 ‘락(樂)’이 붓 굵게 씌어져 있다. 서봉수 9단의 글씨. 바둑 두는 중간에 서9단에게 갔다. 초반이니 그리 실례되지는 않는다. 뜻이 뭡니까? 아, 그거? 제일 좋은 거잖아? 눈주름을 만드는 소박한 미소에 그다운 설명이다. 20대 한창 때는 날카로와서 옆에만 서도 서늘했던 양반이!
사물에 부딪쳐 정(情)은 일어나는데(感情), 일어나면 움직이고(動) 그러면 소리(音)가 울리니 그것이 곧 즐거움이다. 그것이 즐거움(樂)에 대한 오랜 음운학적 설명의 하나. 과연 그랬다. 지금 돌아보니 그 날의 오후 기사실엔 바둑을 검토하고 인터넷에 눈을 모으는 10대 20대 옆에 50대 서9단이 있었다. 떠들썩한 노소동락(老少同樂).
그러한 한 때 검토는 어떤 거였나? 흑8이 두터운 호착(好着). 마음을 넉넉히 가지면 반상은 넓게 보이고 그러면 두터운 수가 자연스레 떠오른다. 그렇다. 더울 때는 프로들도 세세한 수읽기는 귀찮아한다. 그저 턱 하니,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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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꼬릿글 쓰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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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기사들 옆에 서봉수 기사님께서 해맑은 웃음을 하고 함께 웃는 모습.....생각만 해 보아도 입가에 미소가 듭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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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oozi |
｜ 2004-08-16 오후 4:11: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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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언제나 감상적인 기분이 드는 글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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