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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평선이 잘릴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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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를 보았다. 눈이 끝갈 데 없을 때 닿는 건 먼 하늘과 바다를 잇는 선분(線分), 선분. 산을 보았다. 어리는 건 능선과 하늘의 만남, 만남. 차창(車窓) 밖을 보았다. 넘실거리는 대지에 산과 강. 잡히는 건 2차원 평면으로 잘 잘려진 마분지. 밤 열차 가는 곳에 드러나는 건 어둠 속에 먹힌 윤곽, 윤곽들.
그래서 말했을까. 인류학자 레비스트로스(C. Levi-Strauss)가 그래서 말했을까. ‘나’라는 자아는 없다. 있다면 교차로(crossroads)에서 만나는 우연이 있을 뿐이다. 이 자리에서는 이런 우연이 저 자리에서는 저런 우연이 존재할 뿐이다. 선택은 없다. 있다면 우연만이 있을 뿐. 그게 우리이다.
그가 알려준, 세상을 인식한다는 건 그래서 그랬나. 우리 모두는 나름의 안목을 갖는다고. 그 열린 안목으로 우리는 인류에의 새로운 전망을 얻는다고.
반상은 참 잘 짜여진 교차로의 집합이다. 씨줄과 날줄이 교직(交織)으로 엮여져 세계를 이룬다. 우린 그 하나 하나의 교차로에 돌을 놓지만, 우리의 전망은 그 너머로 크게 열려 있다.
다소 추상적이지만, 기하학이 참으로 잘 표현될 수 있는 세상이 바둑이다. 간결한 기하학적 인상(印象). 기보를 보자. 1934년 10월 기타니 6단과 오청원 5단(흑)의 바둑이다. 이 돌 저 돌, 하나 하나가 저마다의 교차로에서 저마다의 우연을 얻고 있다.
우연이란 무엇인가. 나와 그가 여기서 만나는 것을 말한다. 그런데 왜 백2는 A가 아니었을까. 흑1은 좌우의 흑돌과 일직선상에 놓여있는데. 백8도 왜 B가 아니었을까. 흑5 흑7을 잇는 선분 위의 점은 B일 터인데.
물론 나는 여기서 유치한 인문학적 상상력으로 닫히고 싶지는 않다. 나는 비유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 그래도… 백2와 백8은 집중하는 시각선(視覺線)이다. 백10도 백8과 흑5를 이어 출렁이는 수평선을 만들고. 반상은 교차로의 집합이니, 우리의 세상 보는 눈을 가볍게 옮긴다 해도 그 또한 무방하리.
그러나 바둑은 과연 그런 걸까. 그런 설명방식은 어디까지 가능할까. 갑자기 나의 눈이 변했다. 우연이 왔다. 흑11이 왔다. 돌연, 돌연히 다르게 표현하고 싶다. 꽂히는 빗줄기가 수평선을 단호하고도 서늘하게 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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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상적인 표현.... 좀더 깊이있게 묘사해 들어간다면 뭔가 잡힐 것도 같은데..무엇인가가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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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ofuqhek |
｜ 2004-08-26 오후 8:24:00 [동감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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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의견에 한마디 |
가슴 깊이 와닿는 깊이의 설법에 점점 매료된다. 그리고 또한 진한 여운을 남긴 에필로그가 던지는 그곳에서 한참 머물수 밖에 없던 나의 심연은 야릇하게 요동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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